00118 [EP13.사이비종교]―
[EP13.사이비종교]
학교는 금방 살육과 공포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악마들은 학생들의 울부짖음과 나약함을 즐거워하며 거침없이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
“선,선생님!
”
같은 반 친구들이 악마들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모습에 혜선은 그저 선생님을 애타게 부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악마들과 혜선을 번갈아 보더니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미,미안하다!”
‘내가 몬스터를 이길리 없잖아!’
선생님은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복도로 뛰어나갔다.
키이이이익!
하지만 복도에는 이미 교실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악마들이 학생들을 뜯어먹는 중이었다.
“선,선생님...커헉.”
“경,경수?”
자신의 반의 학생인 경수가 뜯어먹히고 있었다.
선생님은 뒷걸음질 쳤다.
투욱!
단단하고 차가운 피부가 느껴졌다.
키이이이이익!
콰드득!
혜선은 복도의 창문 너머로 도망갔던 선생님이 악마에게 머리채 뜯어 먹히는 모습을 지켜봤다.
만약 혜선도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면 똑같은 꼴이 되었을 상황이었다.
“어,어떡하지.
우리 어떡하냐고!”
“...으으으.”
남은 학생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사방에는 모두 악마들로 가득 찼다.
어디로 가든지 죽음뿐이 안보였다.
혜선을 포함한 학생들은 모두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처럼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시체를 모조리 씹어먹은 악마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학생들에게 다가왔다.
“으으으으으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으흐흐흑!”
우드득!
우득!
악마는 걸어오면서 서서히 덩치가 더욱 커지며 위협적으로 변해갔다.
너무 두려워서 그랬을까.
퍼억!
누군가 혜선의 등을 악마에게로 거칠게 밀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혜선을 민 남학생에게로 향했다.
“...네가 제일 가깝잖아!
그,그러니까!”
남학생의 말에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계까지 치달은 공포가 학생들을 이기적이고 무자비하게 만들었다.
혜선은 황망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쳐다봤다.
크르르르르르―
악마의 손이 혜선의 머리를 향해 뻗었다.
혜선은 죽음을 앞두고 눈을 꾹 감았다.
“멈춰라!”
순간 창문을 깨고 누군가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유난히 두꺼운 하체를 가진 바퓰라였다.
바퓰라가 혜선의 바로 앞을 막아서자 악마가 몸을 움찔 이며 뒤로 물러났다.
악마는 바퓰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보다 압도적이라는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크르르르르
아쉬운 눈으로 학생들을 지켜보던 악마는 멀지 않은 곳에 멈춰서서 다른 학생의 시체를 입에 가져갔다.
우드득!
우득!
“혜선님.
가시죠.”
혜선은 길드 건물에서 스치듯 봤던 바퓰라를 기억했다.
“오,오빠는?”
“지금 여기로 오고 계십니다.
그것보다!”
바퓰라의 시선이 창밖 너머 어딘가로 향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퓰라가 혜선을 안아 들며 말했다.
혜선은 잠깐 전의 일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을 가리켰다.
“친구들도요!”
하지만 바퓰라는 그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저는 혜선님을 악마에게 밀어 넣었던 자들까지 구하기에는 자비롭지 못합니다.”
키이이이이익!
“살,살려줘!”
“우리도 데려가!”
교실에 남은 학생들의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대체..왜?”
혜선이 품에서 바퓰라를 멍하니 올려다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움찔.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거대한 악마를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혜선은 모르겠지만 거대한 기운은 이미 바퓰라를 감지하고 이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님이 오시기 전까지 버텨야 한다!”
단호한 바퓰라의 음성에 혜선이 입을 꾹 다물었다.
―
발록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얼굴을 찌푸렸다.
‘불쾌하군!’
자신이 만들어낸 악마와 다른 마족의 기운이었다.
‘감히 내가 정한 번식처에 끼어들다니.’
발록의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 듯 활짝 펴지더니 몸이 떠올랐다.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발록의 눈에 바퓰라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였다.
바퓰라는 발록의 존재를 깨닫고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인간?’
발록은 바퓰라가 들고 있는 인간에게 눈길이 갔다.
‘저 인간이 대체 뭐길래?’
휘이이익!
발록의 날개가 거칠게 펄럭이며 혜선을 안고 질주하고 있는 바퓰라를 향해 날아갔다.
‘온다!’
발록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바퓰라는 속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파바바밧!
한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 아스팔트 도로가 부서지며 바퓰라의 뒤로 흩날렸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
바퓰라의 정면에서 아공간이 열리면서 그 틈으로 발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한테서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발락의 손을 타고 기다란 불의 채찍이 나타났다.
[우선은 그 인간부터 구원하고 시작하자!]
휘이이익!
불의 채찍이 살아있는 생명마냥 혜선의 머리를 노리고 뻗어왔다.
바퓰라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채찍은 바퓰라의 발목을 꿰뚫었다.
치이이이이익!
채찍이 꿰뚫린 부위가 순식간에 타버리며 까맣게 변했다.
[하하하하하!
마족이 인간을 지키다니!
가엾구나 가여워!]
“아,아저씨!
괜찮아요?”
“괜,괜찮습니다.”
바퓰라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 발로는 더는 도망치기 힘들었다.
‘...마왕이시여!’
바퓰라가 암담함을 느껴며 속으로 나마 재준을 불렀다.
―
재준은 헤스티아를 타고 필사적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헤스티아의 거대한 동체가 꿈틀거리며 날갯짓을 할 때마다 나무들이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일반적인 헌터였다면 헤스티아의 등 위에 감히 올라타고 있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압력이 몰려왔다.
후우우욱!
거친 바람 때문에 길가에 서 있던 가로수와 자동차들도 뒤집어졌다.
밑에서 놀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재준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제길!”
자꾸 다급했던 바퓰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재준의 마음이 급해질수록 덩달아 헤스티아도 날갯짓을 더욱 빠르게 했다.
‘...바퓰라가 누군가와 전투 중이다!’
재준의 마나가 지속해서 소모되며 바퓰라를 재생시키는 중이었다.
재준의 권속인 바퓰라가 겨우 악마들 따위에 당할 리는 없었다.
분명 혜선의 학교에 나타났다던 그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중인 게 분명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크오오오오오!
헤스티아가 거칠게 포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 헤스티아의 모습이 창공 속으로 빠르게 녹아 들어갔다.
―
전투 중일 거라는 낙관적인 상황과 다르게 바퓰라는 그저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재준의 마나로 인해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발록을 자극했다.
발록이 거칠게 불의 채찍을 휘둘렀다.
휘이이익!
퍼억!
“크으윽!”
바퓰라가 이를 꽉 깨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허벅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만 곧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언제까지 회복되는지 볼까?]
바퓰라는 품에 혜선을 최대한 꽉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채찍에 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발록에게 저항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혜선을 껴안고 버티는 중이었다.
휘이이익!
퍼억!
“끄으윽!”
“아,아저씨!”
“...좀,좀만 더 버티면 됩니다!”
‘마왕님의 기운이 가까워진다!
조금만 버티면 돼!’
발록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저 멀리 맹렬히 날아오는 재준을 쳐다봤다.
[저게 바로 네놈이 그토록 기다리던 믿음이구나?]
발록은 채찍을 크게 휘두르며 하늘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후욱!
후욱!
불의 채찍이 점점 더 기세를 더해가더니 주변의 공기를 밀어내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절망과 희망은 항상 한 끗 차이로 발생하지.]
화르르르르륵!
화염의 기둥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재준이 멀리서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찔한 기운이었다.
“멈춰라!”
재준은 헤스티아의 등에서 뛰어내리면서 곧바로 그림자이동을 시전했다.
‘그림자 이동’
[그림자 이동을 시전했습니다!]
재준은 순식간의 거리를 좁히며 발록의 그림자에서 뛰쳐나왔다.
동시에 발록의 목을 향해 검을 그었다.
하지만 발록의 목과 부딪친 재준의 검은 마치 유리가 깨져버리는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하필이면 지금 재준의 검은 내구도가 다했다.
[크크크.
기다렸다!]
발록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재준은 그 모습에 순간 소름이 돋으며 오금이 저렸다.
[절망에 빠지거라!]
불의 채찍이 일직선으로 바퓰라에게 쏟아졌다.
바퓰라의 품에 안겨있는 혜선이 보였다.
“안돼!”
재준은 재빨리 어둠의 장막을 펼쳐서 바퓰라를 감쌌다.
‘어둠의 장막!’
[어둠의 장막을 시전합니다!]
하지만 발록의 채찍에 너무나 허무하게 어둠의 장막은 깨져버렸다.
화르르르륵!
푸욱!
채찍은 바퓰라의 등을 꿰뚫고도 모자라서 혜선의 가슴에도 박혔다.
재준은 순간 세상이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손끝이 떨리며 머리가 띵했다.
[크크크크크.
절망이란 참으로 중독성 있지.]
발록이 채찍을 들어 올렸다.
바퓰라와 혜선은 낚싯줄에 걸린 고기마냥 채찍에 매달려 들어 올려졌다.
쿨럭!
“오,오빠.”
혜선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재준의 절망에 빠진 표정을 봐서 그럴까.
혜선이 처연한 얼굴로 재준을 바라봤다.
“...미..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록의 채찍이 다시금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퍼억!
퍼억!
바퓰라와 혜선의 시체가 바닥을 구르며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다.
그 모습이 마치 느린 동작처럼 재준의 눈에 들어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