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9 [EP13.사이비종교]―
[EP13.사이비종교]
“아 맞다!
여기가 아니었지?”
학교가 끝나고 혜선은 무의식적으로 예전 집으로 향했다.
중간쯤 와서야 오늘 이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혜선은 핸드폰을 꺼내 이사한 집의 주소를 확인했다.
학교에서도 제법 먼 거리였는데 이곳에서는 훨씬 멀었다.
‘그냥 택시 탈까?’
걸어가면 족히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에이,다이어트 한다 샘치고 걸어가자.'
혜선은 결국 걸어가기로 하고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켰다.
자세히 보니,새로 이사한 건물도 혜선이 잠깐씩 놀러 가던 번화가의 근처였다.
‘이쪽에도 아파트가 있었나?
이 근처는 전부 빌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혜선은 아마도 재준이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이제 매년 다른 데로 이사 안 가도 되고 좋지.’
서서히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슨 촬영이라도 하나?’
혜선은 혹시나 연예인이라도 볼까 해서 쪼르르 달려가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기자들과 카메라가 바글바글하게 한곳을 찍고 있었다.
‘뭐지?’
건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막으려는 사람들로 두 파가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건물을 막고 있는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어떻게 해도 밀려나지 않았다.
“잠깐만 안에 촬영만 하게 해달라고!”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네가 뭔데 우릴 막아!
깡패야?”
“여기는 더게이머 길드 건물입니다.
함부로 침입 불가합니다.”
양복을 입은 직원들은 똑같은 멘트를 내뱉으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더게이머 길드?’
혜선은 무심결에 고개를 올려보다가 깜짝 놀랐다.
‘오빠?’
건물의 위쪽에 드래곤에 올라탄 오빠가 근엄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야!”
그때.
지나가던 카메라맨이 멍하니 넋 놓고 있던 혜선의 어깨를 카메라로 밀쳤다.
혜선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도로 위로 넘어졌다.
“아씨.
학생!
촬영 방해 말고 절로 가!”
“아야야.”
그때.
누군가가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다가왔다.
“아!
뭐야!”
“왜 미냐고!”
“밀,밀지마!”
사람들은 순식간에 홍해가 갈라지듯 옆으로 쭈욱 밀려났다.
남자는 넘어진 혜선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혜선님 괜찮습니까?]
선글라스를 쓰고 씨익 웃고 있는 사람은 혜선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노 아저씨?”
미노는 혜선을 부축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이게 우리 집이란 말이야?’
혜선은 길드건물의 13층에 도착해서도 멍하니 주변만 살폈다.
‘집 같지가 않아.’
아파트보다 두 배는 더 높은 천장에 보석으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보였다.
바닥은 딱딱한 돌바닥이었는데 위에는 무슨 동물인지 모를 거대한 장판이 깔려있었다.
벽에 새겨진 나무 문양들은 빛이 일렁일 때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이쁘다.’
엄청 값비싼 카페 같은 곳이었다.
함부로 손대기도 힘들고 친구들하고 사진 찍으러 한 번씩 가는 고급 카페 말이다.
조르르르르―
‘아니.
집에 웬 분수?’
거대한 미노타우로스가 포효하며 입으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모습이었다.
“...미노타우로스?”
[네.
혜선님?]
미노가 분수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다가 혜선을 쳐다봤다.
“응?
나 안 불렀는데요?”
미노가 뭐라 말하려고 할 때 마침 재준이 나타났다.
“혜선아.
어때?
집 이쁘지?”
“...응.
엄청!”
재준이 피식 웃으며 방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가 네 방이니까 짐 풀고 정리해.”
“저기?
알았어!”
혜선은 재준이 말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컥―
와아.
‘이게 내 방이라고?’
우선은 커다란 침대부터 보였고,개인 화장실,테라스까지 딸린 방이었다.
전에 혜선의 방에 비하면 3배는 커서 조금만 구역을 나누면 3명은 같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너무 좋아!’
혜선은 침대 위로 풀썩 뛰었다.
―
“마,아니 길드장님 준비 끝마쳤습니다.”
“그래?”
재준은 남자에게 서류를 건네받았다.
서류에는 현재 가용 가능한 전력과 협회에서 보내온 수도권 내의 발생한 게이트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으음.
얼추 가능하려나?’
현재 수도권 내에는 게이트를 담당할 헌터들이 모자라서 비상이었다.
얼마 전까지 게이트를 담당하고 있던 5대 길드가 마몬에 의해 뱀파이어 화 되면서 재준과 협회에 토벌당했기 때문이었다.
늘어나는 게이트를 담당하기에는 협회의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황동수가 재준에게 다급하게 게이트 클리어를 부탁해서 몇 번 나서긴 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게이트는 지금보다 계속해서 더 늘어나겠지.’
그전에 미리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재준이 길드를 만든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바퓰라.
다른 마족들은 인간계에 잘 적응 중이야?”
“물론입니다!”
눈앞에 서 있는 건 마족인 바퓰라였다.
인간형으로 변했음에도 유난히 컸는데 얼핏 봐도 2M를 훌쩍 넘는 키였다.
재준은 마음 같아서 시트리와 다른 5대 권속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는 마족들은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는 마족들로만 마계에서 끌고 온 것이다.
'잘 적응한다니 다행이네.'
마족들은 전부 B급 이상의 전력이었다.
그들과 계속해서 흡수 하는 김응룡의 헌터들을 합치면 그럭저럭 수도권의 게이트를 담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신뢰하고 있는 거 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왕,아니 길드장님!”
바퓰라가 복종의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인간계에 있을 때는 복종의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돼.
그냥 고개를 숙이면 충분하다.”
“네!
알겠습니다!”
재준은 바로 황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가기 전에 흥분한 기색의 황동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네.
헌터님!>
“준비 끝냈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협회 직원들에게는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재준은 전화를 바로 끊고 1층으로 내려갔다.
각층에 재준의 권속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1층으로 내려가자 바퓰라와 권속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출발해.”
재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마족 권속을 포함한 3백여 명의 길드원들이 각자 배정된 게이트로 향하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차가 더게이머 길드 건물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뭐,뭐야?
뭐가 저렇게 많아?”
“다들 어디로 가는 거지?”
‘헤스티아!’
재준은 헤스티아를 소환했다.
그리고 바로 헤스티아의 등 위로 올라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오오오오오옥!
재준의 석상을 스쳐 지나가며 헤스티아가 포효를 내질렀다.
[아빠 멋있다!]
“하하하.
그래?”
재준은 바로 충청북도에 위치한 게이트로 이동했다.
헤스티아의 날갯짓 한 번에 건물이며 나무며 뒤로 휙휙 사라졌다.
‘내가 맡은 곳은 A 게이트였지.
별 어려움은 없겠군.’
―
유창수는 헌터 협회 소속으로 게이트 관리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갑자기 늘어나는 게이트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헌터가 부족해서인지 게이트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놈의 뱀파이어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에휴.’
5대 길드의 길드원들만 건재했어도 이 정도의 게이트 발생률은 별거 아니었을 것이다.
유창수가 거친 한숨을 내뱉으며 게이트의 마력계수를 다시 측정했다.
‘C급이네.
조금씩 마력 수치가 조금씩 오른다.’
불길한 징조였다.
만약 이대로 며칠이 지날 때까지 공략할 헌터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협회 직원들로 이뤄진 공략대를 꾸려야 했다.
‘게이트 지원팀에 온 이유가 게이트 들어가기 싫어서인데 이게 무슨 꼴이야.’
유창수가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때 의문의 검은색 세단이 게이트 근처까지 와서 멈춰 섰다.
‘뭐야?’
“설마 오늘 오기로 한 더게이머 길드인지 뭔가인가?”
방문할 수도 있다는 공문이 미리 오기는 했었다.
곧 세단의 문이 열리고 6명 정도 되는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었다.
그중에 키가 유난히 커다란 남자가 유창수를 발견하더니 다가왔다.
저벅저벅
“자네가 협회 직원인가?”
“아.
네네.
맞습니다.”
2M도 넘어 보이는 키의 남자는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유창수는 괜히 떨리는 표정을 숨기며 서류를 받았다.
게이트 공략 허가권이었다.
‘인원도 6명 맞고 길드도 일치한다.’
“그럼 들어가겠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손짓으로 다른 남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거침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유창수의 후배가 슬쩍 다가오더니 말했다.
“선배님.
분위기 살벌한데요?”
“그러게.
근데 겨우 6명으로 괜찮을까.
C급인데.”
하지만 유창수의 걱정과 다르게 불과 1시간도 안되어서 더게이머 길드원들은 게이트에서 빠져나왔다.
‘벌,벌써?’
모두 하나같이 얼굴과 온몸에 몬스터의 피로 보이는 액체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수,수고하셨습니다!”
유창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이제 가면 되나?”
“네,넵!
가시면 됩니다!”
바퓰라는 잠시 아쉬운 눈으로 게이트를 쳐다보다가 차로 향했다.
“하하하하.
바퓰라님 그놈들 참 맛있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나는 오크 놈들이 그렇게 맛있을지 처음 알았다.”
유창수는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후배가 유창수의 팔을 건들며 말했다.
“선배님.
저거 혹시 오크들이 맛있다는 말은 아니겠죠?”
“...글쎄다.”
검은 정장의 헌터들이 나타난 것은 비단 유창수가 있던 게이트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간 수도권 내의 대부분의 게이트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게이트를 공략하고 떠난 이들은 다시 더게이머 길드로 돌아갔다.
매스컴과 인터넷에서는 이들로 인해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