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EP13.사이비종교]―
[EP13.사이비종교]
66일.
정확히 벨페고르가 하수처리장의 분변물에 잠겨 있던 시간이었다.
짧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벨페고르의 몸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축 처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던 피부가 희고 팽팽하게 변했고.
자글자글한 검버섯은 전부 사라졌다.
대신에 시원하고 이지적인 매력의 얼굴만 남았다.
성성이 빠졌던 백발은 찰랑거리는 금발로 변해 허리 밑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벨페고르가 여성의 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글부글
더러운 분변속에서 커다란 보석 같은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변이 묻어있어도 썩은 내가 진동을 해도 벨페고르의 미모를 감출 수 없었다.
촤르르륵!
허공에서 정수된 물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벨페고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온 몸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남김없이 닦아냈다.
“음메에에에에에에!”
염소 머리의 몬스터는 미리 알고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기 중이었다.
벨페고르가 나오자 커다란 로브를 그녀에게 바치듯 건넸다.
촤악!
“고요하군.”
벨페고르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시끄럽던데 말이야.”
벨페고르가 분변속에 들어가 있던 이유.
그녀는 그곳에서 힘을 회복하면서 인간들의 그릇된 기도를 계속해서 들었다.
‘형을 죽여주세요!’
‘돈을 벌게해 주세요!’
‘남들이 두려워할 힘을 내게 주세요!’
벨페고르는 인간들의 그릇된 기도를 들어주면서 끊임없는 그들의 욕망을 이뤄줬다.
물론.
인간들이 원하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없이 타락시키고 망가뜨리며 영혼을 오염시켰다.
그리고 그 타락한 영혼들은 벨페고르의 온전한 힘으로 흡수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벨페고르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 보며 말했다.
“인간들의 비명이.
신음이 들리지 않아.
어서 빨리 그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듣고 싶구나.”
“음메에에에에에!”
염소 머리의 몬스터가 동의하듯 길게 울부짖었다.
벨페고르가 귀여운 애완동물을 만지듯 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운 손가락이 머리에 닿자 염소 머리 몬스터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동시에 하체에 있는 양물이 빳빳하게 치솟았다.
“아몬.
나의 귀여운 종아.
그러고 보니 고생하는 너에게 아무런 선물도 주지 못했구나.”
벨페고르의 손가락이 아몬의 얼굴을 타고 어깨까지 내려왔다.
아몬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스으으으―
그때 벨페고르의 손가락에서 얇은 붉은색의 실이 흘러나왔다.
실 줄기는 바람에 일렁이더니 아몬의 두터운 어깨를 감쌌다.
피익!
촤아아악!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아몬의 어깨가 깔끔하게 단면을 드러낸 채로 잘렸다.
두꺼운 팔은 떨어져서 경련을 일으키며 펄떡였다.
아몬은 그런데도 온몸을 치닫는 성적 욕구 때문인지 통증도 못 느꼈다.
철퍽!
펠페고르는 잘린 단면에 손바닥을 붙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단면에서부터 새로운 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팔보다 훨씬 더 두껍고 거대한 팔이었다.
우우우우웅!
새로운 팔은 은색으로 번득거렸다.
“음메에에에에에에!”
아몬은 새로운 팔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기뻐했다.
그때 수풀을 헤치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굴에 덕지덕지 위장크림을 바르고 훈련 중이던 인근 부대의 병사들이었다.
병사 중의 한 명이 벨페고르와 아몬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헉!
뭐,뭐야?”
“김 상병님 왜 그러십니까?”
“몬스터다!
몬스터!
어서 헌터 협회에 연락해!”
벨페고르의 눈길이 군인들에게로 향했다.
“아몬.
새로운 팔을 시험해볼 기회가 왔구나.
한 명만 빼놓고 모조리 처리해.”
“음메에에에에에에!”
아몬의 신형이 순식간에 날아오르나 싶더니 병사들의 머리를 덮쳤다.
“으아아아아아!
사격해!”
타타타타탕!
수십 발의 총알이 쏟아졌지만 새롭게 생겨난 팔에 막혀 조금의 흠집도 남기지 못했다.
퍼억!
“으,으아아아아악!”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은 몸의 한 부위씩 터져나가며 쓰러졌다.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으,으으.
살려주세요.
살,살려주세요.”
김 상병은 공포로 인해 고개도 들지 못했다.
이미 주변의 자신의 목소리 빼고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벅저벅.
산의 흙길을 밝고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 들어요.”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으응?
몬,몬스터는 갔나?’
김 상병이 공포로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건 조금 전의 두려운 몬스터가 아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아니,
여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금발의 머리에 이지적인 눈빛에서 흘러넘치는 매력에 김 상병은 상황도 잃고 입을 벌렸다.
“내가 마음에 들어요?”
김 상병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벨페고르에게 다가갔다.
벨페고르는 양팔을 벌리고 김 상병을 끌어안았다.
김 상병의 눈은 서서히 초점을 잃고 벨페고르의 노예가 되어갔다.
―
며칠 동안 재준은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게이트들을 클리어했다.
덕분에 게이트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음에도 한국은 별다른 체감을 못 느꼈다.
그리고 그사이 재준의 건물은 완공되었다.
수십 명이 투입되는 건설회사에서도 몇 달이 걸릴만한 일을 드워프 6명과 스톤골렘 30마리가 일주일도 안돼서 해낸 것이다.
‘이제 여기도 끝이군.’
재준은 그동안 살던 아파트를 한차례 둘러보고 나왔다.
짐은 혜선의 짐 빼고는 거의 없었다.
재준의 짐이라고 해봤자 컴퓨터 정도였는데.
이 사가는 김에 전부다 싹 바꾸기로 마음먹어서 폐기하기로 했다.
‘혜선이는 학교에서 바로 오기로 했고.’
혜선의 짐을 인벤토리에 넣고 바로 집 밖으로 나왔다.
“어엇!
최재준 헌터다!
카메라!
카메라!”
“헌터님!
잠깐만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자들이 서성여?’
재준은 이제 기자들이 지긋지긋했다.
기자들이 재준의 앞을 막으려 하자 미노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커다란 덩치에 밀려 기자들은 더는 재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어.
당신 뭐야?
이거 안 놓아?”
“뭐야?
헌터라고 일반인한테 폭력 쓰는 거야?”
미노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재준은 그 틈에 헤스티아를 타고 날아올랐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그 모습을 찍다가 멀리 사라지자 미노에게 화풀이를 했다.
“당신 때문에 놓쳤잖아!”
“어어?
뭐야 어디 갔어?”
하지만 미노는 이미 재준의 바로 옆으로 이동한 지 오래였다.
새집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재준은 왠지 가슴이 뛰었다.
얼핏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보긴 했지만.
완성돼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대략적인 내부 구조만 알고 실제 거주공간으로 사용할 12층은 본적 없었다.
12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전부 길드 건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특히 지하에는 헤스티아나 미노,타라사도 자유롭게 본체로 움직일 수 있게 넓게 꾸며놨다.
길드 건물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속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으응?’
하지만.
재준은 건물 앞에 내려서자마자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어엇!
마왕님이다!]
[역시 드워프들의 표현력과 조각 실력은 대단하군.]
건물은 원래의 모습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어떤 재질인지 모를 묵빛의 재질과 그 위에 새겨진 세심한 조각들이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건물의 옥상에 드래곤을 올라탄 재준의 석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였으면 모르겠는데.
건물 2층 정도의 높이었다.
너무 크잖아?
자칫하면 나르시즘에 빠진 미친놈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누가 봐도 용기사의 건물이다!
라고 광고하는 꼴 같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곧 여기저기서 매스컴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최재준 헌터님!
길드를 만들었다고 하시는데 축하드립니다!”
“이곳이 길드 건물이라는데 어나더길드의 건물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길드원들은 총 몇 명인가요?”
찰칵찰칵!
재준은 카메라와 기자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외형과 비슷하게 무척이나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현대에도 맞게 각각의 쓰임과 용도에 맞게끔 다양한 공간을 만들었다.
“신입!
왔나?
건물은 어떤가?”
배릭과 다른 드워프들은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재준을 쳐다봤다.
“...멋있어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재준은 차마 옥상의 석상을 치워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길드 건물 내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부 재준이 권속으로 들인 뒷세계의 건달들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주인님.
저도 저거 갖고 싶습니다!]
미노가 선글라스를 보면서 탐을 냈다.
“나중에 하나 줄게.”
재준이 옥상으로 올라가려는데 배릭이 재준에게 말을 걸었다.
“저,신입!”
“네?”
“혹시 가능하면 이곳에 잠시 더 머물다 가도 괜찮겠나?
인간 문화와 기술에 대해 좀 알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러세요.
직원도 붙여드릴 테니까 필요한 책이나 자료를 말하면 구해줄 거에요.”
재준은 흔쾌히 허락하고 직원을 한 명 붙였다.
배릭과 드워프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인간계가 그렇게 좋았나?’
“오늘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고!”
“좋지!
오늘은 껍데기도 먹자고!”
드워프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지나갔다.
‘...물들었군.’
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12층으로 올라갔다.
혜선의 짐은 가장 괜찮은 방에 넣어두고 나왔다.
‘한숨 자야겠어.’
재준은 방으로 걸어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사이비종교를 막아라!]
[벨페고르가 모든 힘을 되찾았다.
더는 인간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힘을 얻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사이비종교의 준동을 최대한 막고 벨페고르를 인간계에서 쫓아내라!]
[보상 1 : 벨페고르의 동전]
[실패 : 인간계의 타락]
‘사이비종교라.’
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도권지역이 뱀파이어로 말썽이면 아래쪽은 사이비종교로 시끄럽다고 했었던가.
“김응룡.”
“네.
주인이시여!”
김응룡은 재준의 뒤를 보좌관처럼 따라다녔다.
재준이 부르자 복종의 자세를 취하며 재빠르게 대답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해 조사해봐.”
“네.
알겠습니다!”
김응룡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