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6 [EP11.드디어돌아왔다.]―
[EP11.드디어 돌아왔다.]
“내가 잠깐 정신을 잃었을 때 타라사를 잡아 먹으려고 했다고?”
[그렇다.
그건 분명히 주인이 아닌 탐식의 마왕이었다.]
재준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탐식의 마왕은 이번에 재준이 된 마왕의 명칭이었다.
타라사는 재준이 자신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탐식의 마왕은 주인이 아니다.
전혀 다른 인격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흐음!’
타라사 답지 않은 긴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시작된 타라사의 이야기는 재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탐식의 마왕은 언젠가 부터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나타났다.
이름은 마왕이었지만 같은 마왕들까지도 탐욕스럽게 잡아먹으면서 힘을 불렸다.
오죽하면 탐식이라는 없는 권좌의 이름까지도 붙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마왕을 잡아먹는 것 때문에 탐식의 마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탐식의 마왕은 다른 존재를 잡아먹으면 그 존재의 능력을 흡수했다.
그리고 더는 잡아먹을 존재가 없으면 자신이 사는 세상마저 집어 삼켰다.
[이런 탐식의 마왕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지는 아무 모른다.]
어제까지 단순한 몬스터였던 존재가 내일 당장 탐식의 마왕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불규칙적이고 압도적인 존재였다.
탐식의 마왕으로 인해 무로 돌아간 세계가 늘어가자 모든 마왕과 지적 생명체들은 하나의 규율을 만들었다.
어디에서라도 탐식의 마왕이 나타난다면 다 같이 힘을 모아 그 존재를 멸살하기로.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곧 그렇게 변하는 건가?”
재준은 솔직히 마왕현신의 권능을 사용하고 나서의 기억이 없었다.
만약 그때 정말로 자신이 탐식의 마왕이라는 것이 된 거였다면.
‘후우.’
타라사가 재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직은.]
타라사가 잠시 망설였다.
[아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도 잘은 모르겠군.]
재준이 침대에 풀썩 누웠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싶었더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생겨버리다니.
[주인의 같은 경우는 탐식의 마왕과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더는 아까 같은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도 타라사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은 분명히 평범한 인간과 마왕의 경계에 선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알겠어.
그럼 다시는 마왕현신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네.”
타라사가 복잡한 얼굴로 재준을 쳐다봤다.
[명심해라.
탐식의 마왕에게 가장 먼저 잡아먹히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재준은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걱정마!
마왕현신 안 써도 충분히 강하니까.”
왠지 재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
타라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재준은 왠지 시무룩해졌다.
연달아서 생겨나는 문제에 진절머리가 났다.
쾅쾅쾅!
“최재준 헌터님!
ABC 기자입니다!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안에 계신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쾅쾅쾅쾅!
“안에 계신 것 다 안다고요!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후우.
이사라도 가든가 해야지.’
기자들이 끈질기게 귀찮게 구는 것보다도 더 화나는 것은 혜선이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수도 없이 이랬었나 보네.’
제길.
그냥 다 죽여버릴까.
재준의 눈동자에 옅은 붉은 기가 맴돌았다.
이러한 사소한 변화는 타라사는 물론이고 재준 본인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재준은 더는 집에만 있어봤자 화딱질 만 날 것 같았다.
“오빠 협회에 다녀올게.”
재준은 현관문으로 향하려다가 멈춰 섰다.
문밖에 이미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룬 건 안 봐도 뻔했다.
차라리.
베란다로 나가고 말지.
‘후우’
재준은 가볍게 베란다의 난간을 뛰어넘었다.
‘헤스티아!’
재준을 태운 헤스티아는 단숨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협회까지 질주했다.
제법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대라 기자들은 재준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기자들은 헌터 협회 앞에도 무수히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전투와 재준의 등장이 얼마나 큰 여파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헤스티아 이제부터는 내가 갈게.’
재준은 헤스티아를 소환 해제하고 그림자 이동으로 단숨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파바바밧.
익숙한 복도의 풍경을 지나 협회장실 앞까지 이동했다.
전에 봤던 비서가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협회장님 안에 계세요?”
재준이 갑자기 쑤욱 하고 나타나자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최재준 헌터님?”
“네.
잘 지내셨죠?”
재준이 안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비서의 표정은 어두웠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는 주변을 살피며 재준을 안내했다.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철컥.
협회장실의 문이 열리고 재준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협회장실 안에는 재준이 기대하던 장길산은 보이지 않았다.
“황동수 헌터님?”
“...헌터님 오셨습니까?”
“협회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장길산의 이야기를 꺼내자 황동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재준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장길산이 황동수에게 남긴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이렇게까지 된 상황에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되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에 재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악마의 뿔?’
헌터 협회가 비밀리에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라고 했다.
장산길은 이 아이템에 깃든 존재와 계약을 하고 모든 뱀파이어들을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편지에 적어놨다.
하지만.
‘장산길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악마의 뿔이란 것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사실 협회장님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워낙 비밀리에 입수했던 물건입니다.”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그 악마의 뿔이란 것부터 찾아야겠군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입니다.”
황동수도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지팡이 하나를 꺼내 재준에게 건넸다.
“이건?
호문클로스의 지팡이 아닙니까?”
저번에 거대 게이트 앞에서 몬스터들을 봉인할 때 썼던 아이템이었다.
장산길의 S급 무구였다.
“최재준 헌터님이 실종되고 나서 협회장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게 있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최재준 헌터님이 가지셔야 된다고요.
그래서 이렇게 놓고 가셨지 않나 싶습니다.”
재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호문클로스의 지팡이의 마법 감옥의 위력은 저번에 충분히 확인했다.
어차피 자신의 마력 정도가 아니라면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잘 쓰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재준은 지방에서 일어난다는 사이비 종교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이번 전투로 인해 전력 소실이 너무 컸습니다.
한동안은 협회장님의 부재와 전력소실을 메꾸는데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결국 헌터 협회는 사실상 손을 놓는 샘이군.
“그래서 말인데.”
재준이 고개를 들어 황동수를 쳐다봤다.
“헌터님께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많이는 못돼도 어느 정도 인력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재준이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네.
물론이죠.”
재준은 간단하게 그에 대한 사항을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장실에서 나가려다 무심결에 다시 뒤를 돌아봤다.
커다란 덩치의 장길산이 없는 이곳은.
‘왠지 허전하군’
재준은 황동수에게 꾸벅 인사하고 나왔다.
―
재준과 마몬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어나더길드.
파괴된 도로와 거리가 한참 복구 중이었다.
워낙 파괴된 시가지가 넓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로는 힘들어 보였다.
더구나 어나더 길드의 건물에서 간혹가다 몬스터들이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더욱 작업이 더뎠다.
스으으으윽!
반파된 어나더길드의 건물 위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달빛에 진 그림자가 일반인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랬다.
장산길의 몸을 차지한 사탄이었다.
“흐으음.”
한 치 앞을 살피기 어려운 어둠 속이었지만 사탄은 여기저기를 샅샅이 살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비척거리며 도망가는 뱀파이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하마터면 계약이 틀어질 뻔했잖아.’
옥상에서 사탄이 주먹을 휘두르자 뱀파이어가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압축기에 강제로 눌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계약 완료다.’
사탄은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
그 시간 또 다른 이유로 바쁜 누군가가 있었다.
어나더 길드와 5대 길드의 길드원들을 찾아다니며 무참히 살해하고 있는 태성이었다.
“대,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는 뱀파이어도 아니라고요!”
태성이 귀찮은 표정으로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뱀파이어가 아닌 건 나도 잘 알지.”
“그,그럼 왜?”
태성은 계속된 사냥으로 몸에 제법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길게 하품을 뱉으며 남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제 곧 200레벨이거든!
빠르지?”
“뭐라고?”
“모르면 됐어.”
스걱!
태성의 검은 정확히 급소만을 노리며 지나갔다.
띠링―
[헌터를 처프로―했―프로―다!]
[헌터!―처치했!$!프로다!]
[―프로이 올랐―&$다!]
[레―프로 올―프로!습니다!]
“요즘 들어 레벨업 하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네.
하하하하”
띠링―
[직업―프로스트가 생성되!프로다!]
[인간!프로3000명을 죽―프로!―라!]
[탐식의 재림을 꿈―$!자!
같은 인!$마저도 집어!$!라!]
[보상 : 직!프로 선택]
[실패 : !^$&프로]
태성은 시스템창에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다.
‘탐식의 재림이라.
왠지 마음에 들어.’
“그래도 3000명은 좀 빡신데.
으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네.”
태성의 신형이 처참한 살해현장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