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EP10.역대최강의보스몹]―
[EP10.역대 최강의 보스몹]
“최,최재준 헌터?
여기는 어떻게?”
재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덩치의 앞으로 다가갔다.
크아아아악!
퍼억!
미노가 어둠의 장막 위에 배틀엑스를 휘둘렀다.
물론.
겉보기에만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실제로는 최대한 힘을 빼고 휘둘렀다.
‘미노.
꽤 하네.’
[감,감사합니다!]
크아아아악!
재준의 칭찬에 미노가 한층 좋아진 연기를 선보였다.
‘으휴.’
덩치의 상처를 훑어보는 재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왕의 구원으로 충분히 치유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덩치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마왕의 구원!’
[마왕의 구원을 시전합니다!]
재준은 가능한 마나를 많이 불어넣었다.
불완전한 마왕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로라가 덩치의 불탄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으윽!”
까맣게 타들어 간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온 몸의 상처하나 없이 되돌아왔을 때 오로라를 거둬들였다.
“어어?
상처가?”
재준은 덩치를 끌어안고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림자 이동!’
[그림자 이동을 시전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무리하지 말고 쉬고 있어요.”
재준은 덩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길드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재준과 덩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덩치 형님 괜찮아요?”
정환이 덩치에게 달려들어서 몸을 확인했다.
멀리서 봐도 심각해 보이던 화상이나 상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상,상처가 없어?’
“최재준 헌터님이 치료해 주셨다.”
그제야 재준의 정체를 안 사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몰랐다.
“어,어떻게?”
재준은 사람들을 한차례 둘러본 뒤에 다시 미노를 쳐다봤다.
“우선은 저 몬스터부터 처리하고 이야기합시다.”
크아아아악!
때마침 미노가 배틀엑스를 휘두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쿠웅!
쿠웅!
“제길!
뒤로 피해!”
덩치가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정환이 막았다.
재준은 순식간에 일행의 앞으로 치고 나왔다.
파바밧!
카앙!
미노의 커다란 배틀엑스와 재준의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재준은 미노의 일격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준의 공격에 미노의 몸이 휘청이며 뒤로 밀려나는 기염을 토했다.
주르륵!
크아아아아악!
분노에 찬 포효를 하며 미노가 휘두를 배틀엑스가 재준의 머리 위로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부우우웅!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파공성을 뒤로하고 재준은 미노의 어깨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동시에 미노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향해 연달아 검을 그었다.
콰앙!
검과 피륙이 부딪치는데도 살이 잘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커다란 미노의 몸이 벽 쪽으로 날아갔다.
‘근력이 4000이 되니까 어지간한 공격도 무시 못 할 수준이군.’
푸욱!
재준은 검은 땅에 박고 양손을 미노를 향해 뻗었다.
손끝에서 고도로 모여든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검은 번개!’
[검은 번개를 시전합니다!]
손끝에서 터져나간 번개가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미노의 몸을 강타했다.
파지지지지직!
그오오오오옥!
미노는 속성내성이 있어서 별다른 타격이 없었지만.
겉으로나마 처절한 울부짖음을 토해내며 몸을 떨었다.
‘잘하고 있어!’
재준은 다시 검을 뽑아 들고 미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지막이다!”
우우우웅!
‘공간 베기!’
[공간 베기를 시전합니다!]
재준을 일부로 미노의 머리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검을 내리 그었다.
천장이 일부 무너지고 바닥의 먼지를 피어오르면서 미노의 모습을 감췄다.
재준은 그새 재빨리 미노의 소환을 해제했다.
‘수고했다!’
그러면서 힘겨운 척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최재준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후우.
괜찮습니다.”
덩치와 드래곤 나이츠의 길드원들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재준을 살폈다.
하나같이 재준을 좋아하고 기리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흥분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헌터님!
돌아가신 줄만 알았습니다!
그 쿠라다 싱고놈의 단검을 맞고서요.”
재준은 덩치의 일행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때 당시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도 그때는 꼼짝없이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재준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재준이 게이트로 빠져들고 난 이후의 일들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 이후에 어찌 된 영문인지 던전을 헤맸습니다.”
재준은 대충 이야기를 각색해서 들려줬다.
수많은 몬스터들의 뚫고 던전들을 클리어하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재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거지.’
재준은 이들의 이러한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재준 바람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헌터들 사이에서는 아이돌 저리 가라 하는 인기였다.
더구나.
이들은 재준의 심한 팬이었기도 했으니 재준이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최재준 헌터님!
이제 우리 드래곤 나이츠 길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네.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하하하”
재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드래곤 나이츠 길드는 재준의 말을 의심하나 없이 전부 믿었다.
‘흐음.
그렇다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가?’
보스 방에는 본체보다 훨씬 작은 모습으로 본체화한 타라사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굳이 그곳까지 안 가도 될 듯싶었다.
“보스 방에는 가보셨습니까?”
“네.
필드 보스보다 더한 거대 몬스터더군요.”
“그러시군요.”
덩치와 정환은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하지만.
드래곤 나이츠 길드원들에게서 나온 대답은 재준이 기대하던 것과 정반대였다.
“그래도 물러날 순 없지.”
“게이트 브레이크라도 났다가는 애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라고.”
“후우.
여기서 목숨을 걸어야 하나.”
‘하아.
흉내라고 해도 타라사와의 전투면 이들 중 몇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잠시 생각하던 재준이 입을 열었다.
“보스 방에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네?
그건 안됩니다!”
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싸우는 게 편합니다.
여러분들이 계시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단호한 말에 드래곤 나이츠 길드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재준과 자신들의 실력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음을 말이다.
덩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힘이 못되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재준은 속으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보스 방으로 향했다.
‘대충 싸우는 척이나 하다가 던전 브레이크까지 기다리자.’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재준의 입이 히쭉하고 올라갔다.
‘타라사 대충 싸우는 척만 해도 될 것 같아.’
보스 방으로 들어선 재준은 타라사부터 찾았다.
[대충 싸우는 척?]
구우우우웅!
타라사가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9개의 머리가 일제히 재준을 향했다.
‘응.
보스 방에는 나 혼자만 들어왔거든.
대충 소리만 들려주다가..으윽!’
그때 타라사의 머리 중 하나가 재준에게 이를 들이밀었다.
콰악!
재준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대충 싸울 생각은 없다!]
9개의 머리에서 붉은 안광이 일렁였다.
[이참에 주인의 실력을 온몸으로 느껴보도록 하지!]
[빙백의 창!]
보스방 전체에서 재준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송곳들이 뿜어져 나왔다.
―
어나더길드의 대회의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원형으로 놓여 있었다.
5대 길드의 임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번 회의를 소집한 장산길 헌터 협회장이었다.
틱틱―
그런데 평소의 분위기와 너무 차이가 났다.
원래대로라면 서로 이를 드러내며 트집을 잡거나 비웃기 바빴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
5대 길드의 끝자락에 걸친 문조 길드의 길드장 차기영의 눈초리가 얇게 휘었다.
요즘 상태가 이상하다는 어나더길드의 길드장 최성호는 그렇다 쳐도 다른 길드장 들의 상태도 이상했다.
움직임의 변동도 없이 마네킹처럼 앉아만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이들의 분위기가 전부 비슷했다.
어딘지 모르게 붉은 눈동자에 유난히 밝은 피부가 그러했다.
“크흠!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차기영의 안부 인사에 모두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쏠렸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차기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더 하려고 할 때.
문이 열리고 장산길이 들어섰다.
철컥!
“죄송합니다.”
장산길은 준비된 자리에 앉으려다가 풍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뭐지?’
“협회장님?”
차기영의 물음에도 장산길의 굳은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장산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차기영을 제외한 나머지 길드장 들을 노려봤다.
특히 최성호를 향할 때에는 놀람과 경악마저 보였다.
'인간이 아니다!'
분명히 최성호의 몸이었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마왕의 뿔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비슷하다!'
“...어떻게?”
“크크크크킄”
최성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것이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구나.”
“협회장님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평소 최성호와 사이가 좋지 않던 차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하지만 최성호는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날 알아본 상으로 특별히 하나 말해주마.”
“뭘 말이오?”
최성호가 비릿하게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의 송곳니는 과도할 정도로 길었다.
“이제부터 인간들을 가지고 축제를 열 것이다.
그들의 피 목을 축이고 고기로 배를 불릴 것이며 남은 인간들은 우리들의 노예로 삼을 것이야.
하지만.
너무 쉬운 것도 재미가 없으니 시간을 주마.”
꿀꺽.
장산길이 마른 침을 삼키며 최성호의 입을 쳐다봤다.
“1시간.
그때까지는 도망을 치든 뭘 하든 기다려주마.”
동시에 회의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장산길은 차기영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차기영도 별말 없이 그를 따랐다.
“그자는 못 데려간다.”
던지듯 말하는 최성호의 말에 장산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차기영을 향해 작게나마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1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은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장길산이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바로 문이 닫혔다.
“잠,잠깐!
뭐야!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건물을 벗어나는 장길산의 귓가에 차기영의 비명이 들려왔다.
장길산은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더욱 빠르게 옮겼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