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EP9.미노타우로스]―
[EP9.미노타우로스]
포탈을 빠져나오고 재준이 마주한것은 하늘 높이 치솟은 풀의 벽이었다.
솜씨좋은 정원사가 풀을 네모 반듯하게 잘라놓은것처럼 풀의 벽은 높게 세워져 있었다.
[주인.
건들면 안된다.]
재준이 풀의 벽에 다가가는데 뒤에서 타라사가 말렸다.
[그 식물들에게 감기면 생명력을 빼앗겨.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조심하는게 좋겠지.]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본 풀의 벽은 살아있는 것처럼 입파리와 가지가 움직였다.
서로 꼬아지며 풀의 벽을 더 단단하고 설기게 만들었다.
‘흐음.
한번 시험해볼까?’
재준은 검지손가락을 풀의 벽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얇은 가지들이 손가락을 향해 뻗어왔다.
마치 나뭇가지 모양의 실뱀들 같았다.
휘이익!
처음의 느린 동작과 다르게 나뭇가지들은 순식간에 손가락을 휘감았다.
[경고]
[식인 나무의 줄기에 감겼습니다.]
[매초 생명력 감소 ?100]
‘겨우 손가락 하난데 100?’
재준은 재빨리 손가락에 겁화의 손길을 일으켜서 나뭇가지를 떼어냈다.
“귀찮은 곳이네.”
재준은 주위를 살폈다.
사방으로 미로가 뚫려있었다.
풀의 벽은 멈춰있지 않고 조금씩 출렁이며 움직였다.
그것때문인지 어디를 봐도 모두 비스하게 느껴졌다.
“풀의 벽 위로 날아가면 어떨까?”
[바로 저 벽에 의해 온몸이 뜯길걸?
마왕들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쩝.”
재준이 아쉬운듯 입을 다셨다.
“그럼 일일이 돌아다녀야 한다는거잖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히드라의 시선이 재준의 뒤편으로 향했다.
‘응?’
재준의 뒤편으로 저멀리서부터 땅이 울렸다.
쿠웅!
쿠웅!
풀의 벽이 휘청거리며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라지에가 말했던 것처럼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몬스터였다.
‘여기서도 저렇게 커보이면 대체 얼마나 크다는거야.’
그래봤자 히드라보다는 작겠지만.
저주받은 던전에서 봤던 루시퍼의 권속 이그리토와 비슷해보였다.
그오오오오오오오!
[먹이다!]
미노타우로스는 재준과 타라사를 보더니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육중한 몸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쿠웅!
쿠웅!
단지 뛰는것뿐인데도 땅이 울려댔다.
―
어나더길드 길드장 사무실.
최성호는 오늘도 비서에게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길드장님 저번에 찾으라고 명했던 헌터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
최성호는 아무말 없이 멍한 표정이었다.
비서는 인상을 쓰면서 책상위에 조용히 서류를 올려놨다.
“...그 헌터의 정체는 용기사였습니다.”
“...용기사?”
최성호가 마침내 비서의 말에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딘지 모르게 눈동자가 흐리멍텅했다.
“그게 뭐지?”
“...”
비서는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한국내에서,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중 1명을 모른다고 하니 말이 막혔다.
하지만 비서는 이를 악물고 찬찬히 설명했다.
“그...
저번에 데스나이트를 없애고 일본 헌터에게 암살당한 헌터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성우 헌터의 서리칼날을 가지고 있던게 그 용기사였습니다.”
마침내 동생의 원수를 찾았음에도 최성호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그래?”
요즘들어 최성호의 행동이 이상했다.
멍해지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어느순간부터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헛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가장 최측근이 비서실장이 이 사실을 제일 먼제 깨달았지만.
굳이 밖에 알리진 않았다.
‘제길.
뭔가 사달이 나기 전에 뭐라도 가지고 튀어야 겠군.’
길드장이 이모양인데 어나더 길드도 곧 끝장날걸 깨달았다.
최성호는 비서실장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용기사라는놈도 동생이 있나?”
“...네.
고등학생인 여동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죽이면 되겠네.
그런걸로 나좀 귀찮게 하지마.
바쁘니까.”
최성호는 다시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동생을 누가 죽였든 길드 일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최성호의 머리속을 가득채우는건 오직 한사람이었다.
‘윤미경.’
그여자의 생각을 잠시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최성호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렀지만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최성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미친게 틀림없군.’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생일로 자신을 바닥에 내려꽂았던게 최성호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일로 귀찮게 하지 말랜다.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전부 챙겨서 고향에 내려가자.’
비서실장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솜씨좋은 암살자들에게 연락했다.
<전화 받았습니다.>
낮고 음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의뢰다.”
<대상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화를 받는 상대는 발신자의 신원을 절대 묻지 않았다.
다만 죽일 의뢰대상만 확인했다.
“최혜선.
19세.
용기사의 동생이다.
가능한 빨리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뚝―
‘솜씨 좋은 놈들이니까 며칠내로 완료하겠지.’
비서실장은 만족한 얼굴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
우웅―
최성호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발신자를 힐끔 확인한 최성호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성호입니다.”
<지금 당장 이클립스 길드건물로 와요.>
뚝.
자기 할말만 하고 끊어버렸지만 최성호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이클립스 길드로 갈테니까 차 준비시켜”
최성호는 차를 몰고 이미 여러번 와본 건물로 도착했다.
여러번 본 기억이 있는 남자가 형식적으로 최성호를 확인했다.
남자의 눈이 붉게 번들거렸다.
남자 뿐만이 아니었다.
건물내에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는 피에 물든 것처럼 붉었다.
‘어서 빨리!’
하지만 최성호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하고 그저 윤미경을 보기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으드드드득!
“크헉!
살,살려줘!”
살짝 열린 문틈 새로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피투성이로 변해있었다.
목에 헌터 협회증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최성호의 시선을 차가웠다.
‘저딴거에 신경쓸 시간 없어.’
마침내 최성호가 도착한 곳은 이클립스 길드의 지하였다.
비행기가 들어와도 공간이 남을정도로 커다란 공간이었다.
“왔어요?”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원피스를 입은 윤미경이 최성호에게 다가왔다.
유난히 붉은 입술과 고혹적인 미소에 최성호가 개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 보고 싶었어요?”
“...죽을만큼!”
꿀꺽
최성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윤미경의 눈빛을 마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심장이 뛰고 미칠것 같았다.
“오늘은 좀...
색다른걸 해볼까 하는데?”
“색다른거?”
최성호의 눈동자가 색기로 번뜩였다.
“응.
색다른거.”
윤미경이 최성호의 귓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최성호는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목소리의 여운을 감미했다.
“여기 누워요.”
최성호는 지하 한 가운대에 있는 단상 비스무리 한것 위에 누웠다.
그때
최성호의 눈에 이상한게 들어왔다.
천장을 뒤덮고 있는 마나의 물결.
“게이...트?”
흐리멍텅하던 최성호의 눈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갈정도로 거대한 게이트였다.
북한에 생겨났던 거대 게이트와 비슷해보였다.
“신경쓰지 말아요.”
윤미경이 최성호의 옷을 벗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스르륵―
붉은 입술이 최성호의 목가를 부드럽게 훑었다.
그러자 최성호의 눈이 다시금 흐리멍텅해졌다.
‘뭐 어때.
게이트일 뿐이잖아.’
“눈 감아요.”
최성호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단상 주변으로 뱀파이어들이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두 눈이 붉게 번들거렸다.
“절대 눈뜨지마요.
절대.”
이 말은 최성의 머릿속을 울렸다.
‘절대 눈뜨면 안된다.
절대.’
윤미경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최성호의 가슴을 단검으로 가볍게 그었다.
주르르륵
최성호는 갑자기 느껴지는 날카로운 상처에 움찔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절대 눈뜨면 안돼.’
윤미경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착해.”
그리고 최성호의 두 팔과 두 발목을 단검으로 찍어 단상에 단단히 고정했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단상을 불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최성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과다출혈로 인해 최성호는 쇼크에 빠져들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윤미경이 뒤로 물러나며 준비한 것들을 단상 주변에 뿌렸다.
인간 1000명의 피와 망가진 영혼과 단련된 육체.
게이트에서 붉은 기운이 서서히 쏟아져 내렸다.
지하의 공간을 맴돌던 기운이 곧 최성호의 상처난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스으으으윽!
최성호의 육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사지를 결박하고 있던 단검이 조금씩 뽑히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랍게도 상처는 이미 치유된 상태였다.
쿠구구구궁!
단상이 갈라지며 공간이 울렸다.
그리고 천장을 가득 메운 게이트가 수축하며 사라졌다.
번뜩!
두 눈을 뜬 최성호도 이들과 같은 붉은 안광을 내뿜었다.
더는 흐리멍텅한 시선은 없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최성호에게서 흘러나왔다.
“...좋군.”
최성호가,아니 마왕 마몬은 자신의 새로운 육체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마왕 마몬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사방에 모여든 모든 뱀파이어들에게 선언하듯 외쳤다.
“이제부터 피의 축제를 벌여라!
인간의 피로 목을 적시고 마왕 마몬이 이곳에 왔음을 알리리라!
그리고 이곳에 새로운 나의 대지를 만드리라!”
뱀파이어들이 머리를 땅에 숙이며 그들의 마왕에게 경배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