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8 [EP9.미노타우로스]―
[EP9.미노타우로스]
‘미치겠군.’
마왕 레라지에는 얼마 전 갑자기 생성된 포탈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멍청한 놈이 위치를 잘 못 설정해서 자신의 마왕성에 떡하니 만들어놓은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게 타일러 보내기 위해 마족들을 포탈 안으로 보냈다.
하지만 마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권속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레라지에는 자신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적대적인 행동에 대해 분노했다.
다시 한번 자신의 마족들 중 최정예를 뽑아 포탈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계의 그리핀을 탄 최정예의 마족들과 병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포탈 안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하루 후.
돌아온 것은 단 한 명의 병사였다.
“....거,거대한 소였습니다.”
“소?”
아래서 올려다보면 머리가 안 보일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라고 했다.
“다른 마,마왕이었더냐?”
“....마왕은 아니었습니다.”
병사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목숨을 잃었다.
‘마왕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몬스터 중에 그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레라지에는 원체 겁이 많은 마왕이었기 때문에 감히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한번 공격대를 보내기에는 마족들의 수가 너무 적어졌다.
‘전력이 약해지다가는 주변의 영지 놈들이 공격할지도 모른다.’
레라지에는 결단을 내렸다.
‘무시하자!
어차피 거대하니까 저 포탈을 나오기도 힘들 것이야.’
얼마 동안은 레라지에의 판단이 옳은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포탈이 격한 지진을 일으키는 것마냥 부르르 떨어댔다.
그리고 안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거친 털이 수북이 난 손은 거칠게 사방을 휘저었다.
콰과광!
마왕성의 기둥이 부서지며 아름답게 쌓은 건물들이 무참히 무너졌다.
레라지에는 분노하며 거대한 팔에 자신의 권능을 쏟아부었다.
[지옥의 열풍!]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모든 액체를 말려버리는 권능이었다.
팔은 잠깐 움찔하더니 손을 들어 바람을 쐬듯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동시에 바람이 불어오는 레라지에의 방향으로 손이 순식간에 뻗어왔다.
“끄아아아아악!
마왕님!”
레라지에는 깜짝 놀란 나머지 바로 옆에 있던 시종장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몸을 피했다.
“살,살려주세요!
마왕님!”
자신의 시종장은 포탈 안으로 끌려들어 가더니 곧 권속이 끊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으적으적!
포탈 안쪽 너머에서 산채로 씹히는 시종장의 비명이 들려왔다.
레라지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겁에 질린 눈으로 포탈을 쳐다봤다.
‘내 권능도 통하지 않는다!’
그때.
포탈 안쪽으로 거대한 소의 머리가 쑤욱하고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지만 포탈이 너무 작아서 겨우 한쪽 어깨만 빠져나온 상태였다.
그어오오!
수소의 머리를 한 몬스터는 무저갱 같은 검은 눈동자로 마왕성 안을 빠르게 훑었다.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건 지독한 허기였다.
마족들을 살펴보며 입안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으며 쏟아졌다.
“저,저게 뭐지?”
레라지에의 마왕성에 있던 모든 마족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저앉았다.
마력이 약한 몇몇 마족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배고프다!]
우드드드득!
포탈이 금방이라도 뜯어질 것처럼 기이한 소리를 냈다.
[배가 고프다!]
레라지에는 순식간에 겁을 먹었다.
“당장!
쓰러져있는 마족들을 저 괴물에게 던져라!”
“네?
마,마왕님?”
마족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레라지에를 쳐다봤지만 레라지에는 더욱 큰 소리로 명령했다.
“당장 저놈에게 먹이를 던져주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근처에 쓰러져있던 마족을 들어 황소 괴물에게 집어 던졌다.
쩌어억!
황소 괴물은 입을 벌려 마족을 한입에 씹어 삼켰다.
으적으적!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마족이 산채로 씹히면서 피떡이 되어 일부 잔해만 바닥에 떨어졌다.
“으윽!”
“당장 집어 던져!”
“잠,잠깐 난 깨어났다고!”
마족들은 살기위해 쓰러진 마족들을 집어던졌다.
괴물은 먹이를 받아먹듯 한참을 식사에 전념했다.
그오오오오오오!
그리고 마침내 배가 찼을 때 길게 한번 울음을 터뜨리곤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혹시나 하고 기대해봤지만 포탈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제길!’
레라지에는 자신이 모시는 나태의 권좌에 오르신 벨페고르의 마왕성에 마족을 보냈다.
하지만 벨페고르는 현재 자리를 비운 지 오래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었다.
‘이대론 안된다!
이대론!’
결단을 내린 레라지에가 모든 마족들을 끌어모았다.
“지금부터 다른 마왕성에 가서 가능한 한 많은 노예들을 끌어와라!
반항하면 영지전을 통해서라도 잡아 와!”
레라지에의 명령을 받은 마족들은 영지 포탈을 통해 여기저기 뿌려졌다.
마족들의 수가 수만이 넘는 전력을 가진 레라지에에게 함부로 대항할 만 영지는 주변에 없었다.
‘다른 영지에서 제물을 모아서 포탈 안으로 밀어 넣는다!’
레라지에의 판단을 정확했다.
적당수의 제물을 바치면 소 괴물은 잠잠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서 보내주는 제물들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레라지에의 마족들은 좀 더 멀리 떨어진 영지까지 가야만 했다.
지이이이이잉―!
“응?
벌써 왔나 보군.”
버려진 사막의 영지로 통하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아무래도 전력이 거의 없는 곳일 테니 순순히 전령의 말을 들었겠지.’
조소하는 레라지에의 얼굴은 포탈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살피며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
포탈을 통과한 재준은 가장 먼저 마왕 레라지에부터 찾았다.
재준의 마왕성과 달리 수많은 마족들이 보였지만 레라지에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는 건 둘째치고,한눈에 봐도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권좌 위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이냐?”
재준이 다짜고짜 물었지만 레라지에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경악한 얼굴로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봤다.
‘타라사?’
레라지에는 타라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작 타라사는 놈이 어떻든 주변의 화려한 장식들만 살피는 중이었다.
“...히,히드라 님?”
[나를 아는가?]
레라지에는 타라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권좌에 뛰듯이 내려오면서 타라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예전에 잠깐 벨페고르님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뵌 적이 있습니다!”
[..벨페고르?
아아.
그때 옆에서 서 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여,영광입니다!”
타라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주변을 살폈다.
재준은 자신의 말을 무시한 레라지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라사 옆에서 알랑방귀 끼는 모습도 꼴불견이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놈이 영지전을 신청한 놈이지?”
그제야 레라지에가 고개를 홱 돌려 재준을 쳐다봤다.
타라사를 쳐다볼 때와는 다른 싸늘한 눈이었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레라지에는 영지전을 밥 먹듯이 신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영지전을 신청할 정도면 분명 저급 마왕이나 그 비슷함이 틀림없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타라사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기대하고 있어?
뭐를?’
실력을 떨어지지만 눈치로만 이곳까지 올라온 레라지에였다.
타라사와 같이 온 두 마족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폈다.
다리가 유난히 긴 마족은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있는 게 마왕의 권속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인간형인 이 마족은.
‘흐음.’
분명 마왕이긴 한대.
뭔가 이상했다.
격이 살짝 떨어지는 것 같은데도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엄청났다.
보통 마왕들이었다면 사지를 찢겠다며 달려들겠지만 레라지에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영지전?
뭔가 착각이 있었나 보군.
나는 영지전 따윈 하지 않는다!”
주변의 마족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지만 상관 안 했다.
타라사의 눈에서 실망감이 어리는 것을 확인한 레라지에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내 부하가 결례를 저질렀다면 사과하지!
다만 우리 마왕성에 아주 큰 일이 생겨서 말이야.
내가 일일이 부하들의 행동을 단속하지 못하고 있어.”
[큰 문제?
저 포탈과 관련된 건가?]
타라사가 다시 흥미를 느끼면서 물었다.
레라지에는 옳다구나 하며 급히 관심을 포탈로 끌었다.
“네.
맞습니다!
언젠가부터 갑자기 나타난 포탈인데 안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난리를 피웁니다!”
히드라라면 그깟 몬스터 따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레라지에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거대한 몬스터?]
“네.
머리는 소에 아래는 인간 형태의 몬스터였습니다.”
타라사의 눈빛이 변하는걸 보면 그 몬스터의 정체를 아는 듯 싶었다.
동시에 재준의 머리속에도 퀘스트가 떠올랐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라!]
[미노타우로스는 숫소와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저주받은 생명체이다.
마왕이 되기를 원했지만 다른 마왕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영원히 빠져나올수없는 미로에 갇힌 상태이다.
미로에서 가끔 생겨나는 포탈을 통해 들어오는 희생자들을 잡아먹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보상 : 미노타우로스의 뿔]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사용하면 마왕의 격이 높아집니다!]
[실패 : 죽음]
“미노타우로스?”
타라사가 의외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 괴물에 대해 알고 있나?]
재준은 고개를 저었다.
[비운의 괴물이지.
마왕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서 결국 다른 마왕들에 의해 미로에 갇히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다니.]
레라지에는 히드라가 그 괴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듯 하자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히드라님이라면 그 괴물을 처치할 수 있지 않습니까?”
[힘들다.
설혹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해도 마왕들이 만든 미로에서 길을 잃기라도 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그걱 정 안하셔도 됩니다!”
레라지에가 손짓하자 마족이 붉은 색의 커다란 실타래를 들고 왔다.
“아다만티움을 길게 꼬아만든 실입니다.
미로안에서 길을 잃었다고 해도 이걸 잡고 다시 오시며 괜찮을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없애주겠다.
대신 네 녀석도 뭔가를 내놓아야하지 않겠어?”
“...내 권속들을 같이 보내지.”
“그딴건 필요없다.
오히려 전투에 방해만돼.”
“흐음.
그럼 뭘 원하지?”
“가지고 있는 노예들이 얼마나 되지?”
“..쩜5천명 정도 된다.”
“그 전부를 우리 영지로 넘겨라.”
“....”
잠시 생각하던 레라지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타우로스만 없애준다면야 노예뿐만 아니라 영지도 나눠줄 생각이었으니까.
“좋다.”
재준은 시간을 끌것 없이 바로 포탈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다만티움 실타래를 몸에 감고 타라사와 함께였다.
바퓰라는 이곳에 남겨두기도 뭐해서 다시 영지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마계에 와서도 게이트에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지구와 다르게 붉은색의 게이트였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재준은 힐끔 뒤를 돌아보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히드라님!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타라사는 레라지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재준을 따라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