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3 [EP8.불완전한 마왕]―
[EP8.불완전한 마왕]
거침없이 내리는 장대비는 온종일 내렸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사막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마른 잎사귀 하나 없던 곳에 조그만 잎사귀들이 나기 시작했다.
모래 사이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던 씨앗들이 물을 만나고 발화한 것이다.
스스스슥!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사막에 물이 고여 조그만 웅덩이가 생겨났다.
물을 먹기 위한 동물들이나 몬스터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막의 생태계가 회복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마왕성 창!’
[서서히 회복되는 사막의 마왕성]
[마왕 : 최재준]
[마족 수 : 295명]
[몬스터 수 : 1069마리]
[예산 : 3500골드]
[충성도 : 53프로]
[영지 상태 : 위험]
[앞으로 5일 뒤 식량 부족으로 마왕성이 사라질 예정입니다.]
마왕성 창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은 몬스터 수가 무려 5배나 더 많아졌다.
몬스터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살 수 있을 만한 터전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족들의 충성도도 53프로로 절반을 뛰어넘었다.
아무래도.
재준이 사용한 아쿠아 퍼니쉬먼트를 보고 감복한 마족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시프리만 하더라도 재준과 눈이라도 마주치며 무릎을 꿇고 마왕님을 외쳐댔다.
하지만 이렇게 나아지는 상황에도 영지 상태는 여전히 위험이었다.
‘문제는 식량인데.’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막이었던 곳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몬스터를 잡아 먹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악순환이 반복될게 뻔했다.
“흐음.
머리 아프네.”
무심하게 중얼거린 소리를 권속들이 들었는지 더빅과 웨거가 다가오며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재준은 어제 이후로 마왕성에 자유롭게 권속들을 풀어놓은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적응을 잘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시프리가 하는 행동을 보며 마음에 들었는지 따라 하기 시작했다.
‘후우’
권속들은 배고픔도 안 느껴서 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재준이 푸념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재준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무언가를 깨닫곤 권속들을 쳐다봤다.
“웨거,더빅!”
[네.
마왕님!]
“너네는 어떤 음식을 먹지?”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마왕님의 마력을 흡수하면 괜찮습니다!]
마력이면 충분하다 이거지?
재준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시프리!”
“네.
마왕님!”
둥글둥글한 고양잇과의 얼굴이 어디선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들이 마족들을 권속으로 들일 때는 어떻게 하지?”
‘권속도 있으신 분이 이미 알고 있으실 텐데 왜 묻는 거지.’
시프리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피를 나누어 주면 됩니다.”
“피?”
역시 재준이 하던 방식과 달랐다.
재준은 죽인 상대를 시스템을 이용해서 권속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생소했다.
“네.
마왕님의 피 한 방울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에는 엄청난 마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마족들이 그 대가로 권속을 맺습니다.”
“결국 마력 때문이라는 거군?”
“...네 맞습니다.”
재준이 권좌에서 일어났다.
시트리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재준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시트리.
내가 너에게 마력을 직접 건네줄 테니 나와 권속 계약을 맺겠느냐?”
시트리가 고개를 홱 하고 들어 올렸다가 재준의 눈과 마주치고는 다시 푹 숙였다.
“대신 기존의 마왕의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권속 계약을 맺을 것이다.”
재준의 손바닥 위에는 뭉친 마력이 구슬처럼 영롱이 빛났다.
마치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력은 시트리의 눈앞을 왔다 갔다 움직였다.
시트리의 눈이 매혹이라도 당한 것처럼 마력의 구슬을 집요하게 쫓았다.
“물,물론입니다!”
띠링―
[마력을 매개로 권속 계약을 맺습니다.]
[마족 시트리를 권속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혹시나 시스템창이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원하는 창이 떠올랐다.
마왕이 되고 나서는 굳이 죽이고 나서 지정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 같았다.
‘만약 안 된다고 했으면.’
전부다 죽여서 권속이라도 만들어버릴 셈이었는데.
시트리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한기를 느꼈다.
“자.
받아라.”
시트리는 허공을 둥실둥실 떠서 자신의 손바닥에 내려앉는 마력의 구슬을 멍하니 쳐다봤다.
메추리 알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집약된 마력의 힘이 느껴졌다.
‘이,이게 마왕님의 마력!’
시트리가 마력의 구슬을 재빨리 꿀꺽 삼켰다.
[마족 시트리를 권속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현재 지정 가능한 권속의 숫자 56/500]
됐다!
시트리는 잠시 온몸을 휘감는 재준의 마력에 전율을 느꼈다.
충만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재준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무한한 충성심이 솟아올랐다.
‘이분이야말로 내 목숨을 바쳐야 할 분이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가 외치는 것 같았다.
“마왕님!
새로운 권속 시트리가 목숨을 바쳐 보좌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나머지 마족들에게 전부 전하라!
나의 마력을 매개로 권속 계약을 원하는 마족들은 마왕성으로 오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시트리는 지체없이 날개를 펼쳐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부터 줄을 잇고 마족들이 마왕성으로 속속들이 도착했다.
모두 사실일까 하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재준이 눈앞에서 마력의 구슬을 만들어 직접 건네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복종의 자세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마족 아그레스를 권속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현재 지정 가능한 권속의 숫자 128/500]
.
.
.
[마족 아마스를 권속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현재 지정 가능한 권속의 숫자 345/500]
‘후우’
마왕성에 찾아온 모든 마족들은 권속 계약을 맺었다.
‘마족 5이 비는군.
왜지?’
재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겨우 5이었지만 재준의 권속이 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마왕을 모시고 있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간첩 같은 놈들인가?’
“시트리!
권속이 되지 않은 마족들을 찾아내라.”
“네.
마왕님!”
시트리가 날개를 펼쳐 다른 권속들과 함께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
마족 바퓰라는 자신을 쫓는 마족들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는 중이었다.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긴 다리가 바닥을 구를 때마다 몸이 앞으로 쭈욱 나아갔다.
파바밧!
‘저놈들!
새로운 마왕의 권속이 되더니 저렇게 바뀌다니!’
원래대로라면 자신의 속도에 절반도 못 미쳐야 하는데 지금은 잠깐 사이에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왔다.
“멈춰라!”
“치!
꺼져라!
나는 인간 마왕 따위의 권속은 되지 않아!”
휘리릭!
바퓰라가 몸을 빙글 돌면서 날카로운 털침을 던졌다.
얼핏 보기에는 얇고 위력이 없어 보이지만.
몸 안으로 파고들면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이동해서 폭발하는 무서운 공격이었다.
바퓰라의 이러한 공격을 이미 알고 있는 마족들이 사방을 흩날리듯 도망쳤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집요하게 바퓰라를 쫓았다.
“놓치지 마라!”
바퓰라는 바닥에 뚫린 조그만 통로로 몸을 움직였다.
평소라면 모래로 인해 보이지 않을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가 지속해서 내리고 있어서 통로의 존재가 맨눈으로 정확히 식별이 되었다.
‘저 안으로만 들어가면 된다!’
바퓰라가 다리에 힘을 주고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스으으윽!
하지만 통로 바로 앞에서 바퓰라를 가로막는 누군가가 있었다.
“비켜라!”
바퓰라는 다시 한번 털침을 뿌렸다.
상대는 날아오는 털침을 보고도 비켜서지 않았다.
‘흥!
멍청한 놈!
심장이 터져 죽거라!’
바퓰라가 상대를 조소하며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묵직한 손아귀가 바퓰라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크헉!”
‘뭐,뭐냐!
왜 안 죽는 거야!’
바퓰라는 그제야 상대의 몸을 뚫지 못하고 피부에 들러붙어 있는 자신의 털침을 발견했다.
“너는 아무래도 좋은 방법으로는 권속이 되기 힘들겠구나.”
재준의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바퓰라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재준의 손을 공격했다.
퍼억!
하지만 오히려 공격하는 바퓰라의 손톱이 반동에 의해 부러졌다.
우드드득!
재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면서 바퓰라의 목뼈가 수수깡처럼 부서졌다.
재준은 축 늘어진 바퓰라의 시체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마족 바퓰라는 권속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그래!’
[마족 바퓰라를 권속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현재 지정 가능한 권속의 숫자 350/500]
‘후우.’
이로써 마왕성 내에 존재하던 모든 마족들의 재준의 권속으로 만들었다.
바닥에 늘어져 있던 바퓰라의 시체가 우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마왕님을 뵙습니다!”
재준을 향해 복종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에는 조금 전의 공격적인 모습은 없었다.
“그래.”
재준은 조금 전까지 바퓰라가 어떻게든 들어가려던 토굴을 힐끗 쳐다봤다.
‘다른 마족들과 다르게 이 녀석만 목적지가 있었어.’
“이 안에는 뭐가 있는 거지?”
“...전전 마왕이 남긴 보물과 몬스터가 있습니다.”
“보물과 몬스터?”
“그렇습니다.”
재준의 눈이 빛났다.
바퓰라는 재준의 뜻을 알고 토굴로 앞장섰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왕님.”
재준은 바퓰라를 따라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토굴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지는 호리병 구조였다.
‘흐음!’
토굴 안쪽에서 메케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독인가?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날카로운 기운이 안쪽에서 뻗쳐 나왔다.
“마왕님.
여기서부터는 히드라의 구역입니다.”
“그래?
그럼 너는 왜 이곳으로 도망치려 했지?”
“...토굴 벽에 붙어서 유인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
“너는 여기 있어라.”
재준은 거침없이 토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청나다.’
마침내 토굴을 벗어나자 커다란 공동이 나왔다.
마왕성의 대전 크기만큼이나 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절반쯤이나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가 있었다.
‘이걸 몬스터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히드라는 압도될 만큼 거대했지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9개의 머리 중 8개는 모두 머리가 박살 나 뇌수가 끊임없이 흘렀다.
그것도 모자라 거대한 못에 박혀서 옴짝달싹 못했다.
유일하게 온전했던 1개의 머리는 거대한 바위에 눌려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숨을 쉴 때마다 히드라의 입에서 독연이 뿜어져 나왔다.
‘공기 중의 독기는 히드라의 숨결이었군.’
히드라의 몸은 뼈와 가죽뿐이 남아 있지 않았다.
히드라의 뒤편에 거대한 단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피처럼 붉게 번들거리는 거대한 보옥이 놓여있었다.
크오오오오오―
[뱀파이어의 보옥.
저것만 있으면 뱀파이어의 로드가 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재준이 고개를 홱 돌렸다.
바위에 깔린 뱀의 머리가 진녹색의 눈을 뜨고 재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히드라가 잠시 몸을 뒤척였을 뿐인데 토굴이 울려댔다.
[갖고 싶으냐?]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