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0 [EP8.불완전한 마왕]―
[EP8.불완전한 마왕]
콰아아아아앙!
마왕성 내에 있던 마족들은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 소리를 듣기 전에 공기를 울렸던 그 엄청난 양의 마력에 이미 전율했다.
‘마족이 아니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분명 마왕급이다.
마족들은 자신들이 이미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몸을 움찔거리며 마왕 비네의 눈치를 살폈다.
“마,마왕님!”
조금 전에 비네에게 침입자에 대해 보고 했던 마족이었다.
엄청난 마력의 움직임에도 비네의 표정에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눈동자가 반짝이며 흥미를 조금 보였을 뿐이다.
“과연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인가.”
비네는 입술 끝을 살짝 말아 올렸다.
“모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린 비네는 권좌에서 내려섰다.
저깟 마족들이 아무리 달려든다고 해도 침입자를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마력을 느낀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비네는 즐거운 마음으로 재준을 기다렸다.
‘무료했는데 잘됐군.’
그의 표정은 왠지 아련하게 변했다가 문밖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요동에 다시 권태롭게 변했다.
콰아아앙!
황금으로 칠해진 거대한 문짝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박살이 난 문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저놈이 비네인가?”
“...네.
맞습니다.”
재준은 비네의 바로 앞에 마주 섰다.
“배고프니까 빨리 끝내자.”
재준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
첫 공격은 재준의 선공이었다.
가볍게 뻗은 손에서 불꽃이 일었다.
‘겁화의 손길!’
[겁화의 손길을 시전합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불꽃이 기다란 창의 형태를 하더니 비네에게 쏘아졌다.
“크아아앙!”
사자머리를 한 비네가 전방을 향해 포효를 하자 불꽃의 방향이 바뀌었다.
비네의 몸 근처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있었다.
파바밧!
비네는 네 다리를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재준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뻗었다.
쿠웅!
재준도 지지 않고 주먹을 맞부딪쳤다.
결과는 재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비네는 달려든 것보다도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콰앙!
벽에 목을 부딪치고도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고서야 일어났다.
재준의 주먹과 부딪친 오른쪽 주먹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재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이 약한 건가,아니면 내가 강한 건가.’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재준은 여유롭게 비네에게 걸어갔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비네의 왼손에 감겨있던 쇠사슬이 허공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쇠사슬이 허연 서리를 풍기며 주위 공기가 급속도로 낮아졌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쏜살같이 재준을 향해 날아왔다.
재준이 몸을 비틀면서 피했지만 쇠사슬은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뒤를 쫓았다.
스르륵!
결국 재준의 왼손에 감긴 쇠사슬이 엄청난 압력으로 꽈악 졸라맸다.
재준이 평범한 마족이었다면 이미 한쪽 팔은 얼음처럼 산산이 조각나서 바닥에 흩뿌려졌을 것이다.
‘흐읍!
겁화의 손길!’
[겁화의 손길을 시전합니다.]
재준이 쇠사슬이 감겨있는 왼손에 최대한도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쇠사슬에서 풍기는 한도와 재준이 내뿜는 겁화가 만나 희뿌연 수증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기를 머금은 공기가 차차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방안 전체가 아지렁이 치며 불길로 뒤덮였다.
뚜욱.
뚜욱.
재준의 왼손에 감겨있던 쇠사슬이 쇳물로 녹아서 바닥에 떨어졌다.
치이익
“이게 다는 아니지?”
재준이 왼손에 묻은 철물을 닦아내며 비네에게 걸어갔다.
“강하군.
어디 소속 마왕이지?
파괴적인 성향을 보면 사탄인가?”
“사탄?”
재준은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다.
다만 굳이 따진다면 아직까지는.
“루시퍼 아닐까 싶은데?”
사실 재준의 몸에 있던 루시퍼 영혼의 파편들은 모두 흡수되어 사라졌지만.
재준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비네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뭐?
루시퍼님은 죽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끝내야겠군.’
재준은 인벤토리에서 불완전한 마왕의 검을 꺼냈다.
그런데.
비네의 반응이 이상했다.
갑자기 모든 기운을 흐트러뜨리더니 멍한 눈으로 재준의 검을 쳐다봤다.
“루,루시퍼 님의 검?
그것을 어찌 네놈이?”
“내가 받았으니까.”
“루,루시퍼 님이 살아계셔?”
“뭐.
아직까지는?”
“어디 계시는지 말하라!”
그런데 이놈.
루시퍼를 배신한 권속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지금 와서 충신인 척이지?
“내가 왜?”
‘공간 베기!’
[공간 베기를 시전합니다!]
재준이 놈이 뭐라 하든 놈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비네가 급하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목에 감겨있던 녹색의 뱀이 재준에게 이빨을 내밀었다.
이게 물리면 죽음에 이른다는 독사?
‘그렇다면 한 번에 베어져라!’
공간 베기가 시전되면서 비네와 독사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위이이잉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로 보는 세상처럼 비네의 온몸이 비틀어졌다.
“..뭐...지?”
비네는 그 말을 끝으로 온몸이 찢기며 피떡으로 변해버렸다.
공간 베기의 위력이었다.
‘대단하군.’
이래서 방어도 무시라고 하는 건가.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공격이라서?
띠링
[마왕을 무찌르고 마왕성을 차지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 1 마왕성을 획득하였습니다.]
[마왕성 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상 2 헤스티아의 성장이 지금 바로 가능합니다.]
[헤스티아의 성장을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까?]
‘헤스티아!’
재준은 성장을 바로 시작하기 전에 헤스티아를 먼저 소환했다.
저번에도 그렇듯 성장이 시작되면 한동안은 못 볼 테니 그전에 마정석이라도 실컷 먹이려는 생각이었다.
[불렀어?]
헤스티아는 낯선 곳을 둘러보더니 재준에게 와서 얼굴을 비벼댔다.
“마정석 줄까?”
[응]
재준은 인벤토리에서 높은 급의 마정석을 꺼내 헤스티아에게 먹였다.
오독오독!
먹고 있는 헤스티아를 한동안 쓰다듬어 주고 나서야 헤스티아의 성장을 시작했다.
[헤스티아의 2차 성장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차 성장기 동안은 헤스티아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남은 시간 : 6일 23시간 58초]
저번은 겨우 7시간이었는데 이번에는 7일이다.
그래도 이번 성장기만 끝나면 레드 드래곤의 고유능력인 차원이동이 가능하다.
‘에휴.
7일 동안 뭐하나.’
재준이 눈앞에 놓인 의자에 걸어가서 걸터앉았다.
그런데 부서진 문으로 마족들이 주르륵 들어섰다.
“...새로운 마왕님을 뵙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재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뭐지?’
―
“이번 마왕님은 좀 특이하시군.”
“맞아.
미개한 인간의 모습을 한 것 부터가...”
“하지만 비네 마왕을 쓰러뜨릴 때를 생각하면 정말로 강하던데?”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드래곤을 부리는 것도 봤잖아.”
재준은 제법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하는 마족들의 목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아.’
하지만 재준은 마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뭘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눈앞에 떠 있는 마왕성 창을 보면서 뜻 모를 한숨만 계속 내쉬고 있었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지.’
[황폐해진 사막의 마왕성]
[마왕 : 최재준]
[마족 수 : 295명]
[몬스터 수 : 520마리]
[예산 : 0골드]
[충성도 : 13프로]
[영지 상태 : 극히 위험]
[앞으로 3일 뒤 극심한 가뭄,식량 부족으로 마왕성이 사라질 예정입니다.]
[설명 : 비네가 루시퍼를 배반하면서 얻게 된 망하기 직전이 마왕성 영지.
365일 비가 내리지 않고 물이 아예 존재 하지 않아서 몬스터를 잡아 피를 마시는 게 더 빠르다.
원래는 이렇게 황폐해진 곳이 아니었지만 타락한 드래곤 바락이 모든 나무와 물을 불태우고 갔다.]
[영지가 사라질 시 그 곳에 속한 모든 영지민과 마왕은 힘을 잃고 추방됩니다!]
‘후우’
재준의 눈이 자꾸 마지막 시스템창으로 향했다.
3일 안에 어떻게든 수를 쓰지 않으면 마족은 물론이고 자신도 힘을 잃고 추방당하게 된다.
‘어떻게 하지?’
그때 재준의 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3일 남은 마왕성의 몰락을 막아라!]
[마왕성의 영지를 경영하려면 마왕성을 잘 아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하다.
마왕성의 시종장인 시프리를 불러서 물어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보상 : 1000000골드]
[실패 : 불완전한 마왕의 힘 상실]
보상이 무려 1백만 골드였지만 그것보단 실패에 더 눈길이 갔다.
실패하면 불완전한 마왕의 힘이 상실이라니.
‘시종장 시프리?’
재준은 고양이 머리에 날개가 달린 마족을 떠올렸다.
“시프리!”
재준이 가볍게 불렀는데도 문이 열리며 날 듯이 시프리가 들어왔다.
문밖에서 계속 대기하던 게 틀림없었다.
“네가 시종장이라고?”
시프리가 허리를 더 깊숙이 숙였다.
“네.
맞습니다.
어떠한 본부라도 내려주시면 행하겠습니다.
마왕님.”
“명령은 아니고.
이곳에서 가뭄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재준은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시프리는 깜짝 놀라서 재준을 쳐다봤다가 황급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 마왕님께서는!’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시프리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우리 영지민들도 생각해주시는 착한 분이시구나!’
“시간이 없어!
얼른 말해봐!”
재준이 다급하게 물었지만 시프리는 더더욱 눈물을 글썽이며 마왕님의 애민정신에 감복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