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EP7.북한 게이트]―
[EP7.북한 게이트]
쿠라다는 데스나이트의 등장에 몸을 떨었다.
각성 이후 느껴본 적 없는 죽음의 공포였다.
“...이 중에 누가 제일 강하지?”
데스나이트는 쿠라다에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며 헌터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쿠라다의 예상과 달리 시선은 그에게 향하지 않았다.
‘한국의 헌터?’
데스나이트는 재준을 향해 묻고 있었다.
쿠라다는 그 모습에 몸이 풀리는 안도감과 함께 미칠듯한 시기감이 치솟았다.
데스나이트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저깟놈보다 못나다고?’
두 눈이 조금 전에 고통과 수모를 잊고 분노로 불타올랐다.
으드득.
‘그 누구도 나보다 강할 수 없어!’
쿠라다의 시선이 장길산을 노려봤다.
‘다 죽여버리겠어.’
그의 손이 품 안쪽에 숨겨져 있는 단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
재준은 데스나이트를 예리하게 훑어보며 수준을 가늠했다.
마력 수준으로 따지면 파리 마족과 비슷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기운이 섬찟했다.
좀 더 파괴적이고 괴이한 느낌이었다.
“흐음.
장길산 협회장님.
혹시 이 방어막의 쿨타임이 어느 정도 되죠?”
“3시간입니다.”
3시간이면 너무 길었다.
아무래도 재준이 직접 방어막 밖으로 나가서 싸워야 할 듯싶었다.
재준이 방어막의 경계로 걸어 나가자 장길산과 몇몇 헌터들이 따라나섰다.
“저희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재준은 말만이라도 뿌듯함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안 싸울 겁니다.”
재준이 손을 뻗었을 때 익숙한 스톤골렘 50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을 뻗었을 때 지금까지 못 봤던 소환수 들이 쏟아져 내렸다.
5명의 권속들이었다.
―
TV 고려의 아나운서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흥분한 적이 처음이었다.
일본의 헌터들이 갑자기 모습을 사라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격양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욕을 뱉을 뻔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재준이 나서서 한국 헌터들과 함께 몬스터들을 밀어내면서 게이트까지 확보했을 때에는 벌떡 일어나서 환호를 질러댔다.
평소 뉴스였다면 바로 징계를 먹고 뉴스에서 잘렸겠지만 지금은 전 국민의 분위기가 똑같았다.
다 같이 TV 앞에 앉아서 한국 헌터들의 활약상과 전투를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다.
이 방송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뻗어 나갔다.
일본은 삽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배신자이자 쓰레기로 찍혀서 욕을 먹고 있었다.
ㄴ역시 쓰레기 나라 답네.
이럴 줄 알았다.
ㄴ찍히는 줄도 모르고 저랬겠지?
ㄴ최재준 헌터랑 박대기 기자 없었음 어떡할 뻔했음.
비난은 일본의 국민들도 똑같았다.
자국의 헌터 협회를 비난하면서 나카무라 시바시키의 퇴진을 요구했다.
“칙쇼!”
시바시키는 지금 당장이라도 되돌리고자 쿠라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쿠라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한국 헌터들에게 살려달라는 쿠라다의 모습이 똑똑히 화면을 타고 나갔다.
쿠라다는 평소의 젠틀한 모습과 정반대였다.
“저 새끼는 왜 전화를 쳐안받는거야!”
적어도 이게 방송 중이라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쿠라다가 아무 행동도 안 하고 가만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저 표정.
그리고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모습에 시바시키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만약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장길산을 죽인다면.
그건 정말 일본의 끝이었다.
TV 고려의 아나운서는 화면에 잡히는 데스나이트를 보면서 소리쳤다.
“저게 뭔가요?
박대기 기자님?”
박대기는 어느 순간부터 이어폰이 고장이 났는지 대답이 없었다.
대신 대답은 패널 쪽에서 나왔다.
몬스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였다.
“어흠.
제가 봤을 때는 말이죠.
생김새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데스나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데스...나이트요?
얼핏 봐도 강해 보이는데요?”
“네.
물론이죠.
지금까지 공략에 실패한 원인이 저 몬스터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보통 A던전이나 S던전의 보스 몬스터로 발견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저렇게 필드에 나와 있는 건 처음입니다.”
“...한국 헌터들이 잘 해내겠죠?”
“단 한 마리뿐인데요 뭐.
두 마리라고 하면 힘들 수도...있겠..”
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어막 주변에 나타나는 여러 데스나이트가 화면에 잡혔다.
얼핏 봐도 5마리가 넘어 보였다.
“..교수님?”
교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화면에는 재준의 모습이 다시 잡혔다.
순간 용기사!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혹,혹시 지금 용기사님이 혼자 싸우겠다고 말한 게 맞습니까?”
“...”
박대기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재준은 장길산과 몇 마디 나누더니 바로 방어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재준의 바로 옆으로 소환수 들이 쏟아져 내렸다.
―
[강해졌다아아아아!]
재준의 바로 옆으로 해골기사인 아서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불타는 듯한 이글리토의 망토가 펄럭일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생명력 약탈의 검을 뽑아 든 아서가 데스나이트를 가리키며 재준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옆으로 차례대로 하프 트롤인 더빅과,하프 오우거인 웨거가 섰다.
[주군을 모시겠습니다!]
[..주군을 모시겠습니다!]
하프 리치인 멀린과 지네인 센티피드는 재준의 바로 뒤편에 섰다.
센티피드는 그렇다 쳐도 리치가 이렇게까지 겁이 많았나?
재준이 멀린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부끄러운지 고개를 홱 돌렸다.
‘하아.’
“멀린은 아서랑 더빅,웨거 싸우는 동안 보조하고 센티피드는 위험하다 싶으며 가끔 도와줘 알았지?”
[강해졌다아아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네!]
잘 싸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대부분 C나 B급이고 재준의 마나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보통은 갈 거라고 믿었다.
재준은 데스나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빅이나 웨거는 저놈들 잡고 나오는 방어구나 무기 있으면 바로바로 착용하고.”
해골기사인 아서를 제외하면 다른 권속들은 맨몸상태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둘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똑같이 하기 시작했다.
오우거인 웨거가 일방적으로 따라 하는 거 같긴 하다만.
어쨌든.
빨리 끝내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준은 가장 앞에 있는 데스나이트에 돌진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라파엘의 검이 들려있었다.
‘가속!’
[가속을 시전합니다!]
재준은 현재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직업 퀘스트와 루시퍼 영혼의 파편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놈들만 잡으면 끝이다!’
재준이 땅을 밟고 앞으로 쭈욱 나아갔다.
‘천강!’
[천강을 시전합니다!]
데스나이트가 대검을 들어서 막았지만 1격이 튕겨남과 동시에 2격이 손목을 잘랐다.
스걱
잘린 손목에서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재준은 멈추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다시 한번.
‘천강!’
이번에도 역시 대검을 들어서 막았지만 몸을 휘청였다.
2격이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다.
퍼억!
[데스나이트를 처치했습니다!]
재준은 쓰러지는 데스나이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다음 몬스터에게로 달려갔다.
권속들은 잘 싸우고 있나?
역시 1:1로는 데스나이트를 상대하기 힘든지 서로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었다.
더빅과 웨거가 탱커 역할을 하면 그 뒤에서 멀린이 버프와 빙결계 마법을 사용해서 데스나이트를 견제했다.
[프로스트 베리어!]
[아이스 볼트!]
그리고 아서는 광전사처럼 달려들어서 데스나이트의 몸에 상처를 냈다.
약탈자의 검에서 데스나이트의 것과 비슷한 검은 기운이 풀풀 풍겼다.
[강해졌다아아아아!]
‘같은 언데드라 기운이 비슷한가.’
웨거와 더빅은 앞다투어 데스나이트에 주먹을 날려댔다.
[크아아아아악!]
[내가 먼저다!]
대검에 베이거나 잘려도 재준의 마나를 이용해 금세 몸을 회복하는 권속들은 지치거나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권속들이 상대하는 데스나이트 한 마리도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데스나이트들은 권속들을 상대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걸 깨닫곤 재준에게 모두 몰려들었다.
소환자인 재준을 죽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소환수가 재생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인간.
네가 제일 강하구나.”
“적어도 너희보다는 강하겠지.”
재준의 앞으로 데스나이트가 3마리가 동시에 섰다.
그중에 제일 뒤에 있는 데스나이트가 투구 속의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분노의 좌에 계신 위대한 사탄님의 데스나이트.
사탄님께 너의 몸을 바쳐라!”
재준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내 몸을 원하는 놈이 많은 거야.
루시퍼도 그렇고 마족도 그렇고.
내 몸에 꿀이라도 발라놨어?”
그러면서 다른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검은 기운이 쑤욱하고 빨려 나가더니 한 마리의 데스나이트에 집중되었다.
끄득!
끄드득!
데스나이트의 몸집이 족히 3배는 더 커졌다.
쿠웅!
발을 앞으로 뻗었을 뿐인데 땅이 움푹 패였다.
“사탄님께 너의 몸을 바쳐라!”
“예약 꽉 찼다고!”
데스나이트가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게 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재준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격돌했다.
미카엘의 검과 대검이 맞부딪치면서 충격파가 생성되어 바람을 일으켰다.
‘오크 챔피언 정도 되려나?’
이 정도라면 힘들겠지만 처치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끄드드득!
미카엘의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더 들어가자 대검을 밀어내며 재준이 기세를 잡았다.
그때였다.
검은 연기뿐이 없던 데스나이트의 투구 안에서 뭔가가 눈을 떴다.
‘응?’
쩌어억
불길하면서 새빨간 눈동자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목소리가 데스나이트에게서 들려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