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EP7.북한 게이트]―
[EP7.북한 게이트]
지훈은 한 손에 숙취해소 음료를 들고 게이트로 걸어갔다.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은걸 보면 용기사인지 뭔지는 아직 안 나온 모양이었다.
지훈을 발견한 후배가 다가오다가 코를 붙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선배 술을 얼마나 마신 거에요?”
“얼마 안 마셨어.”
지훈은 숙취해소 음료를 벌컥벌컥 원샷을 했다.
“야.
그 용기사라는 분은 어디 계시냐?”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B급이라 시간 좀 걸리시나 본데요?”
“그래?”
택시를 타고 오면서 검색을 해봤다.
얼핏 영상을 봤을 때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지만.
택시 안이라 멀미도 나고 숙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대로 확인은 못했다.
다만.
요 며칠간 엄청나게 떠오른 인물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새로운 S급 헌터!
수많은 재해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
‘영웅은 영웅이지!
이 수많은 게이트를 하루 만에 공략하고 있으니!’
지훈이 오기 전인 오전에만 D급 4개 C급 1개였다.
이번 B급 게이트까지 공략하면 이 지역에 D급 이상은 전부 클리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좀 편해지겠지.’
후우.
때마침 게이트가 일렁였다.
공략을 끝마치고 나올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지훈은 못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게이트에서 누군가가 훅하고 빠져나왔다.
거대한 지네 비슷한 것에 올라타고 있어서 지훈은 순간 몬스터인 줄 알고 기겁했다.
“이,이게!”
그런데 그 위에 올라탄 남자의 얼굴이 익숙했다.
“야...너!
네가 왜?”
지훈을 발견한 재준이 씨익 웃었다,
“게이트 많아서 힘들다며?
그래서 다 깨주러 왔다.”
“너..네가 용기사야?”
“응.
어쩌다 보니 그런 별명이 생겼다.”
재준은 황당해하고 있는 지훈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게이트로 이동했다.
"나중에 술 한잔하면서 자세히 이야기하자."
"...그래."
어색한 지훈의 인사를 뒤로 재준은 준용과 함께 이동했다.
불만스러운 준용의 눈빛이 느껴졌다.
“밥이라도 먹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간단하게 먹었잖아요.”
“...김밥?”
지훈이 고생한다며 간단하게 사 온 김밥이라면 먹긴 먹었다.
“편의점 삼각김밥도 식사로 치나?”
재준이 준용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하나만 더 깨고 밥 먹으러 가시죠.”
‘지긋지긋한 놈!’
좋은 취지라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지.
적당이라는걸 모르는 것도 민폐다.
온종일 쉬지 않고 던전을 도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이놈은 체력에 한계도 없는지 쉴 틈 없이 검을 휘둘러대도 팔팔해 보였다.
반대로 강준용은 두 눈이 퀭했다.
‘후우.’
“왜 한숨을 쉬고 그러세요?
피곤하세요?”
“...아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던전 격파는 저녁이 넘어서야 겨우 끝났다.
“밥 드시러 가실까요?”
“...됐다.
나는 밥 대신 좀 쉬어야겠다.”
“뭐.
그러시면 어쩔 수 없죠.
그럼 내일 6시에 여기서 뵙겠습니다.”
“뭐?
6시?”
준용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저 뻔뻔한 얼굴.
협회장님과의 약속만 아니었어도.
“하아.
아니다.
그 시간에 보자.”
준용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밤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다음날 게이트 순회는 취소되었다.
3차 공략대 편성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중의 5분의 1은 일본에서 지원해준 헌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의 헌터 협회장 나카무라 시바시키는 헌터 지원을 빌미로 가능한 빠른 시기에 공략을 요구했다.
자국의 헌터가 외국에 오랫동안 머물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문에 한국협회에서는 다소 급하게 공략 일정을 잡았다.
바로 하루 뒤인 내일이었다.
재준의 마나로 인해 몬스터의 저지를 한동안은 막을 수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3차 공략대는 전부 소집했다.
우리도 가야 해.”
“흐음.
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재준의 물음에 준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대.
일본 측의 요구니까 어쩔 수 없지.
지금의 한국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니까.”
“절대적 불리라.”
재준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 헌터들이 그렇게 셉니까?”
“...한국의 헌터들이 방어에 유난히 특화되었다면,일본의 헌터들은 공격에 특화되어있다.
부딪치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가 많이 불리하지.”
준용은 애써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한국의 헌터들보다 강하다는 말이었다.
“...혹시라도 놈들이 시비를 건다고 해도 어디서 개가 짖는구나 하고 넘겨.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재준의 표정에서 반감을 느낀 준용은 재준을 보며 당부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 다라.’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 한번 붙어보고 싶어지는데.
재준의 얼굴이 악동처럼 변했다.
―
다음날 일본의 쿠라다 싱고는 일본의 정예 헌터 30명과 한국으로 은밀하게 입국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한국 헌터 협회 측과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쿠라다 싱고는 한국 협회에서 원하는 것들은 대체로 모두 응했다.
일본의 까탈스러운 반응을 예상했던 한국협회에서는 생각보다 호의적인 일본의 반응에 분위기 좋게 끝날 수 있었다.
쿠라다 싱고는 마지막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띄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멍청한 한국놈들.’
사실 쿠라다 싱고에게는 한국의 작전 따위 어떻게 진행하던 상관이 없었다.
일본에는 일본의 작전이 있었으니까.
“어떻게 됐지?”
“예.
말씀하신 대로 내일 참가하는 한국의 헌터들의 전력을 분석했습니다.”
건네주는 종이에는 한국 헌터들의 정보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S급 헌터는 5명.
하지만 그중에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은 장길산을 포함해 3명뿐이었고 전투계열은 단 1명이었다.
나머지들은 모두 보조계열.
‘한심하기 그지없는 전력이군.’
나머지 A급 미만의 전력은 볼 필요도 없었다
“1명의 새로운 S급은 어떤 능력이지?”
“예.
검을 사용하는 소환사입니다.
추정 전투력은 장길산 협회장과 비슷하거나 그 아래입니다.”
쿠라다 싱고는 콧방귀를 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볼 필요도 없겠군.’
“작전대로 진행해.
너희들도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게이트 공략 따위가 아니다.”
쿠라다 싱고가 일일이 일본 헌터의 눈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한국 협회장 장길산의 죽음!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의 복속이다!”
일본의 헌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교동도는 발하나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몬스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과 매스컴들 때문이었다.
한일 연합의 3번째 공략대!
안쪽까지는 자세히 살펴볼 수 없더라도 공략대의 모습이나마 찍기 위해 모였다.
아침부터 아니,전날부터 몰려든 기자들은 헌터 협회에서 그어놓은 안전지대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까지 삼각대를 설치해놨다.
그리고 드디어 공략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찰칵찰칵!
우선 나타난 것은 한국의 S급 헌터를 비롯한 헌터들이었다.
장길산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안전지대 안쪽으로 향했다.
열기로 잔뜩 흥분한 기자들도 차마 질문을 하지 못할 만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뒤이어 들어오는 S급 헌터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질문세례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중에 특히 뜨거운 감자는 용기사 재준이었다.
“용기사님!
TV 고려입니다!
인터뷰 좀 가능하시겠습니까?”
“한 번만 포즈 취해주시죠?
용기사님!”
하지만 재준은 시끄럽게 요구해대는 기자들을 무시하고 장길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아.
거참 비싸게 구네!"
몇몇은 재준보고 딱딱하게 군다고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건 일본의 헌터들이었다.
쿠라다 싱고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며 일일이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쿠라다 싱고님!
오늘 기분 어떠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한국의 헌터들과 대조적이었다.
“발해매거진입니다!
오늘 작전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오늘 작전 말입니까?”
쿠라다 싱고가 씨익 웃었다.
“절대적으로 성공입니다.”
그 말을 뱉는 쿠라다 싱고의 시선은 저 멀리 장길산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
저 새끼 표정이 왜 저래.
한편 재준은 쿠라다 싱고의 등장에서부터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한국의 재난 사태를 이용해서 인기 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웃으면서 쇼맨십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저 새끼가 돌았나.”
준용이 얼굴을 찌푸리며 조용히 뇌까렸다.
재준은 피식 웃으면서 쿠라다 싱고를 관찰했다.
‘...강할까?’
겉보기에는 바싹 마른 아저씨로밖에 안 보이는데.
한국보다 강하다는 일본의 S급 헌터 1위였다.
재준은 호승심이 일었다.
붙어봤음 좋겠군.
재준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장길산의 뒤를 따랐다.
오늘 재준의 역할은 장길산의 옆에서 공략대의 전체적인 지원이었다.
공격력이 약한 한국팀이 양옆과 뒤를 맡고 일본팀이 전방을 맡기로 해서 나온 전략이었다.
장길산이 호문클로스의 지팡이 앞에 섰다.
이제 지팡이에서 마력을 거두면 그 순간 바로 방어막이 사라지며 이 곳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한국의 헌터들은 각자 미리 정한 작전대로 포지션에 서서 대기 중이었다.
헌터 협회는 매스컴과 기자들을 모두 교동도에서 철수 시켰다.
포위망을 빠져나간 몬스터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쿠라다 싱고는 그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앞에서 미소를 보이면서 늦장을 부렸다.
일본 헌터들은 기자들이 전부 사라지자 그제야 보호막 앞에 섰다.
‘이제 시작인가.’
장길산이 각 인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지팡이를 들었다.
우우우우웅―
미세한 떨림이 공기 중으로 울려 퍼졌다.
그에 반응하듯 보호막의 표면이 물결처럼 출렁였다.
보호막 안쪽에 있는 몬스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지팡이에서 붉은 빛이 화악 하고 퍼짐과 동시에 옆에서 강준영이 크게 소리쳤다.
“전투 준비!”
화아아악!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몬스터들을 가로막던 보호막도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덤벼들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