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마나수치 MAX-53화 (53/143)

00053 [EP6.놀이공원]―

[EP6.놀이공원]

재준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혜선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뛰면서 나무에 스치거나 넘어져서 생긴 찰과상을 제외하면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혜선이 괜찮다고 해서 마냥 기분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말이다.

무겁네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건 차 안의 라디오 소리뿐이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이야기 중점은 크게 2가지였다.

드래곤을 타고 나타나 시민들을 구한 영웅과 근래 계속 반복되는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지만,그 드래곤 헌터,그러니까 속칭 용기사 말이죠?

드래곤뿐만 아니라 스톤골렘까지 소환해서 몬스터들을 소환해서 몬스터들을 막아섰다고 합니다.

용기사의 신원을 묻자 헌터 협회 측에서는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라며 뜸을 들였는데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기사?

재준은 자신을 용기사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기분이 미묘했다.

<뭐.

헌터 협회 측에서도 잘 모르는 거죠?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뭘 하는지 이번에도 헌터들 파견이 늦었고 늦장 대응에,세계 헌터 협회 회의에서 대차게 까인 것만 봐도 얼마나 무능력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까칠한 음성의 남자가 협회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차를 운전하는 협회 직원은 작게나마 불편한 헛기침을 했다.

<아니요.

저는 전혀 다른 의견이에요.

제가 장담하는 용기사는 분명 협회와 긴밀한 연락 관계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요즘 들어 게이트 관련해서 매일 사건이 터지지만 익명의 헌터가 큰 서거들을 전부 해결했잖아요?>

<김 패널님 말씀은 용기사가 협회에 소속된 비밀병기 같은 느낌이다 이거라는 거죠?>

<예.

맞습니다!

진행자님이 단어를 잘 고르셨네요.

하하하>

혜선이 저 말이 진짜냐는 눈빛으로 재준을 쳐다봤다.

재준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밀병기는 무슨.

용기사가 언제 한번 나타났다고 그런 말을 합니까?

모습을 나타낸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자자.

이 패널님이 마침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이번 놀이공원의 용기사 헌터의 모습이 비교적 정확하게 공개가 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제보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중에 몇 분을 전화통화로 모셔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다소 긴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안녕하세요.>

<어디 사는 누구십니까?>

<아.

저는 고려신문에서 헌터부에서 글을 쓰며 기자 생활하고 있는 박대기라고 합니다.>

박대기?

재준은 왠지 목소리와 이름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박대기 기자님!

이 분야에서 엄청 유명하신 분 아니신가요?

헌터 관련 칼럼도 정기적으로 연제중이신 거로 아는데요.

용기사에 관련해서 어떤 제보거리가 있으신 건가요?

아무래도 기자분이시라 남들보다는 많이 아실 듯합니다만?>

기대감 어린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박대기가 누군지 떠올랐다.

백화점에 갇혔을 때 돌발퀘스트로 구해줬던 남자였다.

그 후로 재준이 홀연히 떠나버려서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방금에서야 다시 떠올랐다.

라디오에서는 박대기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

이 패널분께서 용기사가 이번에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허 참.

그럼 박 기자님이 말씀해 보시죠.>

비아냥거리는 이 패널의 목소리에 박대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으음.

혹시나 저번 백화점 사건 기억하시나요?>

<아아.

물론이죠.

갑자기 정체 모를 붉은 막이 백화점을 감싸면서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공격했었잖아요.

사망자와 부상자가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 당시에 저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가고일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도 했고요.

하지만 은인분의 아.

그러니까 용기사 헌터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때 당시의 이름 없던 새로운 S급의 헌터가 용기사였다?

이 말씀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백화점 내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박대기는 긴장했던 게 풀리는지 점차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도 SNS에 트롤화형남이라고 떠도는 영상이 있습니다.

당시 학교에 갇혀있던 학생들이 찍은 영상인데요.

이것도 자세히 보시면 용기사님이라는걸 알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보면 바로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아아!

그분?

이야.

그럼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군요?

어쩐지.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숨기면서 사람들을 돕는 전형적인 영웅적인 모습이네요!>

김 패널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이 패널이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대는 게 들렸다.

<영웅은 무슨.

지금 주장은 저 기자님의 개인적인 주관 아닙니까.

또 그 밖의 제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잠시만요.

이 패널님.

이번에도 또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 분이라고요?

허 참.

그럼 바로 연결해보죠.>

<큼큼.

이제 말하면 되는 건가?>

낮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회의원 고길동 이라고 합니다.

하하하하.>

<네.

반갑습니다.

의원님.

요즘 청문회로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어찌한 일로 이렇게 까지 전화를 주셨습니까?>

청문회란 말에 고길동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뇌물 상납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하하.

아무리 바빠도 진실은!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 모두가 제가 백화점사건때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 것입니다.

제가 그때 안에서 인연을 맺었던 분이 바로 용 기사님!

이셨습니다.

저와 절친한 사이기도 하고요!>

혜선뿐만 아니라 협회 직원도 정말이냐는 식으로 쳐다봤다.

“오빠 정말이야?

이 사람 질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데.”

“이름도 지금 처음 들었어.”

혜선은 그럼 그렇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의원 고길동은 주로 자신이 어떻게 용기사와 함께 사람들을 도왔는지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뇌물혐의가 정치적 공세라는 말을 갑작스럽게 떠들어댔다.

때문에 잠깐 소란스러워지기도 했지만 라디오는 재준을 봤다는 제보자들이 속속들이 나오면서 점차 용기사가 새로운 헌터 협회의 S급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협회 직원의 표정이 흐뭇해지는 건 내 착각이겠지?

내일 협회장을 만나면 할 말이 많겠군.

재준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자신을 안다고 전화한 제보자들이 많아서였다.

태성과 같이 들어갔었던 던전에서 공략대 팀장인 덩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용기사님은 그때도 저희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로 공략팀에 참여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이 방송을 듣고 계신다면 꼭 좀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위험에 처할걸 어떻게 알고 참여를 해.’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재준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자 다른 사람들은 역시―하는 표정을 재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오빠 진짜 멋있으시다.”

“아아.

뭐라니.”

혜선의 친구들이 옆에서 속닥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흠.’

재준이 잠깐 창밖을 내다보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라디오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흠.

요즘 들어 심상치가 않습니다.

사건사고도 자꾸 터지고 이해 못할 현상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죠.

하지만.

이럴수록 저희는 더 뭉치고 힘을 내야 합니다.

용기사 같은 영웅분들이 있는 한 저희 오늘도 헌터다!

팀은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겨우 이제야 끝났다.

왠지 자신을 너무 멋있게 포장하고 꾸미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다 도착했습니다.”

협회 직원이 문을 열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용 기사님,아니 최재준 헌터님이라면 언제 어디든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말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재준은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벗어났다.

혜선의 친구들은 협회 직원이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고 재준은 혜선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재준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인물이었다.

어나더 길드장 사무실.

서류를 훑어보는 최성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갈수록 엉망이군.

뭐가 문제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북한 게이트 1차 공략 때 어나더 길드의 길드장이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였던 그가 죽은 것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지만 최성호는 아니었다.

‘또 멍청하게 제힘만 믿고 달려들다가 함정에 빠졌겠지.’

안 봐도 뻔했다.

덕분에 부길드장이었던 최성호는 어나더 길드의 길드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어나더길드에 있는 수많은 A급 헌터 중에 한 명일 뿐이었지만 뛰어난 정치력과 그의 집요한 만큼은 모두가 인정하기에 어렵지 않게 길드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1달도 지나기 전에 길드는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헌터 협회에서는 끊임없이 북한 게이트 공략을 위한 헌터 배정을 요구했다.

처음에야 당연히 요구를 들어줬지만 두 번째 공략도 실패로 끝나고 세 번째 공략도 실패했을 때에는.

어나더 길드의 인력의 5분의 1이 줄어드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헌터 협회에서는 4차 공략을 시행하겠다고 또다시 헌터들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친놈들.’

헌터 협회는 유독 어나더 길드에만 요구하는 인원이 많았다.

대한민국 명실상부 1위 길드에다 워낙 길드원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새로 바뀐 길드장인 최성호가 그나마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으드드득.

‘A급이라 무시한다 이거지.’

손에 쥐고 있던 펜이 부서지면 잉크가 옷으로 튀었다.

똑똑똑.

“...들어와!”

“길드장님 보셔야 할게 있습니다.”

최성호는 비서가 건네주는 서류를 건네받았다.

서류에는 몇 장의 서류가 있었다.

“이게 뭐야?”

전부 한 남자가 전투 중인 모습을 캡처한 사진들이었다.

“스카웃 대상인가?”

“그게 아니라.

저번에 최성우 헌터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최성우 헌터가 사용하던 무기와 똑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남자를 찾았습니다.”

“뭐?”

최성호는 그제야 자세히 사진을 살폈다.

맞았다.

이 검은 최성호가 A급 던전의 보스를 공략하고 얻은 서리칼날이 분명했다.

그의 유일한 동생인 최성우의 손에 있어야 할 무기가 왜?

“이놈.

누구야.”

으드드득.

최성호가 이를 갈며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마치 짐승의 눈처럼 번들거렸다.

“아직까지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찾아내.”

“네.”

철컥

비서가 나가자 마자 최성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도저히 화가 나서 일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랑 만나야겠군.’

지난번 길드 협회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였다.

이클립스 길드라고 했던가?

그곳에 새로운 길드장이라면서 명함을 건네줄 때 풍기던 향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후읍.’

아름다운 그녀를 생각하자 얼굴에 피가 쏠릴 정도로 욕정이 돋았다.

원래 여자 따위는 몇 번 만나다 질리면 헤어지는 식의 연애를 즐기던 최성호였지만 이 여자만큼은 달랐다.

만나면 만날수록 뭔가.

더 깊이 녹아들고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은 붉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만 떠올리며 멍때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성호 씨?”

“응.

나야.

지금 바로 만날 수 있어?”

“네 물론이죠.

호텔에서 볼까요?”

“그래.

지난번 거기서 보지.”

최성호는 끓어오르는 피를 식히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의 핸드폰에는 윤미경이라는 이름 세글자가 떠 있다가 지워졌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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