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EP4.저주받은 던전]―
[EP4.저주받은 던전]
스르륵
목소리는 빛이 닿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재준이 경계하며 쳐다보고만 있자 다시 한번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는 너야 말로 누구냐?”
“뭐?”
어둠이 일렁이며 놈이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통만 한 눈알 두 개가 얼굴에 가장 크게 달라붙어 있고 그 밑으로 기다란 촉수 같은 입이 붙어있었다.
작은 집게 같은 이빨이 재준을 위협하듯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끼득끼득
날개 대신 두꺼운 팔다리만 붙어있는 것만 제외하면 영락없는 거대한 파리의 모습이었다.
“나는 위대하신 교만의 좌,바알님의 충실한 종속 바이루다!
너는 누구냐?”
흠칫.
재준은 놈의 징그러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손이 아공간의 서리칼날로 향했지만,놈의 거대한 눈은 아직까지 재준을 탐색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재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인색의 좌에 계신 마몬님의 충실한 종속이지.”
“거짓말!
마몬님이 인간 따위를 종속으로 두실 리 없다!”
바이루가 흥분한 듯 거대한 눈을 사방으로 휙휙 움직여댔다.
파짓!
파지짓!
그리고 놈의 몸에 난 털이 바짝 오르더니 전류가 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너야말로 마몬님을 멋대로 생각하는군!
한낱 종속주제에 마왕님을 평가한단 말이냐?
그분의 생각을 어찌 알고?”
재준을 향해 다가오던 바이루의 몸이 우뚝 멈췄다.
“...평,평가?
내가 감히 그 분을 그럴 리가!
만약 네가 진짜 그분의 종속이라면 증거를 보여봐라!”
“증거?”
재준이 피식 웃었다.
마몬의 증거 따위야 이미 가지고 있지.
재준은 손을 뻗어 마몬의 반지를 보였다.
“마몬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반지다.
어떠냐?
이 정도면 충분한가?”
저벅저벅
바이루는 재준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반지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며 유심히 살폈다.
“그럴 리가 없는데에.”
놈의 유리 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휙휙―움직이며 반지를 한참이나 확인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마몬님의 반지가 맞군.
인간을 경멸하는 그분이 인간종속을 들이실 줄이야.”
“또!
감히 그분을 마음대로 평가하는 거냐?”
바이루는 몹시 당황하며 손을 앞으로 내밀며 비벼댔다.
“아니다!
실수다.
실수!”
재준은 바이루를 못마땅한 듯 째려봤지만 속으로는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네놈이 왜 여기 온 것이냐?
이 곳은 바알님이 감시하기로 한 곳인데!”
재준은 잠시 게이트를 살피는 척 하면서 변명을 생각했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서 와봤다고 하면 분명 안된다고 할 테고..’
“...아무래도 루시퍼에게 또 다른 대전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 대전사가 이곳을 노리는 모양이고.”
“뭐?”
재준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이루를 살폈다.
“루시퍼의 종속들은 물론이고 권속들도 대부분 다 죽었을 텐데!
대전사가 남아있다고?
혹시 투기장의 그 죽어가는 벌레들을 말하는 거냐?”
“아니.
그놈들 말고 다른 놈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나도 이곳을 감시하러 와본 것이고.”
“그렇군.”
바이루가 긴 입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답했다.
재준은 은근슬쩍 게이트 입구에 다가가며 바이루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있나?”
“뭐?”
바이루가 어이없다는 듯이 재준을 홱 하고 쳐다봤다.
“너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거냐?”
“루시퍼의 영혼 조각 아닌가?”
끼득끼득
바이루가 우스운지 이빨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마몬 님께서 너한테는 말을 해주지 않았나 보군.
저 안에는 루시퍼의 영혼 조각 뿐만 아니라 그의 권속도 잠들어있다.
아무리 나 교만의 좌,바알님의 충실한 종속 마족 바이루라 하더라도.
그놈을 이기기는 힘들지이.”
놈이 불쾌한 듯 눈알을 굴리며 게이트 안을 흘겼다.
‘그렇단 말이지.’
재준은 힐끔힐끔 바이루를 살피며 관찰했다.
기습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파리의 특성인지 어쩐지 놈의 눈은 사각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을 살피고 있었다.
“바이루.
내가 도와줄 테니 그 종속 놈을 없애버리는 게 어때?”
“뭐?
지금 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는 거냐?”
“우리 둘이라면 어찌해볼 만하지 않겠냐?”
끼득끼득!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는군!
루시퍼의 종속이다!
벌레 같은 인간 수백 명이 더 있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놈은 노골적으로 재준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이제 떠나라!
이곳은 나 바이루가 있어서 안전하다!”
그러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재준은 놈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슬쩍 몸을 뒤쪽으로 움직였다.
‘한발자국만 더 가면 게이트다.’
바이루는 아직까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재준은 게이트에 몸을 밀어 넣었다.
터억.
뭐지?
출렁이는 게이트의 느낌이 아닌 딱딱한 바위의 느낌이었다.
놀란 재준이 뒤를 돌아보자 게이트는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진 상태이었다.
‘뭐지?’
그때 고개를 홱 돌린 바이루가 재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역시 네놈은 마몬님의 종속이 아니었어!
쓰레기 같은 벌레 놈!”
놈의 털이 아까처럼 곤두서고 전류가 통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감히 나를 속이려 해?”
놈의 등에서 길쭉한 뭔가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얇은 날개였다.
파앗!
바이루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위이잉―
“죽어라!”
파지지지직!
그리고 무자비한 전류의 비가 재준을 향해 쏟아졌다.
‘가속!’
재준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전류의 비로 오만하게 웃는 바이루의 모습이 보였다.
재준의 몸이 전류 사이를 가로지르며 바이루에게 돌진했다.
파바밧!
“멍청한 놈!”
끼득끼득
놈이 이빨을 부딪치며 즐거워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전류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재준에게 몰려들었다.
[보호막:리플렉트가 발동됩니다.]
지이잉!
“으윽!”
‘블링크!’
재준의 몸이 순간적으로 동굴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보호막이 자동으로 발동되면서 전류를 잠깐이나마 막아줘서 그 틈에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라그나 블래스트!’
[라그나 블래스트를 시전합니다.]
[마나 소모량에 따라 시전 시간과 크기가 달라집니다.]
재준이 생각한 건 이 동굴 전체.
천장에 오망성이 천천히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동굴을 밝게 비췄다.
크기가 상당해서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어림없다!”
파지지직!
바이루의 몸에서 발생한 전류가 마구잡이로 재준을 향해 뻗어왔다.
그리고 머리 위의 오망성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도망 못 간다!
그림자 손!’
재준의 그림자가 쭈욱 길게 뻗으며 바이루를 붙잡아 날개를 찢어버렸다.
놈은 바닥에 떨어져서 몇 차례나 몸을 굴렀다.
하지만 그런데도 라그나 블래스트는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류가 재준의 눈앞까지 바로 날아왔다.
그림자 손으로 전류를 막아보려 했지만 전기에 닿는 순간 그림자가 옅어지면서 힘을 못 썼다.
‘제길.
피의 보호막!’
마몬의 반지를 얻고 처음 써보는 능력이었다.
척추 어딘가에서 주륵 하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붉은 피가 재준의 몸을 감쌌다.
뱀파이어와 상대할 때 봤던 피의 막이었다.
파지지직!
전류는 피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애꿎은 피만 태우다 소멸하였다.
‘후우.’
그리고 전류가 사라지자 마자 라그나 블래스트의 시전이 끝났다.
콰아아아악!
오망성에서 쏟아지는 불줄기가 동굴을 가득 채우며 바이루를 덮쳤다.
끼이이이익!
바이루는 화염 속에서 처참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날개와 팔다리가 모두 불타서 잘려나가고 남은 건 커다란 눈알과 몸통뿐이었다.
재준은 서리칼날을 뽑아 들고 놈에게 걸어갔다.
끼득끼득!
“이 추잡한 인간 놈!
언젠간 너희 인간들을 모두 구더기의 번식처로 만들어주마!”
가뜩이나 거칠었던 목소리가 물에 타서 쇳소리처럼 밖에 안 들렸다.
“알았으니까.
어서 죽고 아이템이나 줘.”
스걱!
재준은 놈의 눈 사이를 정확히 일도양단으로 잘라냈다.
띠링
[하급 마족 바이루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혹시나 하고 죽은 바이루의 시체를 살펴보자 역시나 아이템이 떨어져 있었다.
이번에도 반지였다.
[바알의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그래.’
[바알의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바알의 반지가 인벤토리로 이동합니다.]
재준은 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확인했다.
[바알의 반지]
[등급 : S급.( 전설)]
[능력 : 지구력플러스77]
[특수능력 : 연쇄 번개]
[설명 : 7대 마왕 중 교만의 마왕인 바알의 반지.
자신의 손가락 뼈 하나를 깎아내 만들었다.]
‘연쇄 번개!’
[연쇄 번개]
[시전자의 주변으로 추적기능이 있는 번개를 생성한다.
한번 타오른 번개는 60프로의 데미지로 다른 상대에게 번져나간다.
연쇄 번개의 크기는 소모량에 따라 달라진다.]
마법 스킬!
그것도 즉시시전 스킬이었다.
방금 쓴 라그나 블래스트의 말도 안 되는 시전 시간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대체 스킬이었다.
재준은 바로 손가락에 끼고 스킬을 사용해 봤다.
‘연쇄 번개!’
파지지직!
번개가 사방에 밝히며 동굴 반대편으로 뻗어갔다.
“응?”
우우웅―
그때 재준의 인벤토리에 있던 저주받은 키가 밖으로 나오더니 울어댔다.
키는 공중을 날아 바닥의 중간에 푸욱하고 박혔다.
철커덕.
저주받은 키가 스스로 돌아가며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웅
동굴이 울리며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열린 지하 밑으로 또 다른 공간이 보였다.
저 멀리 불길이 치솟는 화롯불 앞에 석상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퀘스트가 생성되며 재준의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뭐?"
퀘스트 내용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