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EP4.저주받은 던전]―
[EP4.저주받은 던전]
으슬으슬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더불어 축축한 습기와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아으으.”
추위에 몸을 떨며 재준이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바로 전에까지 있었던 안락한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대충 깍아만든 돌벽에 천장에는 습기가 고여서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또옥―
재준의 얼굴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3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바닥은 올록볼록한 돌이 깔려있고,밑에서부터 차가운 공기가 올라왔다.
‘이래서 으슬으슬한 거군.’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지?
입구로 보이는 곳은 두꺼운 쇠창살이 막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감옥으로밖에 안보였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기절이라도 하고 옮겨진 건가?
옷은 바로 전에까지 재준이 입고 있던 게 맞다.
저벅저벅
그때 쇠창살 바깥으로 나 있는 통로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긴장을 한 채로 밖을 응시했다.
발소리의 주인은 초췌한 행색의 남자였다.
머리가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아무렇게나 기르고 주름이 진 얼굴에 허리도 앞으로 굽어있었다.
옆구리에는 반 토막 난 검이 메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녹이 슬어있었다.
‘...뭐야 이 사람은?’
재준은 한순간에 긴장이 풀렸다.
“자네는 어디서 왔지?”
“...서울에서 온건..아니고 깨어보니 여기였습니다.”
“서울?
들어본 적 없는 곳이군.”
남자는 잠깐 눈가를 찌푸리더니 철문을 열었다.
철컥
재준은 물어볼게 많았지만 남자는 홱 하고 돌아서 통로를 걸어갔다.
재준도 얼른 남자의 뒤를 쫓아갔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남자는 재준의 물음에도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대신 다른 사람의 음성이 통로의 다른 방에서 들려왔다.
“이번에도 신입이야?”
“신입이 운도 지지리도 없네.
이 팀에 들어오다니!”
“살아만 돌아오라고!
하하하하”
통로의 양옆에는 재준이 들어가 있던 감옥과 같은 방이 주르륵 있었다.
목소리는 그 안에서 들렸다.
‘신입?
이 팀?’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네.
남자에게 뭐를 물어보려고 해도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통로의 끝은 위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문틈으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입구에 다가갈수록 문밖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웅성웅성
문 바로 앞까지 왔을 때도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저기요.
아무것도 말 안 해줄 겁니까?”
재준은 남자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멈춰 새웠다.
홱 돌려진 남자의 얼굴이 한없이 차가웠다.
몸서리쳐지게 차가운 눈빛에 재준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최재준 맞지?”
“...네.”
“이번 판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말해주지.”
그리고 더는 말 섞기 싫다는 식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문을 열었다.
철컥―
밝은 빛이 확 하고 재준을 덮쳤다.
어두운 곳에서만 있다 보니 순간 눈이 부셔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자.
가라.”
터억
남자는 재준의 등을 강제로 앞으로 밀었다.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남자는 문을 다시 걸어 잠갔다.
“뭐야 대체.”
밝은 곳에 익숙해지고 재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둥근 원형의 투기장.
그리고 10M 가까이 되어 보이는 높은 벽과 그 뒤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재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이번 선수도 팀 루시퍼의 신입입니다!
지구라는 미개한 행성에서 온 유일한 인간!
그 이름은 바로 최재준입니다!]
우우우우우―
재준의 소개가 끝나자 마자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노골적으로 재준에게 적의를 표하는 인물들도 보였다.
‘이게 대체 뭐야.’
그르르륵!
그때 땅이 울리며 경기장 중앙에서 재준의 허벅지 두께의 강철로 이루어진 철장이 올라왔다.
크아아아악!
그 안에는 오우거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오우거가 아니었다.
인간처럼 철제 갑옷을 입고 가시가 박힌 곤봉을 든 것은 둘째치고 머리가 두 개가 달린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그를 상대하는 선수는 트윈 헤드 오우거!
웨거입니다!
그동안 오우거가 잡아먹는 신입만 벌써 100명이 넘어가는 투기장 제일가는 신입 사냥꾼이죠!
과연 오늘도 신입을 갈가리 찢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방금 전 재준이 소개될 때와 다르게 압도적인 응원 소리가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아아!
응원 소리에 철장 안에서 오우거가 잔뜩 흥분하며 철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쾅
크아아아아악!
괴성을 질러대는 그 모습을 재준이 멍하니 쳐다봤다.
온 몸에 흉측하게 새겨져 있는 흉터가 오우거를 더욱 난폭하게 보였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라!]
[투기장에서의 첫 경기다.
필사적으로 1승을 따내자.]
[보상 : 부활의 깃털]
[실패 : 죽음]
‘부활의 깃털?’
처음 보는 아이템이다.
진짜로 죽었을 때 되살려 주는 건가?
실패는 역시 죽음이다.
“...어이가 없네.”
갑자기 끌려 나와서 싸우라는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다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곳은 없겠지.
재준은 인벤토리에서 서리칼날을 빼 들었다.
그러자 지켜보는 관중들의 반응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럼!
이제부터 경기를!
시작 합니다아아아!]
드르르르륵!
콰앙!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철창이 사방으로 넘어지며 트윈 헤드 오우거가 뛰쳐나왔다.
놈은 재준을 초장에 압살하겠다는 생각인지 투기장을 가로지르며 전력으로 돌진했다.
―
트윈 헤드 오우거.
단순히 머리가 두 개가 달린 오우거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머리가 하나 더 달리면서 최대 단점이 지능이 크게 높아졌다.
단순히 힘만 믿고 달려들지도 않고 기술을 사용하며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오히려 멍청한 오우거인 척 하다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약삭빠른 모습도 보였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태어나면 괜히 오우거들을 이끄는 대장이 되는 게 아니었다.
오우거는 겉으로 흥분한 척 재준에게 달려들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철저히 상대를 가늠하고 평가하는 중이었다.
‘검을 쓰는 인간!
그렇다면 거리를 두고 상대한다!’
오우거는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며 손에든 곤봉을 가볍게 앞으로 휘둘렀다.
금방이라도 재준이 납작하게 깔릴 것처럼 보였다.
[오우거의 무지막지는 곤봉이 인간의 머리를 노립니다!
무서워서 꼼작도 못하는 걸까요?]
투기장을 울리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재준이 피식 웃으며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곤봉은 재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후욱!
S급 스탯의 민첩을 따라오기에는 오우거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곤봉은 재차 재준을 향해 날아왔다.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는데,곤봉의 속도가 순식간에 빨라졌다.
‘뭐지?’
‘가속!’
[가속을 시전했습니다.]
곤봉에 달라붙은 가시가 간발의 차이로 재준의 얼굴을 스쳤다.
피익―
[아아!
아깝습니다!
인간이 어찌할 줄 모르고 도망칩니다!
약해빠진 인간은 어쩔 수 없나요?
곧 피떡이 될 것 같습니다!]
‘거참.
내가 언제 어찌할 줄 몰라 했다는거야?’
싸우고 있는 오우거보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더 거슬렸다.
파밧
뒤로 멀찍이 물러나는데 오우거의 아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노린 거였어?’
오우거 주제에 머리를 썼단 말이지?
“재밌네.”
재준이 씨익 웃었다.
저번에 뱀파이어의 권속이었던 오우거는 모두 불에 태워 죽였었다.
“이 놈은 좀 다르려나?”
재준의 손이 오우거를 향했다.
그러자 오우거가 뭔가를 느꼈는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쿵쿵!
한번 불타올라봐.
‘인페르노!’
[인페르노를 시전했습니다.]
화르륵!
불꽃이 허공에 뻗는 그물처럼 오우거를 덮쳐갔다.
오우거는 커다란 덩치답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뒤로 물러나며 곤봉을 여러 차례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던 곤봉에서 마나가 모여들며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후우욱!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곤봉의 끝에서 묵직한 마나가 불길을 뚫고 재준에게 날아왔다.
‘블링크!’
[블링크를 시전합니다.]
재준의 몸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인페르노!’
[인페르노를 시전합니다.]
화르륵
다시 한번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오우거를 노렸다.
오우거는 이번에도 곤봉을 이용해 불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재준은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그림자 손!’
재준의 그림자가 쑤욱하고 늘어나더니 오우거의 몸을 움켜쥐었다.
워낙에 밝은 곳이라 그림자 손의 힘이 약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오우거의 움직임을 잠시 봉쇄하는 데는 충분했다.
화르르르륵!
붉은 화염이 오우거의 몸을 집어 삼켰다.
“크아아아아악!”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찮은 인간이 웨거를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불꽃에 웨거가 쓰러지나요?]
우우우우!
와아아아!
사람들의 함성과 야유가 반반쯤 섞여서 들렸다.
“크아아아아악!”
오우거는 머리를 비틀이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재준의 그림자 손은 오우거가 완전히 불에 타 쓰러질 때까지 절대 놔주지 않았다.
쿠웅!
오우거의 온몸이 새까맣게 타올라서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음성이 제일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아니!
반전입니다!
벌레 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
놀랍습니다!]
재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까부터 자꾸 벌레 같다니,하찮다니.
짜증 나는 놈이네.’
재준은 서리칼날을 집어넣지 않았다.
퀘스트 창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머리가 똑똑한 놈이니 또 다른 기회를 엿보는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진행자 놈도 경기를 끝내지 않는 것일 테고.
재준은 블링크의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오우거의 머리 위로 바로 이동했다.
‘블링크!’
오우거의 머리 위에 나타난 재준은 검을 역수로 쥐고 있었다.
뒤늦게 오우거가 눈치를 채고 몸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재준의 검이 오우거의 두 개의 머리를 동시에 잘라버렸다.
스걱!
목이 잘려나가면서 피가 투기장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잘려나간 오우거의 머리는 처음에 봤던 모습과는 다르게 눈동자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띠링
[트윈 헤드 오우거 웨거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부활의 깃털이 지급됩니다.]
[부활의 깃털이 인벤토리에 지급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잔인하고 화끈한 재준의 모습 때문인지 사람들의 응원이 절정을 향했다.
[아아.
약해빠진 인간주제에 운이 좋은 편이군요!
하지만 다음부터 이러한 운이 따라줄까요?
승자는 인간 최재준!]
끝까지 재수 없는 놈이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준이 들어왔던 문이 열렸다.
철컥
그리고 그 안에 재준을 안내했던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재준이 이기자 약간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투기장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까나?’
재준이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