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EP2.뱀파이어의 성]―
[EP2.뱀파이어의 성]
띠링
[축하합니다!]
[마나 부여량에 따른 S급 레드 드래곤이 태어났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소환수는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고급스러운 붉은 빛이 맴도는 비늘에 조그만 얼굴은 얼핏 보면 새끼 도마뱀 같았다.
미유우?
새끼 드래곤은 알에서 얼굴을 내밀자마자 마주친 뱀파이어를 보고 고개를 홱 하고 다시 알 속으로 집어넣었다.
[배불러!]
머릿속에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배불러!]
설마 이 드래곤이 말하는 건가?
레드 드래곤은 다시 한번 힐끔 뱀파이어를 노려보더니 재준의 어깨 위로 파득 거리며 올라왔다.
미유우―
조그만 입에서 숨을 쉴 때마다 불꽃이 타올랐다.
“말도 안 돼.
드래곤이라고?
분명 다 죽었을 텐데!”
뱀파이어는 드래곤을 보고 손을 바들바들 떨 정도로 두려워했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크기 전에 죽여야 해.
안 그러면!”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두 손에서 다시 한번 검은 전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배불러!]
아 왜 자꾸 배부르다는 거야.
그때 다시 한번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마나 부여량이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소환수가 마나를 토해냅니다!]
레드 드래곤의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머금고 있던 마나를 쏘아 냈다.
[브레스!]
콰아아아아아!
뱀파이어는 바로 앞에서 쏟아지는 불꽃을 피할 새도 없이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광음과 함께 드래곤의 입가에서 폭발하듯 화염이 쏟아졌다.
청염의 불꽃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파괴해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청염의 불꽃 속에서 뱀파이어의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뱀파이어는 순식간의 청염의 불꽃 속에서 잿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후우우―
새끼 드래곤의 브레스가 끝났다.
뱀파이어가 서 있던 자리에는 피가 흐른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꺼어억!
모든 마나를 뱉어낸 새끼 드래곤이 몸을 몇 차례 들썩이더니 거하게 트림을 뱉어냈다.
재준이 입이 쩌억하고 벌어졌다.
‘...대단하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뱀파이어가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다니.
[하급 마족 뱀파이어 타로스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레벨업을 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하아”
재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때마침 부화한 소환수가 아니었다면.
소환수가 S급인 레드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바닥에 남은 핏자국은 재준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뱀파이어를 사냥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마족의 권속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권속 지정 가능 숫자 1]
권속이 지정 가능하다고?
하지만 재준은 뱀파이어의 권속인 오우거와 가고일을 보니 선뜻 권속을 지정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봐야지.
뱀파이어가 사라지자 오우거와 가고일도 전부 먼지가 되면서 사라졌다.
일반 몬스터가 아닌 뱀파이어의 권속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백화점을 감싸고 있던 붉은 막이 사라지면서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처참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재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전투가 끝나고 나니 부러진 왼팔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미유우―
새끼 드래곤은 재준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제법 따듯하니 좋았다.
‘...너 아니었으면 죽을뻔했다.’
재준의 손가락이 새끼 드래곤의 턱을 쓰다듬었다.
드래곤도 기분 좋은지 눈을 감고 그르렁거렸다.
[소환수의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정하시겠습니까?]
재준은 잠시 드래곤을 내려다봤다.
흐음.
이름이라.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이 갸웃거리며 재준을 응시했다.
잠시 고민하던 재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의 이름은 헤스티아!
헤스티아로 정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불과 화로의 여신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소환수의 이름을 ‘헤스티아’ 로 정하시겠습니까?]
‘그래!’
미유우―
헤스티아도 마음에 드는지 한차례 울고 얼굴을 비벼댔다.
재준은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어서 나갈 생각이었다.
괜히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그림자 로브와 오우거 방어구들은 다 부서지거나 찢어진 지 오래였고.
그나마 입고 있던 옷도 찢어지고 피투성이였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재준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서리칼날부터 챙기고 헤스티아 소환을 해지했다.
‘이따가 집에 가서 다시 불러줄게.'
미유우―
아쉬운 듯 머리를 가슴팍에 비비던 헤스티아가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반짝이는 뭔가가 보였다.
뱀파이어가 불타 없어진 근처였다.
‘아이템?’
재준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몬의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그래.’
아이템은 나중에 확인하자.
재준은 일단 인벤토리에 넣어놓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미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은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박대기의 모습도 보였고,마루도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부둥켜안고 있었다.
“재준 씨!”
자리에 앉아있던 윤미경이 재준을 보고 달려왔다.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윤미경이 옆에 와서 여기저기를 살펴댔다.
하지만 재준은 잠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후우.
저는 집에 가서 쉬어야겠습니다.”
윤미경은 뭔가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재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
재준이 빠져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각 층에 있는 사람들도 1층으로 내려왔다.
헌터 협회 직원들과 헌터들은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은 사람들로 인해 기뻤지만 한편으론 의문을 가졌다.
‘몬스터들이 별로 없었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백화점 한가운데 뚫린 엄청난 구멍과 여기저기 쓰러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너무 눈에 띄었다.
‘누군가 보스를 공략했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조사를 한 헌터 협회에서 내린 최종결론이었다.
맨 위층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어서 직접적인 전투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지만 얼마나 위험한 전투였는지는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오우거와 가고일에 공격당할 때 구해줬던 사람.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얼굴은 제대로 못 봤다고 했다.
그러던 중 그 사람의 이름을 안다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
장길산과 황동수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갔다.
“구해준 사람의 이름을 안다고 했습니까?”
가슴에 배지를 단 재준에게 화를 내던 정치인이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바로 전에야 겨우 일어난 상태였다.
“크흠!
몇 번을 묻는..!
겁니까.
내가 직접 들었다니까요.”
정치인은 화를 내려다가 거구의 장길산을 보고 속으로 화를 삼켰다.
장길산이 황동수를 힐끗 쳐다보자 재빨리 주변의 인물을 통제하며 내보냈다.
“혹시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황동수 입니다!”
뒤돌아있던 황동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황동수요?”
반대로 장길산은 재밌어하는 표정이었다.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맞수다!
황동수!
내가 분명히 똑똑히 들었어요.
그 싹수없는 놈을 찾아서 뭐 하려고 합니까?
혹시 무슨 범죄자라도 되는 거요?”
장길산은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크흠.
뭐.
하여튼 황동수 그놈에 대해서는 나도 헌터 협회에 정식적으로!
항의를 할 겁니다!
감히 대한민국 정치인의 목을 내리쳐?”
장길산은 노발대발하는 정치인을 뒤로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황동수의 표정의 변화에 자꾸 웃음이 났다.
“분명 최재준 그 사람일 겁니다.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겠지.
험험.”
빠져나가는 장길산의 뒤로 정치인의 화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황동수!
그놈 각오하라고!”
그리고 황동수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
백화점 7층.
재준이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뱀파이어가 서 있던 자리에 핏자국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초고열로 인해 대부분 증발해버렸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핏방울이 한대 엉켜 모였다.
겨우 1방울 될까.
핏방울은 천천히 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 튀어나온 철근을 타고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똑.
떨어진 핏방울은 누군가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자신을 죽인 놈과 조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여인.
윤미경이었다.
핏방울은 천천히 굴러 눈가로 움직였다.
“응?”
윤미경이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손으로 닦아내려 했다.
하지만 핏방울이 좀 더 빨랐다.
눈가로 스며든 핏방울은 그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갔다.
스윽
그와 동시에 윤미경의 고개가 떨리며 표정도 살짝 멍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절대적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힘이 갖춰질 때까지 숨어서 기다려라’
“네.
알겠습니다.”
윤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