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EP2.뱀파이어의 성]―
[EP2.뱀파이어의 성]
재준은 쉬지 않고 전투를 반복했다.
겨우 재준이 있던 층의 몬스터를 몰아냈나 싶었는데,위층에는 더 많은 가고일과 오우거들이 우글 거렸다.
다행인 건 가고일 들과도 전투가 반복되면서 어느 정도 패턴을 익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손톱 공격!’
재빠르게 피하면서 가고일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스걱!
가슴 쪽에 박혀있는 심장을 파괴하면 놈들의 움직임은 곧 멈춘다.
추가로 몇 번의 공격을 하지만 멀찍이 떨어지면 그만이다.
후우.
[뱀파이어 권속:가고일을 처치했습니다.]
두 몬스터를 꽤 잡다 보니 이제 몇 마리 잡은 거로 레벨업이 되지도 않았다.
재준은 바닥에 엎드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다들 사태가 회복될 때까지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세요.
아셨죠?”
대부분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뉘었다.
따라붙거나 혹은 화내거나.
“당신 헌터 협회 소속이지?
대체 뭐하다 왔길래 이렇게 늦은 거야?
하마터면 죽을뻔했다고!”
이번에는 후자였다.
거참.
이렇게 기운이 남으면 열심히 도망이라도 치지.
‘후우.’
“지금 한숨 쉬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배지 안보이냐고!”
재준은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목덜미를 가볍게 내리쳤다.
털썩.
배지를 단 남자가 쓰러지자 그 옆에 젊은 남자가 대신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당,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신도 잠들고 싶지 않으면 조용하시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태가 회복될 때까지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세요.
아셨습니까?”
이번에는 재준도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 눈을 부라렸다.
사람들이 움찔 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신 이름 뭐,뭐야?
아니,뭡니까?”
재준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남자가 재준에게 소리쳤다.
얼굴이 벌게진 게 결코 좋은 의도로 보이지 않았다.
“나 말입니까?
황동수입니다!”
재준은 그 말을 뱉고 휑하고 몸을 날렸다.
혹시 나중에 문제 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헌터 협회 대신 힘쓰고 있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야지.
재준은 애써 정당화하며 몬스터 사냥을 계속했다.
크아아아악!
[뱀파이어 권속: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뱀파이어 권속: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우거 2마리를 태워죽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놈의 몬스터들은 끝도 없이 나왔다.
하지만 덕분에 건진 건 많았다.
[오우거의 건틀렛]
[등급 : C급.( 고급)]
[능력 : 물리 공격력 플러스 6프로]
[특수능력 : 없음]
[설명 : 오우거의 뼈로 만든 튼튼한 아이템.
손에 착용하면 오우거의 기운이 솟아난다.]
[오우거의 가죽 신발]
[등급 : B급.( 일반)]
[능력 : 이동속도 플러스 5프로]
[특수능력 : 없음]
[설명 : 오우거의 가죽으로 만든 가벼운 아이템.
신고 걸으면 오우거의 기운이 솟아난다.]
[오우거의 흉갑]
[등급 : B급.( 일반)]
[능력 : 물리 방어력 플러스 9프로]
[특수능력 : 없음]
[설명 : 오우거의 통뼈로 만든 특별한 주술이 담긴 아이템.
몸 걸치고 있으면 오우거의 기운이 솟아난다.]
아이템은 오우거에게서만 나왔다.
‘철판을 두르고 있어서 그런가.’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 전부 착용했다.
오우거의 목걸이와 다르게 착용하니 재준의 몸에 맞게 사이즈가 줄어들었다.
‘이제 마지막 층인가?’
마지막 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눈앞에 보였다.
'퀘스트!'
[뱀파이어의 성에서 살아남아라!]
[뱀파이어 성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발버둥 쳐야 한다.]
[보상 : 탈출]
[실패 : 죽음]
[남은 시간 : 78분]
처음 받았던 퀘스트도 이제 78분만 지나면 끝이다.
지금까지 5시간 가까이 흐른 것이다.
재준은 고민에 빠졌다.
아마도 보스가 있다면 마지막 층에 있을 텐데 굳이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차라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탈출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던 가고일 들도 전부 보스 방에 있을 것 같고 말이지.’
굳이 위험한 곳까지 자처해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피로도 : 86]
피로도가 이미 위험수치였다.
혹시라도 보스와 싸우다가 피로도 때문에 페널티라도 받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좀만 쉬자.’
재준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백화점 전 층에 내려앉은 어둠과 고요 속으로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르륵.
크르르르
가고일과 오우거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숨어있던 놈들이 전부 나타나는 것처럼 위층에서 내려왔다.
‘응?
저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몬스터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오는 몬스터가 있었다.
아니.
몬스터라고 해야 할까?
겉모습은 사람처럼 보였다.
단지 피부가 사람같이 않게 희고 눈이 붉었다.
재준은 왠지 불안감을 느끼고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띠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박스 3개가 인벤토리에 추가됩니다.]
띠링
[연계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뱀파이어를 사냥하라!]
[자신의 권속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뱀파이어가 화가 났다.
하찮은 인간을 직접 죽이기 위해 내려왔다.
뱀파이어를 막지 않으면 모든 인간이 죽는다.]
[보상 : 하급 마족의 권속]
[실패 : 사용자를 제외한 모든 인간의 죽음]
‘하급 마족의 권속?’
재준의 인상이 확하고 일그러졌다.
권속이라면 마족을 모시는 하급 비서관 같은 느낌이다.
그래봤자 저런 오우거나 가고일일 텐데 그런 것을 얻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라는 건 말도 안 됐다.
문제는 실패 시 조건이다.
재준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죽음이었다.
하아.
마족이었다면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어딘가에서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인간인 재준의 영혼과 섞여 있는 상태였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쓰레기 같은 시스템.
보상이라도 좋은걸 주던가!
‘후우.’
재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뱀파이어를 몰래 관찰했다.
‘...강하다.’
뻗어오는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스탯이 강화된 재준이 붙어도 어떻게 될지 내다보기 힘들었다.
뱀파이어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걷기만 할 뿐인데 주변에 두둥실 불꽃이 떠오르며 사방을 비췄다.
그러자 뱀파이어의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화려한 수실이 놓인 옷에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눈은 정확히 숨어있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재준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림자 로브의 효과로 재준의 몸이 어둠 속에 동화되었다.
그때 뱀파이어는 걸음을 멈췄다.
숨어있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즐기는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망토를 벗으면서 말했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아.
여기저기에 벌레처럼 잘도 숨어있구나.
지금이라도 나와서 고개를 조아리면 내 권속들을 죽인 죄를 용서해주마!”
나긋나긋했지만 기묘한 진동이 있는 목소리였다.
마치 머릿속을 파고들어 각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어서 나오거라.
다 용서할 테니.”
다시 한번 뱀파이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몇몇 사람이 뱀파이어에게 걸어갔다.
사람들은 뱀파이어의 얼굴을 보더니 황홀한 표정을 띄면서 무릎을 꿇었다.
“저희를 살,살려주시는 건가요?”
“이리로.”
맨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가 움찔하더니 뱀파이어 앞으로 걸어갔다.
뱀파이어의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여자의 얼굴을 훑었다.
“살고 싶다고?”
“....네”
여자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뱀파이어의 얼굴에서 눈을 못 뗐다.
“싫은데?”
“...네?”
여자의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재밌다는 듯이 키득대던 뱀파이어의 손가락이 휙―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쩌억―
그리고 여자의 목이 잘리며 그대로 머리가 뒤로 떨어졌다.
깔끔하게 잘린 목덜미에서는 붉은 피가 허공에 수놓으며 분수처럼 쏟아졌다.
뱀파이어는 팔을 활짝 벌리고 입을 열었다.
따듯한 피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충만함을 즐겼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전부다 피와 살로 만들어내게 가지고 와라!”
뱀파이어가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가고일과 오우거들이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퍼졌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지만 가고일의 날카로운 손톱보다 빠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디에 숨어도 오우거의 철퇴 한방이면 피떡이 되어 버렸다.
‘미친놈.’
저 많은 몬스터들을 뚫고 뱀파이어를 죽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른걸 다 떠나서 피로도가 너무 위험수치였다.
[피로도 : 79]
잠깐 쉬었다지만 79뿐이 안되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재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때 뱀파이어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뱀파이어의 손에 검은 전류 같은 게 맺히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재준은 손에 든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전류는 증폭되기라도 하듯이 눈이 부실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윽고 뱀파이어가 손을 뻗은 곳으로 전류가 떨어져 내렸다.
그곳은 다름 아닌 바닥이었다.
콰아아앙!
쿠웅!
귀를 찢을 것 같은 소음이 터졌다.
그리고 잔해물 사이로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었다.
쿨럭!
쿨럭!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리고 서서히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재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뇌전은 백화점의 가장 높은 층부터 1층까지 20M 반경의 거대한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몬스터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