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EP2.뱀파이어의 성]―
[EP2.뱀파이어의 성]
재준은 황동수의 뒤를 따라 협회장실까지 이동했다.
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있는 거구의 남자가 보였다.
‘...크다.’
크기뿐만 아니라 풍기는 오오라부터가 달랐다.
이게 S급 헌터.
[더게이머]의 능력처럼 서서히 강해지는 게 아니라 각성할 때부터 최강이었던 남자다.
스윽
재준을 발견한 장산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구로 인해 바닥에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최재준 헌터님 반갑습니다.”
재준은 떨리는 속마음을 감추며 당당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장산길이 푸근한 아저씨 같은 미소를 띄었다.
“무슨 영광까지야.
허허”
그러면서 소파 의자를 가리켰다.
재준이 의자에 앉자 장산길도 그 앞에 앉았다.
재준의 앞에는 붉은 기가 맴도는 찻잔이 놓여있었다.
“자스민 차입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있는 걸로 준비했습니다.”
후르륵
재준은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던 참이었다.
진한 꽃향기가 은은히 풍겼다.
장길산은 속을 감추거나 간을 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재준이 목을 축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제가 최재준 헌터님을 보자고 한 건 한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재준은 찻잔을 내려놓고 장길산에게 집중했다.
“새로운 S급 헌터가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라 더 흥미가 가더군요.”
재준은 속으로 뜨끔했다.
확실히 아직은 S급이라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스탯만 따지고 보면 마력 수치만이 SSS고 나머지는 C나 D급이었다.
만약 다른 S급과 싸운다면 몇 초도 안되어서 끔 살 당할게 분명했다.
이런 점은 장길산의 눈에도 보였는지 날카롭게 분석했다.
재준은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어떤 소속도 없으시죠?.”
“네.
맞습니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날파리처럼 꼬일 겁니다.
대형길드에서도 꽤 많은 돈을 주겠다고 하며 영입하려 들겠죠.”
돈이라.
많으면 좋겠지만 재준은 어디에 얽매이는 거에 대해 부담감이 들었다.
아직은 혼자서 움직이는 게 훨씬 편했다.
“저는 혼자가 편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나중에 혼자보다는 단체가 필요할 때 저희 협회로 오세요.
제가 힘이 되어드릴 테니.”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장길산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S급 헌터 증 발급은 일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지금 바로도 가능하지만 일주일은 유예기간이 필요합니다.”
“유예기간이요?”
“아무래도 S급 헌터가 중요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공표가 됩니다.
그 준비 기간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재준은 얼굴을 찌푸렸다.
“제 신원이 전부 공개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S급 헌터의 등장만 공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바로 알게 되겠죠.
최재준 헌터님의 정보를요.”
재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누군가에게 드러난다는 게 꽤 꺼림칙했다.
“그런 게 싫다면 협회로 들어오셔도 됩니다.”
장길산이 덩치에 맞지 않게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죠.”
재준은 그 길로 바로 헌터 협회를 빠져나왔다.
장길산은 장난으로 재준에게 마지막 F급 헌터로서의 일주일을 잘 보내라며 웃었다.
―
재준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벤토리에서 소환수의 알을 꺼냈다.
[소환수의 알]
[등급 : 무급]
[마나 부여량 89912111/A]
[남은 기간 : 23시간]
재준은 지난 8일 동안 알만 껴안고 살았다.
자는 시간에도 알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마나를 불어넣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도 노력했건만 알은 아직까지도 A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던전 갈 생각도 하지 말고 죽도록 마나나 불어넣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허접한 소환수가 나오면 어쩌나.
우우웅
알이 마치 걱정 말라는 것처럼 울어댔다.
정말 알아듣긴 하는 건가.
“내 말 들려?”
소환수의 알에서 반응이 없다.
“...확 삶아 먹는다?”
우우우웅
알아듣긴 하는구나.
재준은 알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많이 먹고 부디 S급 소환수로 태어나거라.”
알에 마나를 쏟아부으면서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저녁때쯤이 되자 혜선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혜선은 오랜만에 집에 붙어 있는 재준을 보고 흠칫 놀랐다.
“뭐냐?”
재준이 어이없게 쳐다보자 혜선이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아,아니 평소에 없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니까 그러지.”
“그러냐.”
재준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혜선은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재준의 옆에 와서 앉았다.
“오빠.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는데?”
“그럼 내가 어깨 주물러줄까?
오빠 요즘 바빠서 힘들었잖아.”
재준은 혜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혜선은 방긋방긋 웃어댔다.
이건 분명 뭔가 부탁할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응?”
순간 뜨끔한 표정이 정곡을 찌른 듯했다.
“뭔데 말해봐.”
“...사줄 거야?”
“일단 들어보고.”
“...사실은 이번 주에 친구들하고 놀이공원 가기로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옷 사 입게 용돈 좀 주면 안돼?”
용돈이라.
여자 옷이 얼마나 하드라.
그러고 보니 통장 잔액 확인해본 지도 오래다.
핸드폰의 어플을 사용해서 잔고를 확인했다.
[현재 잔액 : 80424000 원]
대출 이자나 생활비,월세 등이 빠져나가서 8000만 원 정도 남아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진짜 부자 됐네’
“알겠어.
내일 오빠랑 같이 가자.
옷 사줄게.”
“같이?”
순간 표정이 어두워진 건 착각이겠지?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일찍부터 서둘러서 시내로 향했다.
이왕 사는 거 이쁘고 좋은 거로 사려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백화점은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이거 어때?”
혜선은 이 옷 저 옷을 갈아입으며 재준에게 물었다.
재준의 두 눈에는 옷이 그게 그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분명 혜선이 삐질게 분명해서 일부로 이쁘다고만 말했다.
“어.
이쁘다.”
“정말?”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재준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 백화점에 들어왔을 때부터 기분이 그랬다.
처음에는 단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돌아다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은 낮아지지 않고 심해졌다.
뒷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기저기를 살폈다.
던전에 들어와 있을 때와 흡사했다.
‘보스 방에 들어와 있는 기분!’
재준의 표현은 적절했다.
눈앞에 안 보이는 보스가 어딘가에서 계속 재준을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이 곳은 위험하다!’
재준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재준은 일부러 혜선이 고르는 옷마다 다 사버렸다.
어서 빨리 이 백화점에서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건가?
'이 끈적한 살기를?'
“다 샀으면 그만 나가자.”
혜선은 옷 바구니를 한 아름 들고 행복해했다.
그때였다.
쿠웅.
핸드폰이 울리는 듯한 진동음이 백화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재준은 소름이 곤두설 만큼 놀랐지만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체 뭐지.’
마침 커다란 티브이 화면에 현재 중계되고 있는 뉴스 속보가 보였다.
[현재 부산항에 A급 게이트 2개가 동시에 생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헌터 협회에서는 즉각적으로 사람들을 파견했습니다.]
저것 때문일까?
아니.
부산항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금 여기서 알 리가 없었다.
쿠웅
다시 한번 좀 더 진한 울림이 백화점 전체로 퍼졌다.
이번에는 사람들도 느꼈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가야 해.”
“응?”
재준은 불안감을 느꼈다.
이곳에 있으면 죽는다.
자신은 몰라도 적어도 혜선은 죽게 될 거다.
쿠우우우우우웅!
백화점이 사정없이 떨리며 사람들이 쓰러졌다.
“지,지진?”
“꺄아아아악!”
“조,조심해!”
쌓여 있던 물건이 쏟아지고 천장에 달린 전등이 하나둘 깨졌다.
사람들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지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질주!’
[질주를 시전합니다.]
하지만 재준만은 제자리에 엎드리지 않았다.
재빨리 혜선을 옆구리에 끼고 출구로 달렸다.
“오,오빠!
꺄아아악!”
재준은 달리는 도중 벽을 향해 파이어 랜스를 시전했다.
‘파이어 랜스!’
[파이어 랜스를 시전합니다.]
불의 창이 허공에서 이글거리며 발사되어 한쪽 벽을 뚫었다.
‘블링크!’
재준의 몸이 희끗해지면서 무너진 벽 앞에 다시 나타났다.
블링크의 사정거리는 50M.
벽을 통과하기에는 조금 짧았다.
재준은 재빨리 몸을 날려 혜선을 백화점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백화점 건물이 붉은 마력에 휩싸였다.
꽈당.
“아야야야.
오빠 뭐야?”
혜선 땅에 떨어지면서 부딪친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자기를 매달고 달리더니 집어던진 오빠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혜선은 방금까지 자기가 있었던 백화점을 보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오..빠?”
백화점이 있던 자리는 붉은 피 같은 걸로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리고 잠시 후 백화점 안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