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EP2.뱀파이어의 성]―
[EP2.뱀파이어의 성]
재준의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게이트 밖으로 튕겼다.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몸에 기운이 없어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재준이 탈출구 밖으로 나오자 게이트는 쪼그라들더니 사라졌다.
‘생각보다 피로도의 여파가 굉장히 크네.’
부들거리는 무릎에 손을 짚고 겨우 일어났다.
게이트 주변은 기다란 끈으로 막고 통제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성난 얼굴로 외쳤다.
“야!
최재준!”
잠깐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지훈이었다.
지훈은 사람들을 재치며 재준에게 달려왔다.
“너 이새끼!”
금방이라도 멱살이라도 잡을 것같이 달려오더니 막상 재준이 비틀거리자 옆으로 와서 어깨를 부축했다.
“...괜찮냐?”
“안 괜찮다.”
“그러게 누가 갑자기!”
지훈은 재준에게 소리 지르려다가 주변을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멋대로 들어 가래냐!
살아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다!”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끈 밖에 서 있던 딱딱한 인상의 남자가 재준에게 다가왔다.
“이분이 게이트에 혼자 들어갔다는 그 분입니까?”
“응.
서류나 잡다한 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민간인 통제랑 대피 상황 종료 방송 좀 해.”
“네.
알겠습니다.”
지훈은 남자가 돌아가자 재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는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지훈은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곳까지 재준을 데리고 갔다.
구석진 곳에 가자 지훈이 주변을 살피곤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내가 너 등급 재심사 신청해놨다.”
“그래?”
“D급 게이트에 혼자 휘말렸다가 멀쩡히 살아 돌아왔는데 F급이라고 하면 믿겠냐?
검사는 일주일 뒤니까 그때까지는 집에서 푹 쉬어.”
“응.
F급 던전 몇 개만 돌고.”
지훈이 못마땅한 듯 재준을 쳐다봤다.
“야 인마.
너 때문에 내가 협회에 온갖 변명하던걸 생각하면 지금 두들겨 패도 속이 안 풀려.
어휴.
혜선이만 아니었으면 이걸 콱!”
잠깐.
왜 여기서 혜선이가 나오지?
내가 빤히 쳐다보자 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갑자기 말을 돌렸다.
“...험험.
그건 그렇고.
던전은 어땠냐?”
“개미들 천지였다.”
“개미들?”
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 새삼스러운 눈으로 재준을 쳐다봤다.
“곤충형 마물들은 웬만한 헌터들도 다 꺼리는데 대단하네.”
“운이 좋았다.
개미들하고 괴물 같은 지네랑 싸우더라고.”
“지네?
보스가 둘이었단 말이야?
진짜 운이 좋았네.”
굳이 보스 몬스터를 둘 다 잡았다고 말하기 뭐해서 재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나 마정석 좀 팔자.
너한테 주면 되냐?”
“그래,꺼내 봐.”
재준은 인벤토리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지금은 더게이머 상점을 이용할 생각이 없어서 전부 현금화 할 생각이었다.
E급 마정석 6개와 D급 마정석 1개,C급 마정석 1개였다.
그중에 C급 마정석은 최상급이라서 마력으로 반짝이는 정도부터가 틀렸다.
우르르
재준이 바닥에 마정석 들을 쏟아냈다.
마정석을 쳐다보는 지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가 이렇게 많냐?”
“개미들이 좀 많았다.”
“그랬냐?
정산해서 너 계좌로 보내줄게.”
“응.
고맙다.”
지훈과 대화를 끝내고 얼핏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다되어갔다.
오후 5시가 아니라 새벽 5시였다.
던전에서만 반나절을 보낸 것이다.
붉은 색의 어스름이 지평선에서부터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 푹 쉬어라.
혜선이한테는 혹시 걱정할까 봐 내가 전화 했어.”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재준은 지훈과 인사를 뒤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쉴 틈 없이 바빴지만 레벨도 폭렙 했고 스킬도 강화했다.
‘그리고 마정석도 많이 얻었고.’
어쨌든 오늘 하루는 이래저래 얻은 게 많은 하루였다.
―
‘혜선이는 자고 있으려나?’
혹시라도 자고 있으면 괜히 깰 수 있으니까.
재준은 최대한 조심히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혜선의 방문이 닫혀 있는걸 보면 아직 자는 모양이었다.
재준은 조심히 방으로 향하다가 문득 식탁 위에 놓인 식사를 보고 멈춰 섰다.
그 옆에는 조그만 쪽지가 놓여있었다.
‘술 먹고 바로 자지 말고 아침은 꼭 먹어!
다 먹었는지 확인할 거야!’
“...”
지훈이 이 놈은 대체 뭐라고 말해놓은 거지.
식탁 위에는 달걀부침에 콩나물국,그리고 기본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재준은 식탁에 앉아서 남김없이 먹었다.
재준은 5만 원짜리 2장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그 옆에 똑같이 메모를 적어놨다.
‘잘 먹었다.
착한 내 여동생한테 주는 용돈!’
―
재준은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베게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서 깨어나니 12시였다.
어제 과한 활동의 탓으로 온몸이 구석구석 결렸다.
재준은 억지로 눈을 뜨고 일어났다.
혜선은 주말이라 밖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식탁에 놓아둔 용돈도 없어졌다.
“으하아아암.”
재준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바로 샤워부터 했다.
찬물이 얼굴에 닿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방으로 돌아와서 옷을 입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지훈이 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
마정석 정산 내역이었다.
‘이게 다 얼마야.’
공을 차례대로 세어 나가던 재준이 깜짝 놀랐다.
‘8400만 원?’
E급 마정석은 각각 150만 원씩 받아서 6개가 900만 원이었고 D급 마정석은 1개 500만 원이었다.
가장 값어치가 높았던 C급 마정석은 무려 7000만 원에 정산이 되었다.
아마도 C급 마정석이 최상급이었기 때문에 같은 C급 마정석보다 값어치가 좀 더 나간 모양이었다.
‘하루아침에 떼돈 벌었네.’
헌터들이 죄다 부자가 되는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이건 재준의 착각이었다.
상급의 헌터들이야 돈을 쓸어 담듯이 벌지만 D급 미만의 헌터들은 목숨값으로 버는 것 치곤 많은 편이 아니었다.
재준이 들어갔던 F급 던전들과 이번에 들어간 D급 던전은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
재준이 가지고 있는 [더게이머]의 능력이 퀘스트를 만들어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게이트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던전의 난이도가 보통의 던전보다 살짝 더 높아지고 마정석이 그만큼 많이 나온 것이었지만 재준은 눈치채지 못했다.
‘상태창’
[이름 : 최재준]
[레벨 : 73]
[칭호 : 등급을 뛰어넘은 자]
[HP : 500]
[MP : MAX.( 측정안됨)]
[피로도 : 25]
[스킬]
패시브 스킬 : 마나 포스 S등급/카운터 패시브 D등급
액티브 스킬 :
파이어 랜스 D등급/더블 스트라이크 D등급/보호막 D등급/질주:블링크 D등급
[스탯]
근력.( C) : 157.( 51) 체력.( D) : 82 민첩.( D) : 82 지구력.( D) : 82 마력.( SSS) : 999999999
추가분배 가능 포인트 : 38
자고 일어났더니 피로도가 25까지 떨어졌다.
스탯도 ‘등급을 뛰어넘는 자’ 칭호 버프가 사라져서 원래의 수치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 또 사냥이나 하러 가볼까?’
재준은 컴퓨터를 키고 헌터 협회 사이트에 접속했다.
F급 뿐이 들어가지 못하지만 놀고 있기는 뭐하니까.
대충 아무거나 F급 던전의 공략을 신청했다.
‘아.
그러고 보니 직접 전화 달라고 했지.’
재준은 윤미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윤미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재준 씨?>
“네.
다름이 아니라 던전 공략 방금 신청해서 연락드립니다.”
<아.
방금 봤어요.
오늘 중으로 괜찮으시죠?>
“네.”
<그럼 지금 바로 오시겠어요?>
“10분 정도 걸립니다.”
재준은 후딱 일어나서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던전 공략과 레벨업.
재준은 그렇게 매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
일주일 동안 재준은 F급 던전을 꾸준히 공략하였다.
일주일 동안 던전을 돌면서 레벨업은 하지 못했다.
D급 던전에서 너무 폭렙을 해버렸더니 F급 던전에서는 더는 만족할만한 경험치를 주지 않았다.
그런 점은 아쉬웠지만 재검사를 기다리면서 시간이나 때우고 할 겸 던전을 공략했다.
그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E급 던전 공략팀 개설 자격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재검사 날이었다.
‘과연 무슨 등급이 나올까.’
두근두근.
기대감 반 걱정 반에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후우.’
가볼까?
재준은 눈앞에 있는 헌터 협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등급 검사 받을 때 와봤었기 때문에 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일단 접수처에 재심사를 접수해야 했다.
재준은 일부러 이른 아침부터 왔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들은 대부분 신규 등급 심사 대상자였고 재심사 대상자는 인원이 적어서 바로 접수가 가능했다.
접수처 앞에 서자 무표정한 여자 직원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재심사 맞으시죠?
헌터 증하고 접수비 5만 원이요.”
재준은 미리 준비해놨던 헌터 증과 5만 원을 건넸다.
여직원은 헌터 증을 받더니 재준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F급.’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여직원은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접수증을 재준에게 건넸다.
“심사실은 가보셨으니 아시죠?
거기로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재준이 인사했지만 여직원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재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옆자리에 앉은 다른 여직원이 물었다.
“F급?”
“응.
바쁜데 저런 사람 좀 그만 왔으면 좋겠어.
다시 검사 받는다고 등급이 오를 줄 아나.”
여직원을 입을 삐쭉였다.
“왜.
혹시 알아?
진짜로 등급이 오를지?”
“그래봤자 E급이겠지.
현실 파악 못하고 자기도 다시 하면 높은 등급 나올 거라면 믿는 사람들 한두 번 봐?”
“하긴.
근데 좀 불쌍하긴 하다.
겨우 F급이라니.”
여자 둘은 키득대면서 재준을 비웃었다.
그때 재준의 등급신청을 받았던 여자는 화면의 출력된 접수증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아.
그 사람한테 잘못해서 신규 전용 접수증으로 뽑아줬어.”
여직원 다시 접수증을 뽑고 재준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재준은 심사대로 향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귀찮아 정말.”
여직원은 신경질을 내며 심사실로 향했다.
―
재준은 심사대 앞에 주욱 늘어선 의자에 앉았다.
재준을 제외한 대기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남자는 바지춤에 손을 닦으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등급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지는 거니까.’
저 남자 또한 재준과 똑같이 상위등급을 꿈을 안고 재심사를 받는 거겠지.
“백일동씨.”
남자는 호명을 받고 심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심사대의 직원이 재준을 불렀다.
“최재준 씨.”
“네.”
재준은 직원에게 접수증을 건넸다.
접수증을 읽어보던 직원의 얼굴이 확하고 찌부러졌다.
분명 재심사 접수대상인데 신규심사 접수증을 가지고 온 것이다.
‘접수처 애들 또 실수한 거야?’
매일 농담이나 하는 년들.
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접수처로 가서 접수증을 바꿔서 와야 했지만.
‘어차피 F급이 변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해도 괜찮겠지?’
직원의 눈이 재준을 빠르게 위아래로 훑더니 안으로 안내했다.
빨리 검사만 하고 돌려보낼 생각뿐이었다.
심사실로 들어간 재준은 천천히 안을 둘러봤다.
심사실 내부는 3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으시죠?”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안에 있는 마나와 능력을 평가해내는 검사 장비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리면 끝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신분 확인할게요.
F급 최재준 씨 맞으시죠?”
“네.”
남자가 헌터 증과 재준을 비교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마력 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직원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재준은 직원의 지시대로 검사 장비 앞으로 걸어가 손을 올려놨다.
검사 장비에서 우우웅―소리와 함께 재준의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등급이 안 올랐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남자는 매뉴얼 대로 정해진 말을 내뱉었다.
‘이 남자 또한 어차피 똑같을 텐데.’
우우웅
마침내 검사 장비의 작동이 멈췄다.
결과는 직원의 맞은편 모니터에 나타났다.
‘당연히 F급이겠지 뭐.’
하지만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 직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저..죄송한데...다시 한 번만 해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재준은 내려놨던 손을 다시 장비 위에 올려놨다.
우우웅
장비가 다시 한번 작동하더니 결과를 모니터에 표시했다.
검사 결과는 두 번 다 똑같았다.
[등급 외 대상입니다.]
"...저 정말 죄송한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해보겠습니다."
직원의 얼굴엔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뭐 때문에 저러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결과도 모니터에 표시됐다.
[등급 외 대상입니다.]
장비가 측정할 수 있는 마력은 F등급부터 A등급까지만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S급!”
직원의 외침에 심사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재준을 향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