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EP1.마나수치가 MAX?]―
[EP1.마나수치가 MAX?]
우르르르릉!
우드득!
땅이 갈라지며 재준과 탈출구 사이에 언덕이 솟았다.
그 틈 사이로 거대한 뭔가가 몸을 움직였다.
흙더미가 아래로 쏟아지며 탈출구를 금방이라도 덮을 것 같았다.
‘질주!’
[질주를 시전합니다.]
[1초당 3000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이동속도가 100프로 빨라집니다.]
재준은 언덕을 재빠르게 올랐다.
‘제길.’
잠깐 머뭇거린 사이에 땅이 3m 이상 치솟아 버렸다.
파바밧!
다행히 재준의 발이 땅이 치솟는 것보다 조금 더 빨랐다.
가장 높은 곳을 뛰어넘자 반쯤은 흙으로 덮인 탈출구가 보였다.
발에 힘을 주고 전속력으로 언덕을 내려갔다.
흙이 튀면서 온 몸이 까슬까슬했다.
뭉클.
그런데 바닥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뭔가 달랐다.
땅이라고 하기엔 푹신푹신했고 흙이라고 하기에는 미끈거렸다.
‘또 뭐야!’
크아아아아악!
돌과 흙이 떨어지면서 거대한 몬스터의 얼굴이 드러났다.
재준이 달리고 있는 언덕의 정체는 암컷 거머리의 몸통이었다.
거머리는 땅 위로 나오자마자 재준을 발견하고 괴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맹렬하게 몸을 꿈틀거리며 재준에게 달려들었다.
‘미친!’
순식간의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탈출구는 흙으로 덮여서 끝부분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재준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몸을 슬라 이듯 하듯 날렸다.
흙 위를 미끄러지면서 가까스로 탈출구로 몸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그 위를 거머리의 입이 땅째로 집어 삼켰다.
―
헌터 협회 던전 관리과 윤미경.
그녀는 방금 남자가 들어간 게이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 안을 들여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고민하는 문제의 답이 보일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헌터 협회는 직원이었지만 동시에 헌터였다.
3년 전 게이트가 나타나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각성한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능력은 단순히 헌터라고 하기에는 특이했다.
미식자.
그녀가 가진 능력의 이름이었다.
미식이라는 이름이 들어갔지만 음식을 맛보거나 평가하는 능력은 아니었다.
상대의 능력치를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분석 능력이었다.
헌터들을 만나면 그들이 가진 능력에 따라 입에서 맛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암살자 같은 은밀한 능력은 시큼하면서 쓴맛이 나고 힐러같은 회복계 능력은 달달하면서 고소한 맛이 났다.
그 맛은 상대의 가진 능력에 따라 달랐다.
등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맛의 강도는 약했고 등급이 높으면 아무리 상대가 기운을 숨겨도 강한 맛이 혀 전체로 느껴졌다.
윤미경은 각성 후에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맛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맛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좋은 감각은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입에서 강제로 느껴지는 맛 때문에 그녀는 항상 인상을 썼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각성한 이후 한동안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특히 S급 헌터를 만나게 되었을 때는 정말.
윤미경의 표정이 와락 하고 구겨졌다.
S급들은 만나는 순간 표정이 관리가 안될 정도로 맛이 독하다.
2년 전에 봤던 협회 소속 S급 헌터.
점퍼 강윤성을 봤을 때는 입에서 느껴지는 느끼함에 토악질을 몇 시간 동안이나 해댔다.
그녀가 지금은 하급 던전만을 맡는 이유기도 했다.
‘적어도 하급 헌터들에게서는 맛이 강하지가 않으니까.’
그녀의 시선이 손에 들고 있는 파일로 향했다.
[최재준]
[등급 : F급]
[능력 : 무급이거나 발현되지 않음.]
재준에 대한 파일이었다.
손가락이 최재준이라는 이름과 F급이라는 그 중간쯤을 톡톡 건드렸다.
재준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재준을 안다.
유일하게 무미였던 헌터.
그래서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가진 능력이 너무나도 약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저번 그렘린 하수구 게이트 앞에서 마주쳤을 때는 혀끝에서 살짝 맛이 맴돌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비록 F급 던전이지만 빠르게 공략했다.
‘1년간 죽도록 노력했겠지.’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오늘.
던전 앞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입에서 다채로운 맛들의 향연이 풍겼다.
부드럽고 짭짤하고 얼얼하면서 때로는 달달했다.
하루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겨우 D급과 E급의 중간 정도였지만 바로 하루 전날 F급이었던걸 생각하면 말이 안됐다.
화악―
게이트에서 재준이 굴러 넘어지듯 모래들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콜록콜록.
재준은 모래가 코안으로 들어갔는지 기침을 해댔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윤미경은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살짝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그에게서는 좋은 맛이 난다.’
재준은 이번에도 던전을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
하아.
하아.
까딱하면 위험할 뻔했다.
재준은 탈출구를 통과하고 익숙한 풍경에 긴장이 풀렸다.
온몸이 모래투성이였다.
[퀘스트 던전에서 탈출하라!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거머리 독이 지급됩니다.]
[거머리 독이 인벤토리에 지급되었습니다.]
퀘스트 완료 신호음을 귀로 울렸다.
무의식중으로 인벤토리를 열고 아이템을 꺼내 보려다가 눈앞의 윤미경을 보고 멈췄다.
허공에 멈춰진 손바닥이 윤미경을 향해 있었다.
“뭐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준이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머리를 터는데 모래가 후드득 떨어졌다.
“이번 던전도 빨리 공략했네요?”
“아.
조금만 늦으면 죽을뻔해서요.”
“그래요?
타임어택 던전이었나 보네요.”
재준이 몸의 모래를 털다 말고 윤미경을 쳐다봤다.
“시간내로 완수해내야 하는 던전을 타임어택 던전이라고 불러요.”
“아아.”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미경은 어제의 쌀쌀했던 모습과 달리 살짝 웃는 얼굴이었다.
좋은 일 있나?
‘웃는 얼굴도 나쁘진 않네.’
재준은 대충 모래를 털어내고 윤미경이 준 서류에 사인을 했다.
오늘은 공략 수당 50만 원만 들어오겠네.
조금은 아쉬웠다.
재준이 윤미경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그녀가 재준의 팔을 붙잡았다.
“뭐죠?”
“...다음부터는 저한테 전화하면 게이트 알아봐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까칠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챙겨주는구나.’
재준이 기분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그런 재준의 뒷모습을 윤미경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
위이잉―
재준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려댔다.
‘누구지?’
핸드폰에는 배지훈이란 이름이 떠 있었다.
머릿속에서 지훈의 대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배지훈.
헌터 협회 소속,최근 외국파견을 나갔던 친구.’
잠시 망설이던 재준은 전화를 받았다.
“...”
<재준아 나 한국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너한테 할 말도 있고.>
“그래.
어디서 볼까?”
<너희 집 근처 공원에서 보자.
10분 정도면 도착할 듯?>
“알았다.”
재준은 전화를 끊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재준이 공원에 도착할 쯤엔 지훈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검은 양복에 손을 흔들고 있는 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잘 지냈냐?”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친구가 개고생하다 들어왔는데 정 없는 놈.”
지훈이 옆에 놨던 검은 봉지에서 캔커피를 꺼내서 재준에게 건넸다.
칙
그리고 본인 것도 따서 입을 축였다.
“별건 아니고.
나랑 같이 헌터 협회에서 같이 일하자고.
돈은 적어도 던전 짐꾼보다는 훨씬 안전하니까.”
그러고 보니 지훈은 재준이 던전 짐꾼으로 일하는 것을 항상 말렸었다.
재준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 일은 됐고,뭣 좀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
“재검사 좀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방법 없냐?”
“재검사?”
지훈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협회에서는 통상적으로 단 한 번의 헌터 검사를 지원한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로 재각성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재검사도 시행했다.
문제는 자신의 등급에 불만족한 사람들이나 강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재검사를 수도 없이 신청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체로 헌터 협회에서는 재검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일 년에 수십만 명씩 재검사를 받지만 지금까지 재각성의 사례는 단 두 명뿐이었다.
“협회 직원 추천하에 하면 일주일이면 가능하긴 한대.”
지훈이 말끝을 끌었다.
“...재각성이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라는 거 알지?”
재준은 주위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고 손을 뻗었다.
‘파이어’
[파이어를 시전했습니다.]
[불꽃의 크기에 따라 마나 소모량이 달라집니다.]
[1초당 마나 3000이 소모됩니다.]
재준은 일부로 처음부터 마나 소모량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화르르륵
손에서 뻗어 나간 불이 눈앞의 나무를 순식간에 까맣게 재로 만들었다.
그제야 지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남자 허리 두께의 나무를 순식간에 전소시키는 능력.
아무리 못해도 E급?
잘하면 D급?
“이게 최대한이야?”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게 최대한이다.
“그래.
내가 재각성 신청해놓을게.”
“고맙다.”
“뭐,친구끼리.”
띠리리리―
그때 지훈의 품속에서 전화기가 소란스럽게 울려댔다.
“잠깐만.
전화 좀.”
전화를 받은 지훈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뭐?
던전 브레이크?
어디라고?”
지훈의 고개가 돌아가며 공원의 주변을 살폈다.
때마침 공원 중앙에서 뭔가가 생겨났다.
우우우웅―
공기가 울려대며 뭔가가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곳에 생겨난 것은.
“게이트?”
물의 표면 같지만 푸르게 빛나는 막.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마력의 소용돌이는 게이트가 분명했다.
더구나.
F급 던전보다 그 크기가 컸다.
재준은 뭔가에 이끌리듯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야!
뭐해!
휘말리기라도 하면 큰일나임마!
D급이라고!”
재준은 멈추지 않았다.
지훈이 하는 말에 오히려 더더욱 들어가고 싶어졌다.
기묘한 흥분감이 온몸을 감쌌다.
재준의 입장에선 눈앞에 떨어진 금괴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잖아.’
게이트 바로 앞까지 걸어간 재준이 지훈을 뒤돌아봤다.
“야 부탁 좀 하자.”
“...뭔데?”
“나는 이 게이트에 휘말린 거다?”
“뭐?”
지훈이 그 말을 이해할 때쯤에는 재준은 이미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지훈이 들고 있는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휘말리기라도 했습니까?
선배님?>
“...미친!”
지훈의 표정이 황망해졌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