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EP1.마나수치가 MAX?]―
[EP1.마나수치가 MAX?]
마족은 기쁘게 웃었다.
첫 계약이라 걱정했는데 손쉽게 인간의 영혼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계약조건은 누구한테도 무시당하지 않을 힘을 얻는 것!
강해지는 것 따윈 상위 마족인 그에게는 눈앞에 있는 사과를 바로 썩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멍청한 것.'
마족은 재준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조소했다.
계약의 대간인 영혼을 언제 가져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강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준에게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마족의 함정이 있었다.
계약대로 재준을 신체를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재준의 영혼을 흡수해서 재준의 몸으로 자신이 들어갈 생각이었다.
처음에야 재준의 영혼도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차 강대한 그의 영혼에 흡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는 것은 나일 테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얻는 것.
평소 인간세계를 동경하던 마족에게는 최고의 계약조건이었다.
마족은 재준의 시체를 무형의 힘으로 들어 올렸다.
축 처져 흔들리는 시체에서 핏방울이 두둑하고 떨어졌다.
‘우선 사인이 된 상처는 이것인가?’
마족의 손가락이 푸욱하고 가슴에 있는 상처를 뚫고 들어갔다 빠져나왔다.
살이 찢어진 것뿐만 아니라 뼈도 여러 군데 부러졌다.
‘우선은 몸을 최적화한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족의 힘은 더는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강대한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이 몸을 강화해 놓을 생각이었다.
마족의 손끝에서 피가 뭉클뭉클 새어 나왔다.
영롱한 붉은빛 피는 가슴의 상처로 흡수되었다.
우드득―
시체는 몸이 이곳저곳이 늘어나고 비틀리며 골격이 변했다.
인간의 신체가 가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검붉은 색의 또 다른 기운이 마족의 손에서 뿜어졌다.
고도로 정제된 마나였다.
'이 신체에 강제로 마나를 담는다’
재준의 몸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마나가 적었다.
억지로라도 마나를 불어넣어 축적할 생각이었다.
마족의 피로 최적화된 몸은 스펀지처럼 마나를 흡수했다.
만약 다른 헌터들이 들었으면 두 눈을 부릅뜨고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을 말이었다.
조금의 마나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억만금을 주고서 영약을 사서 먹는 이들이 헌터들이였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마족인 그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가능했다.
재준의 신체가 마나에 물들면서 바르르 떨렸다.
대부분 밖으로 빠져나온 피를 대신에 마력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그에 따라 서서히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도 변했다.
마족의 마나의 기운과 같은 검붉은 색이었다.
‘좋아.
이제 준비는 끝마쳤다.’
마족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긴장감과 흥분감으로 꽉 쥔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계약을 시행한다!]
마족의 영체가 바스러지며 재준의 시체로 스며들었다.
가슴팍에 있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더니 흉터 하나 없이 아물었다.
하지만 재준이 원래 가지고 있던 [더게이머]의 능력과 개조된 신체를 제외한 마족의 권능은 서서 사라져갔다.
두근.
마침내 재준의 멈춰버린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번쩍
두 눈을 뜬 재준의 검붉은 두 눈동자가 요요히 빛났다.
‘어색하군.’
인간의 신체는 마족인 마족이 느끼기에 턱없이 약했다.
이 몸에 영체가 자리 잡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재준의 두 눈이 스르륵 감기며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때 재준의 머리에 신호음이 울렸다.
그의 능력인 [더게이머]였다.
띠링
[신체와 두뇌가 재각성 합니다.]
[모든 스탯 수치가 초기화됩니다.]
[스탯 수치 재조정 중.]
.
.
.
[스탯 수치가 재조정되었습니다.]
[스탯]
근력.( F) : 10 체력.( F) : 10 민첩.( F) : 10 지구력.( F) : 10 마력.( SSS) : 999999999
[이름 : 최재준]
[레벨 : 3]
[칭호 : 없음]
[HP : 100]
[MP : MAX.( 측정안됨)]
[피로도 : 99]
[스킬]
패시브 스킬 : 없음
액티브 스킬 : 파이어 F급
하지만 이미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 재준은 시스템 창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재준을 찔렀던 고블린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들에 의해 머리가 잘렸다.
박 씨 아저씨는 그제야 재준에게 다가왔다.
“재준 군!
괜찮나?”
바로 옆에서 재준이 창에 찔리는 모습을 봤다.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기분이 착잡했다.
“아니?”
하지만 막상 재준에게 다가갔을 때 가슴에 있어야 할 커다란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찢어진 옷가지에 피만 묻어있었다.
그리고 재준은 그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상처가 없어?”
박 씨 아저씨의 중얼거림을 듣고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뭐야 또 기절한 거야?”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하”
주위에서 재준을 비웃어댔지만,그는 그럴 수 없었다.
‘어라?
분명 창에 찔리는 걸 내가 봤는데 이상하다.’
착각이었나?
박 씨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병원에 실려 온 재준은 각종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약간의 생채기를 제외하면 전혀 이상이 없었다.
혹시나 했던 사람들도 어이없어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재준의 신체는 기절상태였지만 두뇌는 평소보다 수십 배 더 많이 활발한 상태였다.
강대한 마족의 영혼을 감당하기에는 인간의 뇌는 턱없이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마족은 일부러 신체의 기능을 멈춘 후 온 힘을 뇌로 집중했다.
마족의 일부라도 재준의 신체에 담기 위해서였다.
찌익―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재준의 뇌가 한없이 확장되었다.
쓰러져 있는 동안에 재준의 뇌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 수십 배는 더 활발해지고 활성화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재준의 기억이 마족에게 흡수되었다.
여동생 혜선에 대한 것부터 최근에 죽기 전의 기억 전부 말이다.
하지만 그때.
한가지 변수가 생겨났다.
원래대로라면 마족에게 속절없이 흡수되어야 할 재준의 영혼이 반대로 마족의 영혼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재준이 가진 [더게이머]가 재조정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마족의 영혼을 재준의 몸에 들어온 이물질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마족의 영혼과 재준,능력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더게이머] 능력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둘의 영혼을 한쪽에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융합시키는 것!
[영혼을 융합합니다.]
[융화율 1프로]
.
.
[융화율 17프로]
시스템 창의 신호음 이후 재준과 마족의 영혼은 서로 완벽히 섞이기 시작했다.
―
세상의 급격한 변화는 3년 전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그 후부터 세상에 각성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들을 헌터라고 불렀다.
재준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혜선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마력 부적응.’
헌터 협회에서는 이 병에 대해 이렇게 알렸다.
이 세상에 흘러든 마력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면서 망가지는 병.
마력 부적응은 단순히 그 증상을 멈추는 것뿐인데도 치료비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재준은 여동생을 위해 힘든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일했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혀를 차며 대단하다고 말할 희생정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재준의 삶을 지켜본 마족의 감상은 간단했다.
‘한심하군!’
마족은 지극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영혼이 서로 섞이면서 제3의 성격이 되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융합이 되어가는 중에도 두 영혼은 그 사실조차 모르게 하나가 되어갔다.
[융화율 100프로]
[융화를 완료하였습니다.]
―
눈을 뜬 재준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다름 아닌 최성우였다.
“드디어 깨어났군.”
병실 한쪽 벽이 일렁이더니 최성우가 걸어 나왔다.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던전 공략 중에 피해자가 나오자 그가 명령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 게 그의 형의 귀에 들어갔다.
그 일로 한참이나 잔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쓰레기보다 더 한심하게 생각하는 재준에게 직접 보상금을 전달하고 사과를 하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시발.’
최성우는 누구에게도 그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은신술을 써서 몰래 재준의 병실에 들어왔다.
“깨어났군.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어?”
최성우의 손이 재준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네놈이 쓸데없이 쓰러져서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마족,아니 재준은 상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잠시 후 최성우에 대한 정보가 머리에 떠올랐다.
“최성우.
어나더 길드 부길드장 최성호의 동생.”
최성우의 웃음이 짙어졌다.
“D급 헌터지만 자기 형을 믿고 까부는 천방지축 원숭이 같은 녀석.
맞나?”
“뭐?
한번 죽을뻔하고 일어나더니 머리가 어떻게라도 됐냐?
자기 형을 믿고 까부는 천방지축?”
최성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최성우의 살기 어린 눈동자가 재준을 노려봤다.
“돈이나 몇 푼 쥐여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팔 하나 정도는 못쓰게 만들어야겠어.”
재준을 향해 다가오던 그때 최성우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뭐지?’
위화감이었다.
최성우는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재준의 눈동자에서 이해 못 할 공포심이 느꼈다.
마치 포식자 앞에선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이빨이 으득―하고 갈릴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최성우는 검에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재준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자신의 친형이 챙겨준 이 A급 무구의 힘을 그 누구 보다 자신했다.
실제로 이 무구에 목숨을 잃고 쓰러진 몬스터들이 그것을 보증했다.
“헉.”
하지만 오늘로 그것도 마지막이었다.
의미 없이 저항하듯 뻗는 재준의 손바닥 앞에서 검이 멈췄다.
빼내려고 해도 무형의 힘에 꽉 잡힌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뭐,뭐야!”
화르륵―
재준의 손바닥에서 주르륵 새어 나온 불줄기가 서리 칼날을 타고 슬금슬금 최성우의 팔 쪽으로 다가왔다.
‘제길!’
최성우는 어쩔 수 없이 서리 칼날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불꽃은 독사처럼 허공을 뛰어올라 최성우의 목을 물었다.
“으아악!”
순식간에 목의 피부가 까맣게 변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불길을 꺼지지 않고 온몸으로 커졌다.
“살,살려줘!”
최성우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 중에도 병실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병실 문은 뭐에 막힌 듯 꿈적도 하지 않았다.
천장의 스프링클러도 동작을 하지 않았다.
불길에 타들어 가는 고통에 최성우는 최후의 비명을 지르며 한 줌의 잿가루가 될 때까지 고통에 몸부림쳤다.
“죽어서도 영원히 지옥의 불길에서 고통받거라.”
재준이 손을 한번 휘두르자 바닥에 남아있던 잿가루는 바람에 휘날려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재준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그때 신호음이 울리며 재준의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작품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