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330화
네메시스 사냥을 위한 인류 공략대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네메시스가 있는 핵심지역까지 이제는 30km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네메시스를 지키는 신대륙의 몬스터들은 전부 '울티오' 계열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뼈로 뒤덮여 있고 그 안에 피부와 근육이 있는, 겉과 속이 반대되는 외형의 몬스터다.
울티오는 헌터들이 제일 꺼리는 악마족인데다가, 가장 약한 개체가 7랭크다.
평범하게 균열로 출현했다면 3급 헌터가 막으러 오기 전엔 능히 도시 하나를 무너뜨릴 정도의 괴물들.
크기도 소형부터 초대형까지, 그 모습이나 사용하는 전투 기술들도 제각각이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지만 전세계의 헌터들이 똘똘 뭉쳐 몬스터들의 공세를 뚫고 전진하고 있었다.
한참 전투가 진행되는 때에, 유신은 사자선단의 '쉘터'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가 휴식을 취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미 인류 총사령관으로서 역할, 그 이상을 해냈으니까.
"몸은 괜찮으세요? 선배."
"괜찮아. 조금 피곤할 뿐이야."
그의 옆에는 홍연도 있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유신이 나서서 네메시스전 핵심카드라며 체력안배를 요청했다. 대단한 작전을 성공시킨 유신의 말이었기에 이번에도 받아들여졌다.
'앞으론 홍연의 활약에 달렸지.'
네메시스 이후의 계획도 네메시스를 제거해야만 가능하다. 수호자인 그녀는 이번 보스전에서 반드시 큰역할을 해줘야 했다.
"선배."
"?"
"누워서 편하게 쉬세요."
그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유신의 머리를 천천히 자신의 무릎에 눕혔다. 뒤통수에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낀 유신이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어, 이거 해주는 거야?"
"네. 하지만 마지막이에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부끄러우니까 이쪽 보지 말아요. 돌아누워요."
"베개가 요구사항이 많네."
곧바로 홍연의 처절한 응징이 이어졌고, 유신은 아아악 소리를 내며 굴러다녔다.
한편 쉘터 바깥에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신대륙의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막강했지만, 인류의 기세는 폭발적이었다.
"자, 비켜! 비켜!"
한윤정이 하늘로 날아올라 두 팔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커다란 모래 구덩이가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모래 병장구들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몬스터들이 날붙이에 꿰뚫리고 터져 나갔다.
-기동 전함, 사격 개시.
미국의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공중기함들이 미사일들을 쏟아냈다. 5랭크 몬스터부터는 미사일 화력이 안먹힌다는 상식을 비웃듯, 7랭크 몬스터들을 대거 폭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공중 기함들 사이를 홀로 당당히 비행하는 회색의 오래된 중세 범선이 있었다.
유령선에서 날아가는 회색 포탄들은 효율만으론 공중 기함을 아늑히 뛰어넘었다.
폭발에 휘말린 몬스터들의 마력이 증발되어 풀썩풀썩 쓰러졌고 지상의 헌터들이 손쉽게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도 질 수 없죠! 가요!"
이번엔 천공성에서 하예린이 이끄는 마탑의 공중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카루스 능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고속비행하며 마법을 떨어뜨렸다.
몬스터들의 몸이 불타 사라지고, 그 위로는 안드로이드 아담이 지팡이 디바이스를 겨누고 입자가속포를 발사해 대형 몬스터를 사냥했다.
"저건 뭐야?"
"……로봇?"
헌터들이 웅성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후의 전쟁답게 인류 첨단 무기들이 대대적으로 채용되는 모습이었다.
-4시 방향에 다수의 적 발견!
-여기는 아크 비숍, 제가 가겠습니다.
신하 속 페가수스를 연상케 하는, 하늘을 나는 백마들이 마차를 이끌었다. 곳곳에서 원거리 공격이 쏟아졌지만 마차는 매끄럽게 피해내며 마침내 목표지역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아크 비숍 루치아가 십자가 목걸이를 붙잡았다.
<신의 징벌>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십자가가 지상에 내리꽂히며 100기 가까이 되는 7랭크 몬스터들이 일제히 폭사했다.
아군 진형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좋아! 좋아! 계속 가자!
-9시 방향에 울티어 공중형 20기포착!
-내가 간다.
최강의 염력계 능력자, 공인 1급 사무엘이 두 팔을 펼쳤다.
마치 자석이 작용하듯 몬스터들끼리 서로 철썩철썩 들러붙더니 그대로 몸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졌다.
공중전력은 인류가 압도적 우위였다.
-9시 클리어.
-제공권은 확보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
헌터들은 모두 신이 났다. 태어나서 한번 볼까 말까 한 전설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공인 1급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화력 지원 장난 아니다. 너무 쉬운데?"
"이대로 네메시스까지 가자!"
그러나 곧 시련이 닥쳤다. 거침없이 달려나가던 헌터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삼키며 걸음을 멈췄다.
"……그래, 이렇게 쉬울리 없지."
언덕에 자리 잡은 수 천기의 울티오 군단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인간을 보고도 달려들지 않는다. 진형과 전술적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 헌터들도 순간 압도당했다.
-망설이지 마라.
이어마이크로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잊었나? 50억이 죽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에서는 우리의 가족, 친우, 이웃이 살해당하고 있다.
헌터들이 이를 악물고 헌팅 디바이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전의를 가지고, 살의를 품어라. 그리고 인류 최후의 공략대로서 자부심을 가져라.
고양된 헌터들이 함성을 질렀다.
-방패 디바이스 있는 헌터들은 전부 튀어나와!
-근접전 특기 헌터들도 앞으로!
-공중 전력은 화력 준비! 미군 기함들과 마탑, 천공성, 유령대, 성기사단은 제자리에서 대기하도록.
이내 모든 준비를 마친 인류의 군단이 전진했다.
울티오들의 군단은 그 자리에 굳건히 있었다.
그리고.
쿠쿠쿠쿠쿵!
방패 디바이스를 든 헌터들과 선두의 몬스터들이 부딪쳤다.
'단단하다!'
몬스터의 완력에 돌진이 막혔지만, 인류에게는 공중 화력이 있었다.
천공성의 포대가 열리고, 공중 기함의 모든 포문이 열렸다. 마법사들도 마법진을 펼치고 대기했다.
-사격 개시!
인류의 모든 화력이 쏟아 부어진다. 몬스터 진형의 허리가 무너져 내리며 버티는 힘이 약해졌다.
"비켜."
바로 그때 러시아의 간판 헌터인공인 1급 그리즐리와, 바티칸의 공인 2급 자이언트가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몸이 괴수 영화처럼 순식간에 수십 미터씩 부풀었다. 한명은 곰으로, 다른 한 명은 거인으로 변했다.
콰콰쾅!
두 거체가 팔을 휘두르자 울티오 몬스터들이 볼링핀처럼 날아다니며 전면에 균열이 생겼다.
그 틈을 근접전 최강자 가브리엘과 베테랑 헌터들이 비집고 돌파하자, 비로소 적진이 무너져 내린다. 인류의 군단은 하나의 창이 되어 진형을 뚫고 나갔다.
"되, 된다! 앞으로 나간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 죽을 힘으로 따라붙어!"
이어지는 각축전은 정직한 숫자의 싸움이었다. 기세는 인류 쪽이었지만, 힘의 차이는 헌터들이나 울티오나 비슷했기에 죽이는 만큼 죽는 전투가 벌어졌다. 누군가 울티오의 심장을 꿰뚫으면, 또 어딘가에선 인간의 목이 떨어졌다.
-전방 11시 몬스터들이 추가로 보충됐다!
-막혔습니다!
-닥치고 뛰어! 여기서 뒤처지면 답 없다!
다들 알고 있었다. 결국 신대륙의 몬스터들은 500만이 넘는 숫자다.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더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지금은 다소의 억지를 써서라도 네메시스에게 도달할 때였다.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하지만 비행군의 화력 지원도 소강상태에 이르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눈을 붙이고 쉬려 했던 유신도 불안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옆에 앉은 홍연이 엄지를 깨물었다.
"안 되겠습니다. 역시 제가 나서야……"
홍연이 일어나려 하자 유신은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도로 자리에 앉혔다.
"……선배?"
"기다려. 내가 알아서 할게."
유신이 이어마이크를 붙잡았다.
"사미아. 다음 플랜 준비해 주세요."
-5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제대로 협력해줄지는…….
"협력해 줄 겁니다. 틀림없이."
-알겠다.
유신은 바깥을 응시했다.
공략대는 좀 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피해가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후방의 병력이 못 본 사이 더 늘었다.
이대로는 포위당할 것이다.
-김유신 헌터, 준비가 끝났다.
"좋아요."
그때 유신은 손바닥에서 따스한 체온을 느꼈다. 홍연이 그의 손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얼마 쉬지도 못하셨잖아요. 또 무리하실 거면 차라리 절 보내주세요."
"응? 아, 걱정 마. 내가 나서려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의 아마겟돈 말고…… 이 상황을 타개할 화력이 마탑에 또 있나요?"
"없어."
그녀의 멍해진 얼굴을 보며, 유신은 킬킬 웃었다.
"화력은 빌려 쓸 거야."
-탑주, 해당 좌표에 '이계정원'을 발동합니다.
다시 한번, 전장이 새하얀 백사장으로 뒤덮였다. 헌터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8층의 이계정원은 좌표 설정이 자유롭다. 그리고 이제는 마탑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지속시간의 제한도 없다.
-김유신 헌터. 당분간은 워프를 쓸 마나가 없을 것 같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다 써버려요."
이계의 하늘이 열리고, 그 어느 때 보다 커다란 워프게이트가 아가리를 쩍 벌린다.
유신은 잠자코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응답하지 않으면 방대한 마나낭비다.
하지만 응답해 준다면.
-워프게이트에 다수의 투사체 관측! 오고 있습니다!
-여기는 관리자 김사랑. 게이트 앞에 증폭 필드 마법을 발동하겠습니다.
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마이크로 지휘채널에 접속한 다음 말했다.
"전군 제자리에서 정지. 하늘에서의 화력에 대비하십시오."
…하늘에서?
이내 그 하늘에서,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미사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들이 입을 딱 벌렸다.
"저건 또 뭐야아아아!"
게이트에서 나온 무수한 미사일들이 4층의 필드마법진을 통과해 몬스터에게 쏟아져 내린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넓은 공간이 일제히 불바다가 되며 자욱한 연기로 뒤덮인다. 귀가 먹먹하고 탄약의 연기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선배. 이건……"
"빌려온 화력이야."
원리는 간단했다.
지구 곳곳에 워프게이트를 펼쳐놓고, 그 입구를 이계의 좌표를 통해 이쪽으로 지정했을 뿐이다. 공략대병력을 신대륙으로 이동시킨 것과 같은 원리다.
유신은 신대륙에 들어가기 전에, 공략대 총사령관으로서 미국의 국방장관 딕 그린을 비롯하여 최다 미사일 보유국들인 중국, 러시아, 영국등에 협조를 구했다.
사전에 워프 위치를 통보할 테니워프를 열면 이쪽으로 미사일 화력을 쏟아 달라고. 헌터들이 통과해야 하니 핵무기 및 화학 무기 등은 제외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각국 총수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지만 유신은 말했다.
-제가 화력 요청을 드리는 건 신대륙에 넘어간 공략대가 위기에 처했을 땝니다. 화력이 없으면 공략대는 전멸, 네메시스 공략은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당시엔 공략대가 신대륙에 들어가지도 못한 때라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헌터들을 다때려 박고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
어떻게 보면 유신은 자국 헌터들의 목숨을 인질로 화력을 제공받은 셈이다.
미국.
-ICBM 미니트맨 300만 발 스탠바이.
-전 항모전단 포인트에 도착했다! 사격 개시!
중국.
-국가주석 명령이다. 다 때려 박으라.
-지, 진짜 저기 쏘면 됩니까?
-주석의 명령에 의문을 가지지 말라.
그 외에 영국과 러시아까지.
인류의 전화력이 한점에 집중되어 몬스터들을 파괴하고 있다. 5층에서는 차원 좌표를 세부 계산해 미사일끼리 부딪치지 않도록 정리까지 해두었다.
기존의 미사일 화력은 고랭크 몬스터 상대로 효율이 급감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물량에는 장사 없었다.
질려 버린 헌터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근데 왜 작전명이 하필 '플랜 짬짜면'이에요?"
홍연이 유신의 휴대전화를 훔쳐보며 물었다.
유신은 손가락을 흔들며 답했다.
"마법과 과학의 콤비네이션."
"……."
"……그런 표정 짓지 마. 부끄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