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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25화 (325/337)

나 혼자만 마탑주 325화

주위의 마법사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왔다.

천공성 바닥에 놓여 있는 거대한 용의 머리.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총통을 혼자서……!"

"마탑주님이 이겼다!"

나는 환호하는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선배님!"

진보라가 뛰어왔다. 나는 총통의 뿔을 두들기며 말했다.

"애들 시켜서 이거 마정석이나 좀 추출해 줘. 이 정도면 천공성 몇 년은 돌리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녀는 바로 내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 없어요?"

"당연히 없…… 우웁!"

"일단 이거 드시고요."

뚜껑을 딴 블루 엘릭서를 내 입 안으로 쑤셔 넣은 그녀는 곧 슈트 안에 멍이 난 상처를 발견했다.

이내 신속한 동작으로 옷을 벗겨서 상처 부위에 레드 엘릭서를 부었다.

민망해서 옆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빨리 그거나 마저 마셔요. 두 병 더 마시셔야 해요!"

"아, 알았어."

"고생하셨습니다. 탑주님."

그간 전투가 격렬했는지, 온몸이 몬스터의 피로 범벅이 된 정서진이 내려왔다.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하피의 얼굴이 터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헌터들이 달려와 헌팅디바이스로 마무리했다.

"응, 너도 고생 많다."

"현재 전황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찰칵! 정서진이 탄알집을 바꿔 끼고 허리춤에 넣으며 말했다.

"총통이 데려온 마인들은 90% 이상 궤멸, 몬스터의 공세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안드로이드 아담과 천공성 헌터들이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제거한 수의 몬스터는 약20만. 목적지까지는 앞으로 네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총통의 브레스를 견딘 헬리오스는 큰 피해를 입어서 이번 전투에서는 기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오스를 잃었지만, 마인들의 최대 전력을 정면으로 박살 냈다. 이 정도면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성과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서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1분도 안 남았습니다."

나와 진보라, 하예린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8, 101, 354, 871 : 7, 000, 000, 00이

[00: 00: 49]

"무서워요. 대체 무슨 일어 벌어지는 걸까요?"

"아무도 모르지."

포탑이 내뿜는 화약 연기 너머로, 하늘에 떠 있는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올려다보는 것뿐.

결국.

[00: 00: 00]

숫자는 0이 되었다.

숫자는 거기서 더 줄어들지 않았지만, 위쪽이 바뀌었다.

[8, 101, 354, 755 > 7, 000, 000, 000]

불안한 예감이 감돌았다. 나는 이어마이크로 필에게 연락을 걸었다.

"저 총사령관입니다. 총장님?"

바빠서 그런가? 응답이 없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끄고 관리자들을 보았다.

"지금 지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최대한 빠르게 신대륙으로 가는 거야."

"네!"

서둘러 흩어지는 관리자들을 보며, 나는 세 번째 엘릭서 뚜껑을 따서 들이켰다.

'무사해라, 연아.'

* * *

미국, 포틀랜드.

"저희는 지금 역사적인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미국 전역의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역사적인 순간.

마침내 미국의 간판 헌터, 공인 2급하인스가 11차례의 시도 끝에 세계 최초로 심판의 탑을 클리어해냈다.

세계 각국의 언론과 네티즌들은 '상처뿐인 승리'라느니, '그들만의 정신승리'라느니 조롱을 보냈지만, 미국 정부와 하인스는 일단 탑을 클리어해 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최소한의 위신은 선 셈이다.

"탑이 사라진다!"

9층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니 심판의 탑은 조각조각 갈라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갈라지는 탑을 배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등진 채 마력 헬기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하인스다! 하인스가 온다!"

한 남자가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쿠웅!

바닥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며 지상으로 내려온 그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피범벅에, 피로에 찌든 얼굴이지만 입꼬리만큼은 올라가 있었다.

그의 등장에 환호성이 폭발했다.

"하인스! 하인스! 하인스!"

하인스는 씩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미국의 기자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하인스 헌터!"

"세계 최초로 심판의 탑 공략을 성공시켰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인스는 기자가 건넨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예, 흠흠. 심판의 탑 공략은 저 혼자 해낸 일이 아닙니다. 저를 믿어주신 국방부, 언제나 응원해 주신국민 여러분, 그리고…… 수 많은 사선을 넘어 끝까지 따라와 준 동료들 덕분입니다."

하인스는 거기까지 인터뷰를 하고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러곤 촉촉해진 눈으로 고개를 돌리며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였다. 곳곳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렀다.

한 여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말했다.

"포틀랜드에 대해서 각별한 감정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예. 포틀랜드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입니다. 이곳에 탑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장관님을 찾아 뵙고 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포틀랜드를 지킬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단언컨대, 이제 포틀랜드는 안전할 겁니다."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인 1급 하인스!"

유난히 크게 들리는 어떤 외침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인스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입가에 걸린 흐뭇한 미소는 감추지 못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심판의 탑 공략 기록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앞으로 전설로 남아 마땅할 기록입니다! 혹시 하인스 헌터도 공인 1급승급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하하하하! 곤란하네요."

그렇게 하인스와의 인터뷰에 집중하는 기자들도 있는가 하면, 경쟁에서 뒤로 밀려난 몇몇 기자들은 하인스가 아닌 하늘을 촬영하고 있었다.

[8, 101, 354, 871 : 7, 000, 000, 000]

[00: 00: 30]

이제 카운트다운이 30초 남았다.

"저는 1급 승급을 위해 심판의 탑을 공략한 게 아닙니다.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열심히 하면, 결과는 따라와 준다고 생각합니다."

[00: 00: 20]

"심판의 탑 공략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인스가 진지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평등하고 소중합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계 전체를 구하기 위한 연맹의 공략대가 더 명예롭다는 것 정도는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틀랜드를 버리는 게 정녕 옳은 선택입니까? 헌터는 사람을 구하는 직업입니다. 저는 이 도시의 지하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무시할 순 없었습니다."

[00:00:10]

그때 마이크를 들고 있던 한 기자가 인상을 굳혔다.

"목숨이 누구나 소중하다면 무리한 탑 공략에 무리하게 희생된 헌터들은…"

"대단합니다! 하인스 헌터! 역시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헌터답습니다!"

기자의 항의는 가볍게 묻혔다. 하인스가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저는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포틀랜드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선 몇백 번이건 탑을 올라갈……!"

쿠우우우우우우웅!

"우와아아악!"

"뭐, 뭐야?"

땅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며 사람들이 넘어지고 촬영장비들이 떨어져 깨졌다. 불어닥치는 후폭풍에 차가 뒤집히기도 했다.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기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저, 저건!"

어느새 포틀랜드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은 회색 탑이 보였다.

"……설마 또 떨어진 거야?"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심판의 탑이었다.

기자들의 시선은 자연히 하인스에게로 향했다.

하인스는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하인스 헌터……"

여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쪽 탑도 고, 공략해 주실 건가요?"

"……."

그 말에 하인스가 여기자를 바라보았다.

눈빛만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걸까. 여기자는 공포에 질려 입술을 달달 떨었다.

하인스의 고개가 움직였다. 어느새 기자들이 숨죽이며 하인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카메라들도 뒤늦게 의식했다.

"아, 음. 예, 예! 당연히 공략해야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포틀랜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쿠우우우우우우웅!

이번에는 강에 심판의 탑이 떨어졌다. 강이 범람하며 도로를 뒤엎었고 빌딩 꼭대기까지 비를 뿌렸다.

"……."

"……."

하인스는 나라 잃은 사람처럼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카운트다운이 0이 된 순간, 지상엔 지옥이 펼쳐졌다.

이 기간 동안 심판의 탑이 내려오는 속도가 수 배로 훌쩍 뛰었다.

기존의 120개에서 현재 내려온 탑의 추정 숫자만 500개가 넘었다.

한국 또한 탑의 수가 주요 광역시를 포함한 7개로 늘었다. 헌터들이 커버할 지점이 확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판의 탑 1층의 입구로만 흘러나오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탑 전 층이 개방되어 버리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몬스터들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는 7~8랭크의 고랭크 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어 병력이 뚫리고, 지상은 쑥대밭이 되었다.

이에 탑 주위를 방어하는 인류의 지침도 바뀌었다.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통과시키지 않는 지침에서, 비행형 몬스터나 7랭크의 이상의 고랭크 몬스터들은 그냥 내보내는 것으로 전면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부 다 막는 건 능력 외의 일이었다. 수가 많은 저랭크 몬스터들로 지상이 뒤덮이는 것을 막는 게 헌터들이 할 수 있는 한계였다.

헌터 전력을 제외한 인류는 전부 지하에 있다.

인류의 방어선에서 빠져나간 고랭크 몬스터들은 집요하게 지하 벙커의 위치를 찾아 내 공격했고 막대한 피해자가 속출했다. 몬스터가 벙커를 찾아 내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더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연맹에서는 각국에 비공식 지침을 내렸다.

포기할 곳은 포기할 것.

영토가 넓은 러시아, 캐나다, 중국같은 나라들은 빠르게 주요 도시만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캐나다의 북서부는 괴물들뿐인 몬스터랜드가 됐다.

곧 지구 전역이 몬스터랜드화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피소와 벙커에 숨어 있는 시민들은 지독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하늘에 떠 있는 80억이었던 인구수의 앞자리가 7로 바뀌었다.

[7, 605, 845, 850 > 7, 000, 000, 000]

5억의 사상자가 발생하는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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