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324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특유의 공간이 갈라지는 효과는 총통밖에 쓰지 못한다.
이내 쩍 벌어진 공간에서 거대한 검은 용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의 주위에도 공간이 수십 갈래 찢어지더니 비행형 몬스터에 올라탄 마인들이 튀어나온다.
어중이떠중이 마인들이 아니다. 총통이 직접 이끄는 강자들. 하나같이 미리 몬스터로 변한 모습이다.
[의외로군.]
총통의 주홍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공략대를 해체하길래 무슨 속셈인가 싶었는데, 마탑의 단독돌파라. 전세계가 뭉쳐도 모자랄 판에 너희들만으로 뚫겠단 거냐?]
"우리만으로도 차고 넘치지."
총통이 비웃음 띤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머리는 파충류지만, 정말로 인간과 같은 세밀한 표정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저 건방진 놈의 머리를 가져와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인들이 앞다투어 날아왔다.
포탑과 마법사들의 공격을 이중, 삼중 가속으로 돌파한 마인들이 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후우웅!
그때 내 주위로 녹색의 돌풍이 퍼져 나간다. 선두의 마인이 돌풍에 휘말리며 멈추고, 번뜩이는 섬광이 그의 목을 가르고 지나간다.
"하아."
이카루스를 펼친 하예린이 무섭도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공성 팀 전원, 마탑주님을 지키세요!"
"예!"
이제는 명실상부 마탑의 최정예, 이카루스를 단 마법사 부대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놈을 죽여!]
총통의 주위로 끊임없이 공간이 갈라지며 비행형 몬스터에 탄 마인들이 나타났다.
나는 이어마이크로 신호를 보냈다.
저쪽에서도 계속 병력을 충원하니,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사미아."
-시작하겠다. 김유신 헌터.
우우우우웅!
이번에는 천공성의 하늘에서 생동감 넘치는 푸른 구멍들이 숭숭 뚫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인간의 얼굴과 기계의 신체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로, 로봇?"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진보라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선배님, 저거 아직 개발 중인 거 아니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완성됐어. 소개할게."
내가 공격 명령을 내리며 말했다.
"지구 1세대 안드로이드 '아담'이야."
안드로이드들이 지팡이형 디바이스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청색의 레이저를 연상케 하는 입자가속포가 연발로 쏟아졌다.
빛이 한번 번쩍이니 수백의 몬스터가 그대로 일격에 증발했다. 고랭크 몬스터들의 장갑도 녹이는 압도적인 화력.
총통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구닥다리 로봇에 밀리지 마라!]
수백의 마인들이 우르르 아담들을 향해 몰려갔다.
그러나 몰려가는 족족 빗발치는 섬광에 구멍이 뚫린 채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예상외의 화력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만족스러운 데뷔전이다.
'알베르 그 새낀 이런 걸 숨겨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알베르는 미친 놈이었다. 이브의 정책에 심취해서 인구수를 줄이는 것으로 재앙의 위협을 낮추려고 했다.
자칫 인간들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대책도 없이 인간들을 죽이고 보자는 행위는 마인에 가까운 광기였다. 하지만.
그의 악행과는 별개로, 그가 아주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헌터들을 대체 하기 위해 천공성에서 몰래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있었다.
나는 알베르가 완성 직전까지 개발한 안드로이드들을 천공성 지하에서 고스란히 손에 넣었고, 3층 골렘공방과 7층 마도공학을 이용한 기술을 더해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냈다.
-탑주. 모든 아담에 마력 확산망 연동을 완료했습니다.
'부탁해 에아.'
아담들은 몬스터들의 투사체를 고속 비행으로 따돌리며, 입자가속포를 딜레이 없이 날려 댔다. 뒤쫓는 마인들의 몸이 퍽퍽 꿰뚫린다.
[저딴 고철에게 왜 농락당하고 있나! 떨어뜨려!]
마인과 몬스터들이 물량으로 밀어붙이며 거리를 좁혀가는 그때, 한 무리의 헌터들이 사선으로 비행하며 지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방향으로 몬스터들의 몸이 주욱 갈라졌다.
"안드로이드들을 사수하세요!"
"예!"
하예린이 천공성 헌터들을 이끌고 다니며 전장을 종횡무진 휘저었고, 아담들은 오버 테크놀로지의 화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김유신 헌터. 다음 워프가 준비됐다.
'네, 허가합니다. 출격시키세요.'
이번에는 허공에 운동장만 한 크기의 워프게이트가 펼쳐지더니, 그안에서 하늘을 나는 함선이 통째로 솟아 나왔다.
천공성의 크기에 밀리지 않는 크기의 공중 전함 '헬리오스'.
마나 엔진으로 뜨는 전함은 이미 미국에서 개발한 기술이었지만, 데릭 로스바쉬의 합류를 통해 마탑 버전으로 새롭게 개조했다.
-헬리오스 포격 개시.
함선의 몸체와 날개 곳곳에서 철컥거리며 포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미사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포탑 재장전 완료.
-사격 개시.
재장전을 마친 은솔의 포탑 골렘들도 다시 화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 버텨주고 있던 마법사들은 마나 엘릭서를 마시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사방이 폭발과 연기, 그리고 튀어오르는 몬스터의 살점으로 어지럽다. 천공성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고 몬스터와 마인의 수는 실시간으로 줄어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하지만 그 시스템도 막지 못하는 인외의 힘. 공간을 찢고 거대한 검은용의 팔이 천공성으로 내려온다.
-헬리오스 고속 발진!
전함이 몸체에 역장 방어막을 두른 채, 그대로 총통의 팔을 들이받는다.
동시에 천공성이 기울어지며 아래쪽에서 포대가 나타난다.
하예린이 검지 손가락을 총통에게 겨누었고, 나 또한 마탑 디스트로이어의 사격 위치를 설정했다.
"발사."
"발사."
도시 정도는 초 단위 만에 초토화시키는 두 줄기의 화력이 총통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검은 용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공간 속으로 도망쳤다.
"다들 조심해요."
내가 이어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다시 올 겁니다."
정답이었다.
하늘이 찢어지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천공성을 내려다보는 용이 아가리를 벌렸다.
응집된 암흑 마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에아!"
-헬리오스 역장 최대치 발동!
전함은 두터운 역장을 두른 채 브레스가 떨어지는 지점으로 기동해 온몸으로 화력을 막아냈다.
역장이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하며 전함의 상부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잠깐 시간을 버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사이에 나는 등에 메고 있는 스펙터의 손잡이를 붙잡고 전이시켰다.
[……!]
스펙터의 전이 위치는 총통의 목덜미 뒤, 총통의 눈동자가 돌아가며 빠르게 반응했지만 이미 늦었다.
혼돈을 사용해 이계를 창조하는 8공정 마법.
<이계 창조>
화아아아아아아악!
스펙터로부터 형성된 검은 구체가 풍선처럼 부풀며 그 거대한 총통의 몸을 집어삼켰다.
나 또한 데바스타를 밟고 도약해 윙골렘을 최대속도로 높여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세계의 확장을 멈추게 했다.
[…….]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
나와 총통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검은 용. 전신이 온전히 드러난 그의 몸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날 '구덩이'에서 끌어내다니. 이공간은 대체 무엇이냐?]
"마법."
내 몸에서 깃털들이 날아가 무수한 버프 마법진들을 형성했다. 그 모습을 보는 총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날 끄집어낸 건 좋지만, 자신 있나?]
그의 몸에 새까만 마력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불과 6개월 전에 바닥을 굴러다니던 자네의 모습이 기억나는군.]
"지랄 똥을 싸세요."
내가 팔을 빙빙 돌렸다.
"그땐 서울이었고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당해주는 척하면서 시간을 번 거야. 여긴 네가 인질로 삼을 사람도, 서울 타워 같은 구조물도 없어."
[오만.]
총통이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가리에 검은 마력이 무서운 기세로 모여들었다.
[인류가 사라져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오른팔을 당겼다. 내 손아귀의 마력이 일 점으로 모이고 있다.
7공정의 둠스데이 (Doomsday).
"오만인지 아닌지는 네 눈으로 확인해 봐."
두 섬광이 서로 격돌했다.
* * *
-전방의 적 격추!
-7시 방향 지원해 주십시오!
전투는 계속 되고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무수한 포격들이 터뜨렸다. 서포터로 돌아온 진보라는 공중에서 싸우는 헌터들에게 포션을 날려 지원해 주고 있었다.
"우와악! 비켜요 비켜!"
그녀가 고개를 들자 날개가 찢어진 하예린이 허우적거리며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진보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자리로 하예린이 떨어져 바닥을 몇 번이고 굴렀다.
"예린아! 괜찮아?"
진보라가 물었다. 하예린은 벌떡상체를 일으키고는 헤헤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끄흑, 비행은 여전히 어렵네요."
"상처 좀 볼게."
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하예린의 상처를 살폈다.
슈트가 찢어진 곳곳에 붉게 피가 난 상처들이 보였지만, 다행히 상태가 심하지는 않았다.
엘릭서를 개봉해서 상처 난 부위에 붓자 하예린이 호들갑을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진보라가 찰싹 허벅지를 때렸다.
"가만히 좀 있어."
"아, 아파요 언니……"
칭얼거리는 하예린을 보며 진보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린아."
"네."
"천공성주가 비행을 잘못하는 건 어떤 코미디니?"
하예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그건……"
"그리고 왜 넌 옷을 입었다 하면 다 찢어지는 거야?"
"아아앗!"
그녀가 얼른 두 팔로 몸을 가렸다.
"이 옷이 불량 아니에요?"
"스포츠카 몇 대 값이야 그거."
하예린의 상처를 모두 치료한 진보라는 부하에게 말해서 새로운 슈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 선배님은 무사할지 모르겠다."
진보라가 하늘에 떠 있는 검은 공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연히 무사하시겠죠! 아저씨는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헌터인데요!"
진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흘렸다.
"난 그 사람 학생시절부터 쭉 봐왔거든? 선배님이 고라니랑 싸운다고 해도 걱정부터 돼."
"……네, 네? 왜요?"
"누구랑 싸우든 간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타입이거든."
그때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팔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검은 공간에서 뭔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 그것은 목이 사라진 커다란 검은 용의 몸뚱이였다. 바닷속에 떨어지자 산더미 같은 물보라가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그녀들의 귓가로 윙골렘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쿠우웅!
"꺄아악?"
하예린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어느새 바위 더미만한 용의 머리가 그녀의 옆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총통의 뿔을 붙잡고 내려온 유신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에스터 모드가 풀리며 청의가 허공에 녹아 들어가듯 사라졌다.
"아, 아저씨?"
토끼 눈이 된 하예린을 보며, 유신이 씩 웃었다.
"빡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