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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23화 (323/337)

나 혼자만 마탑주 323화

"……선배님, 너무 세게 나가신 거 아니에요?"

진보라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동안 내가 받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지."

"무서워요. 막 FBI 같은 사람들이 와서 해코지하는 거 아녜요?"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그리고 원래 이런 일은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면 못 해."

"하지만 탑주."

허공에서 에아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미국에서 저렇게 낮은 자세로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도 맞습니다. 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언론플레이로 시간을 벌자."

다행히 정서진은 알케미아를 운영하면서 세계 언론 쪽은 꽉 잡아놨다.

나는 바로 지침을 설명했다.

"7함대, 3함대 파괴 건을 대대적으로 알려서 공략대 해산의 당위성을 강화해.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불안에 떨면 안 되니까 2차 공략대가 창설될 거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어그로는 지금처럼 미국이랑 중국에 집중. 특히 하인스의 실패를 꾸준히 언급해 줄 기사들이 필요해."

에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서기관에게 지침을 전하겠습니다."

* * *

[8, 118, 500, 167 : 7, 000, 000, 00이

[09:35:27]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정서진의 말대로 80억이란 숫자가 정말로 인구수를 나타내는 거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거였다.

이런 상황이라서 미국과 중국의 탓을 하기 이전에, 결론적으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공략대를 해체한 나와 연맹에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나도 인명을 제물 삼아서 정지칠 같은 걸 할 생각은 없다.

플랜 A였던 공략대를 해체한 이유, 그건 바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플랜B 쪽이 훨씬 더 승산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플랜B를 실행한다.

바로 마탑의 단독 태평양 돌파다.

"자, 움직여! 움직여!"

"포탑 라인 일렬로 맞추고!"

우리는 지금 부산항 상공의 천공성에 올라타 있다.

천공성도 그간 많은 개조를 통해 성의 모습을 되찾았다. 물론 그냥 성이 아니라 수 많은 장비들을 탑재한 첨단 전쟁 요새다.

-이제 곧 출발하시겠네요.

휴대전화에서 홍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준비 마치는 대로 출발할 것 같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태평양의 몬스터가 그렇게 많다는데…… 7함대는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무너졌다면서요.

"그쪽이랑 우리랑 비교하면 섭하지. 전력이 달라."

이번 출정은 마탑의 최정예가 전부 나선다. 그동안 준비도 많이 했고 자신 있다.

"그보다 난 한국이 더 걱정인데."

-네?

"저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아마, 훨씬 힘든 상황이 올 거야."

나는 마키나티오에 떨어진 심판의 탑을 직접 봤다. 그에 비해, 지금 지구의 심판의 탑 난이도는 터무니없이 낮은 편이다.

네메시스가 이렇게 조용히 있을 리 없다. 틀림없이 뭔가를 더 준비하고 있으리라.

-이덕배 대통령만 조용히 있어준다면 훨씬 순조로울 텐데요.

"그 양반 요즘 잠잠하더니 또 기어나온 거야?"

-네, 공략대를 해체하고 미국처럼 자국민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어요. 시민들도 적지 않게 동조하고 있고요.

……그 사람도 참 대단하긴 하다.

"아저씨이!"

그때 하예린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슬슬 준비해야겠네. 신대륙에서 보자 연아."

-네, 부디 몸조심하세요 선배.

그렇게 말한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나도 웃으며 똑같이 대답했다.

통화를 마치자 하예린이 다가와서 방긋 웃었다.

"드디어 함께 싸우게 됐네요!"

"그래, 준비 많이 했어?"

"네!"

그녀가 입은 순백의 슈트, 저번에 비해 훨씬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이제야 좀 천공성주 같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따라온 헌터들에게도 미소 지어 보였다.

"천공성 여러분들에게도 기대가 큽니다."

"가, 감사합니다!"

하예린이 뽑은 천공성 마법사들.

전부 그녀의 오리지널 마법인 '윈드차크람'의 상용화 버전을 익혔다.

그 숫자는 50명 정도. 고속 비행과 마법의 병행이 가능한 현재 마탑의 최정예 병력이었다.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사미아의 부하들인 5층 마법사들이 주위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기 가봐요!"

하예린이 구경하자고 졸라대서 같이 가까이 가보았다.

바닥에 깔린 마법진이 번쩍이더니 그 위로 광채가 일렁이며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왔다!"

하예린이 눈을 반짝였다.

일렁이는 광채 뒤로, 천공성의 공터에 마탑이 통째로 전이되었다. 나는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비행 상태 보고하세요."

-출력 강화. 비행 모드 유지 중!

-안전 비행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천공성의 부양 시스템을 최신형으로 교체했다. 이제 마탑의 무게까지 견디면서 비행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태평양을 건널 것이다.

"대표님!"

김사랑 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다.

"아, 사랑씨. 무슨 일 있어요?"

"이번 전투에 지원자가 한 명 있어서 소개해 드릴까 해서요!"

"지원자?"

김사랑 이 옆으로 슥 물러나자 뒤에서 있던 차도연이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도연 씨! 아니, 차 장관님. 여긴 왜……"

"평소 부르시던 대로 부르셔도 괜찮아요. 마탑에서 나간 주제에 좀 그렇지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왔어요."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당연히 큰 힘이 되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사랑이 머리 위에 올려둔 선글라스를 내려쓰고는 후후 웃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마탑에 돌아오면 좋을 텐데."

"야! 자꾸 옆에서 빈정거릴래? 마법부장관으로서 마탑을 감시하러온 거라니까!"

"아, 네. 네. 그러시겠죠."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는 그때.

우웅!

주머니에서 진동 벨 소리가 들린다.

[발신자 표시 제한]

'……누구지?'

연맹 쪽이라면 휴대전화가 아니라 이어마이크로 연락했을 것이다. 의아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네, 김유신입니다."

그리고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들린건, 전혀 생각지 못한 목소리였다.

* * *

드디어 출항했다.

드넓은 바다 위, 마탑과 천공성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제 일본을 지나 태평양 초입부.

좌우사방 어딜 봐도 바다뿐이다. 파도가 넘실거리고 거센 해풍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다.

이번 항해의 가장 큰 목적은 역시나 신대륙 진입이다. 공략대는 해체됐지만 우리는 세계길드 자격으로 신대륙에 진출한다.

천공성을 타고 가면 좋은 게, 바글거리는 수중 몬스터들은 대부분 스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데바의 눈으로 바다 표면을 보면 검은 것들이 우글거리며 따라오는 게 보이는데, 격추당하지 않는 이상저 숫자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비행형 몬스터들뿐, 아직 초입부라 그리 많지는 않다.

-12시 방향, 스톤 가고일 5기 발견!

-포착 완료. 전위 포대 20문 사격개시.

천공성 곳곳에서 포대들이 튀어나와 불을 뿜자, 5기의 가고일들은 눈 깜짝할 새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내가 무장요새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으, 화력 좋다.'

주력은 천공성 곳곳에 잔뜩 배치된 '포탑 골렘'들이다.

외형은 마치 기계 거북처럼 생겼는데, 등껍질 대신 포탑을 얹었다.

스스로 움직여서 조준 사격을 하기도 하고, 천공성벽면에 찰싹 붙어 있거나 취약한 아래에 고정되어 올라오는 적들로부터 천공성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군요.

에아가 말을 걸어왔다.

-태평양에 들어왔는데 너무 적이 적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7함대는 태평양에 들어오기도 전에 깨졌다.

그런데 우리는 4시간째 공격다운 공격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 그 사실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만약 네메시스와 총통이 병력을 모으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한바탕 큰 전투를 벌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부산에서 출발해 비행 4시간째.

나는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입니다! 전방에 1, 000기가 족히 넘는 비행형 몬스터들이 접근중!

연맹 본부의 지휘통제실에서 봤던 바로 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 먼지처럼 포진되어 있는 무수한 몬스터들.

하피, 가고일, 와이번 타입의 일반적인 공중형 몬스터들부터 시작해서 '하늘 포식자' 같은 네임드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저 커다란 가오리 같은 몬스터, 7랭크의 '스팅레이'들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한 번에 돌파할 겁니다. 전 화력 준비하십시오."

각양각색의 포탑들이 포문을 세우고, 부스터를 단 아이언 골렘들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동안 힘 한번 쓸 일 없던 전투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캬아아악!

-끼이이이이이!

천 기가 넘는 비행형 몬스터들이 입안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며 천공성으로 다가온다.

-적 사정거리 내 접근!

-사격 개시!

수천 문의 포문이 동시에 불을 뿜는다. 마공학 기술로 마나가 부여된 코팅탄은 푸른빛을 일으키며 날아가 몬스터들의 피부에 박히고 폭발한다.

단순 화력으로 피해를 입히기 힘든 장갑형 몬스터들까지 너끈히 잡을 수 있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2차, 3차 타격까지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탄 발사!

철컥 철컥!

천공성 천장에서 번쩍번쩍하며 미사일들이 솟구친다. 몬스터들은 피할 여지도 없이 꿰뚫리거나, 높은 상공에서 떨어지는 미사일의 폭발에 휘말린다.

"에아. 저기 몬스터 밀집 구역 좀 날려 줄 수 있어?"

-탑주의 명을 따릅니다.

<디스트로이어>

마탑 자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공격마법.

거대한 파괴의 빛이 뻗어 나가더니 하늘을 수직으로 가른다. 그 범위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오오오오!"

곳곳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잠시 긴장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간의 기술이 만들어낸 화력의 대잔치. 허공이 빽빽하고 눈이 다 아플 정도로, 각양각색의 화력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십만 탄 소모했습니다.

-빔세이버 재충전 필요.

-몬스터들이 계속 밀려옵니다!

몬스터들은 물량으로 찍어누르려는 듯 포탑들의 화력을 피해 천공성으로 접근해 왔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마법사들의 차례다.

<파이어 캐논>×500

<아이스 자벨린>×200

<라이트닝 글레이브>×1, 200

이번엔 수천 명의 마법사들의 일으키는 속성 마법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기껏 화력을 피해 천공성까지 넘어온 몬스터들은 거센 저항에 직면하며 몸이 불태워지고, 얼어붙는다.

그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활약은 관리자들이었다.

50기가 넘는 아이언 골렘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은솔, 폭발 포션으로 피하지 못하는 화망을 형성하는 진보라, 윙골렘을 타고 올라가 유유히 네임드 몬스터들만 암살하는 정서진까지.

-후방 8시 방향에 하피 30기가 옵니다!

-우리가 갈게요.

거기에 김사랑, 조용희, 차도연으로 이어지는 마도사급들의 화력도 눈이 부셨다.

<오케아노스>

펼쳐진 파도 위로 물의 정령들이 일어나 사방으로 물줄기를 쏘아댔고.

<요르문간드>

독으로 형상화된 뱀이 하늘을 비행하며 수백 기의 몬스터들을 산 채로 녹였으며.

<발드르>

소름 끼치는 빛의 띠가 반경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광경이다.

지금 이 인류의 힘이, 그리고 마법사들의 전력이, 나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게 느껴진다.

당시엔 불안했지만 역시 마법을 알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탑주! 전방에 특수한 마력현상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뭔데?'

-6개월 전 총통이 등장할 때와 같은 효과입니다.

드디어 최대 사냥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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