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322화 (322/337)

나 혼자만 마탑주 322화

"초, 총통이라고요?"

필이 당황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마인들의 지도자가 저긴 왜……?"

"글쎄요. 마인들은 내륙에서 인간들을 흔드는 역할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네메시스를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점점 더 대륙 진출이 힘들어진다. 나는 잠시 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어마이크를 켰다.

"사미아. 제가 알아보라고 한 건요?"

-김유신 헌터. 조사 결과 신대륙으로 워프는 불가능하다. 신대륙의 대기가 통신은 물론, 심각한 좌표 오류까지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대륙이 아니라 그냥 던전의 일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음, 그렇담 어쩔 수 없죠."

사실 워프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전 네메시스 기록에서도 워프마법을 통한 진입은 실패했다.

-계속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

"네, 부탁해요."

사미아와의 통화를 끝낸 나는 필을 보며 말했다.

"총통은 끝없이 우릴 괴롭히면서 각개격파를 노릴 겁니다. 조금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함대를 최소 3단위로 통일해야 해요. 이번 7함대로 건으로 명분도 충분히 강화됐을…"

"총장님! 큰일 났습니다!"

작전 장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일본에 정박한 3함대가 네메시스측 마인들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뭐라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갈게요."

필이 고개를 홱 돌려 내 손을 꽉 붙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총사령관!"

* * *

일본 고베항.

내가 마법사들을 데리고 일본에 나타났을 때는 한참 전투 중이었다.

불붙은 함선들이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고, 몇몇 함선들은 아예 통째로 뒤집혀서 가라앉는 중이었다. 바다에 빠진 선원들이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한발 늦었구나, 마탑주!]

허공에 머리와 팔만 내밀고 있는 검은 용이 나를 발견하곤 웃었다.

[나중에 또 보자꾸나.]

뭘 해볼 여지도 없이, 총통은 밖으로 빼둔 팔과 머리를 회수하며 허공속으로 사라졌다.

'보자마자 튀네. 새끼가.'

나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이어마이크를 붙잡았다.

"여러분은 일본군을 도와 잔당들을 처치하고 구조 활동에 전념하세요."

"예!"

김사랑과 조용희가 이끄는 마법사부대가 마인들과 교전을 시작했다.

일본 측도 전력이 약한 편은 아니라 반격으로 돌아섰고, 전황은 점점 안정화되고 있었다.

"충성!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총사령관님!"

제복 차림의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와 경례를 해왔다.

"일본군 부사령관 마츠모토 슌스케라고 합니다."

"연맹 총사령관 김유신입니다. 피해 상황은요?"

"집계된 것만 20척이 넘는 군함이 가라앉았습니다."

그가 소매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면목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당할 줄은……"

"저도 당혹스러운데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일본 헌터계는 공인 1급 같은 최상위권을 제외한다면, 한국과 전력이 비슷하거나 뎁스는 더 깊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렇게까지 탈탈 털린 건 좀 이상하다.

"내부에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헌터들이 사실은 마인이었고, 놈들이 함선 내의 무기고를 터뜨리는 바람에……."

"아하."

알 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공인 3급 이상의 헌터들이 탑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전력이 많이 빠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마츠모토와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어긋났네.'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했다.

연맹과 강대국 간의 알력다툼 때문에 상황은 계속 꼬이고 있고, 세계에 부는 국가주의 바람 때문에 병력을 한곳에 집결시키는 것도 실패했다.

제대로 구성된 쪽은 기껏해야 연맹과 유럽 연합군이 집결한 1함대뿐.

나머지는 지금처럼 총통에게 각개격파당하기 딱 좋다.

연맹이 구사할 수 있는 강제적 수단이 사라진 상황에서, 감정적 호소만으로 인류의 힘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인다.

특히 최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빠진 공략대에 누가 많은 병력을 쏟으려 할까?

더 이상의 피해가 있어선 안 된다.

플랜 A는 폐기다.

나는 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장님, 김유신입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공략대 함대를 해체하겠습니다."

-……예?

"자국으로 돌려보내 심판의 탑 방어에 집중시키세요. 물론 탑의 직접 공략은 엄금합니다. 2차 공략대가 결성될 시일은 제가 다시 통보하겠습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들 말로 해서 들어 처먹을 놈들도 아니고, 지금 니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확실히 알려줘야겠다.

* * *

필이 공략대 철수를 승낙하도록 설득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 결정은 납득할수 없습니다! 공략대를 철수시키면 누가 네메시스를 잡아서 이 재앙을 끝냅니까?

필이 워낙에 극구 반대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내 계획의 일부를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내막을 알게 된 그는 오랜 고민끝에 승낙했고, 협회장 회의를 소집했다.

각국 협회장들의 의견은 반반이었다.

"제정신이야? 이제 와서 돌아가라고?"

"2차 공략대는 또 언제 만들 건데?"

"지금 흩어지면 나중에 모일 때의 병력은 지금보다 더 적을 겁니다! 죽든 살든 당장 승부를 내야 합니다!"

찬성 쪽 의견은 필과 같은 원론파.

"거 총사령관이 현명하네. 우리 숨 좀 고르고 옵시다."

"전력의 절반인 미국과 중국이 빠졌는데 우리끼리 신대륙에 가서 뭘해요?"

"이대론 총통에게 각개격파 당할 뿐이라고."

반대쪽 의견은 몬스터와 마인들의 공세가 생각보다 너무 거세다고 봤고, 미국과 중국의 협력 없이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자국 영토를 안정화시킨 다음 재도전하자는 의견이었다.

물론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사람들은 네메시스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 연맹의 병력을 다 꼬라박아서 운 좋게 네메시스를 잡는다고 해도, 전력을 아낀 미국과 중국의 강압적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선 몬스터보다 더 골치 아픈 적이 나타나는 셈이다.

그렇게 투표가 진행되었고, 아슬아슬하게 두 표 차이로 퇴각이 받아들여졌다.

공략대 해체 사실이 발표되자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하 대피소에서 인류의 승리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자국의 방비가 튼튼하면 뭘 하는가. 공략대가 사라지면 전쟁에서 이기지를 못한다. 지하에 갇힌 채 1년이고 10년이고 버티다가 언젠간 굶어 죽을 것이다.

[세계 연맹, '공략대' 철수 선언 초강수!]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공략대의 철수 배경은?]

[비난의 화살은 왜 미국과 중국으로 향하는가?]

[인류에 이제 희망은 없나? 탑을 막아내도 네메시스를 잡지 못하면 끝.]

[美 국방부, 강한 우려와 실망감. "공략대는 유지되어야 한다."]

이 소식에 비참여국의 대표인 미국과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공략대가 네메시스를 잡아주면 이득이었고, 그게 아니라도 연맹이 바짝 엎드려 자신들에게 원군을 부탁한다면 막대한 자원을 뜯어내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며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만 병력을 파견할수 있었다.

그런데 아예 공략대가 와해됐고, 비난의 화살은 공략대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 특히 스타트를 끊은 미국에게 집중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의 미국정부는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던 자국민들에게도 욕을 얻어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간판 헌터 하인스, 8층의 벽에서 좌절.]

[하인스 인터뷰 거부. 협회에 6차 병력 충원 요청.]

[포틀랜드 탑 공략 예상 손해액 30조 원 돌파.]

[심판의 탑, 뉴욕 브루클린에도 떨어져. 포틀랜드 탑 공략 필요성 저하.]

하인스가 푸짐하게 똥을 싸고 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지원해줬으면 클리어할 만도 한데,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계속 실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 목숨은 잘도 건사한다. 미국 네티즌들은 이제 하인스가 마인이라는 소리까지 하고 있다.

"서, 선배님."

마탑에 돌아와 있던 진보라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누군데?"

아예 휴대전화를 꺼놨더니, 진보라에게 연락한 모양이다. 그녀가 달달떨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국 국방장관이래요."

"? 줘봐."

헌터 협회 제도를 없앤 미국은 국방장관이 기존 군에 헌터들까지 지휘하는 최고 직위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말했다.

"김유신 입니다."

-딕 그린 미합중국 국방장관이오.

중후한 목소리였지만, 말하는 템포는 무척이나 빨랐다.

-초면에 다짜고짜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 묻겠소. 지금 제정신이오?

이거 또 웃음만 나오네.

"뭘요?"

-공략대를 해산시키다니! 지금 다같이 죽자는 거요 뭐요?

"제가 왜 미국에 그런 소릴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끊겠습니다."

-아니, 잠깐!

딕 그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실렸다.

-이런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전권을 주다니 연맹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이보시오 마탑주! 바레인테러 건도 그렇고 국제사회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오? 공략대를 해산하겠다면 당연히 비참가국에게도 소식을 알리고 의견을 조율해야지! 다짜고짜 이렇게 해산을 해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소!

미국은 처음 공략대 해산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 지침이 블러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협상 테이블에 끌고 오려는 한 수라고 여긴 것 같다.

하지만 나를 너무 얕봤다. 연맹의 함대들은 보란 듯이 뱃머리를 돌려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고, 미국은 급해졌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장관님."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공략대를 해산한 이유는 현 전력만으로 태평양을 뚫고 신대륙에 진입하는 것. 그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탑주! 아니, 김유신 헌터! 내가 개인 전화로 연락한 이유가 뭐겠소? 그런 입에 발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오.

그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얼마나 보내면 공략대 해산을 무르겠소?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걸려들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확인했다.

"두 번 같은 말씀 드리기 싫네요."

-이봐! 당신은 이번 재앙 총사령관이야! 정녕 인류의 안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거요? 이쪽에서 대화를 먼저 제안하는데 그걸 걷어차겠다고? 직무유기나 다름없소!

"그쪽이 책임감 운운하니 우스운데요."

-……크흠!

딕 그린이 헛기침을 하더니 서둘러 말했다.

-그건 단순히 우리와 연맹이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을 뿐이오. 우리의 제1 목표는 자국민 보호. 그다음이 재앙과의 전투요. 우리가 공략대에 병력을 보내지 않겠단 말이 아니었지 않소! 그리고 연맹은 우리 돈을 쓰기만 할 뿐이지만, 우리에게 돈을 주는 건 자국민이오! 정부가 정부에 돈을 내는 국민들을 지키는 게 뭐가 잘못된 거요?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궤변만 늘어놓으시네."

내가 차갑게 대꾸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의를 갖춰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죠. 공략대는 해산합니다. 번복 없습니다. 그리고 공략대 해산은 참가 거부국과의 협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결정된 사안입니다."

-…….

"그쪽에서 성의를 보이고 싶다면 차후에 구성될 2차 공략대에 많은 병력을 준비해 놓으시면 됩니다. 덤으로 말하자면 심판의 탑 공략 같은 전력 낭비 그만하시고요. 끊겠습니다."

-자, 잠깐! 그럼 그 2차 공략대는 언제 출범하는 거요?

"때가 되면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다음 진보라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차단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