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316화
[연합 공략대의 총사령관은 대한민국의 공인 1급 김유신 헌터입니다!]
TV에서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
내 주위에서는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해요! 세계 총사령관이라니!"
"오빠야가 이제 지구 최고 짱인 거야?"
"당연히 마탑주님이 하셔야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필, 이렇게 나오는 거냐.'
전 세계가 동원되는 대규모 원정군에서 '총사령관'이란 자리는 사실상 최강의 헌터가 앉는 게 관례다.
전술 전략 파트는 주로 군사 전문가들이 맡으니, 총사령 헌터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유력한 후보로는, 홍율이 사라지고 잠정 세계최강의 헌터라고 불리는 '가브리엘'.
단신의 무력으로는 밀릴지 몰라도 수 많은 글로벌 길드들을 거느린 총수 '프란츠'.
그 외에도 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있는 파라오 한윤정이나, 최근 5년간가장 뜨거운 활약을 보여주며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젊은 헌터인 홍연도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인선이다.
그런데 이제 막 공인 1급이 된 풋내기를 총사령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는 지금 바레인 사건으로 논란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마법사들은 환호했지만, 회견장의 기자들은 명백히 당황한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곧바로 질문들이 쏟아졌다.
[테러리스트를 인류 최정상에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제 정세를 무시한 결정 아닙니까? 김유신을 증오하는 중동 국가들이 공략대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유신은 세계 총사령관이 아니라 공인 1급 자격조차 문제가 있어요!]
필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자격이요? 마탑주 김유신은 전 세계에 처음으로 마법을 공유한 당사자이자, 세계를 몇 번이고 구해낸 영웅입니다. 그의 실력이나 업적은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이 다른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이번 네메시스에 가장 적극적인 공인 1급이기도 합니다. 김유신이 짧은 시간 내에 이룩한 업적들을 보십시오.]
기자 한 명이 손을 들며 외쳤다.
[업적이요? 연맹 총수가 바레인 테러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테러가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 0명, 그리고 마인들이 가진 재산들을 수몰시켰습니다. 그 파생 효과로 수 많은 중동국가들이 마인으로부터 해방됐죠. 그가 아니었으면 6개월 뒤, 중동은 파멸하고 모든 전략 핵무기들이 세계 각국에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도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한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총구를 머리에 들이밀고 내 말 들으라는 강도와 다를 게 없지 않나요?]
[상대는 인류의 멸망을 노리는 최악의 범죄자입니다. 머리 위에 핵떨어지고도 강압적 수단 어쩌고 할 겁니까?]
필은 나를 총사령 자리에 앉힌 만큼, 비난 여론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나를 변호했다.
[번복은 없습니다. 연맹의 결정은 확고합니다. 연맹은 김유신이 이끄는 공략대가 세계를 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때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신나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축하해요! 스위스행 비행기 언제로 잡을까요?
나는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워프로 갈게요. 인터뷰 준비부탁드립니다."
-넵! 예상질문 리스트 빡빡하게 준비하겠습니다!
* * *
네메시스를 앞두고 바쁜 여정이 시작됐다. 스위스의 연맹 본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들이 쭉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워프를 열고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공략대 구성은 자율에 맡길 생각이 없습니다. 공인 3급 이상의 헌터라면 전원이 대상입니다."
"바레인 공략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명을 구하기 위해 마탑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잘 요리했다고는 생각하는데, 오랜만에 기자들을 상대하니 진이 빠졌다.
간결하게 회견을 마무리한 후 연맹본부의 회의실로 향했다.
다음 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공인 1급 회의.
"이쪽입니다."
나는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다소 어두운 조명에 다섯 명의 남녀가 호화스러운 좌석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기, 위압감, 초 능력 등이 휘몰아친다.
공인 1급 비공식 순위.
제1위, 가브리엘 가르시아 로드리게스.
제2위, 프란츠.
제5위, 왕야.
제8위, 세라프.
제9위, 파이어플라이.
10명 중에 나까지 합쳐서 6명 참여.
필은 이번 1급 회의의 참여도가 역대급이라고 했다. 제멋대로인 공인 1급들은 회의를 열어도 평균 두명 참여하는 게 보통이란다.
옛날이라면 쫄았겠지만 예전에 한 번 세계길드 회의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냥 저냥이었다.
"김유신입니다."
나는 성큼성큼 그들의 사이를 뚫고 들어가 중앙의 총사령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시간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공인 1급 여러분 전원 공략대 차출 대상입니다. 이번 네메시스 공략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방 안에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잠깐, 마탑주."
프란츠가 입을 열었다. 사자 머리를 연상케 하는 풍성한 갈색 머리숱의 서양인이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고 온 거야?"
"압니다."
나는 검지의 손톱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최상위 헌터들의 다과회 같은 거 아닙니까?"
프란츠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새끼가 눈에 뵈는 게 없……"
"그만."
프란츠를 자제시킨 금발 여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중력계 최강의 능력자 세라프.
"총사령관이라서 그런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건가요? 우리는 당신의 휘하가 아니고, 연맹이 준 감투엔 신경 쓰지 않아요. 당신은 우리에게 참전을 부탁해야 할 입장입니다."
"아, 그러네요."
나는 한 손으로 뒷머리를 받쳤다.
"그럼 까놓고 말해봐요. 뭘 원하십니까. 돈? 명예? 이권? 아니면 내가 뭐 댁들이 풍기는 살기에 쫄아서 굽신굽신 손바닥이라도 비비는 모습을 원합니까?"
"……당신!"
"흥미."
그때였다.
줄곧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명, 온몸이 난해하고 어지러운 문신들로 뒤덮여 있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현 최강의 헌터, 가브리엘 가르시아 로드리게스.
"나는 이 전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좋네요. 차라리 이쪽이 더 말이 통하네."
사람의 생에는 굴곡이 있고, 그 굴곡을 겪으면서 사상과 가치관에 주름살이 생겨난다.
사람이란 건 누구나, 어딘가가 베베 꼬여 있게 마련이다. 본성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지 사실 어떤 사람도, 무슨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공인 1급들은 꼬인 사람들의 최고봉이다.
솔직히 제정신으로 공인 1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천 수만 수억 마리의 몬스터를 살육하고, 동네 편의점 다녀오듯 이차원을 오가고,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어야 한다.
그런 업들을 지독하게 쌓아서 만들어진 괴물들이 바로 이 사람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짙은 굴곡을 겪었고, 그 상태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어딘가 미쳐 있는 사람들.
이 비틀어진 괴물들은 더 이상 돈이니 사랑이니 명예니 하는 것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브리엘이 말한 흥미.
혹은 움직여야 할 각자의 적당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들은 내게 흥미를 느꼈고, 그래서 응할 필요가 없는 내 소집령에 찾아왔다.
만약 여기서 이들이 내게 실망감을 느낀다면, 이들은 미련 없이 떠날것이다.
"그럼 몇 가지만 말씀드리죠."
내가 흠흠 목을 풀며 말했다.
"이번 재앙 네메시스가 여러분의 헌터 커리어 마지막입니다. 네메시스를 클리어하든 안 하든 이게 끝이란 소립니다. 그 뒤는 없습니다."
"……그건 어디서 들었지?"
"구체적인 사항은 극비라 말해드릴 수 없지만, 제가 오라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해두죠. 그러니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셔야죠? 가브리엘 "
내가 가브리엘을 보며 말을 이었다.
"죽을 곳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보기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군."
"네, 저는 여러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게 최후의 재앙이고, 지구가 살아남느냐마느냐 단 두 가지의 엔딩만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나는 깍지를 끼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께 참전을 애걸복걸부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맘에 안 드니까 공략대에 참전하지 않겠다. 아, 맘대로 하세요. 자살의 자유란 것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번 네메시스는 인류가 이길 확률보다 멸망할 확률이 더 높은 재앙이고, 여러분의 참석과는 별개로 인류의 공략대는 만들어질 수밖에 없단 사실입니다."
"자네야말로 뭔가 착각하고 있군."
가브리엘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느끼는 흥미는 재앙 쪽이 아니다."
"그러면요?"
"바로 자네."
그의 눈빛이 불이 붙은 듯 이글거렸다.
"나를 쓰고 싶다면 증명해라."
투지.
"거, 아저씨 오랜만에 맞는 소리하시네."
프란츠가 말했다.
"새파란 꼬맹이 상관 밑에서 굽신거리긴 싫거든? 네가 뭔데 우릴 제치고 올라가서 대장 노릇 하겠단 거야?"
질투.
"지구 멸망이니 뭐니 내 알 바 아니야."
흰 머리의 남자가 눈을 빛냈다.
"같이 놀자."
유희.
"역시 길게 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나는 싱긋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밖으로 나와요."
* * *
마인 소탕 파견 준비로 바쁘던 홍연은 미리 연맹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늦게 스위스 본부에 도착했다.
협회장이 된 이후로는 자주 들리는 연맹 본부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김유신이라는 이름도 종종 들린다.
이 사람이 또 뭔가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무총장 필에게 연락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이것 참……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감은 적중했다.
자존심 강한 기존의 공인 1급들은 총사령관 자리에 앉은 유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유신은 대뜸 그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유신은 필에게 이렇게만 말했다.
-1급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곤 총장님도 예상했잖아요? 제 나름의 설득 수단을 이행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홍연은 지독한 불안감을 느꼈다.
필에게 장소를 전해 듣자마자, 유신이 붙여준 워프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쪽으로 넘어갔다.
스프래틀리 군도의 어느 섬.
홍연은 워프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나무들이 뿌리뽑혀 바닥에 어지럽게 굴러다녔고, 하늘은 시커먼 연기가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이 폐허의 한가운데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쿠르르릉!
회색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주위가 환해졌다.
홍연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1위 가브리엘.
2위 프란츠.
5위 왕야.
바닥에 차곡차곡 포개어 엎어져 있는 1급 헌터들의 위로, 화려한 청의를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쿠르르르릉!
다시 한번 번개가 치며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입가에는 음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왔어? 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