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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12화 (312/337)

나 혼자만 마탑주 312화

마인 소심희.

나대용 사후부터 계속 의심하고 조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었으니까.

차도연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나대용은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다고 했다.

은솔은 나대용이 날 죽이려 한 광경을 봤다고 했고.

나대용은 은솔의 모함이라고 했다.

진술이 엇갈린다. 하지만 나대용은 미쳐 있었고, 미친 사람 취급당했다.

그의 모든 행동이 그저 '미쳤기 때문에'라는 말 한마디로 정당화되는 상황이었다.

-난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아른거렸다.

나는 나대용 또한 피해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물론 그렇다고 나대용이 저지른 악행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존재가 나대용의 정신 상태를 의도적으로 악화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했다.

그렇게 조사를 진행하던 도중, 나는 조용희의 진술을 떠올렸다.

-마탑에 귀신이 사는 것 같아요.

헛것을 봤다는 조용희의 이야기.

만약 그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 제대로 본 거였다면?

환상마법은 진짜 타고난 사람들만이 가능하다. 나 또한 아직도 안톤의 물의 장막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 바로 그 목걸이.

'초대'가 나를 서울 한복판으로 빼돌렸을 때, 소지품 속에서는 안톤의 목걸이가 있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썼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김유신 박물관 3층에 안톤의 목걸이가 전시되고 있었다는 점.

진짜는 내 손안에 있는데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확인해 보니 정교한 모조품이었다.

즉, 처음부터 안톤의 목걸이는 김유신 박물관이 아닌, 제3자의 손에 들어가 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목걸이의 환상 마법을 이용해 누군가가 마탑 내에서 흉계를 꾸민 거라면?

딱 여기까지 추측을 진행해 놓고 김사랑, 소심희, 조용희, 차도연, 사미아를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범인의 동기를 알 수가 없었다.

수사가 난항에 빠져 있는 그때, 홍연이 내게 알렉산드로 수사팀 쪽에서 알려준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그렇게 명확해졌다.

"마인 소심희, 세계길드의 일원으로서 당신을 제거하겠습니다."

차도연, 김사랑, 조용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소, 소심희 씨가 어떻게……"

"말도 안돼요! 소심희 씨!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수년간 동고동락해 온전 4층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냉정했다.

용족형 몬스터로 변한 소심희가 으르릉거렸다. 한 손에는 목걸이를 소중하게 쥐고 있었다.

[가짜 따위가 감히!]

"……가짜?"

그때였다.

안톤의 목걸이가 발동하며 소심희의 주위에 물의 장막으로 만들어진 환영이 나타났다.

나와 똑같이 생긴 환영들이 소심희의 몸 곳곳을 포근히 끌어안았다.

근데 그게…….

"왜 알몸이냐고!"

평소 얌전한 사람이 더 하다더니 이게 뭔 개똥 같은 망상인지 모르겠다.

벌거벗은 내 환영들이 소심희를 끌어안자, 그녀는 눈을 감으며 기분 좋은 듯 크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진짜 기분이상했다.

[진짜는 내 곁에 있어!]

소심희가 외쳤다.

[이제 와서 진짜 인 척 날 흔들지마!]

"……."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던 건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녀의 광기는 나대용의 광기보다 훨씬 더 마인스럽다.

[전부 사라져야 해.]

벌어진 그녀의 입안에서 거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다 필요 없어. 내 세계만이 오롯이 존재하면 돼.]

나대용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했다면, 소심희는 그냥 순수하게 맛이 갔다.

그래서 아주 조금은 죄책감을 덜수 있었다.

<데바스타>

나는 데바스타를 밟고 날아가 용의 턱을 올려 찼다. 거대한 파충류의 고개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크흑!]

"미안합니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소심희의 머리 위로 무수한 마법진들이 꽃밭처럼 펼쳐졌다.

"알아차리지 못해서."

<파이어 캐논>×300

육중한 용의 몸이 내려오는 불의 세례를 버티지 못하고 내려앉는다.

"이해하지 못해서."

<플레임 타우로스>×30

공정 마법 서른 장이 일거에 용의 몸에 설치됐다가 터진다. 고통스러운 울음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먼저 두고 가서!"

<프로메테우스>×3

불의 거인들이 솟구쳐 용의 몸을 끌어안고 파이어 캐논과 플레임 타우로스가 연달아 터진다.

거인들은 점점 더 덩치를 부풀려가고 소심희는 괴롭게 몸부림친다.

이 모습은 마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와중에도 목걸이는 보호하고 있냐.'

한 손으로 꽉 목걸이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아아아아아악!]

소심희가 커다란 두 날개를 펼쳤다. 그러곤 천장을 부수고 날아오른다.

도망칠 생각이겠지만, 당연히 대비했다.

내 예상대로, 소심희는 얼마 가지 못해 멈춰 섰다. 식당 위 하늘에는 고무와도 같은 마나 장막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하늘에 공중발판을 밟고 떠 있는 수 많은 마법사들이 이 장막을 유지하고 있다.

"포기하세요. 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력에 용은 일방적으로 노출되었다.

꽈아아아앙!

쿠우웅!

그녀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못 보겠어요."

차도연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억지로 볼 필요 없어요. 이번 전투에선 물러나 있어도 좋습니다."

아무리 마인이라고 해도 한때 동료였다. 조용희는 아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있었고, 김사랑은 말없이 테이블에 몸을 기대어 와인을 병째 들이켜고 있었다.

소심희의 힘이 빠져간다. 이제 고통을 끝내줄 때다.

나는 손안에 스펙터를 소환해 힘주어 붙잡았다. 스펙터의 겉면에 새겨진 마법진은 마검사들이 사용하는 6공정 마법 '절삭'의 20 중첩.

이 정도면 아무리 두꺼운 용의 목이라도 가뿐히 자를 수 있다.

이 사태는 나의 책임도 있다.

그러니 내가 매듭지어야 한다.

나는 모두에게 공격중지 사인을 보낸 다음, 데바스타를 밟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소심희의 머리 위까지 도약했다.

그녀의 주홍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는 게 보인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지만, 스펙터를 쥔 손에 힘을 풀지는 않았다.

'잘 가요.'

칼날이 그녀의 목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그때.

-탑주!

에아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확장된 시야의 측면으로 뭔가가 훅 하고 다가왔다.

쩌엉!

시야가 빙빙 회전한다. 밀려난 내 몸이 식당 2층을 박살 내고 바닥에 처박혔다.

에아가 쿠션용 쉴드를 깔았지만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팠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댔다.

'망할! 이번엔 또 뭐야?'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허공을 찢고 커다란 발톱 같은게 나와 있었다.

워프도, 균열도, 던전 게이트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허공을 찢고 나온 것만 같았다.

[안 되지, 안돼.]

발톱이 천천히 허공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이내 허공이 전보다 더 크게 찢어지며 새까만 용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소심희보다 몇 배는 컸다. 크기만으로 압도 되는 기분이다.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보랏빛 눈동자는 벌레 보듯 오만의 빛이 가득했고, 아가리에서는 뱀처럼 기다란 혓바닥이 달싹였다.

[그녀는 내 중요한 장기 말이다.]

검은 용이 말했다.

[웨인, 클린트, 알렉산드로까지 죽이더니 이번엔 그녀까지 내게서 빼앗을 생각이더냐?]

"……넌 또 뭐야?"

뼈마디가 삐걱거렸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켰다.

[내 소개가 필요한가? 마탑주.]

그때였다. 공간 곳곳이 찢어지더니 그 안에서 몬스터 상태의 마인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마법사들이 바짝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렸고 차도연, 김사랑, 소심희도 뛰어나가 맞설 준비를 했다.

[이름은 없다. 나를 따르는 마인들은 총통이라고 부르지.]

"우와, 그거 참 멋지네."

총통.

모든 마인들의 지도자.

그런 배경지식이야 머릿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빠르게 가슴에 마법진을 그렸다.

"총통이고 나발이고 마인 새끼가 내 앞에서 대가리 내밀고 앉아 있네? 뒈질라고 환장했지?"

<김유신 오리지널 - 디포메이션 마에스터>

등 뒤로 날개가 펼쳐지며 나는 푸른 청의로 갈아입었다.

"덤벼."

* * *

잠시 후 나는 벽에 또 다시 처박혀 있었다.

'아니 미친……'

입에서 퉤퉤 모래를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 총통인가 뭔가 하는 새끼, 인정하긴 싫지만 겁나 셌다.

[연약한 인간의 몸뚱이로는 그 정도가 한계지.]

총통은 팔을 허공에서 꺼내 턱을 괴는 시늉을 했다.

저 용 대가리의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려니 또 다시 짜증이 치밀었다.

'서울 한복판이라 화력이 제한돼.'

어중간한 마법으론 놈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마겟돈을 꺼내면 감당이 안 된다.

서울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쉬고 있을 틈이 있나? 마탑주.]

총통이 입을 벌렸다. 검은색의 에너지가 입안에서 빠르게 모여들었다.

'…… 역시 틀림없어. 데바스타랑 같은 암흑 마력이야.'

하지만 더 이상 분석을 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브레스의 방향을 계산하고 힘껏 몸을 날렸다.

<에인션트 배리어>

7공정 방어벽을 펼치는 즉시 검은 브레스가 쏟아져 부딪쳤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터져나오며 정신이 아찔해진다. 물러설수도 없다. 저 방향에는 120층짜리 서울 타워가 있었다.

[너희 헌터들은 지킬 게 너무 많아.]

총통이 히죽 웃었다.

[인명은 물론, 생판 모르는 남의 재산까지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하지. 참으로 기구해.]

"……이 새끼!"

배리어를 펼치는 두 팔이 달달 떨렸다.

[만나고 싶었다 마탑주. 내가 아끼던 부하들을 죽이고, 마나마를 통째로 날려 버렸지. 마인들의 세계에서 넌 악몽 그 자체야! 간단히 죽이진 않겠다.]

나는 브레스를 막아내며 시선을 내렸다. 기절한 소심희를 마인들이 옮기고 있었다.

"다들 가서 막아요!"

김사랑 이 이끄는 마법사팀이 달려나갔지만 바로 마인들이 저지했다.

그들이 서로 싸우는 사이에 소심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네 말대로다, 마탑주. 6개월 뒤 세계는 확실히 멸망한다. 네메시스는 우리에게 낙원을 가져다줄 것이다. 기대되지 않나?]

브레스의 화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총통은 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이번엔 강남쪽을 향해 입을 벌렸다.

"이게 진짜……!"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산더미만 한 붉은 검격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총통은 브레스를 멈추고 팔을 들어 검격을 받아내 부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배."

저벅. 저벅.

내 연락을 받은 홍연이 워프게이트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 역겨운 쓰레기를 없애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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