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311화 (311/337)

나 혼자만 마탑주 311화

그를 사랑했다.

면접장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잘 했어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시도 자체를 높게 평가합니다.

면접에 합격했을 때.

-가족끼리 돕고 사는 건 당연하잖아요?

손을 잡아주었을 때.

-자, 여러분도 일렬로 서서 서로서로 손잡아요. 손 놓치면 미아가 되니까 조심하세요.

능력을 인정해줬을 때까지.

-축하드립니다. 세계 최초의 변신 마법사 소심희 씨.

그의 미소가 좋았다. 그의 자신감이 좋았다. 어떤 난관 앞에서도 냉철하게 움직이는 침착함이 좋았다.

설거지를 도와줄 때 팔에 얼핏 보이는 핏줄이 좋았고, 건강음료를 마시고 나서 쓴맛에 찡그리는 표정이 좋았다.

피곤할 때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터덜터덜 걷는 팔자걸음이 좋았고, 씻고 난 후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한방 샴푸 냄새가 좋았다.

다음 날 아침 면도하기 직전의 까끌까끌한 수염이 좋았고, 이상한 음식을 동료들에게 권하다가 시무룩해지는 모습도 좋았다.

소심희는 그를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 더.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을 만큼.

그의 곁에 있으면 가슴이 콩닥콩닥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렇게나 좋아하는데도, 아무런 내색이나 표현도 할 수 없었다.

'저런 근사한 사람이 나를 좋아할리 없으니까.'

1층 관리자인 진보라는 같은 여자가 봐도 귀엽고 활기가 넘쳤으며 김유신과의 스킨쉽도 자연스럽다.

호문쿨루스 에아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거기에 같은 4층팀인 차도연과 김사랑도 스타일 좋고,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질투 날 엄두조차 내지 못할만큼 다방면에서 완벽한 홍연, 대한민국 협회장 홍율, 업계탑 매니지먼트 대표 신나라, 심지어는 이집트의 파라오 메네스까지.

그랬다. 김유신 주위의 사람들은 전부 이런 사람들뿐이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내 자리가 있을 리가 없다고, 소심희는 생각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깔끔하게 마음을 접고 미련을 버리는 게 정답이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사랑하는 마음만 강해졌고, 마음속에는 지옥이 펼쳐졌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속 마음을 털어놓아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고백하고 나면 지금의 사제 관계 같은 사이조차 무너져 버릴 수도 있으니 그게 두려웠다.

참고 또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환자 김유신 씨는 사망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마음도 전하지 못한 채 김유신은 그녀의 곁을 떠났다.

허무했고, 원통했다.

그래도 이제 더 이상 그를 만날수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착각이었다.

날이 갈수록 가슴 속의 지옥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속은 썩어 문드러져갔다.

소심희 본인도 스스로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사귀지도 못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해야만 하는 자기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그렇게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 매일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꿨다.

'소심희 씨, 이리로 오세요.'

유신과 연인이 되는 꿈을.

알고 있다. 저급하고 세속적인 망상일 뿐이라는 걸.

그래도 짧은 꿈속에서나마 소심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와 함께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계속 상상했다.

계속 꿈을 꿨다.

자기 직전에는 어떻게든 김유신의 꿈을 꾸기 위해 그의 사진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그녀는 살기 위해서, 망상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정서진은 시민들 모두가 김유신을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을 세우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유품들을 회수해 갔다.

김유신이 사용했던 다양한 장비들, 그중에서 유난히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물의 장막 마법이 걸려 있는 목걸이.

김유신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진 물건이었지만, 소심희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김유신이 샤워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쭉 목에 걸고 있었던,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저 목걸이를 손에 넣고 싶었다.

결국 세공사를 찾아가 정교한 모조품을 주문 제작했고, 정서진 몰래 진짜와 바꿔치기하는데 성공했다.

남들 앞에서 걸고 다닐 수는 없었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목걸이를 목에 건 채 김유신과 함께 잠들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언제나 처럼 잠이 들려고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신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물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환상의 일종이었지만, 틀림없이 유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부터 눈동자까지 전부 똑같았다. 심지어는 자유자재로 움직였고 걸을 수도 있었다.

……낙원을 찾았다.

그녀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물의 장막으로 만들어낸 유신의 환영과 지냈다.

그동안 담아두고 묵혀두기만 하던 감정들이 폭발했고, 그녀의 망상은 물의 장막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그와 대화했고, 그와 웃었고, 그와 식사를 하고, 그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놀랍게도 유신도 자신을 좋아했다.

그녀는 온전히 자신만의 유신을 독점했고, 결혼식까지 올렸다.

너무나 행복한 신혼의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배님이 보고 싶어요."

"이젠 그만 잊으라니까. 너만 더 고통이야."

마탑 사람들은 여전히 김유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 슬라임 체액에서 발견된 새로운 약품이 발견됐다는데……"

"혹시 김 대표님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왜 김유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 곁에 있는데?

어딜 가든 김유신. 김유신. 김유신.

김유신. 김유신.

사람들은 봉인된 서재에 잠들어 있는 김유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했고, 소심희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저 말이 마치.

자신의 '유신'이 가짜라고 하는 것 같았기에.

매일 아침 입 맞추고, 함께 식사하고, 목욕하고 잠자리에도 같이 드는 자신의 유신이 허구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기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소심희는, 자신도 모르게 마탑에서의 식사자리에서 사람들의 말에 끼어들어 버렸다.

"당신들이 유신 씨에 대해 뭘 알아!"

그것도 너무나 큰 소리로.

"유신 씨는 어제 나랑 잠……!"

그녀는 말을 멈췄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담긴 감정들.

걱정. 한심. 경멸. 측은.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면 안 되겠구나. 진실은 나만 알고 있어야겠구나.

"심희 씨, 무슨 꿈 꿨어요?"

"…… 소리 높여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밤마다물의 장막인 유신과 함께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틀림없이 이 김유신이 진짜인데. 왜 사람들은…….

[왜 사람들은 네 남편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그때, 어떤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 남편이야말로 진짜야. 설마 너도 남들의 시선 따위에 흔들리는 거니? 아내인 네가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야?]

"아, 아니야! 난 그저……!"

소심희가 분한 눈물을 주르륵 쏟아냈다. 온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렴.]

과실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너의 김유신이 진짜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

벌떡 침대에서 일어난 부릅뜬 눈으로 생각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출근도 하지 않고, 줄곧 고민했다.

"그래, 그거야."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가짜를 없애면, 내 김유신이 세상 하나뿐인 김유신이 되는 거야."

큰 소리로 웃었다.

깊게 썩고 문드러진 마음이 결국에는 변질되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가짜를 세상에서 없앤다.

가짜를 진짜라고 여기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없앤다.

아니, 그걸로도 만족할 수 없다.

김유신이 진실로 존재하는 '내 세계'만이 진짜 세계.

가짜를 무너뜨리고, 김유신과 내세계에서 단둘이 영원을 살아가는 것.

그런 목표를 위해선 이런 가짜 세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행동을 시작했다. 우선 가짜의 가장 큰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증오스러운 마탑을 공중분해시켜야 했다.

"일이 너무 힘드네요. 심희 씨."

첫 번째 목표는 현 마탑주 나대용.

그와 단둘이서 작은 바에서 술을 마실 기회가 생겼다.

소심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승님의 그늘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습니다. 잘 해도 김유신, 못해도 김유신. 다들 착해서 내색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뭐…… 비교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대용이 깍지를 끼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이런 걸 다 각오하고 오른 자리니까요. 과분한 자리인 것도 맞고, 내가 스승님이 아닌 것도 맞고. 그래도 죽도록 노력해 보려고요. 그러면 언젠간, 4년 5년 후에는…… 아주 쬐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겠죠?"

그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유연한 나무보다, 단단하기만 한 나무가 더 부러뜨리기 쉽다.

"심희 씨는 절 어떻게 생각해요?"

술기운에 빌려 용기를 낸 작은 질문. 유신에 대한 언급으로 슬쩍 이야기를 비틀었지만 물음에 담긴 목적은 분명했다.

소심희는 드르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게요."

"시, 심희 씨?"

그녀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나대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경멸에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김유신도 아닌 주제에."

바로 그 순간 나대용이 지은 표정, 그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표정을 떠올릴 때면…….

기분이 째졌다.

그날 이후, 소심희는 본격적으로 나대용을 흔들기 시작했다.

음성변조 스피커를 설치하고, 물의 장막을 펼쳐서 사람들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겉멋만 들어선."

"김유신도 아닌 주제에."

"선배님이 그리워요."

"아, 김 대표님이 있었더라면……"

나대용이 지나가는 곳마다, 많은 목소리들을 노출시켰다. 물의 장막으로 연출한 환각을 써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냥 다른 마탑주를 구해보는 게 어때요?"

"마나의 아이 또 어디 안 나오려나."

나대용은 혼자서 괴로워하고 끙끙앓기 시작했다. 지독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탈모까지 걸릴 정도였다.

그리고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다음은 차도연과 미쳐가는 나대용을 엮었다.

차도연이 많은 직원들 앞에서 대대적으로 마탑주를 흉보는 연출을 나대용에게 노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참다못한 나대용이 차도연을 찾아가 항의했고.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요?"

차도연은 당연히 아니라고 했다.

"똑똑히 이 두 귀로 들었어! 내가 바보야? 어? 내가 김유신이 아니라는 게 그렇게 불만이야?"

"아니, 대체 왜 이러세요! 대용 씨 진짜 미쳤어요?"

"대용 씨? 언제까지 그따위로 부를거야? 난 마탑주라고!"

관리자들, 멤버들 간의 불화가 생겼고, 나대용에 대한 나쁜 소문은 소심희가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복종을 강요당한 차도연이 마탑에서 나갔고, 탄자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사미아도 나대용과의 충돌 끝에 나갔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이제는 은솔을 나대용과 엮었다.

진보라는 일주일에 세 번씩 봉인된 서재에 있는 유신의 몸을 씻기러 간다. 3층으로 올라가려던 은솔은 우연히 어떤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나대용이 유신을 씻길 샤워용품 바구니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나대용은 바디워시에 조용희가 쓰는 독약을 타고는,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사라진다.

은솔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격분한 나머지, 바구니를 들고 황금로 비로 내려와 당장 모두에게 그 사실을 일러바쳤다.

청문회가 벌어졌다.

"내가 똑똑히 봤어! 저 X새끼가 오빠야 샤워용품에 독을 타는 거!"

얼굴이 시뻘게진 은솔이 눈물까지 쏟으며 삿대질을 했고.

"이젠 이딴 식으로 날 몰아가는 거야? 그렇게 X발 날 쫓아내고 싶냐고!"

지독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미쳐 가고 있던 나대용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성분 검사가 진행됐고, 당연히 샤워 용품에서 독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흐흑! 정말이야! 내가 봤다니까! 저 새끼가 오빠야를 죽이려 했어!"

그녀가 억울함에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은솔마저도 마탑을 떠났다.

은솔 사건 이후 나대용의 피해망상은 점점 더 심해졌고, 자신을 김유신과 동일한 대우를 받기를 원했고 강요했다.

4층팀 멤버들은 모두 떠났고, 진보라와 정서진도 유신이 남긴 마탑을 지키기 위해 형식적으로 남았을 뿐 이지 사실상 마음은 떠난 뒤였다.

호문쿨루스 에아도 휴면 기간에 돌입했다.

이제 나대용의 주위는 간신 같은 사람들만 남았다.

다만, 불안해진 진보라가 은솔 사건 이후 유신의 보안에 강박적일 만큼 공을 들였기에, 서재에 잠들어 있는 유신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렇게 마탑은 오해와 불신으로 썩어갔다.

단 한 사람의 마인에 의해.

소심희는 마탑에서 나와 글로벌 길드에 들어갔고, 마탑의 상황을 주시하며 물의 장막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망상과 허상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언제나 처럼 잠에서 깬 소심희는 졸린 얼굴로 목을 매만졌다.

"……여보?"

그런데.

목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발작 환자처럼 미친 듯이 몸을 떨던 그녀가, 입에 거품까지 물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목걸이가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