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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10화 (310/337)

나 혼자만 마탑주 310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정서진이 예약해 둔 비싼 식당으로 향했다.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이라고 하던가. 안으로 들어오자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응, 서진아. 알아보라고 한 건?"

-탑주님의 추측이 맞았습니다.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정서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제 실책입니다. 정말로 면목없습니다.

"아냐, 어쩔 수 없지. 나도 초대 마탑주가 아니었으면 우리 중에 마인이 있다곤 상상도 못했을 거야."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실 겁니까?

"그래. 나중에 뒷정리 잘 부탁할게."

-예, 부디 조심하십시오.

내가 전화를 끊자,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이 말을 걸어왔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유신입니다."

"예, 확인되셨습니다. 이쪽으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지나 VIP룸으로 들어갔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공간에, 테이블 위에는 리조또와 스파게티 등 각종 이탈리아 요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자 먼저 방에 와 있던 네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김사랑, 소심희, 조용희, 그리고 차도연까지.

죽은 나대용과 함께 세계 5대 마도사로 칭송받는 마법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앉으세요."

처음 그들과 마주한 면접장처럼, 내가 앞에 앉고 맞은 편에 네 사람이 차례대로 앉았다.

용무를 밝히지 않은 갑작스러운 식사 제안이어서 그럴까, 다들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얼어 있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웃어 보이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었다. 기다리고 있던 서양인 소믈리에가 능숙한 동작으로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이렇게 제자분들이랑 오붓하게 식사를 해본 것도 오랜만이네요. 오늘 밤은 즐기시죠."

소믈리에가 돌아다니며 모두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그럼, 가볍게."

"예!"

우리는 잔을 마주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한 가운데에 모였다가 흩어졌다.

나는 와인잔 끝을 입에 가져다 대며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차도연만은 와인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차 장관님, 저한테 하실 말씀 있어요?"

"네."

"해보세요."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바레인 사건은 대표님의 단독행동입니까?"

"그런 셈이죠."

"세계 각지에서 수위 높은 비난들이 협회와 정부를 향해 쏟아지고 있습니다. 도시 하나를 가라앉힌 건 헌팅도 뭣도 아닌 테러고, 협박이라고."

나는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와인을 음미했다.

"너무 과격하십니다. 마탑주 자리는 5년 전과는 그 위상과 영향력이 차원이 다릅니다. 전 세계 수억 마법사들을 대표하는 만큼 행동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대한 사항은 마법부와 충분한 상의를……"

"세계길드가 마인 때려잡는데, 한국 마법부 허락까지 받아야 합니까?"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차도연과 시선을 마주했다.

"차 장관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씀은 월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거참, 항의하는 사람들도 번지수 잘못 찾았네. 따질 거면 나한테 직접 따질 것이지 왜 협회를 못살게 구는 거예요? 다음부턴 항의 전화 오는 족족 마탑으로 돌려요."

차도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대표님. 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죠?"

"네메시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우린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제가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마법부의 정책에 반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생각하고 있구요. 다만 네메시스를 준비하는 6개월 동안만 눈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마법부장관인 차도연은 마탑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제재도 먹일 수 있지만, 그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길드는 국가에 얽매여 있는 조직이 아니라 엄연히 연맹 직속이니까. 마법부의 룰을 준수하는 건 순전히 내 선택이다.

"그럼, 다른 질문 더 있나요?"

다들 조용해진 가운데 김사랑 이 손을 들었다.

"네, 사랑씨."

"왜 갑자기 우리를 불러모으신 거죠? 저 야간 스케쥴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역시 김사랑, 철저한 마이웨이다.

"좋습니다. 그럼 바쁘신 분들도 계시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는 모두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중에 마인이 있습니다."

"……!"

모두가 기겁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에, 에이이! 대표님 농담도 참!"

김사랑 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마인? 마인이요?"

조용희는 덜덜 떨며 의자를 옆으로 끌었다. 차도연과 소심희는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아직 100% 확정까지는 아니니까요."

"그, 그럼……"

"그 100%를 채우기 위해 지금부터 여러분을 심문할 겁니다."

차도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합니다, 김유신 대표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심문은……! 저희가 대표님의 제자는 맞지만 이제는 어엿한 사회적 지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앉아요, 차 장관님."

나는 다리를 꼬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출처는 카니발랜드에서 붙잡은 마인 세계의 거물, 알렉산드로."

알렉산드로라는 말에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저는 세계길드의 수장으로서 여러분을 심문할 정당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협회장과도 이야기가 끝난 부분이고요."

협회장이란 말에 차도연도 고개를 푹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모습이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조용희 씨부터."

나는 모두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일상적인 질문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5년 전에 한 일은? 어떤 마법을 위주로 배웠나? 과거 나대용과의 친분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마인이 아닌 이유.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고, 차도연도 질문에는 협조했지만 마지막 마인이 아닌 이유에는 진술을 거부했다.

"그럼 좋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옆으로 치워서 공간을 만들었다.

거기에 언제나 목에 걸고 있는 안톤의 목걸이를 벗어서 내려 두었다.

"결국 이게 문제였습니다."

다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아공간 주머니에서 스펙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붙잡고 힘껏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꺄아악!"

"대, 대표님?"

"다칩니다. 물러서요."

내가 이를 갈며 스펙터를 잡은 팔을 뒤로 당겼다.

"이딴 건, 그냥 사라지는 게 낫습니다."

그러고는 힘껏 휘둘렀다.

까아아앙!

터져 나오는 쇳음.

그것은 결코 물의 장막 목걸이가 잘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손이 저릿한 느낌과 함께 스펙터가 뒤로 튕겨나갔다.

"……이게 무슨 짓이죠?"

내가 스펙터를 내리며 물었다.

"소심희 씨."

"……."

어느새 테이블을 향해 달려든 소심희의 오른팔이 메테모포시스화 되어 있었다.

"……왜."

그녀의 두 동공은 지진이 온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왜 이걸 자르려는 거죠? 대표님의 중요한 유물이잖아요!"

"내 물건입니다. 어떻게 처분하든 내 맘이고, 소심희 씨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나는 윈드포트를 시전했다. 테이블에 놓인 목걸이가 바람을 타고 내손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대로 양손으로 잡고 힘주어 뜯으려는 순간.

쾅!

거친 충격과 함께 내 몸이 튕겨나갔다.

벽을 몇 개나 박살 내고서야 멈춰섰다.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뒷방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충격에서 벗어난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벌려진 거대한 아가리와 그 안에서 빛나는 섬광이었다.

"도망쳐!"

나는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두 팔을 뻗었다.

<엡솔루트 배리어>

화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입에서 방사된 빛의 기둥이 7공정으로 창조한 배리어에 부딪치며 굉음을 쏟아냈다.

"큭!"

나는 밀려나지 않게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배리어에 스파크가 튀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손상된 배리어에 추가 마력을 투입해서 보수했다.

쿠우우 우우우우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장내를 연기가 뒤덮었지만 미리 준비한 아이올로스로 걷어냈다.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거대한 골드 드래곤으로 변한 그녀가 안톤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차도연, 김사랑, 조용희는 급히 주위에 쉴드를 펼쳐 사람들을 지켜냈지만, 갑작스러운 전개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세계 최초의 변신 마법사이자, 현최강의 메타모포시스 능력자 소심희씨."

나는 앱솔루트 배리어를 해제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드라스의 초기형은 개과형 몬스터였죠. 그리고 최종 단계에 이른 모습은 용의 외형을 하고 있네요."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실 속임수였습니다. 알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안드라스의 최종형은 바로 이런 모습."

그러고는 홀로그램 모드로 전환해 화면을 띄웠다.

긴 황금색 털로 뒤덮인, 사족보행하는 늑대형 몬스터의 삽화였다. 용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 모습은 소심희 씨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모두의 경악한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결론 내렸다.

"마인화된 모습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골드 드래곤의 곳곳에 털갈이가 일어난 것처럼 황금빛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용서 못 해.]

그 자리를 날카로운 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오고 무수한 박쥐 날개들이 솟아 나온다.

골드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모습은, 사실 메타모포시스의 응용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춘 형상일 뿐이었다.

[용서 못 해 가짜!]

군데군데 흉측한 뼈마디가 보이는, 징그러운 외형의 용이 포효했다.

손님들이나 직원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몇몇은 그대로 혼절하기도 했다.

대기하고 있던 마탑 직원들이 빠르게 달려와 그들을 구조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피부를 찌르는 살기를 느끼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당신에겐 무수히 많은 죄가 있습니다. 동료를 속이고, 기만 했으며, 심지어는 자신마저 속였죠. 이런 말드리기 가혹하지만."

내 몸에서 폭발적인 마력이 솟구쳤다. 네 개의 7공정 마법진들이 내뒤에서 회전을 시작했다.

"마인 소심희, 세계길드의 일원으로서 당신을 제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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