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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08화 (308/337)

나 혼자만 마탑주 308화

"이 치사뽕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가 테이블에 있는 휴지와 신문 따위를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성의 없이 아픈 척을 해주며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중간에 앉은 필은 얼빠진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까 두 분 싸운 거 아니었죠?"

"네. 그냥 장난이었는데요."

"닥쳐! 이번엔 장난 아니라 진짜로 죽일 거야!"

그녀가 벌떡 일어나 옷소매를 올려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유롭게 소파 등받이에 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너한테 나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니까? 만약 동아프리카 전선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공략대에 전력으로 협력해준다면 이집트 전역의 필드마법을 10년간 무상으로 유지시켜 줄게. 어때?"

"시, 십 년?"

일어나 있던 그녀가 얼른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탄자니아 공략으로 얻는 이득과, 10년간의 필드마법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던 그녀가 내 쪽을 힐끔 보았다.

"……그건 구라 아니지?"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봤냐?"

그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으, 짜증……"

사실상의 긍정이었다.

"어차피 나랑 싸워봐야 국물도 못건질 거면서 왜 성질이었냐?"

"닥쳐!"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필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진짜 실제 친구 사이 같으십니다. 하하!"

사실 맞췄다.

* * *

어쨌든 한윤정과도 이야기가 잘 됐다.

파라오가 참전하는 건 확정이고 내가 판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묘지기들을 추가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이제 아프리카는 우리 편이다.

그리고 필사무총장도 내 공략대 제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했다. 곧 연맹 차원에서 주관하는 공인 1급 헌터 회의와, 각국 협회장 회의가 진행될 것이다.

'이제 다른 동네들.'

내가 보기에 어수선한 나라들이 몇몇 있다.

바로 서아시아 연방.

서아시아에서 탄탄한 경제력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예멘,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이란, 이라크 등은 헌터 체계 전환이 늦은 나라들이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지 못해 국민들은 난민화되어 세계 각지에 흩어졌고, 별다른 대책도 없이 연맹의 헌터 파견에 목을 매고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대한 자본가들이 이 서아시아 국가들의 기반시설을 사들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감기약 사건의 주범이었던 GOT.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연맹을 등지고 GOT와 손을 잡았다.

바로 보복이 따랐다. 강도 높은 경제제재는 기본이고, 연맹의 헌터 파견까지 뚝 끊기게 됐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서아시아 연맹국들을 마인들에게 굴복한 변질자라며 손가락질했고, 얼마 안가 곧 망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중동의 균열 사태는 보란 듯이 큰폭으로 줄어들었다.

몬스터가 사라지자 난민들이 돌아왔고, 내수 경제가 살아났으며, 조금씩이나마 나라가 굴러 가기 시작했다.

GOT의 자본가들은 수에즈 방어선의 주인 없는 첨단 무기들을 헐값에 사들여 나라를 무장시켰고 이름깨나 알려진 글로벌 헌터들을 영입하여 고랭크 몬스터전에 대비한 헌터 체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서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OT의 도움 없이도 잘 버티고 있던 사우디 왕국은 주변국들의 성장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왔다.

마인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사우디 국왕과 주요 인사들이 테러로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날을 기점으로 수 많은 내분이 터져 나왔고 결국 정권이 바뀌었다.

사우디 또한 연맹 탈퇴를 선언하며 GOT의 자본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사우디도 영토 전역에서 균열 사태의 혜택을 받게 됐다.

이런 중동의 움직임에 세계는 새바람이 불었다. 특히 재정 상황이 어려운 개발도상국들은 GOT와 협상하라며 국민들이 직접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연맹과 M10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GOT와 손잡는 나라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피터 英 총리, "마인과 손을 잡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일"맹비난.]

[美, "참담한 심정"추가 경제제재검토 중.]

하지만 그런 강대국들의 비판에도, 서아시아 및 개발도상국의 입장은 단호했다.

네티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도와달라고 빌어도 무시하더니, 우리가 알아서 살길 찾겠다는데 왜?]

[당장 내 아내와 자식들이 몬스터에게 죽게 생겼다. 멀리서 입만 떠벌대는 연맹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마인이 더 낫다.]

[너희가 중동에서 뭘 했는데?]

[굶어 죽으나, 악마와 손을 잡으나 거기서 거기.]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연맹과 M10은 중동마인 소탕작전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카타클리즘 같은 대형 재앙들이 발생하며 번번이 무산되었다.

큰 재앙을 겪으면 아무리 큰 나라들도 휘청휘청했다. 당장 자국민들을 지키는데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서아시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대국들이 차일피일 공략을 미루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 이제 내가 나서게 됐다.

바레인, 마나마(Manama).

바레인의 수도이자 행정 중심구.

바레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GOT라인에 합류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중동의 섬나라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와 가깝다.

바레인은 GOT와 계약을 맺은 후, 거의 전권을 GOT에게 내놓은 상황이다. 섬이라서 외세의 진입이 힘들다는 점을 활용해 나라 전체를 걸어 잠그고 폐쇄운영을 하고 있다.

바로 이곳이 내 첫 타깃이다.

'이렇게 큰 도시인데 사람이 거의 안 보이네.'

마나마는 눈이 떡 벌어질 만큼 커다란 빌딩들이 잔뜩 솟아 있었는데 건물의 규모에 비해 유동인구는 적은 편이었다.

물론 나는 이 도시의 비밀을 알고 있다. GOT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교역을 거부한 채 폐쇄정책을 펼치는 나라.

구린내가 풀풀 난다.

'에아. 준비됐지?'

-네, 탑주.

나는 구석의 골목길에 들어가 서류가방을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다섯 개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수한 공중 드론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오빠야! 간이 통신 기지국 이상무야!

'오케이.'

나는 윙골렘을 켜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은솔의 원격조종으로 움직이는 드론들이 내 주위를 돌다가 흩어졌다.

그러고는 곳곳에 홀로그램 화면 같은 것을 띄웠다.

-방송상태 양호!

지금부터 내가 벌일 일들은 전 세계가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몸에서 마력을 일으키며 오른팔을 펼쳤다.

"다들 나와."

케일 (Cheir).

소마 (Soma).

옵스 (Ops).

카디아 (Cardia).

4개의 마법진이 회전을 시작한다.

나는 능숙하게 가슴에 마법진을 그린 다음, 7공정 마법진들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순청의 깃털들이 주위로 비산하며 푸른 슈트로 갈아입었다.

-오빠야, 준비됐지? 전 세계 200여 개국 동시 방송 On-Air!

드론들이 방송 송출을 시작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알케미아에서 계약한 모든 채널에서 내 영상이 생방송으로 나온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나는 입을 열었다.

"5년 만에 인사드립니다.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드론들이 돌아가며 내 얼굴을 비추고 있다. 드론들의 홀로그램에 표시된 0명의 시청자 수가 빠르게 차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방송 켠 지 분 단위안돼서 벌써 천 명대를 넘어섰다.

그중에서 한 댓글이 눈에 띈다.

[진짜 김유신이에요?]

"네, 보다시피 접니다. 녹화 영상은 많이 찍어봤는데 이런 생방은 처음이네요. 다소 버벅거려도 너른 양해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볍게 크흠, 하고 목을 풀고 말을 이었다.

"여기는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의 상공입니다."

드론들이 움직여 도시 아래를 비춘다. 줌인 확대가 가능해서 시청자들은 도시의 곳곳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저는 제가 한 약속을 지키러 이곳에 나왔습니다."

내가 화면 밖에서 손가락을 튕기자 은솔이 즉시 녹화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재앙 네메시스의 공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조직과 세력은 마탑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네, 지금부터 마탑은 바레인을 칠겁니다. 이건 전쟁 생중계입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조회수가 미친 듯이 폭발하며 순식간에 실시간 20만을 넘어서고, 각기 다른 언어들로 채팅들이 쏟아진다.

나는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의 특성상 '대박이다', '미쳤다'하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당신이 무슨 권리로 전쟁을?', '전쟁 생방? 지금 제정신이냐!' 하는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다.

"여러분이 뭘 염려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 마침 전화도 왔네요."

휴대전화를 꺼내보니 사무총장 필의 전화였다.

안 받을 이유가 없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다.

"네, 총장님."

-김유신 헌터!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바레인 공격이라니! 제겐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이건 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라서요."

-당장 돌아오십시오! 아무리 공인1급이라도 한 나라에 전쟁을 거는 건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위협입니다!

"저는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총장님. 세계길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뭡니까?"

바로 마인 박멸.

세계길드는 마인이 있는 곳이라면 해당 국가의 협조를 받지 않고도 최고 수준의 수사권을 발휘할 수 있다. 심지어는 마인 의심자를 그 자리에서 사살할 수 있는 처형권까지 보유하고 있다.

마인 검거에서 파생되는 피해는 전부 연맹과 해당 국가가 감당한다.

그런 초월적인 권한을 준 만큼, 세계길드는 최고의 마인 억제제로서 작용해 왔다.

"저는 세계길드로서 제게 주어진 권한을 전부 누릴 생각입니다.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끊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 걸게요."

-자, 잠깐만요! 김유……!

뚝-

나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리고 주머니 속에 넣었다.

과연, 그 잠깐 사이에 바레인 측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슬슬 올라오는 것 같네요."

아파트, 고층 빌딩 등에서 창문이 깨지고 몬스터들로 변한 마인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철도에는 바실리스크가, 바다에는 레비아탄이 깨어나 나를 노려본다.

조용했던 도시 전체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대단히 끔찍하다.

그리고 날개가 있는 비행형 마인들은 즉각 분노를 표출하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잔챙이들은 부탁해, 솔아."

-응!

저쪽이 물량이라면 이쪽도 물량이다. 내 뒤에서 사미아의 워프게이트가 열리더니 비행 가능한 아이언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30기의 아이언 골렘들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접근하는 비행형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그럼, 저는 조금 더 올라가 보겠습니다."

나는 윙골렘을 작동시켜 고도를 상승시켰다. 일종의 카메라인 드론들도 따라온다.

어느 정도 고도가 높아지자 나는 등에 멘 스펙터를 손에 쥐었다.

"미리 마법 하나를 준비해 왔습니다.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효과는 심플합니다."

다른 말이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마법진의 구성을 직접 드론에 대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펙터를 눕혀서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우우우우웅!

스펙터에서 빠져나온 마법진이 하늘로 올라가며 그 크기를 점점 더 키웠다.

"이 마법의 이름은 캔슬레이션. 마나의 결속을 흩뜨려 유의미한 마력적 효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즉."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마법진에서 솟구친 푸른 기둥이 하늘로 뻗어 나갔다.

올라갈수록 점점 더 크기를 부풀린 캔슬레이션은 이내 마나마의 하늘을 완전히 꿰뚫었다.

"완전 무효화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캔슬레이션 마법이 사라져 간다. 아직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제가 한 일은 단지 이 도시에 걸려 있던 어떤 마력적 효과를 해제했을 뿐입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드론들도 위를 향한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이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채팅에는 무수한 물음표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데바의 눈으로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왔다.'

푸른 하늘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며 이상현상 '균열'이 나타났다.

현대인들에게 그리 대단한 이상현상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저게 다 뭐야?]

캔슬레이션을 썼을 뿐인데, 하늘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무려 수백 개가 넘는 균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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