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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05화 (305/337)

나 혼자만 마탑주 305화

다음 날, 마탑주의 방.

타악. 탁.

싸늘한 침묵 속에 펜 굴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9층에 올라온 마법사들이 줄지어서 있고,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의 프로필이 담긴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정서진은 내 뒤에 뒷짐을 지고 서 있다.

"으으음."

나는 펜으로 몇 가지 항목에 동그라미 체크를 한 다음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4층 1팀. 저는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흠칫 어깨를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훑으며 지나가다가 가장 끝에 있는 한 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1팀의 박병일 팀장님."

"예."

그래도 이 사람은 제법 내공이 있어 보인다. 표정이 살짝 굳어졌을 뿐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구르고 구른 사회인이라는 느낌? 나는 프로필을 들었다.

"4층 1팀의 실적이 다른 팀에 비해 유난히 떨어진다는 점, 알고 계셨습니까?"

"실적이란 건 다양한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병일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단순히 매출만을 실적이라고 한다면…… 예, 저희가 가장 떨어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4층에는 마탑주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전 마탑주를 보필하여 마탑의 크고 작은 임무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런 기여도와 헌신까지 고려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보았다.

"전 마탑주와 했다는 임무가 구체적으로 뭐죠?"

"운영, 기획, 영업, 심지어는 전투까지. 마탑을 위해 그 어떤 궂은일도 가리지 않고 수행했다고 자부합니다."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서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지. 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5층 팀들과의 사이가 별로 안 좋으시다고 들었습니다."

"……."

박병일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제 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네요. 파벌싸움?"

"그 프로필, 누가 작성했는지 알수 있겠……"

"박병일 팀장님."

나는 다리를 바꿔 꼬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지금은 제가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예. 죄송합니다."

"눈엣가시로 여겼던 전 5층 1팀을 날려 버리셨네요. 관리자 사미아의 이탈 이후, 유일하게 5층에서 성과를 내던 좋은 팀이었는데."

"……."

"말씀하시던 운영, 기획, 영업 말고 인사 쪽도 담당하셨나 봐요? 아케인에 속해 있던 마법사들을 전 마탑주에게 추천해서 마탑으로 올리기도 하고."

나는 정서진에게 다른 서류를 받았다.

"김일고, 현동한, 최준희.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정리대상자 리스트에 들어가 있습니다."

나는 그 서류를 보란 듯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다른 쟁쟁한 아케인 후보들에 비해 특출난 점도 없는데 뽑혔네요. 당시 아케인에서 불만이 많았다는데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마탑에서 올린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사 일을 하기엔 팀장님 사람 보는 눈이 별로네요."

"마탑주님."

박병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빙빙 둘러 말씀하시지 마시고 본론을 이야기하시죠. 지금 저희가 친나대용파라서, 솎아내시려는 거 아닙니까?"

"친나대용파? 그건 또 뭡니까?"

어이없어하는 박병일을 보며, 나는 그의 프로필에 새로운 글귀를 적어넣었다.

"파벌싸움 했다는 거 아무래도 맞는 것 같네요."

"……마탑주님!"

박병일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저희가 그간 마탑을 위해 기여해온 모든 노력을 무시하고! 이제 와서 지난 일로 온당치 못한 처우를 하시는 이유가, 저희가 친나대용파라서가 아니라면 뭡니까! 파벌싸움을 했다고요? 한때 나대용에게 충성을 맹세했단 이유로 우리를 내치려는 짓이 파벌싸움이랑 뭐가 다른 겁니까!"

"저는 파벌싸움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썩고 냄새나는 부위를 도려내는 거지."

"……."

"당신들 실적이 압도적으로 부진한건 사실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팩트고요. 그래서 그동안 무슨 일을 했냐고 물으니까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했다느니 뭐니 제대로 대답도 못해. 최악의 실적을 가진 팀이 가장 성과가 좋았던 팀을 파벌싸움으로 날려 버린 건 그야말로 조직 전체에 해를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짓이 파벌싸움이라고? 아니, 내가 마탑주고 이 탑이 내 건데 누구랑 싸워야 하는데요?"

박병일이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징계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다시 서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4층 1팀 전원, 아케인으로 좌천입니다."

"……!"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있어야 할 이유를 조금도 찾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올라오세요."

"마, 마탑주님! 이건 너무 과한 처사……!"

쾅!

와장창!

난데 없이 유리컵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박병일과 팀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내 뒤에서 있던 정서진이 씹어먹을 듯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쓰레기들이."

농축된 살기에 그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감히 마탑주님 앞에서 그게 무슨 태돕니까."

"서진아?"

나는 웃는 얼굴로 그에게 손짓 했다.

"잠깐 와볼래?"

"네, 탑주님."

정서진이 옆으로 와서 고개를 숙였고, 나는 힘껏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나대지 마 쫌!"

"아아아악! 아, 아픕니다!"

"니가 뒤에서 애들 겁주는 거 모를 줄 알았냐? 확 씨! 사람들이 뭔 말을 못하잖아!"

4층 1팀 모두가 얼빠진 얼굴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알케미아의 회장이자 한없이 높아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던 정서진이 지금, 귀를 잡힌 채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나는 정서진의 귀를 놓으며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이럴 거면 그냥 니가 다 해. 난 간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정서진이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한 척 서류를 들었다.

"좋아요. 4층 1팀. 내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박병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팀장님부터, 자기소개 시~작!"

"예?"

"내가 이미 아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자, 10초 남았습니다. 9, 8."

내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자 당황한 박병일은 어버버얼을 탔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마탑에서 근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말고요."

"고, 공인……"

"공인 4급, 3서클, 시티즌 길드 출신인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을 타던 그는 결국 '성실……'까지만 말하고 끝났다. 나는 그의 프로필을 뒤로 던져버렸다.

"어디 길 가던 유치원생 앉혀놓고 자기소개시켜 보세요. 당신보다는 잘 할 겁니다."

"……."

"마탑에서 근무한 거 말고, 공인 4급에 3서클인 거 말고, 당신도 당신의 장점을 모를 정도로 아무런 장점이 없는데 내가 왜 당신을 요직에 앉혀야 합니까? 공인 4급에 3서클은 아케인에도 넘칩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마무리했다.

"짐 싸서 탑에서 나가세요, 박병일씨. 아케인 후배들이 반겨줄 겁니다."

* * *

나대용은 인정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내가 의식불명이 된 뒤에는 더 심해졌다. 그는 관리자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대용은 자신을 마탑주 대우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길 원했다.

자연스럽게 아부하고 아첨하는 사람들만 그의 주변에 남게 됐고, 기존 관리자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더더욱 멀어졌다. 나대용이 끝까지 멘탈을 수습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배경적 이유들이 컸으리라.

아첨꾼들은 진입장벽이 되어 마탑에 들어오려는 마법사들을 검증했고, 돈이나 대가를 받고 후배 마법사들을 마탑에 불러들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지금 마탑은 썩고 곯아터지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막힌 혈을 뚫어내고 신선한 젊은 피를 대폭 수혈하기로 한 것이다.

마탑에서 30명이 좌천당해 아케인으로 돌아갔고, 아케인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불러모은 100명의 뉴페이스들이 마탑에 합류했다.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한탄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됐다.

파벌싸움의 피해자들도 불러들였다. 특히 박병일이 날려 버린 5층 1팀은 꼭 필요한 인재들이었고, 내가 직접 통화해서 설득했다.

그들도 불명예스럽게 마탑을 나가게 된 것에 미련이 있었고, 이야기가 잘 됐다.

그들 모두 박병일이 없는 새로운 마탑에 기꺼이 힘을 보태주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미아는 천군만마를 얻었다며 좋아했다.

"크, 역시 선배님이 오시니까 탑이 제대로 굴러 가는 느낌이 드네요!"

나와 진보라, 정서진은 같이 9층에 앉아 도시락 세트를 먹는 중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빠르게 끼니를 때워야 했다.

"새로운 1층 애들은 맘에 들어?"

"완전요! 다들 싹싹하고 일도 빨리 배우는 편이에요! 왜 이런 애들을 아케인에 썩혀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도시락의 하이라이트인 함박스테이크를 집으러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잠시 안 본 사이 함박스테이크가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

고개를 돌려보았다. 자신의 장조림마저 옮기려던 정서진이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멈췄다.

"……너 뭐냐?"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네 것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괜찮습니다. 저는 탑주님의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릅니다."

그 말에 소름이 쫙 돋은 나는 재빨리 도시락을 들고 정서진에게서 2미터 멀어졌다. 진보라도 그를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까 더 이상한 거 알아요?"

"편견입니다."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5년 만에 돌아오니까 주위 사람들이 죄다 애정결핍 환자가 된 것 같은데.

"말을 말아야지."

진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선배님, 오후에는 뭐 하실거예요?"

"내부 청소는 했으니까 이제 외부를 정리할 차례야."

나는 멸치조림을 씹으며 정서진을 보았다.

"네메시스에 대한 반응은 어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대중들은 대체 적으로 탑주님의 발언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습니다."

"……음."

오라클의 정보는 언제나 극비 취급이었기에, 대중들에겐 생소한 개념이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예언 능력자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제대로 이슈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네메시스에 대한 데이터들은?"

"전부 확보해서 정리해 뒀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봉인된 서재를 전부 열었으니 정보 파트 쪽은 태세 만전입니다."

"좋아."

나는 힘차게 두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에아, 듣고 있어?"

-네, 탑주.

빛무리와 함께 에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연맹이랑 정부는 물론, 각계 유력 언론에 네메시스에 대한 정보를 다 뿌려 버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기사를 쓸 텐데요."

"그게 노리는 바야. 시간이 별로 없어. 이제는 전 세계가 위기감을 자각해야하고, 우리가 주도해서 그런 분위기를 형성해 나갈 거야."

"알겠습니다. 탑주."

그때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렸다. 신나라의 전화였다.

"네, 넵.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그들을 보았다.

"나 잠시 스위스에 다녀올게."

"어머! 스위스라면 연맹 본사? 무슨 일이에요?"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공인 1급, 받으러 오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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