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300화
분위기가 급격히 어색해졌다. 우리는 20분간 말없이 카니발랜드를 걷고 있었다.
팔색조 매력을 보이며 자유자재로 연기와 임무를 넘나들던 홍연은 아까의 사건으로 완전히 넋을 놓아버린 듯했다.
-탑주.
'왜?'
-방금 그 행동에 일말의 흑심도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쏠린다.
'아니! 아무리 임무 중이라도 쟤가 저렇게 나오는데 감정을 자제할 수 있으면 그게 목석이지, 사람이야?'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녀의 웃음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홍연이 걸음을 멈췄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선배. 고위험도 마인이 감시 불가능한 장소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따라잡아야 해요."
"웅?"
"가요!"
그녀가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뛰었다.
"바로 저깁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확 낮추었다.
"흰 맨투맨에 청바지 입은 아랍계 남자!"
나는 데바의 눈을 확장시켰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그녀가 말한 인상착의를 발견했다.
"오케이, 확인했어."
"우리도 줄 서죠. 저 마인이 몬스터로 변하기라도 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몰살이에요!"
그때, 바로 그 마인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홍연은 재빨리 나와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빨리! 빨리이! 나 저기 가보고 싶단 말이에요!"
아니 이게 뭔…… 크흠, 연기인 건 알지만 귀엽긴 하다.
홍연의 재치로 마인은 시선을 거두었고, 우리는 문제없이 줄을 섰다.
'근데 이건 무슨 놀이기구지? 왜 감시가 불가능하단 거야?'
나는 뒤늦게 간판을 보았다.
[호러 포레스트]
그렇다. 카니발랜드 버전의 귀신의 집이었다.
'마인 새끼, 취향하곤……'
나는 고개를 돌려 홍연을 바라보았다.
"너 혹시 귀신 무서워하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걸 왜 무서워합니까? 그냥 사람이 분장했을 뿐인데."
"오우, 자신만만한데."
내가 팔짱을 끼며 낄낄 웃었다.
"그럼 선배는요?"
"당연히 무서워하지."
"그걸 뭘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어요!"
나는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걸 그녀에게 보였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그냥 난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까?"
그녀가 내 팔뚝을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
"절대 안 됩니다! 협회의 감시망에 들어오지 않은 지역에서 마인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너 사실 혼자 가기 무서운 거 아냐?"
"아닙니다!"
줄은 금방 줄었다. 얼마나 무서운 지 중도 포기자의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들어가면 70%는 중간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저 마인 새끼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자기 지인이랑 웃고 떠들고 있었다.
죽여 버리고 싶다. 면상 발로 까서 바닥에 넘어뜨리고 잘근잘근 밟아주고 싶다. 날 이런 곳에 들어가게 하다니.
"다리 떨지 말아주세요. 정신 사납습니다."
옆에서 있던 홍연이 면박을 주었다.
"화장실 급한데 잠깐만 다녀오면 안 될……"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배는 그렇게 강하면서 귀신이 무섭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주먹을 꾹 쥐었다.
"몬스터나 마인은 보이는 대로 줘패면 그만인데 귀신은 그런 게 아니잖아. 세상에 불확실한 것만큼 공포스러운 건 없다고!"
"겁이 많단 소릴 잘 둘러 말씀하시네요."
기다리다 보니 결국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마인이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다음 다음 차례다.
안내원이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중도 포기는 천장의 카메라를 보고 X자를 표시하면, 저희 직원이 가드립니다. 무섭다고 귀신으로 분장한 직원들을 폭행하거나 욕설을 하시면 안 됩니다."
"네."
우리는 귀신의 집으로 안내받았다.
인공 안개가 음산하게 깔려 있어서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첫발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다.
"빨리 가죠."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마인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사고위험이 있는 건 물론이고, 만약 마인의 약속장소가 이 시설 내부라면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우리는 안개를 뚫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호러 포레스트라는 이름답게, 안개사이로 모형이 아닌 진짜 나무와 풀들이 잔뜩 있다.
분위기가 미쳤다.
실내인데 정말로 깜깜한 밤의 숲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음산한 BGM 과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합쳐지니 더더욱 무시무시하다.
-탑주.
'왜 불러?'
-그렇게 무서우시면 데바의 눈을 극대화해서 직원들의 장소가 어디있는지 파악하면서 걸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입을 벌렸다.
'넌 천재야 에아.'
바로 에아의 눈을 최대한으로 활성화시켰다. 이 힘을 귀신의 집 따위에 쓰는 게 우습긴 하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리고 전방 3미터 내에 좀비로 분장한 직원 한 명이 수풀에 숨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서 기어 나와서 내 다리 내놔하는 포인트네.'
홍연은 마인 잡을 생각밖에 없는 듯 내 손을 잡아끌며 성큼성큼 전진하고 있었다.
저렇게 빨리 가다간 큰코다칠…….
"캬아아아맑!"
수풀에서 좀비로 분장한 직원이 튀어나왔다.
알고 봐도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 있는데, 갑자기 홍연이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고 있었다.
"야!"
나는 몸을 던져 그녀를 막아 세웠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에 직원은 뭐가 지나갔는지 모른 채 멍한 얼굴이었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검집째로 잡고 있었다.
"아하하! 놀랐지? 빨리 일어나."
나는 애써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홍연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직원을 노려보며 끌려왔다.
혹시나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난 다음,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안 무섭다며?"
"네."
"근데 무기는 왜 꺼낸 건데?"
그녀가 손에 쥔 검을 한번 봤다가 다시 내 얼굴을 보았다.
"언제 어디서 마인이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그걸로 직원을 치려 한 건 아니고?"
"아닙니다."
그때 옆에 있는 우물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검을 휘두르려 하자 나는 있는 힘껏 그녀의 팔을 붙잡고 끌고 왔다.
"하아. 하아."
극도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는지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안 되겠다. 그거 압수야."
내가 그녀의 검을 빼앗았다.
"아, 안 됩니다! 돌려주세요!"
당황한 표정의 그녀가 까치발을 세우고 팔을 버둥거렸다. 나는 더더욱 높이 검을 들었다.
"못 돌려줘. 두 번이나 여기 직원들 황천길로 보낼 뻔한 거 알지?"
"검도 안 뽑았고! 마지막엔 딱 멈추거든요!"
"그래도 위험해!"
약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그녀의 검을 내 아공간 주머니에 넣는 데 성공했다.
풀이 죽은 홍연이 '검이 없으면…….' 어쩌고저쩌고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깔끔히 무시했다.
우리는 서둘러 마인을 찾아 계속 걸었다. 다음 귀신은 천장에서 나온다.
벌컥!
천장이 열리며 밧줄로 목을 맨 인형이 내려온다.
"……!"
홍연이 눈을 질끈 감으며 반사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인형의 머리가 찢어져 날아가 벽에 박혔다.
'……오우야.'
내가 다 식은 땀이 흐른다. 저게 진짜 사람이었다면…… 끔찍하다.
"하아. 하아."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방금은 빼박 놀란 반응 맞지?"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거, 검이 없으니까 그래요! 날 지킬 수단이 없으면……!"
"그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내 손 잡고 와! 제발 부탁이니 직원들 손찌검하지 말고."
결국 내가 앞에서 걸었다.
이제 귀신 따위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
지금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내 뒤에 있는 시한폭탄 같은 여자가 사람을 패 죽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오른쪽 나무에서 한 명."
내가 미리 알려주었고, 직원이 나무 위에서 튀어나왔다.
홍연은 놀라서 몸을 움츠렸지만, 이번엔 반사적으로 사람을 공격하진 않았다.
"왼쪽 땅에서 팔이 튀어나올 거야."
"뒤에서 좀비 뛰어온다."
우리는 빠르게 척척 코스들을 돌파했다.
점점 걸음 속도를 높였다. 좀비들이나 귀신들은 격한 괴성과 함께 튀어나왔지만 내가 반응이 없자 다시 뻘쭘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저기다!"
문밖으로 빛나는 출구가 보인다.
이제 제발 끝내줘! 나는 시한폭탄의 손을 잡고 빛으로 나왔다.
"아……"
"하아아."
문을 나서자 햇살이 보이며 바깥의 광경이 보인다.
우리 앞 팀은 포기했는지 없었고, 마인과 그의 지인이 껄껄 웃어대며 통로를 지나는 모습이 보였다.
다 끝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랑 귀신의 집 또 오면 사람도 아니다."
"서, 선배가 검을 뺏어갔으니 어쩔수 없잖아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나는 부끄러워 하는 그녀의 어깨를 압수한 검 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됐고, 이거나 가져가."
"……네."
밖으로 나오니 기념품점이었다. 온갖 호러굿즈가 가득한 곳에서 직원이 스크린 앞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한 장당 5천 원입니다."
호러 포레스트를 체험하는 중간에 우리 모습을 찍은 사진을 팔고 있었다.
나는 굳은 인상으로 수풀을 헤치며 걷고 있었고, 홍연은 누가 봐도 겁먹은 표정으로 내 옷깃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이야, 이거 잘 나왔네!"
그녀는 아예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너 아까 뭐랬더라."
나는 목을 가다듬고는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런 걸 왜 무서워합니까? 그냥 사람이 분장했을 뿐인데."
"아악! 그만 놀리세요!"
나와 직원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홍연은 사과처럼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난 사야겠다. 이거 한 장 주세요."
"5천 원입니다."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자 그녀가 확 달려들어 빼앗았다.
"이걸 왜 사는 건데요! 빨리 가요!"
빼액 소리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얼른 새로운 카드를 꺼내 직원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렇게 갖고 싶었어? 두 장 부탁해요."
"선배!"
결국 두 장을 구매했다.
내게서 사진 한 장을 건네받은 그녀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평생 놀림거리가 생긴 기분…… 이네요."
그녀는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건 내 착각일까.
그때 이어마이크에 연락이 들어온 듯, 그녀가 고개를 들며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인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저 2급 위험도라는 마인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계속해서 지인과 함께 다양한 놀이 기구를 탔고, 추적 중인 우리도 허튼짓 못하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 타야 했다.
허리케인에, 트위스트에, 롤러코스터에 하필 또 이 자식이 스릴 매니아인지 빡센 것들만 골라 타고 있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서 정신이 없었지만, 홍연은 의외로 잘 탔다.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두 팔을 번쩍 드는 걸 보니 임무와는 별개로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두 장 주세요."
롤러코스터 사진을 파는 매장 앞에서, 그녀는 입을 벌리고 있는 내 엽기사진을 구매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내게도 한 장을 주는 걸 보니 복수하는데 성공했다고 좋아하는 듯했다.
"아, 이번에는 바이킹으로 가나 봐요! 빨리 와요!"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미행 미션 중에 즐기는 아주 짧은 일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