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299화 (299/337)

나 혼자만 마탑주 299화

우리는 카니발랜드 중앙에 마련된 푸드코트에 도착했다.

한식, 중식은 기본이고 회전 초밥, 왕돈까스, 팟타야 등 가지각색의 요리들을 팔고 있었다.

"아, 저거 맛있겠어요!"

홍연이 들뜬 목소리로 철판 요리를 가리켰지만, 내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뜨끈한 소머리 해장국밥 먹고 싶다.'

그래, 아무리 내 연애 세포가 다뒈졌어도 첫 데이트(?)로 국밥이 아웃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빈자리 앉자."

"네!"

철판 요리 가게는 직사각형의 공간에 와인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리사들이 돌아다니며 직접 손님의 철판 앞에서 고기를 구워주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요리사가 친절한 인사와 함께 메뉴판을 건넸다.

다행히 메뉴 선정은 빨랐다. 우리는 부챗살 스테이크와 계절 생선, 그리고 배가 고파서 관자와 새우까지 추가로 골랐다.

요리사가 재료를 가지러 가는 사이,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연아 너 혹시……"

"선배, 저기 좀 보세요."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손가락을 뻗었다.

"녹색 셔츠에 선글라스 쓴 서양인. 찾으셨습니까?"

"어. 저 사람이 왜?"

"타깃 리스트에 올라온 마인입니다."

진짜로? 나는 고개를 돌려 자세히 확인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철판요리 식당 맞은편, 카레 전문점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때 그가 고개를 움직였고, 나는 다급히 시선을 원상 복구시켰다.

"그리고 반대쪽 덮밥 전문점에 앉아 있는 파란 옷. 저 사람도 마인입니다."

"……너 혹시 저것들 감시하려고 이쪽에 자리 잡은 거야?"

"당연하죠."

내 머릿속에 맴돌던 망상들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크흠, 그럼 대비는 다 된 거고?"

"물론입니다. 협회의 저격수들이 전 방향에서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제 신호가 떨어지면 즉각 사살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들을 곁눈질하던 그녀가 다시 나를 보았다.

"브리핑은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이야."

이번 임무는 마인 제거 및 협력자 체포다. 협회는 마인계의 거물인 '알렉산드로 카를루스'가 한국에 나타났다는 첩보를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예상 목적지는 카니발랜드.

첩보에 따르면 알렉산드로는 카니발랜드의 대표이자 재벌 '이석훈'을 직접 만나 중요한 물건을 거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석훈 또한 협회의 1급 감시대상이다. 카니발랜드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세탁해서 마인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의혹은 의혹일 뿐, 협회는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론은 이번에 알렉산드로와 이석훈이 거래하는 현장을 덮쳐서 둘 다잡겠다. 뭐 그런 거지?"

"맞습니다."

그녀가 조용히 대답하며 주위를 힐긋거렸다.

"그 보기 힘들다는 거물 마인들이 쫙 깔린 걸 보니, 알렉산드로가 오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이네요."

"그럼 카니발랜드 전체가 전장이 된단 소리잖아."

내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민간인들 다 빼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알렉산드로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오지 않겠죠. 알렉산드로와 이석훈이 거래하는 장면을 포착하지도 못할 겁니다. 이 첩보를 위해 죽어간 요원들의 희생도 물거품이 되는 거고요."

……오, 냉정하네.

"물론 저도 민간인 피해자가 나오는 건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녀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래서 협회의 정예들을 모두 데려온 거고,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중 한 사람인 선배에게도 지원을 요청한 거죠. 상황을 통제할 자신은 있습……"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요리사가 우리가 주문한 재료를 들고 나타났다.

진지하게 말하던 그녀의 고개가 빛의 속도로 철판 쪽으로 향한다.

"죄송합니다. 주문이 많이 밀려 있어서요.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요리사가 달구어진 철판 위에 버터를 잘 펴 발랐다. 고소한 향기가 폭발하며 연기가 살살 올라온다.

버터 옆으로는 둥글게 자른 양파와 고구마, 버섯을 올리고는 그라인더를 살살 돌려서 통후추를 뿌렸다.

그리고 한번 뒤집어주자 겉면이 갈색으로 익은 양파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냥 채소가 익어가는 모습만 봐도 견디기 힘들다.

야채를 모두 건져낸 요리사가 철판에 녹아내린 버터 위로 메인디시인 스테이크 한 덩이를 철판에 올린다.

치이이이이!

철판에서 고기와 야채 익는 소리가 천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뒤이어 옆에는 생선살, 관자, 새우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다.

'이, 이건 고문이야.'

임무고 뭐고 음식에 영혼까지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요리사는 두 팔을 바쁘게 움직이며 야채와 고기와 생선을 먹기 좋게 잘랐다.

고기는 노릇하게 익었지만, 내부는 약간 선홍빛을 띠는 것도 내 스타일.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다.

이제 접시에 다 익은 고기를 옮겨담고 있다. 고기 표면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빨리 먹고 싶어서 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고 싶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은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생물이었단 건가. 나는 우선 진정할 겸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선배."

"?"

홍연이 포크로 찍은 고기 한 점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아?"

그대로 마시던 물을 뿜어서 철판과 요리사를 한 번에 적실 뻔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역류하려는 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얼굴을 붉힌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빨리 이. 저 팔 아파요."

임무랍시고 세워두었던 장벽이 와르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고, 그녀가 고기를 넣어주었다. 긴장해서 고기가 어떻게 목구멍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맛있어요?"

으아악! 이거 뭔 암살기도냐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내가 지천에 널린 마인들의 위협을 되뇌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앞에서 요리하던 쉐프가 끼어들었다.

"하하하! 한창 좋을 때네요! 너무 보기 좋으십니다."

……아저씨는 좀 다물어요.

-얼마나 가관일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역시 탑주입니다.

이제는 에아까지 거들고 있었다.

홍연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쉐프의 짓궂은 말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먹으면서 정신 차리자.'

내가 고기로 포크를 가져가려는데, 옆에서 홍연이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 슬쩍 접시에 놓인 고기와 나를 곁눈질하더니 소심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장담한다.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내가 못 본 척하며 양파를 내 접시에 덜려는데 쉐프와 눈이 마주쳤다. '너 뭐 하냐 등신아'하는 눈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아 씨, 남의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기가 팍 죽은 홍연은 식기도 들지 않은 채 세상 처량한 얼굴로 고기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그녀가 쓰고 있는 토끼귀마저 좌우로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결국 나도 고기 한 점을 집어서 그녀에게 떠먹여 주었다.

그녀는 손으로 살짝 입을 가린 채고기맛을 음미했다.

"음, 사르르 녹아요!"

"맛집이네 여기."

쉐프는 관자와 새우를 담은 접시를 우리 앞에 내려놓고는 즐거운 식사되시라는 인사를 남기곤 떠났다.

그가 물러나자 홍연이 갑자기 심각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초록색 셔츠를 입은 마인. 아까부터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응?"

내가 시선을 돌리려는데 그녀가 눈에 바짝 힘을 주며 말했다.

"응이 아닙니다. 선배가 자꾸 쳐다보니까 의심하잖아요."

이걸 또 내 탓을 하네.

"여기서 들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 아."

곁눈질로 마인 쪽을 훑은 그녀의 동공이 당황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왜 그래?"

"그가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오, 온다고?

정 말이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갑자기 긴장감이 확 몰아치면서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어떻게 하지?'

집중력이 가속되며 두뇌가 폭발적으로 돌아간다.

마인을 없애는 건 간단하지만 사람들에게 들키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두 개의 목숨을 가진 마인은 티나지 않게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때, 나와 같은 고민 중이던 홍연이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다가오는 그녀의 눈에는 결연한 빛이 가득했다.

한쪽 무릎을 의자에 올리고 허리를 낮춘다. 그리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내 입술에 닿았다.

"……."

"……."

나는 그대로 마비됐고, 가까스로 해답을 낸 내 머리는 고장난 듯 새하얗게 변했다.

사람들이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다가오는 마인의 발걸음도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동작이 뭔가 어눌했다. 불안정한 자세 때문에 입술이 떨어졌다. 그 와중에 나를 배려 하기 위함인지 손으로 살짝 입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뒷머리를 붙잡았다.

"……!"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그녀와 밀착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임무의 경계. 검지와 중지를 입술사이에 두고 키스하는 척하며, 우리는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커진 눈망울, 새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 긴박함이 묻어나오는 숨결, 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 고동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진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자 마인은 걸음을 돌려 떠났다.

나는 그제야 몸에 실린 힘을 풀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아, 아으……"

홍연은 어쩔 줄 몰라하며 살짝 눈물까지 고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 뭘 또 그렇게 충격받은 표정이야. 자기가 먼저 시작했으면서.

"다 먹었으면 가자."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는 모면했지만 시선이 몰리는 건 좋지 않다.

우리는 얼른 푸드코트에서 벗어났다.

* * *

한편 유신으로부터 600M 떨어진 지점, 4층 관리소 건물의 옥상에서는 세 명의 헌터가 군용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아카데미에서부터 홍연을 따르는 공인 3급 삼인방이었다.

"크흡……!"

바닥에 망원경을 떨어뜨린 김승현이 주먹을 입안에 넣었다.

"김유신 이 쓰레기 새끼……! 임무를 핑계로 협회장한테 추잡스러운 짓을 해? 저거 분명히 노린 거야! 치밀한 새끼! 역겨운 새끼! 아아악! 저게 얼마짜리 입술인데!"

김승현이 가슴을 쿵쿵 때리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보며, 윤슬아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키스는 연이가 먼저 했잖아요."

"입 다물어!"

김승현이 그녀를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홍연은 대한민국 5천만 남자들의 염원이었다고!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분노를 니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냐?"

"그런 식이면 다른 5천만 여자들은 홍연을 욕하고 있지 않을까요? 김유신도 인기 많던데, 그냥 뭐 끼리끼리 노는 거예요. 솔직히 선배가 연이랑 어울릴 급은 아닌 듯."

"닥쳐어어!"

윤슬아의 극딜에 김승현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열등감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오호승이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임무 중이다. 사적인 감정은 삼가도록."

"……."

갑자기 김승현과 윤슬아가 조용해졌다.

"우린 소풍 나온 게 아니야. 언제까지 아이처럼 굴……"

"오호승 선배."

윤슬아가 손가락을 뻗어 그의 눈을 가리켰다.

"울어요?"

또르륵.

오호승의 눈에서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김승현은 헛웃음을 흘렸고, 윤슬아는 미간을 구겼다. 오호승이 얼른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이, 이건……! 아니다! 오래 망원경을 보다 보니 눈이 건조해져서……!"

"와, 그렇게 연이의 충견을 자처하더니 사실 흑심 있었던 거예요? 더러워."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풋풋한 짝사랑이네요. 오 선배."

"닥쳐라!"

오호승과 김승현이 냅다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윤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이어마이크 신호음이 들렸다.

-여기는 공작. 칼바람 응답 바람.

그녀가 이어마이크를 누르며 말했다.

"네~ 칼바람입니다."

-현재 위험도 2급 마인이 탐지 불가능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무전 내용을 들은 윤슬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남자들을 발로 차면서 이어마이크의 지휘관 채널로 들어갔다.

"연아! 내 말 들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