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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96화 (29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96화

마탑에 귀신이 산다라…….

진짜 1도 생각 못한 이유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하며 물었다.

"어떤 귀신인데요?"

"그러니까……"

내가 의식불명이 된 뒤, 조용희는 마탑에서 수 많은 이상 현상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때는 조용희가 퇴근하려고 1층황금 로비로 내려왔는데, 차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른 여성마법사들과 함께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글쎄 그렇다니까.

-저, 정말요?

-확실해. 진짜 100%야.

그렇지 않아도 다음 날에 만들 필드마법 수식에 대해 차도연과 의논할게 있었다.

조용희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포션 조제실 뒤편으로 다가갔고.

-……!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싸한 기분에 사로잡힌 조용희는 재빨리 로비 쪽으로 도망쳤다. 그때 마탑의 정문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어머, 용희 씨. 퇴근 안 하고 뭐해요?

차도연이었다.

조용희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고 왜 비명이에요? 기분 나쁘게.

-도, 도연 씨! 방금 저기 안에서 길드원 분들이랑 막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뭔 소리예요? 저 퇴근했다가 방금 들어온 건데요? 지갑을 두고 와서.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조용희는 유난히 그런 현상을 자주 경험했다.

차도연은 물론, 김사랑의 목소리, 진보라의 목소리, 소심희의 목소리, 그러고는 심지어…….

"내 목소리도 들었다고요?"

"그, 그렇다니까요! 아니, 목소리뿐이겠어요?"

조용희가 흥분해서 말했다.

"저는 틀림없이 봤습니다! 2층 봉인된 서재에 누워 계셔야 할 대표님이 4층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이, 이건 좀 섬찟하긴 하네.

그때 나는 계속 의식세계에 있었을텐데.

"혹시 다른 사람들도 그런 현상을 보거나 들은 적 있나요?"

"어, 음."

조용희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몇…… 명 정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계속 귀신에 시달리다가 사미아 씨, 차도연 씨 사건 이후로 저도 마탑에 나왔습니다. 한번 이상한 경험을 하니까 계속 헛것이 보여서…… 마탑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전 지금도 마탑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이게 이유였구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모두와 함께 생활해온 마탑 안에서 갑자기 귀신을 보게 됐다라….

"조용희 씨. 평소에 귀신 같은 거 자주 보세요?"

"……예? 아, 아닙니다! 마탑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위 한번 눌려본 적 없어요!"

"마탑에 나와서 암약을 만든 이후는요?"

"증상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날 이후 가끔 헛것을 보기도 해요. 그래도 마탑에 있었을 때보다는 빈도가 줄어들었지만요."

"……으음."

어쩔 수 없지.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나는 조용희에게 생각해 두었던 제의를 했다.

"그럼 암약의 길드 마스터 자격은 유지한 채, 아케인처럼 저희와 연결되는 건 어떤가요? 지원은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이에 조용희도 동의했다. 연봉 및자세한 계약 사항은 정서진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대표님.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조용희는 무학동에 열린 던전 공략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를 현장 근처에 내려다 준 나는 원래 목적지로 이동했다.

바로 근처여서 얼마 안가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정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탑주님."

"오, 일찍 왔네?"

"오전 회의가 일찍 끝나서요. 자, 올라가시죠."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조용희 씨와 이야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서진이 또 은근슬쩍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그의 팔을 붙잡으며 대꾸했다.

"관리자를 해주는 건 아니고, 마탑의 휘하에서 암약 길드를 이끌기로 했어."

"그렇군요. 계약 진행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러면 마인 수사 쪽은……"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려고 했는데, 이상한 이야기 때문에 대화가 산으로 가버렸어."

"이상한 이야기요?"

"응, 마탑에서 귀신을 봤다고 하더라고."

나는 조용희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정서진은 완전히 처음 듣는다는 눈치였다.

"넌 어때? 탑에서 귀신이나 이상한 목소리 같은 거 들은 적 있어?"

"전혀 없습니다."

정서진이 안경을 고쳐 쓰며 차갑게 대답했다.

"귀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다, 단호하네."

"마탑이 폐쇄적이고 오래되어서 그런 오컬트적인 소문이 돌기엔 좋은 장소인 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다큰 성인이 그런 이유로 관리자를 포기하겠다니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 그런 게 문제가 되는 사람도 있는 거야. 특히 마법사는 멘탈이 중요하니까 그런 점은 우리가 양보해 줘야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우리는 복도를 지나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후우우."

오랜만의 대면이라 조금 긴장이 된다. 나는 가볍게 노크를 하고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방긋 웃어 보인다.

"어서 와요. 김유신 헌터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신 대표님."

가람 매니지먼트의 신나라 대표.

5년 만에 보는 그녀는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그녀는 병에 걸려 있었다. 보통 병은 아니고 오버레이 사태 이후 촉발된 완전히 새로운 병이었다.

특히 1년 전 재앙 '유황비'가 한국을 지나간 이후, 그녀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내가 하는 농담에 웃기도 했다.

내 헌터 커리어에서 그녀는 최고의 도우미였다. 그녀만큼 내 일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나는 가람 매니지먼트에 들어간 걸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가람에 복귀하셔야죠."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설 수도 없는 몸으로 복귀해봐야 뭘 하겠어요?"

나는 말없이 가져온 바구니에서 과일 하나를 꺼냈다. 쟁반 위에 놓고 칼로 껍질을 벗겼다.

"어머, 색깔 예쁘다. 처음 보는 과일이네요."

"제가 낫게 해드릴게요."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네?"

"대표님. 제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헌터잖아요."

"그전에요."

"그전이라면…… 마법사?"

나는 잘 깎은 과일에 작은 포크를 꽂아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맞아요. 그러니까 마법 한번 부려볼게요."

"……?"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과일을 받았다. 그러고는 한입 깨물어 먹었다.

"와아아! 뭐예요 이거? 맛있어!"

"많이 드세요."

나와 정서진은 이미 많이 먹었다며 사양했다. 그녀는 과일 하나를 깔끔하게 다 먹었다.

"자, 그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와앗!"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다리를 버둥거렸다.

"왜, 왜 이러세요? 부끄러워요!"

"걸을 수 있게 해드리려고요."

나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그러곤 그녀의 두 다리를 바닥에 대도록 했다.

"아, 안돼요! 못 걷는다니까요!"

"이제 걸으실 수 있어요. 절 믿고 용기를 내주세요."

나는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바닥에 두 발을 딛게 한 채로 몸을 세웠다. 내게 기대고 있던 그녀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발 쪽으로 옮겨가는 게 느껴진다.

이내 그녀는 완전히 내게서 떨어졌고.

"아……"

그녀는 틀림없이, 자신의 두 발로 똑바로 섰다.

"내가 말했죠? 마법이라고."

나는 마술사의 연출을 흉내내듯 두 팔을 펼치고 '짠'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두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아, 이게 어떻게……!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감격에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나와 정서진은 미소 지었다.

* * *

한국 마법 기술원, 카임 (KAIM).

"가, 갑작스럽구나."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카임의 교장은 연신 이마의 땀을 휴지로 닦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하예린이 공손히 앉아 있었다.

"정말 자퇴할 생각이니?"

"네."

하예린은 더 이상 이 학교에서 뭔가를 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건 김유신의 수업으로 3서클에 도달한 시점에서부터 그랬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놓으라는 엄마의 말에 며칠간 수업을 들었지만, 시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다.

"자, 예린아. 잘 생각해 보렴."

교장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졸업까지 1년 남았잖니.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야 진로를 결정할 때 유리하단다."

"진로……"

그 말을 곱씹듯 중얼거리던 그녀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전 천공성주인데요."

잘난 척이니 뭐니를 떠나서 그냥 사실이 그랬다.

이제 그녀에겐 학교 졸업장 따위, 대학 진학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흠흠. 그러니? 결심이 확고해보이는구나. 하지만 사회는 학생인네가 헤쳐가기엔 너무 위험하단다. 널 도와줄 소속이 필요할 거야. 혹시 스카우트 길드에 대해 들어봤니?"

그녀는 말없이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청탁인가.

"TOP 20위안에 드는 길드인데, 신인 헌터 사상 역대급 계약금을 준비해 놓……"

"죄송해요. 가볼게요."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예린아!"

"잠깐 선생님이랑 이야기할까?"

교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교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아마도 교장과 비슷한 이유. 학교에는 스카우트들의 사주를 받은 어른들이 득실거렸다.

교사들도 교사의 위엄이니 뭐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천공성을 이끄는, 어쩌면 세계길드에 들어갈 지도 모르는 사상 최대의 신인 헌터가 시장에 나타났다.

하예린은 교장실 앞에 몰려든 교사들의 외침과 시선을 못 본 척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1층으로 내려와 복도를 걷고 있는데, 구경나온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야, 천공성주가 됐다는 그애."

"어휴, 쿨한 척 극혐."

"선생님들 애원하는 거 그냥 생까는 거 봤어?"

"운빨로 된 주제에 잘난 척은."

하예린은 픽 웃음을 흘렸다. 전에는 저주받은 아이라고 놀리더니, 이번에는 운이 좋다고 욕먹는구나.

시샘과 질투 어린 시선들을 느끼며 그녀는 걸었다. 사실 저 사람들이 뭐라 하든 별로 상관없었다.

"좀 꺼져, 병신들아."

그때였다. 인파를 거칠게 뚫고 다가오는 학생이 있었다.

'……오정호.'

어느새 팔은 다 나았는지 깁스를 푼 모습이었다.

그가 천천히 하예린에게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오정호가 뒤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구경났냐? 이 X발 새끼들아. 꺼지라고!"

그 서슬 퍼런 한마디에 학생들은 주춤하더니 각자의 반으로 도망치듯 흩어졌다.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하예린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오정호를 바라보았다.

"그……"

오정호는 평소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빠르게 '아, 씨'를 반복하던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엔 고, 고마웠다."

그 말에 하예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하려고 그렇게 무게 잡고 난리 친 거야?"

"……아, 시끄러."

"일진이 길가에 떨어뜨린 쓰레기 좀 주웠다고 이미지 세탁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리고."

그녀가 팔을 가리켰다.

"그때 구해준 건 네 팔이랑 쌤쌤으로 칠게. 이제 서로 빚 없으니까 깔끔하게 제 갈 길 가자. 앞으로 제발 마주치지 않길 빌게."

그렇게 말한 하예린이 등을 휙 돌려 걸었다.

"……졸업 축하한다."

오정호가 말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흔들며 교실을 나섰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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