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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95화 (29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95화

SSSSS급 유물이라, 나는 팔짱을 끼고 생명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건 알겠는데, 이건 어디에 쓰는 거야?"

"생명의 나무는 다양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힘은 이겁니다."

에아가 손을 내밀자, 액체가 든 병 하나가 날아와 손안에 착 들어왔다.

"이건 몬스터의 독극물 성분이 들어간 수용액입니다."

"그걸 어쩌려고?"

에아는 병의 뚜껑을 따더니 망설임없이 생명의 나무가 있는 화단에 뿌렸다. 나와 소심희가 기겁한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잠시 지켜봐 주십시오."

화단에 뿌려진 독극물은 마치 스며 들어가듯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머리를 조심해 주세요."

"응?"

가지에서 열매 하나가 뚝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며 내려오는 열매를 붙잡았다.

사과 정도의 크기에 껍질은 난해한 무늬가 있었고, 분홍빛을 띠는 과일이었다.

"이게 뭔데?"

"방금 뿌렸던 독극물의 해독 성분이 포함된 세계수의 열매입니다."

"……뭐, 뭐라고?"

에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번 맛보셔도 좋습니다."

"……."

나는 내 손에 들린 물끄러미 과일을 바라보았다.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 설마 에아가 나를 죽이려고 하겠어? 과감하게 한입 크게 깨물어 먹었다.

"와!"

농밀한 과즙이 펑 터지듯 입안에서 용솟음친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종류의 단맛에 정신이 아늑해졌다. 내 미각이 놀라자빠지고 있다.

"오, 이거 미쳤다. 소심희 씨도 한 번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요!"

"저, 저도요?"

그녀는 엉거주춤 내가 건넨 열매를 받아들더니 조심스럽게 한입 먹어보았다. 그러곤 아까 나와 같은 표정이 되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거 단맛이죠? 어떻게 이런 맛이……"

우리가 열매를 시식하는 사이, 에아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생명의 나무에는 정화효과가 있습니다. 그 어떤 사악한 힘이라도 해독할 수 있죠."

"와! 그러면 이거 만병통치약 같은 거 아냐? 막 암세포를 추출해서 화단에 넣으면……."

"그런 건 안 됩니다. 마나계통인 이계의 질병만 해소가 가능합니다. 생명의 나무 자체가 거대한 마나 덩어리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 과실을 거부들에게 팔아도 돈 벌고, 특히 질병 해독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면…….

"이 위대한 산물을 보고도 속물적인 생각밖에 못하시니 안타깝습니다. 탑주."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책장에서 연구 파일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7층은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감이 안 온다고. 꿀맛 열매 먹는 것 말고는……."

[마력계 공간 필터를 이용한 확산망 구현]

나는 말을 멈췄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펼친 파일에서 실험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정석을 중심으로 아티팩트를 만들고, 이를 파장의 형태로 특별한 확산망을 구축한다는 이론.

나는 진지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연구 결과, 아티팩트만으로는 파장의 유지력에 한계가 있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매질이 필요함.]

[은하력 35034. 10. 017. 연구 중단.]

"……에아."

"네, 탑주."

"지금 당장 연구원 모집 공고 올려줘. 분야는 생물학이랑 기계공학. 국적 불문, 소속 불문. 연봉 두 배, 아니, 네 배를 줘서라도 다 잡아."

소심희가 눈을 끔뻑였고, 에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거야. 마탑에서 후원하는 이계공학과 바이오 신기술 연구라고 해. 과학자들의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는 전부 꺼내써도 좋아."

돈을 좋아하는 과학자들이나 신기술에 흥미가 있는 과학자들 모두 잡을 생각이다. 시간이 없어서 느긋하게 산업 스파이를 가려내지는 못하겠지만 이건 그 어떤 리스크도 감수할 만한 일이다.

"마탑이랑 아케인에서도 공학 관련특성이나 관련 지식 있는 사람들은 전부 차출해서 7층으로 올려보내. 마법사들 중에서도 적임자가 필요해."

"명을 따릅니다."

에아가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다시 파일을 살펴보다가 옆에 민망한 듯 서 있는 소심희를 보았다.

"아, 미안해요. 제가 막 하나에 꽂히면 정신이 없어서……"

나는 말을 멈췄다. 그녀가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표님은, 정말로 대표님인가요?"

순간 섬찟한 느낌이 몸을 타고 흘렀다.

"네? 아, 네. 정말 전데요."

그녀는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분위기가 풀렸다. 정말 그걸로 된건가? 나는 얼떨떨해서 물었다.

"왜요? 제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뇨,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5년 만에 돌아왔으니 그런 의문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이번 레드게이트에서의 활약이나, 휴면에서 깨어난 에아가 내 명령에 따르는 것으로 사람들은 그런 의문 자체가 불식된 상황이다.

가짜가 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소심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좀 더 친해져야겠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소심희 씨는 뉴욕의 글로벌 길드 '가디언'에서 활동하고 있죠? 혹시 마탑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하다면 돌아가고 싶어요."

다행히 협상은 잘 풀릴 것 같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은 모양.

공인 2급이자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는 그녀가 마탑에 들어와 준다면야 상당한 전력이 생기는 셈이다.

그녀 또한 놓칠 수는 없다.

"연봉 인상은 물론, 위약 문제도 저희가 어떻게든 해드릴게요. 그럼 소심희 씨가 돌아오시면……"

나는 잠시 빈 자리를 고민하다가 말했다.

"4층 기상설계국과 6층 마나광산. 어느 쪽을 더 선호하세요?"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제가 관리자를 하는 건가요?"

"그럼요! 소심희 씨쯤 되면 당연히 관리자 정도는 맡아주셔야죠."

"제가 어떻게 그런 요직을……"

그녀는 자신감이 없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불태워 버리던 그 위용있는 황금 드래곤의 모습은 찾아 볼수 없고, 여전히 소심한 성격이었다.

"소심희 씨의 커리어를 생각해 봐요. 5대 마도사고, 세계 최강의 메타모포시스 능력자잖아요. 누구든 소심희 씨와 일하는 걸 영광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

그녀는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김사랑 씨랑 조용희 씨는요?"

"두 사람에게도 관리자 자리를 권유할 겁니다. 김사랑 씨는 4층이 좀 더 편하다고 했고, 조용희 씨는 내일 물어보려고요."

"그, 그럼 저는 4층은 사양할게요."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제가 변신 마법 관련 계통만 익혀서 자신이 없어요. 필드 마법은 김사랑 씨가 저보다 훨씬 잘 해요."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소심희와의 면담도 마쳤다.

그녀는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도망치듯 떠났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5년간 성격적으로 가장 변함없는 사람이었다.

"탑주."

허공에서 에아가 나타났다.

"서기관과 함께 연구 TF팀 공고를 올렸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이 마련되는 대로 인력충원에 들어가겠습니다."

"응, 수고했어."

나는 근처에 보이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에아가 내 옆으로 살랑거리며 날아왔다. 그녀가 가져온 쟁반 위에는 간식이 있었다.

오늘의 간식은 우엉칩이었다.

"역시 난 네가 없으면 안돼."

내가 바삭한 우엉칩을 깨물어 먹는 사이 그녀가 물었다.

"소심희는 어때 보였습니까?"

"글쎄."

나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대표님은, 정말로 대표님인가요?

그렇게 물으면서 나를 보던 그녀의 얼굴이 좀 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이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의심? 분노? 슬픔?

아니다.

그걸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공허'에 가까웠다.

"으, 모르겠다아. 5년 공백기 동안 있었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궁금한게 있습니다. 탑주."

그녀가 말했다.

"진보라, 정서진, 은솔. 세 사람이 마인이 아니라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사미아와 4층팀 아닙니까? 왜 그들에게 다시 요직을 주시려는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즉시 전력감 확보 목적이 가장 크지."

내가 우엉칩 선반에 손에 뻗으며 말했다.

"생각해봐. 당장 6개월 뒤에 네메시스라고. 사람 한 명 한 명 발굴해서 키워 쓰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4층팀은 실력도 검증됐고 기존 멤버들과의 케미도 좋잖아. 굳이 다른 사람 쓸 이유가 없는 거야."

"그렇군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멀리 보내는 것보다 곁에서 두면서 관찰하는 게 내 입장에선 더 알아내기 편해."

우엉칩을 입에 넣고 씹자 와삭하는 소리가 났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에아. 네메시스가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찾아 낼 테니까."

* * *

간만에 드라이브다.

나는 마탑에서 지원해 준 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다. 운전기사가 운전대를 잡았고, 뒷좌석에는 나와 조용희 둘이서 타고 있었다.

"조용희 씨가 마탑에 돌아와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다른 멤버들과 똑같은 제안을 했다. 조용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이미 소속이 있는데……"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시 언급하는 거지만 조용희는 '암약'이라는 길드를 세운 길드 마스터다.

"암약도 마법사 길드라고 들었는데, 저는 암약의 전원을 마탑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고 층 하나를 내어드릴 의사도 있습니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어, 음……"

그래도 소심희를 먼저 만난 뒤에 조용희를 만나니까 이런 타입의 인물들을 상대하는 것도 조금 할 만해졌다.

나는 그가 넉넉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럼 소심희 씨와 김사랑 씨는……"

"네. 두 분 모두 마탑으로 돌아오시기로 했어요."

조용희는 갈등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눌렀다.

"지금 당장 답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대답해도 좋아요."

"아, 넵!"

"아니면 혹시, 조용희 씨가 망설이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만약 조용희가 자신이 설립한 '암약'에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 남고 싶어 하는 거라면, 나는 차선책으로 통폐합이 아닌, 아케인처럼 마탑의 휘하길드에 넣을 생각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동맹 길드로라도 묶어둘 생각이다.

조용희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저도 마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진심입니다."

"네."

"그, 그런데……"

그가 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두어번 흔들었다. 엄청나게 고민이 되는 것 같다.

"……진짜 말해도 되나요?"

"그럼요!"

"들으면 웃으실 것 같은데. 바보같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안 웃어요. 약속할게요. 어떤 사소한 문제든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

나는 온 안면 근육을 동원해 오픈마인드와 포용성을 가진 상관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망설이던 조용희는 결국 털어놓았다.

"……마탑에 귀신이 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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