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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92화 (292/337)

나 혼자만 마탑주 292화

['전설이 돌아왔다!'마탑주 김유신의 화려한 복귀전!]

["소문만 무성하던 천공성을 움직인 것도 김유신이었다!"누리꾼 열광!]

[재앙전의 MVP는? 국민의 96%'김유신' 연호!]

[김유신의 데뷔전에 외신들도 감탄"전설의 재림", "올 세기 가장 극적인 드라마"]

[영웅은 위기의 순간 돌아온다! 김유신은 어떻게 의식불명 상태를 극복했는가?]

나는 찜질방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다.

이곳에는 추운 날씨라 쓰지 않는 야외 수영장이 있고, 바비큐를 구워먹을 수 있는 정자도 있다. 나는 마룻바닥에 앉아 휴대전화를 끄적거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찬양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던 내게 다시 한번 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동료들과도 재회했다. 이런 해피엔딩이 어디 있나 싶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다.

안줏거리로 가져온 꿀땅콩을 입에 넣고 와그작 소리가 나게 씹었다.

그리고 소주 한 잔.

오징어 몸통을 쭉 찢은 다음 고추장 소스에 듬뿍 찍어 질겅질겅 씹어댔다.

또 한 잔.

좀 궁상스럽나?

아, 뭐 어때.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겠다는데.

또한 잔을 비웠다.

이제 해가 떠오르며 날이 밝아오고 있다. 대도시의 옥상에서 일출을 보는 것도 나름 각별하다. 내가 다음 잔을 채우려는 찰나.

"선배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진보라였다.

"어, 보라야. 언제 왔어?"

"방금 왔어요."

나는 깔끔하게 막잔을 비워냈다.

그러곤 머리 위로 잔을 들어 올려탈탈 터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 컵과 과자 부스러기들을 모아 옆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럼, 갈까?"

"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복귀는 조금 뒤로 미루셔도……"

"괜찮아, 괜찮아."

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들겼다.

"나 의식세계에서 오랫동안 있었다니까. 이 정도로 흔들릴 만큼 멘탈이 약하진 않아."

진보라가 걱정할 것 같아서 센 척 한번 해봤다.

뭐, 예전이라면 과몰입&일체화 특성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했겠지만, 그때에 비해 좀 더 나아진 건 사실이기도 하고.

나는 진보라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마인 건은 다른 사람들한텐 이야기 안 했지?"

"네."

"계속 비밀로 해줘."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너무 한 것 같아요."

"뭐가?"

"그냥 모든 게요. 5년 만에 모두와 힘들게 재회했는데 제대로 마음 터놓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쭉 의심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오래가진 않을 거야."

나는 찜질방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그녀에게 손짓 했다.

"옷 갈아입고 나올게. 밖에서 기다려 줘."

"네. 기다릴게요."

익숙한 공간을 걸었다. 한동안 내베이스캠프가 되어준 이 찜질방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뒤숭숭했다.

캐비닛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아공간 주머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계산을 하러데스크로 향했다.

"어이구, 총각! 오늘은 일찍 가네?"

수건을 개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던 분이다.

"네, 그렇게 됐네요."

나는 무릎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옆에서 있는 아이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민정이도 안녕?"

찜질방 주인아주머니의 딸이 졸린 눈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실은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작별인사 드리려고요."

"어머나!"

그녀가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취업한 거야? 아이구! 잘 됐네, 잘 됐어!"

"네? 아…… 뭐, 그런 셈이죠."

"젊은 총각이 찜질방 다니면서 라면만 먹는 게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 아이구, 아이구."

그녀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총각은 어딜 가도 잘 할 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잖아. 찜질방 어르신들에게도 깍듯하고, 뒷정리도 항상 깔끔하고, 다리 불편한 아저씨도 나서서 도와드리고! 총각처럼 바지런한 젊은이가 별로 없어. 어디에 취업했는진 모르겠지만, 총각은 어딜 가도 잘 할 거야! 내가 보증해."

"……."

따뜻했다.

그냥 찜질방 와서 편히 쉬다 가는 것뿐인데, 이렇게 큰 응원을 받아도 되나 싶다.

"아이구, 또 주책."

아주머니가 눈가를 소매로 훔쳤다.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힘내, 총각! 재앙이니 뭐니 시끄러워도 아직 세상은 살 만 해. 살아야지 응!"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끝이 떨렸다. 사소할 수도 있는 그런 대화였지만, 내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됐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고개 들고. 어깨 펴고!"

"나중에 또 놀러 와! 오빠!"

나는 찜질방 아주머니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아이에게도 손을 흔들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쓴 물의 장막을 벗겨내고 계단을 내려가자 진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정서진이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시죠 탑주님."

"응."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차에 올라탔다.

서울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 * *

정서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상계동으로 들어왔다.

아케인에도 한번 들릴까했지만, 괜히 연락 없이 나타나면 실례일 것 같아서 바로 마탑으로 향하기로 했다.

통제구역으로 들어왔다. 한때 자욱한 숲이었던 곳이지만 5년 만에 실내로 변했다. 벽 너머의 몬스터들도 안전이 검증됐다.

이제는 차를 타고 곧장 통제구역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차량 전용으로 만들어진 터널을 쌩쌩 달리면, 그끝에 안개 결계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차량 출입 금지구역이다. 우리는 직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개 속을 걸었다.

얼마 안가 웅장한 마탑의 모습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가시죠."

"그래."

나는 오른쪽에 정서진, 왼쪽엔 진보라를 대동한 채 마탑의 정문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댔다.

두 발이 떠오르며 안으로 쑥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마탑 안으로 들어왔다.

퍼엉! 펑!

"마탑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종이 폭죽이 터지고 꽃장식이 하늘하늘 내려온다.

나는 황금 로비에 한가득 들어찬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로비가 꽉 차다 못해 위쪽 계단까지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가장 앞에는 은솔과 사미아, 소심희, 김사랑, 차도연의 모습이 보인다.

"오빠야다! 왜 이렇게 늦은 거 야?"

쪼르르 달려와서 내 팔에 매달린 은솔이 애교 섞인 투로 말했다.

"복귀를 환영한다. 김유신 헌터."

"고마워요. 사미아."

"우린 여기 있어도 되나 몰라? 마탑 소속도 아닌데."

김사랑 이 헤실헤실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차도연은 그녀의 팔꿈치를 툭 치고는 앞으로 나왔다.

"전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대표님."

"아, 도연 씨…… 아니지, 이제는 차장관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소심희와 김사랑도 한마디씩 주고 받았다.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은솔의 안내에 따라 앞으로 걸었다.

계단이나 벽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복귀를 환영합니다!', '보고 싶었어요 김유신 대표님!'같은 말들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좌우에는 세계 곳곳에서 마탑에 보내온 화단들로 가득했다. 알케미아 사업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에는 세계길드의 샴과 마리가 보내온것도 있었다.

폭죽은 아직도 터지고 있다. 마법사들은 각자의 개성을 살려 특수효과를 찍어냈고, 몇몇은 열심히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때였다. 건물 천장에 해가 떠오른 듯, 눈부신 빛이 흘러나오며 에아가 등장했다.

그녀를 처음 본 새내기 마법사들은 놀란 탄성을 토해냈다.

"어서 오세요. 탑주."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주었고, 그 끝에는 마탑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호화로운 9층 케이크가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탑주의 복귀 기념 케이크입니다."

생일 케이크도 아니고 복귀 기념케이크는 또 뭐야.

나는 뒤따라 걸어오는 진보라에게 눈길을 주었다.

"네 기획이지?"

"오호호! 직원들의 마음이 감동적이네요!"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나는 떠밀리듯 케이크 앞으로 걸어갔다. 9층 모두 초가 한가득 꽂혀 있었다.

……이걸 다 불어서 끄라고? 숨차죽겠네.

"자, 불어요 선배님!"

진보라가 손뼉을 치며 관객 환호를 유도했다. 곳곳에서 불어라! 불어라!

하는 외침들이 쏟아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앞에 보이는 촛불을 불었다.

그러자 누군가의 바람 마법이 지나가며 아래쪽의 초까지 타이밍 좋게 꺼뜨려 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즐거운 환호성과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탑주님."

정서진이 공손히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마이크를 받아들고 흠흠 목을 풀었다. 그것만으로 곳곳에서 탄성이 일었다. 은솔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김유신입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

"이 자리를 빌려, 제가 없는 5년간 마탑을 지켜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시선을 움직여관리자들과 4층 팀의 모습을 한번 눈에 담았다.

"제가 왔다고 당장 많은 게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함께 구멍 난 부분을 메워 나가죠.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힘을 합쳐 다 같이 위로 올라갑시다."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나는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 마탑, 조직의 최우선 목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 나를 촬영하고 있는 외부 카메라들이 보인다.

처음엔 우리끼리 작은 연회 자리를 마련한 거였는데, 일부러 내가 정서진에게 말해서 외부 카메라를 들이도록 했다.

내 발언은 전 세계 생방으로 중계된다.

"우리 마탑의 최우선 과제는 6개월뒤에 일어날 최악, 최흉의 11랭크 재앙 '네메시스'를 막는 겁니다."

마법사들이 시선을 교환하며 웅성거렸다.

"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예언 능력자 '오라클'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예언은 한 번도 빗나간적이 없죠. 연맹과 각 정부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지만, 다들 그 사실을 숨기기 급급한 것 같더군요. 오라클도 그 사실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내 시선이 카메라를 향한다.

"지금은 숨기는 게 만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온 인류가 힘을 합쳐 예언된 종말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 마탑은 기꺼이 선봉에서 네메시스와 싸울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진짜 목적이다.

"이건 선전포곱니다. 지금부터 재앙 네메시스의 공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세력은 전부 마탑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절 원망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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