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91화
쿠르르르르릉!
서울 전역을 먹구름이 흉흉하게 뒤덮었다. 나는 데바의 눈으로 먹구름 너머 흐릿하게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읽을 수 있었다.
전격계 5서클 마법인 <썬더스톰>.
반경 수백 미터를 벼락으로 태워버리는 위력적인 대마법을, 나대용은 한때 같은 동료들에게 겨누고 있었다.
"사라져라."
나대용이 팔을 내렸다. 세상이 하얗게 일변하며 수백 줄기의 전격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
모두가 움찔하며 몸을 낮추었다.
물론.
"음?"
아무도 맞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의 머리 위로 투명한 마나 장막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에인션트 베리어>
7공정으로 '방패형 유물'을 임시창조하는 마법이다.
모두가 눈을 뜨고 신기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대용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럴 리가! 스승님의 마력은 분명……!"
나는 웃는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차도연이 숨을 헐떡이며 내 어깨를 짚고 있었다.
그녀의 고유 능력인 '마나 링크'는 자신의 마나를 타인에게 창고처럼 공유하는 능력이다.
나는 그녀의 마나를 빌려 7공정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아직!"
쿵! 나대용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직 안 끝났다!"
다시 한번 5서클의 썬더스톰이 장전을 준비한다.
먹구름에 전류가 모이고 있는 그때, 하늘로 날아가는 두 발의 미사일이 보였다.
미사일들은 대류권에서 폭발했고, 그 안에서 나온 파장이 먹구름을 깨끗하게 흩뜨려 버렸다. 다시 맑은 밤하늘이 드러났다.
"두 번은 안 당해."
아이언 골렘에 탄 은솔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라고 당신에 대한 대책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
"이만 포기하십시오. 나대용 씨."
정서진이 다가왔다.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는 5서클 마법을 날린 이상, 당신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하하하!"
나대용이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그럴까?"
다가가던 정서진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나대용의 몸에서 상상 이상의 마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콰릉!
뻗어 나간 전격이 정서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까지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차도연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대용 씨! 이제 그만해요! 그 기술을 쓰면 당신도……!"
나도 이제야 나대용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에 본인도 감당하기 힘든 양의 전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오버로드 - 100%>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대용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스승님. 불초 제자가 찾아 뵙겠습니다."
번들거리는 눈, 올라간 입꼬리.
그야말로 광기에 잠식당한 마인 그자체다.
"저 새끼 막아!"
아이언 골렘에 탄 은솔이 달려 들었다. 팔에서 솟아난 소드 디바이스를 휘두르기도 전에, 나대용의 팔에서 쏟아진 전격에 나가떨어졌다.
골렘에 타고 있던 은솔이 강제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솔아!"
"저 인간이 정말……!"
이번엔 김사랑이 나대용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케아노스>
쏴아아아아!
나대용의 주위로 4서클 물의 거인들이 달려들자 나대용은 파리 쫓듯 무심하게 팔을 휘둘렀다.
전자기 펄스가 원의 형태로 퍼져나가 거인들을 파괴하고 김사랑 마저 날려 보냈다.
"……그만해요 형."
뒤따라 뛰어들어온 조용희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번엔 독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넘실거리며 몰아쳤다.
<오버로드 - 140%>
<가이아>
나대용이 밟고 있는 지면이 솟구쳐 방주의 형태로 변하더니, 쏟아지는 독의 파도를 그대로 타고 전진했다.
조용희의 입이 벌어졌다.
"이중 속성……!"
전격계에 대지계.
현대 마법계에서 이중 속성은 비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대용은 더 강해지기 위해, 새로운 속성을 추가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6공정, 혹은 6서클 마법을 익히려면 엄청난 시간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나조차도 독학이 아니라 6층 시련에서 선대 마탑주들에게 전수받았으니까.
아무런 전수도, 가르침도 받을 수 없었던 나대용은 5년이란 시간 동안 6서클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 대신 서브 속성을 본인의 전격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정말로 대단한 노력파기는 하다.
후우우우웅!
가이아로 만든 방주가 거침없이 전진하는 그때, 골드드래곤 소심희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브레스를 발사했다.
방주가 황금 브레스가 터져 나갔지만, 재빨리 방주에서 뛰어내린 나대용이 팔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주피터 (Jupiter)>
콰릉!
콰르릉!
다시 한번 하늘에서 4서클의 전격마법이 연달아 쏟아져 내렸다. 그간의 싸움으로 체력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소심희는 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드래곤 형태가 풀려 버렸다.
지상에 내려온 나대용은 고통스러운 함성을 지르며 계속 달렸다.
그의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오버로드의 반동이 시작되며 온몸에 스파크가 튀고, 피부가 잿더미처럼 새까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물러나라. 나대용 헌터."
사미아가 뒷짐을 지고 걸어와 내 앞에 버티고 섰다. 나대용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X까! 이 새끼야아아아아아!"
퍼억!
나대용이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 금속봉이 텔레포트된 것이다.
"다음은 심장이다."
"사미아아아아아아아아!"
<오버로드 - 160%>
팔을 뻗는 동작도 없이 나대용의 온몸에서 전격 덩어리가 다발로 날아갔다. 사미아는 자신의 앞으로 워프를 열어 전격을 통과시켰다.
콰릉!
이번에는 위에서 전격이 내리꽂혔다. 사미아가 머리 위에도 워프를 열어 막아냈지만 어느새 하늘에 무수한 마법진들이 떠 있었다.
<주피터 (Jupiter)>×10
콰릉! 콰릉! 콰릉! 콰릉! 콰릉!
방어를 포기하고 텔레포트를 연달아 시전하며 이탈하던 사미아가 결국 전격의 속도를 따돌리지 못하고 격추당했다.
"허억! 허억! 허억!"
나대용이 입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사미아도 그냥 당하지 않은 듯, 그의 어깨에 긴 봉이 박혀 있었다.
나대용이 몸에 박힌 봉에 손을 올렸다. 금속계 마법이 발동해 반으로 뚝 갈라져 떨어졌다.
"……흐흐! 흐흐흐흐흐! 제가 갑니다! 스승니이이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나대용은 살벌한 광기를 뿜어냈다.
"선배님 피하세요!"
"막아!"
걸어가는 나대용의 몸에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고압 전류망이 펼쳐졌다.
관리자들의 마법이 쏟아졌지만 어떤 공격도 반응하고 파괴할 수 있었다. 진보라가 던진 포션들은 중간에 터져 버렸고, 김사랑의 워터캐논도 무력화됐다.
부우우우웅!
그리고 이 막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 정서진이 몸으로 돌파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대용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까드드득!
두 남자의 주먹이 부딪치고, 나대용의 팔에서 까드득! 소리가 났다.
주먹에서부터 어깨까지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됐다. 철인을 상대로 근접전은 미친 짓이다.
"……흐!"
그때였다. 나대용의 주먹과 팔을 지면의 사철들이 올라와 뒤덮기 시작했다.
"내가 왜 현대 최강의 마법사인지."
나대용이 주먹을 펼쳐 정서진의 주먹을 붙잡았다. 정서진의 팔이 부르르 떨리며 밀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모르겠냐!"
꽝!
마찬가지로 사철로 뒤덮인 나대용의 이마가 정서진의 머리를 받아버렸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무력화된 정서진에게 전격이 쏟아졌고, 수백 미터나 날아간 그의 몸은 곧 보이지 않게 됐다.
"허억! 헉!"
나대용이 피를 질질 쏟으며 다가왔다.
오른팔은 완전 골절, 어깨와 허벅지에 관통상, 그 외에도 무수한 상처들과 오버로드의 반작용까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스승님."
<오버로드 - 200%>
한계치를 넘어선 나대용의 몸에서 거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가 하늘로 떠올랐다. 오른팔을 뻗자 신체 내부에서 흐르는 전류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번개들이 한점으로 모인다.
<나대용 오리지널 - 묠니르(Mjolnir)>
나대용보다 더 큰 순수 한 번 개 뭉치가 그의 손에서 현현한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차도연을 돌아보았다.
"이제 됐어요. 도연 씨는 물러나요."
"아, 네!"
차도연이 물러나고, 나는 준비한 마법을 펼쳤다.
<데바스타 - 체인홀>
허공의 마법진에서 일어난 검은 공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하하하하! 바로 그 체인홀로 상대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나대용이 괴성과 함께 묠니르를 날려 보냈다. 나는 체인홀을 발로 차올려 허공에 띄우고는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오른발에 데바스타를 걸고, 허리를 비틀어 힘껏 체인홀을 밀어 찼다.
데바스타가 발동하며 쏜살같이 날아간 체인홀과 내려오는 묠니르가 허공에서 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거대한 두 대마법의 충돌로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주위에서 멀어졌다.
'뭐야? 왜 흡수가 안 되는 거야?'
-과다한 마력 에너지 반응! 체인홀의 내부 용량이 부족합니다!
검은빛과 노란 빛이 서로 힘을 흩뿌리더니 서서히 검은색 쪽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이내 체인홀이 파훼되고, 전격의 흐름이 지상으로 내려온다.
"하하하하하하! "
나대용이 광소했다.
"내가 이겼습니다!"
"……벌써 가르쳐 준 거 다 까먹었어요?"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상대를 속여라."
나대용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보다 빠르게, 나는 검은 연기를 이끌고 하늘에서 나타나 다리를 뻗었다.
<데바스타>
쩌어어어엉!
나대용의 몸이 꺾이며 자신이 날린 전격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지상에서 있는 모습은 물로 변해 사라진다.
이어지는 굉음과 폭음.
전격이 숲을 찢으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는 감전되지 않도록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 채 지면으로 내려왔다.
지면에는 전류가 파직거리고 있고, 묠니르가 내려온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 구덩이 한복판에 나대용이 쓰러져 있다.
"허억……! 쿨럭! 쿨럭!"
나대용이 입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흐흐흐! 이래 봬도 전격 마법사입니다. 전격 데미지는 상쇄되……"
털썩.
그가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격 데미지가 문제가 아니다.
200% 오버로드를 사용한 대가가 그의 온몸에 자리하기 시작한다.
"대용 씨."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엄살 말고 일어서세요. 이제 변해야 하지 않습니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차라리 그가 마인이기를.
몬스터로 변해주기를.
하지만 그의 눈이 풀리기 시작한다. 전의는 꺾였다. 아까와 같은 광기도 없다.
불안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마인이라면 이제 변해야 할 차례잖아.
2차전으로 가서 제대로 나와 싸워야 하잖아.
그러니 제발.
"일어나라고!"
다가온 내가 멱살을 붙잡아 흔들었다. 나대용은 힘겹게 미소 지으며 떨리는 팔을 뻗었다.
"왜 이렇게……"
온몸이 잿더미가 된 그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
이내 팔에 힘이 빠지며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나대용은 끝내 몬스터로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