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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89화 (289/337)

나 혼자만 마탑주 289화

"서, 선배……!"

그녀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그와 동시에 얼굴은 새로운 한계치를 갱신하듯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꿈이었으면 하는 거야? 그럼 그냥 확 사라져 버린다?"

"안돼요!"

누워 있던 환자가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어 내 몸을 붙들었다.

"부탁이에요. 아무데도 가지 말아주세요!"

다들 기겁한 반응을 짓는다.

윤슬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고, 오호승은 마시던 생수를 바지에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아, 알았어."

……그보다 너무 가깝다.

내 어깨를 으스러질 정도로 꽉 붙잡은 그녀는 뒤늦게 동료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괜히 윤슬아쪽을 흘겨보았다.

"뭐 하십니까. 보고하세요. 윤슬아3급."

"아, 응!"

그녀가 빠르게 현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싸해진 얼굴로 무전을 들었다.

"사령관입니다. 책임자 연결해 주십시오."

-추, 충성! 예, 알겠습니다!

곧 그쪽 구역의 선임 헌터가 연결됐고 그녀는 영혼까지 털기 시작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처리하십니까.', '그런 구더기 같은 마인드로 무슨 헌터를 하겠단 겁니까.'

등등.

살벌했다. 차량의 분위기는 싸해졌고, 차에 탄 헌터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각 잡고 앉았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 보고로 넘어갈 때마다 그녀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연아."

보다 못한 내가 그녀의 정수리를 툭 건드렸다.

"너 아직 부상자야. 너무 열 올리면 몸에 안 좋으니까 천천히 해."

"……."

무전기를 내려놓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

"……."

지켜보던 헌터들이 또 입을 벌린다.

아니, 이게 왜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

"호호호! 연아."

윤슬아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너도 결국은 한 명의……"

쾅!

홍연의 다리가 윤슬아가 기댄 목받이를 반쯤 박살 내며 지나갔다. 윤슬아가 어버버하며 몸을 떨었다.

"임무 외의 잡담은 삼가십시오."

그러는 그녀의 얼굴은 화가 났다기 보다는 한계까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다리를 슬그머니 내리고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5년 동안 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으."

그때 홍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왜 그래?"

"마나가……"

"이런! 두 분 다 마력을 쓰시면 안됩니다!"

오호승이 말했다.

"두 분 모두 심각한 마나고갈 증상이라 슬라임 성분의 수액을 맞으셨습니다. 몸에 마력이 재생 중인 상태에서 갑자기 마나를 운용하면 역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네 바보야."

그녀는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선배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5년 동안 잠들어 계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제야 그게 궁금해졌니."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동안 암흑 마법의 부작용으로 의식이 없었던 거고, 의식세계에서 시간을 들여 돌아왔다는 것을.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100%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뭐, 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넘어가자.

"좀 쉬자. 너도, 나도."

내가 뒷머리를 받치며 말했다.

"그렇게 싸우고 두 시간밖에 못 자면 진짜 골병 나."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다시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금방 새근새근 숨 소리가 나며 곯아떨어졌다.

프로는 잠도 잘 잔다더니.

나도 슬슬 눈을 붙이려 고개를 돌렸다.

윽.

눈이 부셨다.

옆 창가에서 차의 헤드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보는데 차량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쓰읍! 모두 조심해!"

마력을 일으킬 수 없던 나는 옆으로 가서 홍연을 꽉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쾅!

충격이 몸을 타고 흐르며 윙윙거리는 이명이 귓가를 울린다. 짧은 순간, 우리가 탄 자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내 나뭇가지들이 차체를 파바박 긁거나 유리창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린다.

아래로 떨어진 차가 바닥을 크게 한번 박고는 붕 떠올라 다시 몇 바퀴를 굴렀다.

쿠구구궁!

……겁나게 아프다.

속에서 구토감이 치밀었다. 흙냄새와 탄 냄새가 동시에 코를 찔렀고, 시야는 좌우로 흔들리며 흐릿해진다. 이마가 깨졌는지 피도 흐르는 것 같다.

옆을 보니 홍연은 정신을 잃었고, 윤슬아도 마찬가지다. 오호승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고 있고, 운전사는 기절했다.

-탑주! 탑주! 괜찮으십니까?

'응, 그래. 어떻게든 살아 있네.'

나는 힘껏 차 문을 발로 찼다.

젠장, 마력을 쓸 수 없으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제가 하겠습니다."

오호승이 나섰다. 그는 앞 좌석 차문을 뜯어내고 홍연과 윤슬아를 번쩍 들어 양팔에 꼈다.

"혼자 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어떻게든."

나는 비틀거리며 차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을 옮긴 오호승이 다시 돌아와 운전수와 뒷좌석 헌터들을 데리고 오려는데-

콰르르릉!

하늘에서 한 줄기 전격이 떨어진다. 오호승이 몸을 던져 피하고 전격에 맞은 차량은 그대로 폭발했다.

"……아."

아직 사람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기 계셨습니까."

하늘에서 로브를 펄럭이며 한 남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 흉흉한 눈빛, 두팔에는 지직거리며 전류가 흐르고 있다.

"불초한 제자가 스승님을 뵙습니다."

나대용은 내 앞에 내려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끓어오르는 수만 가지 감정을 추스른 다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말했다.

"대용 씨.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

나대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예를 취한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커다란 키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뭘요?"

"마탑주 자리를 포기해 주십시오."

"……."

일말의 기대감마저 와장창 깨져 나가는 기분이다.

결국 진짜 그거였어?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킥!"

손가락 사이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풉! 키킥……! 푸훕! 크큭! 푸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몸을 비틀고 옆으로 몇 발짝 휘청거리며 계속 웃어댔다.

나대용은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 보았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쉬며 손바닥을 내렸다.

"……이거 완전 개또라이 새끼 아냐?"

나대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개새끼도 지 거두어준 은혜를 안다는데, 아주 그냥 개만도 못한 새끼가 다 됐네."

나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느끼며 그를 노려보았다.

"대용 씨. 그렇게 마탑주 자리가 욕심났어요?"

"……."

"이제 고등학생밖에 안 된 마나의 아이한테 필드마법을 걸어놓고, 심지어는 내 주위 사람들까지 죽이거나 입막음하면서? 당신 그거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어?"

"원래 마탑주 자리에 큰 욕심은 없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만, 이제 와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온다.

에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탑주! 전파 방해 필드마법, 마력파장 변환 필드마법, 좌표 혼동 필드마법이 근방에 중첩 발동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데바의 눈으로 보니 상공의 마력이 끔찍한 모습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4층 관리자가 이래서 무섭다. 그리고 나대용은 진심이었다.

"헌터님, 물러서십시오!"

오호승이 헌팅 디바이스를 뽑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협회장님과 윤슬아를 데리고 먼저……"

그렇게 말하던 오호승의 몸이 날아온 전격에 맞아 날아갔다.

나무 몇 그루가 박살 나더니 가시거리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

"쓰레기 같은."

나대용이 팔을 내렸다.

콰릉!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오호승이 있던 자리에 처박혔다.

콰릉! 콰릉! 콰릉! 콰릉!

번개가 연이어 작렬하며 주위가 하얗게 변했다가 검어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만!"

내 외침에 나대용이 번개를 떨어뜨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본다.

……이 새끼 눈탱이가 맛이 갔다.

"역시 마인이 된 겁니까."

"스승님이 무엇을 어떻게 의심하든,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가 두 팔을 벌렸다. 그의 온몸이 파직거리며 전격이 휘몰아치는 모습은 소름 끼쳤다.

"자, 어느 쪽이 마탑주의 자리에 더 어울리는지 결판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어이가 없다.

재앙 다 끝내고 힘 다 떨어진 나를 노리는 주제에 결판은 무슨 결판이야.

그냥 놈은 스스로만 납득하면 만사오케이일 것이다.

'에아. 시간 좀 끌었는데 이제 마력을 쓰면 안 될까?'

-안 됩니다!

그녀가 얼른 말했다.

-마력을 얼마 쓰지도 못할 뿐더러 당장 역류가 진행될 겁니다! 무리하는 것을 떠나서 안 쓰니만도 못합니다!

미치겠다. 진짜.

그렇다고 이대로 당해줄 수도 없고.

"보여주십시오. 스승님의 힘을."

그의 팔에서 전격이 쏟아진다.

피하는 건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앞으로 홍연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부웅!

홍연이 검을 그었다.

적광기가 전격을 갈랐지만, 그녀가 왈칵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나를 써서 마나역류가 일어난 것이다.

"홍연!"

"…… 괜찮습니다."

그녀가 팔을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싸늘한 얼굴의 나대용이 다시 한번 전격을 날렸고 그녀가 그 전격을 베었다.

그러나 마나역류가 진행되며 아예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넌 나서지 마! 이건 마탑 내부의 문제야!"

"두 번 다시는……"

그녀가 떨리는 두 다리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선배를 잃고 싶지 않아요."

나대용은 콧방귀를 뀌며 전격을 날렸다.

콰릉!

그녀가 악착같이 검을 휘둘러 세번째 번개를 베었다.

콰릉! 콰릉! 콰릉!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막았지만 여섯 번째 공격에 뚫린 그녀가 검을 놓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공인 1급이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는 건 각별하군요."

나대용이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의 팔에 전격이 살벌한 기세로 휘몰아쳤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두 팔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마탑주는 당신입니다. 나대용 씨."

나대용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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