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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86화 (28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86화

"먼저 간다."

유신이 지면을 딛고 뛰어올랐다.

그의 몸에서 흩어져 나간 깃털들이 자아가 있는 것처럼 나아가 유신의 앞에 '가속의 진'을 펼쳤다.

그 진들을 연달아 통과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의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유신은 악마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다.

그그극!

악마의 팔 관절이 괴기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유신은 오른팔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로 깃털들이 샘솟아 날아갔다.

깃털들은 증폭의 진들을 펼쳤고 후속으로 나온 깃털들이 줄을 서며 마법진들을 그래픽처럼 수 겹으로 펼쳐냈다.

순식간에 20겹의 버프 마법진으로 구성된 피스톨이 완성, 그리고 이제 막 탄환들이 총신을 통과하고 있다.

<김유신 오리지널 - 아마겟돈>

총신을 통과한 탄환, 아니, 깃털들은 유성이 되어 악마의 몸에 쏟아져 내렸다.

공중에서 가속하는 과정을 생략했지만 가장 빠르게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흠.'

자욱한 폭발 연기 속을 바라보던 유신의 눈썹이 꿈틀했다.

-탑주. 전방에 역장류 능력으로 추정되는 보호막을 발견했습니다.

악마의 몸 앞에 자줏빛의 역장이 펼쳐져 있었다. 전면에서 쏟아지는 아마겟돈을 막아낼 정도라면 상당한 방어력이다.

하지만 본래 유신의 역할은 미끼.

연기 속에 숨어서 달려온 홍연이 프리패스로 악마의 등 뒤를 선점했다. 긴 호흡과 함께 그녀는 검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세상을 등분하는 붉은 검격이 사선으로 내리그어졌다.

'손에 저항감이……'

그녀는 눈을 떴다. 지금껏 그 무엇도 이 검격에 견뎌내지 못했으나, 괴물의 전면에 펼쳐진 역장은 그녀의 검격을 막아냈다. 살짝 사선으로 흠집 같은 게 났을 뿐이었다.

"피해, 홍연!"

악마의 팔이 창끝처럼 내질러졌고 홍연은 발을 굴러 피해냈다.

회피 동작으로 공중에 떠오른 그녀를 향해 악마가 입에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흡!"

초 단위로 자줏빛 파괴의 섬광이 들이닥친다. 그녀가 검을 휘둘러 섬광을 베자, 좌우로 찢긴 섬광이 일직선상의 지상을 초토화시킨다. 전신이 오싹할 정도로 위험했다.

'보기보다 방어형 타입이라 이거지?'

그래도 아예 뚫지 못할 건 아니었다. 유신이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때, 악마가 손가락을 춤추듯 움직이며 요술을 사용했다.

악마의 전면에 공간이 벌어지며 서울 상공이 드러난다.

"……안돼!"

홍연이 전력을 다해 검격을 날려 댔지만 악마는 여유 있게 균열 안으로 몸을 던졌다.

머리와 팔이 균열을 통과하고, 구덩이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던 다리까지 안으로 들어갔다.

수백 갈래로 뻗어 나간 그녀의 검격은 역시나 자줏빛 역장에 막히고 말았다.

'망할!'

유신이 입술을 짓씹었다.

악마가 지옥에서 풀려났다.

후우우우우웅!

수천 미터 상공에서 떨어져 내린 악마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랫바닥이 있었다.

악마는 두 팔을 교차해 머리를 감싼 채로 모랫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퍼어어어어엉!

모래가 파도치듯 솟구치더니 악마의 몸이 모래를 빠져나갔다. 드디어 악마의 시선에 인간들의 시설물이 가득한 서울의 모습이 보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악마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조차 고랭크 몬스터가 내뿜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악마를 피해 달렸다. 급한 운전자들은 차량을 보도로 이끌었으며 한 아버지는 두 아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근처의 은행 건물로 뛰어들었다.

악마는 개미처럼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가장 벌레들이 많은 곳을 낙하지점으로 잡고 두 다리를 모아 마력을 끌어올렸다.

콰득!

그때 악마의 양어깨를 단단히 붙든 두 다리가 있었다. 악마의 몸이 그대로 수백 미터 넘게 비행하여 사람이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

카가가가가가가각!

콘크리트 도로가 벗겨지며 악마가 고통에 부르짖었다.

황금의 드래곤. 안드라스로 변한 소심희가 가장 먼저 악마를 보고 내려온 것이다.

악마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며 저항하자 안드라스는 악마를 이끌고 날아가 앞에 보이는 주차 타워에 처박아 넣었다.

거친 쇳음과 함께 악마의 얼굴이 철제 건물을 뚫고 들어가고, 뒤로 날아오른 안드라스가 입에서 마력을 끌어올린다. 드래곤의 브레스의 준비 자세다.

-우우우우우!

악마 또한 벽을 박살 내며 얼굴을 빼내더니 입에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내 황금빛과 자줏빛의 섬광이 부딪혀 격돌한다.

"우왓!"

"허억!"

도시의 전단지와 쓰레기들이 정신없이 하늘을 비산했다.

이내 두 힘이 폭발해 후폭발이 퍼져 나갔고, 건물 유리창이 박살 나거나 가로등이 뿌리뽑혔다.

"이런 미친……"

악마를 뒤쫓아온 베테랑 헌터는 다급히 몸을 옆으로 틀었다. 방금 그가 있던 자리로 건물 간판과 자전거 따위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는 자세를 낮추며 이어마이크를 켰다.

"여기는 S-78! 종로구에서 이레귤러와 소심희 헌터가 교전 중!"

보고를 마친 그는 몸을 떨며 드래곤과 악마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건 뭐 괴수 영화도 아니고……'

콰아아아앙!

그러나 좀 더 강한 쪽은 악마였다.

휘두른 팔에 얻어맞은 소심희가 붕 소리를 내며 날아가 건물에 처박혔다. 이내 자욱한 연기와 함께 빌딩한 채가 끼긱거리며 기울어지고 있었다.

"무, 무너진다!"

"피해!"

소심희가 무너지려는 건물을 힘겹게 받치는 사이에, 악마는 다른 곳으로 뛰어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카타클리즘 재앙으로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종로로 전 병력 집결하도록!

-레드게이트의 이레귤러가 서울에 빠져나왔다!

한편 유신과 홍연은 악마를 뒤따라 서울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들리는 보고로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홍연이 이어마이크를 붙잡았다.

-직접 상대하지 말고 어떻게든 시간만 끌어주십시오. 제가 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그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제 잘못입니다. 놈을 놓쳐서……"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유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못했으면 그 누구도 못 막았어. 지금은 벌어진 사태 수습에 집중하자."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는 하나도 바뀐 게 없네요."

"그런가?"

그때, 치직 소리가 나며 이어마이크가 연결됐다.

-……이봐, 너 정말 김유신이야?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

유신은 목소리만 듣고 바로 누군지 알아차렸다. 바로 개인 채널로 접속해서 대답했다.

"그래, 와줘서 고맙다. 윤정아."

-…….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은 오지 않았다.

유신은 그녀가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 말들을 삼키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줘. 장막을 해제하고 이레귤러 전투에 합류해?

"아니, 지금처럼 계속 균열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막아줘. 큰놈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데 작은 놈들까지 흘리면 답도 없어."

유신은 윙골렘의 속도를 높였다.

피해가 더 늘어나기 전에 악마를 쳐내야 했다.

* * *

악마가 내려오며 서울 전체가 전장이 되었다.

이 교활한 몬스터는 수시로 장소를 바꿔 다니며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헌터들이 따라붙어 공략하고 있었지만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악마는 이번에 거대한 빌딩 아래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도망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었고 좁은 길목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역시 다이나믹 코리아!"

그때 악마가 매달린 빌딩의 벽면을 빠르게 주행하는 파도가 있었다.

그 위에는 물의 마도사, 선글라스를 쓴 김사랑 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여긴 좀 처럼 질릴 틈이 없다니까!"

그녀가 타고 있는 파도에서 물대포가 요란한 포성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악마가 팔을 들어 물대포를 쳐냈지만 그때마다 몸이 크게 흔들렸다.

꽤 아팠는지 상체를 뒤틀던 악마가 입을 쩍 벌렸다.

자줏빛 파괴의 섬광이 일직선으로 쏘아졌고 그녀가 타고 있는 파도가 일격에 소멸되었다.

파도 위에서 뛰어내린 김사랑 이 빌딩에서 떨어지며 미소 지었다.

"지금이야!"

악마의 복부 쪽 빌딩 벽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독의 마도사 조용희가 철썩 달라붙었다. 악마가 그를 떼어내려 팔을 뻗었지만.

"……늦었어."

조용희의 몸에 밀집된 마력이 폭발했다.

<포이즌 익스플로젼>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녹색 액체가 쏟아져 악마의 온몸을 뒤덮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가슴에 철썩 붙어 있던 조용희는 당황한 눈으로 악마를 올려다보았다.

"어어? 이게 왜 안 먹……"

쩌억!

결국 악마의 팔에 얻어맞은 조용희가 유리창을 뚫고 멀어져 갔다. 악마는 큰 소리로 포효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지상에 내려온 목적을 발견했다. 악마의 시선은 서울에서 한참 공략 중인 카타클리즘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동을 시작했다. 악마가 펄쩍 뛰어올라 옆의 건물에 달라붙었다.

그런 식으로 건물을 오가며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그때.

꾸드드드득!

하늘에서 출현한 거대한 질량이 악마의 몸을 짓눌렀다.

"우리 동네를 파괴하지 마! 괴물!"

하예린이 운전하고 있는 천공성이었다. 무게와 질량에 압도당한 악마가 도로에 처박혔다.

-우우우우우우!

천공성의 끝이 바닥에 긴 상흔을 남기며 악마를 끌고 가서 근처의 건물에 부딪혔다.

이번 타격은 악마마저도 충격이 컸는지 천공성에 깔려 팔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천공성의 내부에서 하예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잡은 건가?"

쿠쿠쿠쿠쿵!

"꺅?"

천공성이 들썩거리더니 크게 기울어졌다.

안에 있던 그녀도 균형을 잃고 바닥을 뒹굴었다. 도로를 부수고 천공성에 깔린 악마가 빠져나왔다.

쿠쿠쿵!

꽝!

분노한 악마가 천공성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입을 벌려 파괴의 섬광을 날릴 때 마다 내부에 있는 하예린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아파.'

천공성과 연동되어 있어서 그런지 통증마저 공유되는 기분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악마가 포효하며 다시 카타클리즘 재앙으로 다가갔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카타클리즘의 막을 어루만지자, 막이 흡수되듯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악마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양손의 손가락들이 피아노 건반 치듯흐물거린다.

화아아아아아악!

악마의 몸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붉은 막이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서울의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그때, 그들이 숨어 있는 지하 대피소, 고층 건물이 흐릿하게 변했다.

이제는 카타클리즘이 서울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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