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81화
프로스트 협회장 시절, 집행부의 수장이었던 블랙잭은 시뻘게진 얼굴로 홍연에게 다가왔다.
"내가 프로스트 님의 생사를 물었을 때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럼 지금 이 꼴은 뭔데!"
금속박스에 목만 빼꼼 내밀고 있는 프로스트는 혀를 빼물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키는 대로 능력만 사용하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블랙잭은 전 상관의 이런 모습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까지 났다.
"이게 지금…… 사람이 할 짓이냐?"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홍연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오랜 수감 생활로 프로스트의 정신은 망가지고 능력은 퇴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공인 2급 헌터를 이대로 썩힐 수는 없었죠. 이 모습이 그가 능력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입 닥쳐! 마녀!"
블랙잭이 홍연의 뺨을 후려갈겼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차례 커졌다.
"자, 반역을 저질렀으니 이제 나도 상자행이지? 어? 한번 해봐 이 미친 년!"
"……."
홍연은 침묵했고, 블랙잭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X발 다들 정신 차려! 이 여자는 미쳤어! 뭐가 협회장이고 뭐가 대영웅의 여동생이냐! 다들 이 여자의 광기에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이대로는 몰살이야!"
홍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블랙잭을 노려보았다. 소름 끼치는 금안과 마주하자 블랙잭은 본능적으로 뒤통수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오해가 있으십니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한 대 맞은 정도로 사람을 저렇게 만들진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몸이 바람처럼 블랙잭을 지나쳤다.
"군법을 어기고, 병사들을 선동하는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붉은 섬광이 번뜩이더니 블랙잭의 머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허억!"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블랙잭의 목을 보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검을 집어넣은 그녀가 이어마이크를 켰다.
"미리 못 박아두겠습니다. 우리는 후퇴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전 헌터들에게 울려 퍼졌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십시오. 저 또한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의지가 꺾여서 전우를 버리고 도망치는 자가 있다면……"
그녀가 목만 남은 블랙잭의 머리를 붙잡아 힘껏 던졌다.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살덩이. 몬스터들이 살덩이를 보고 입에서 질질 군침을 흘리며 뛰어간다.
"제가 기꺼이 찾아 뵙겠습니다."
* * *
"A-1 순천 클리어."
"A-1 진주 클리어."
"A-1 울산 클리어."
유신이 클리어 보고를 할 때마다 이제는 지휘관 채널에서는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카타클리즘 재앙 클리어에는 어마어마한 인적자원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저 천공성을 이끄는 A-1 코드 팀은 도착만 하면 분 단위로 카타클리즘을 공략해 버리고 있었다.
"여기는 A-1, 울산에서 올라갑니다. 경남 경북 라인 쪽 지원 요청받겠습니다."
-포, 포항에 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헌터들이 공략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안동 전선도 위험합니다!
-영천이 먼저야!
이제는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할 정도.
천공성의 순회공연은 대한민국을 빠르게 해방시키고 있었다.
재앙 공략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 주는 언론도 난리가 났다.
[한국에 천공성이 떴다!' 단독 작전으로 8개 카타클리즘 격파.]
[<단독>순천, 진주, 울산, 포항, 영천, 안동 카타클리즘 완전 클리어발표. "구세주가 나타났다" 시민들 환호.]
[5년 전 김유신을 앗아간 천공성의 반전…… 대한민국 반격의 시작.]
[새로운 천공성주의 등장? 천공성을 움직이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각 언론들은 천공성에 대해 1면으로 보고하고 있고, 대피소 생활을 하던 시민들은 천공성을 움직이는 사람이 누군지 논의하고 있었다.
[천공성 이제 강릉으로 올라옴! 강릉 사람들 쏴리 질러!]
┗진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천공성 누가 움직이는 거야?]
┗아무도 모름.
[강릉 찍고 양양에도 와주겠지? 제발 믿습니다.]
[원주에 집 있으신 분! 원주도 와줄까요?]
[개판이네. 다들 천공성에서 김유신 죽인 거 잊었냐?]
┗22222.
┗그건 알베르가 한 일이고. 지금 천공성주는 다를 수 있지.
┗ㅇㅇ. 당장 내 집 땅 재산 박살나게 생겼는데 일단 살고 보자.
[성지글 예약한다. 지금 천공성 움직이는 거 김유신의 유령임.]
┗응, 개소리.
┗유령 ㅇㅈㄹㅋㅋㅋㅋㅋㅋ
전 국민이 가슴 졸이며 천공성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유신과 하예린은 그들의 기대에 답했다. 호남과 경상도를 넘어 강원도의 카타클리즘도 모조리 파괴시키고 있었다.
"자, 다음은…… 응?"
유신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새까맣게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이상하군요 탑주.
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타클리즘 내부의 몬스터들은 영역 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균열 사태라고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워. 이건 마인들의 짓이네."
한국에 건너오자마자 마인들이 공격한 것도 그렇고, 마인 측은 꽤나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적의 주류는 6랭크 스톤 가고일, 그중에는 7랭크의 가고일 로드도 있습니다.
6랭크라면 정예 중의 정예. 한 마리 한 마리가 공인 4급들이나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다.
하예린도 몬스터들을 발견했는지 통신을 해왔다.
-아저씨! 어떻게 할까요? 저것들한테 쏠까요?
"그건 안돼. 천공성의 화력을 소모하면 카타클리즘 공략에 문제가 생겨."
유신이 마력을 끌어모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다소의 마나와 정신력 소모는 각오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치울게."
가고일들이 빠르게 접근한다. 유신이 오른팔을 뻗는 그때였다.
부우우우우웅!
구름을 뚫고 전투기 한 대가 광풍을 이끌며 나타났다.
전투기의 몸체가 열리고 그 안에서 미사일들이 날아가 가고일들의 몸뚱이에 박혀 폭발했다.
쿠웅! 콰앙!
갑작스러운 폭격에 가고일들이 주춤하는 사이, 전투기는 유연하게 턴하여 천공성으로 내려왔다.
전투기의 몸체에서 다리가 내려와 바닥을 딛고, 날개 부분이 팔로 변한다. 이내 아이언 골렘의 형태가 된 전투기가 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분명……'
"오빠야! 도우러 왔어!"
골렘의 가슴 부근 조종석이 열리며 은솔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솔아! 네가 여긴 어떻게……?"
"받아요, 선배님!"
이번엔 허공에서 블루 엘릭서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유신이 엉겁결에 팔을 뻗자 엘릭서들이 착착 손에 잡혔다.
"와! 역시 선배님답게 대박이네요."
골렘의 뒤로 진보라가 요조숙녀처럼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천공성을 끌고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녀는 유신에게 말을 걸면서도 능숙하게 손목 스냅으로 포션을 던졌다.
쐐애애액! 소리를 내며 날아간 폭발 포션들이 상승 비행하는 가고일들의 몸에 작렬했다.
찢어진 육편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 선배님! 몇 마리 그쪽으로 가요!"
유신이 고개를 돌리자 가고일 몇마리가 우회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유난히 덩치가 큰 7랭크의 가고일 로드도 있었다.
유신이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자, 로드 가고일은 하강 비행하며 갈고리 같은 두 발을 들이밀었다.
으적!
그리고 벼락처럼 날아온 정서진의 주먹이 몬스터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그가 도망치는 가고일 로드를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스카디>
그의 손바닥으로부터 뻗어 나간 얼음의 용이 가고일 로드의 몸과 날개를 꽁꽁 얼려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헌터 슈트 차림의 정서진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진보라가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와 유신의 팔에 매달리며 웃었다.
"오랜만이죠? 이렇게 넷이서 같이 싸우는 건."
"그러게."
-아저씨! 가고일들이 계속 와요!
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같이 싸우자."
"네!"
은솔이 스위치를 조작하자 아이언골렘의 등이 열리더니 비행 장치가 날아갔다.
그것은 천공성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포탑의 형태로 변해 공중에서 오는 가고일들을 향해 탄두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내 은솔이 탄 아이언 골렘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양손에 소드 디바이스를 일으켜 종횡무진 휘둘렀다. 몬스터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하압!"
그때 골렘의 등 뒤가 열리며 은솔의 몸이 빠져나왔다. 그녀의 몸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부스터가 달린 공중 발판을 밟고 섰다.
그리고 몬스터들을 향해 손가락을 척 뻗자 앞에서 싸우고 있는 것과 똑같은 아이언 골렘들이 우르르 날아와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와아아!
이어마이크에서 하예린의 감탄성이 튀어나왔다.
유신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몽환경의 효과로 잠들지 않아도, 조작이 까다로운 10기가 넘어가는 아이언 골렘들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었다.
"선배님! 앞에 조심해요!"
아공간에 손을 넣고 있던 진보라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투명한 줄과 줄로 연결된 100병의 포션들이 하늘로 비산했다.
날아오는 포션을 본 가고일들이 산개하려고 했지만, 포션을 연결하고 있던 줄들이 툭툭 끊어지며 방향이 바뀌고, 공중에서 포션끼리 서로 부딪치고 튕기며 방향이 틀어진다.
기가 막힌 우연을 가장 한, 하지만 고도로 계산된 포션들이 확산하며 가고일들의 주위를 둘러싼다.
표적의 미래 위치까지 고려하여 구성된 완벽한 화망(火網)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포션 하나가 터지는 것을 기점으로 백 개의 포션들이 연쇄작용으로 터진다. 하늘에 불의 필드가 생기며 불타는 몬스터들의 살점이 비처럼 떨어진다.
"후우우."
정서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호흡하고 있었다. 그가 한 순간 눈을 부릅뜨더니 왼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며 힘껏 주먹을 뻗었다.
거친 충격파가 뻗어 나가 진보라의 화망에 닿으며 불길이 후방으로 까지 번진다. 돌아 들어가려던 가고일 무리에 화염과 불붙은 잔해들이 떨어진다.
화망을 날려 보낸 정서진은 즉각 하늘로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싸우는 은솔의 아이언 골렘들을 계단처럼 밟고 뛰어올라 또 하나의 로드 가고일을 찾아 내 붙잡아 목을 꺾어버렸다.
'널널하네.'
유신은 팔을 내렸다.
지금의 관리자들을 상대로, 모든 가고일들이 녹아내리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