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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80화 (280/337)

나 혼자만 마탑주 280화

무전의 목소리가 당황한 소리를 냈다. 그때 '내놔봐!'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목소리가 바뀌었다.

[당신 누구야! 어떻게 이 채널에 접속했지?]

"저는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

5초. 정확히 5초간 정적이 일었다.

[감히 네까짓 것들이 입에 담을 분이 아니다.]

잔뜩 열 받은 목소리에 이번엔 유신이 놀랐다.

진짜 나 맞는데, 마인으로 착각한건가?

"실례지만, 본인 맞습니다."

[사격 준…….]

"아, 잠깐. 잠깐만요!"

이 양반들이 속고만 살았나.

유신은 혀를 차며 잠시 채널을 돌렸다.

"예린아. 잠시만 천공성을 세워줘."

그 말에 천공성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춰섰다. 유신은 다시 직통 채널로 들어가서 말했다.

"자, 멈췄습니다. 설명할 시간을 주시죠."

[인류는 마인과 협상하지 않는다.]

"첫째, 전 마인이 아닙니다. 둘째, 재앙 중에 우리끼리 싸우면 서로 손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네들이 천공성을 격추시킬 수 있다고 한들."

데바의 눈을 작동시킨 유신의 시선이 천공성 아래의 도시로 향했다.

"여기서 천공성이 떨어지면 천안 시내가 통째로 날아가요."

[…….]

"제가 원하는 건 하납니다. 임남진 헌터님께 연결해 주세요. 그분께 진상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뭐라고? 네가 뭐라고 감히! 임남진 헌터님은……!]

"야."

쓸데 없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슬슬 짜증이 난 유신이 차갑게 말했다.

"잘 생각하고 씨불여. 천공성, 카타클리즘, 천안시. 이게 지금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야?"

[…….]

"임남진 바꿔. 협상이 결렬되면 그때 가서 피해를 무릅쓰고 싸우든 뭐든 알아서 하라고."

저쪽에서 분주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임남진이다.]

임남진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 사람도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김유신입니다."

[용무는?]

유신이 쓴웃음을 흘렸다. 절대 안 믿는 눈치다.

역시 증명을 해야 할 듯했다. 유신은 임남진과의 접점들을 떠올렸다.

"프로스트 사건 이후, 심문실에서 같이 짜장면 먹은 거 기억나죠?"

[…….]

"짬뽕 짜장면 중에서는 짜장면, 탕수육은 부먹파. 그때 제 앞에서 홍율 전 협회장님 뒷담화 엄청 깠잖아요."

유신은 홍율의 뒷담화 내용까지 소상하게 말했다.

이건 함께 식사를 한 두 사람밖에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전 협회장님이 술만 먹으면 그렇게……."

[그만.]

잠시간 짙은 정적이 흐른 뒤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 자네인가?]

"네, 5년 만에 의식불명 상태에서 돌아왔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군.]

"그래도 믿으셔야 합니다. 카타클리즘 재앙은 저희가 맡을게요. 천공성을 해킹해서 끌고 왔고, 지금은 평택을 클리어하고 전주로 가고 있습니다."

[자네는 데뷔전도 그렇고, 복귀전까지 날 놀라게 하는군.]

두 사람은 빠르게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군과 헌터팀이 제게 협조하도록 해주십시오. 최단거리로 이동해서 재앙을 부수고, 마지막엔 파주까지 올라가서 제가 직접 레드게이트에 돌입하겠습니다."

[자네의 뜻에 따르지. 하지만 우리도 감시를 붙이도록 하겠네. 나는 자네를 믿지만, 불확실한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차단하는 게 내 역할이라서.]

혹시나 마인일 가능성도 본 것이다. 현명하다고 유신은 생각했다.

"그렇게 하시죠."

[고맙네. 통신이 닿는다면 레드게이트에도 보고하도록 하겠네. 자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협회장은…….]

"홍연에게는 보고하지 말아주세요."

[무슨 이유가 있나?]

유신은 잠시 생각했다.

정서진과 진보라가 바로 지목했을 만큼 홍연도 유력한 마인 후보다.

상황을 봐서 그녀의 본심을 확인할수 있다면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까.

"홍연은 레드게이트에서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네.]

"제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홍연은 온 힘을 다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싸울 겁니다."

[…….]

임남진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협회장에겐 보고하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자네가 돌아왔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야. 남은 이야기는 끝나고서 하지.]

"예, 수고하십쇼."

임남진과의 통화를 마치자 순식간에 주위가 정리가 되었다.

천공성을 공격하려고 왔던 공군은 이제 천공성을 호위했고, 임남진은 유신에게 자신의 지휘관 코드까지 주었다.

유신은 곧바로 이어마이크로 지휘채널로 들어가 말했다.

"여기는 A-1. 지금부터 전주 공략을 시작한다."

채널에서 보고를 마친 유신은 곧바로 하예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쏠까요?

"응."

천공성의 지면이 열리고 포대가 나와서 사격했다.

거대한 마력입자포가 전주시의 카타클리즘 막을 뚫고 날아가 이내 대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소멸확인. 전주시의 카타클리즘이 깨졌다.

"여기는 A-1, 전주 클리어."

-저, 정말 입니다! 전주 카타클리즘 무력화 확인!

-수고하셨습니다! A-1!

몇 분이 걸리지 않아서 카타클리즘 하나를 공략해 냈다. 천공성의 마력입자포는 현대의 재앙전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카타클리즘의 원형 막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폭격의 위력을 격감시킨다.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핵탄두 정도지만 방사능이 주변의 다른 도시까지 퍼져 나갈 위험 때문에 미친 게 아닌 이상 자국 영토내에서 쓰지 못한다.

그래서 협회의 공략은 정예 헌터팀을 보내 빠르게 보스만 처치하고 빠져나오는 것.

하지만 일직선으로 섬광처럼 쏘아지는 천공성의 마력입자포는 카타클리즘의 막을 가뿐히 뚫고 타격점에 도달했을 때 맹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헌터팀을 투하할 필요도, 무리해서 핵탄두를 쓸 이유도 없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위에서 찍어누르면 끝이다.

'원래는 5공정을 써서 필드 하나를 부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훨씬 일이 편해지지.'

유신은 이어마이크를 붙잡았다.

"여기는 A-1. 다음은 순천으로 이동합니다."

* * *

재앙 레드게이트 내부.

"여기는 스노우! 8랭크 몬스터가 출현했다!"

"여기는 팀 아일라! 도움을 요청한……! 끄, 아아아악!"

레드게이트 내부는 아비규환이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공세로 헌터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크게 지쳐 있었다.

침투조의 목적은 레드게이트가 한국을 멸망시키기 전에 보스 몬스터를 찾아 내서 제거하는 것.

하지만 던전은 방대할 정도로 넓었고 몬스터들도, 독을 품고 있거나 장갑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등 공략이 까다로운 것들뿐이었다.

헌터 협회와 TOP10의 정예들로 구성된 500여 명의 대규모 파티. 벌써 부상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팔! 내 팔!"

난전 중인 전장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런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전황은 치열했다.

다들 본인 앞의 몬스터를 없애는 것부터 버거웠다.

-여기는 MZ.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진짜 계속 싸울 거야? 다 죽겠다고!

TOP10 의 길드마스터들까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드게이트는 학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블루게이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난이도였다.

"……연아."

최전방에서 홍연의 주위를 지키던 윤슬아가 조용히 말했다.

"후퇴해야 하지 않을까? 다들 멘탈적으로 무너졌어. 그리고 너도……"

홍연은 부상으로 옆구리 쪽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레드 엘릭서의 뚜껑을 열어 상처에 부었다.

"여기서 우리가 물러나면 대한민국은 멸망합니다."

"……하, 하지만 이대론 진짜 전멸이야!"

"윤슬아 3급. 아무리 당신이라도 항명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윤슬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포션을 부어 상처를 회복한 홍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추일호 팀장."

"예."

그녀의 곁에 있던 남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걸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팀장은 물자 차량으로 걸어가더니, 화물칸에서 뭔가를 끌고 나왔다.

그것은 바퀴가 달린 금속 박스였다. 뒤에는 누군가 끌고 갈 수 있도록 손잡이가 있었고, 박스 위에는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으로 누군가가 목을 내밀고 있었다.

그 누군가의 머리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관이 씌워져 있었고 각종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요하며 웅성거렸다.

"저 사람은……!"

"소문이 진짜였단 말이야?"

추일호 팀장은 그 남자를 홍연의 앞에 끌고 왔다.

"오랜만입니다. 프로스트."

프로스트가 동공이 풀린 눈으로 홍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추일호 팀장에게 주사기 하나를 건네받더니, 직접 프로스트의 목에 꽂았다.

푹!

주사기 바늘이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주르륵하고 액체가 주입된 뒤, 그녀는 주사기를 뽑았다.

"프로스트. 정신이 드십니까?"

흐리멍덩한 그의 눈에서 조금씩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어, 어으으으으…… 아어으아아으. 다, 당신은……."

프로스트가 홍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훑는다.

선명히 붉은 머리카락에서 한번 멈칫하고는, 이내 홍연의 황금빛 눈동자와 마주한다.

그의 얼굴이 공포감으로 일그러진다.

"호, 호, 호, 호, 홍유우우우우울!"

프로스트가 금속박스 안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괴성을 질러댔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어! 이러지 마! 제발!"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녀가 싸늘하게 손짓 했다. 기술자들이 프로스트의 몸에 추가로 주삿바늘을 투입한다.

"싸우세요. 프로스트."

그녀가 말했다.

"으, 으,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목소리에 환각이라도 보는 듯 프로스트가 비명을 질러댔다.

발악과 함께 그의 몸 앞으로 얼음의 용이 만들어져 몬스터들에게 쏟아진다.

프로스트의 주력기인 빙룡질주.

사람들은 전방의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프로스트의 화력에 놀라면서도, 헌터를 도구 사용하듯 하는 홍연의 잔혹함에 몸을 떨었다.

"저건 좀 심하지 않냐?"

"헌터 인권회가 미친 듯이 물어뜯겠는데."

"언니보다 더 심해."

"홍율은 무모하긴 해도 미치지는 않았지."

웅성 웅성 웅성.

그녀에게 들리는 무수한 이야기들.

하지만 홍연은 신경을 두지 않는 듯 덤덤히 프로스트를 지켜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아!"

프로스트가 울부짖으며 빙룡을 연달아 쏘아 보냈다. 우글거리는 몬스터들의 지옥에서 순식간에 길이 만들어진다.

홍연이 말했다.

"지금입니다. 전 부대 돌파합니다."

추일호 팀장이 폭주한 프로스트의 손잡이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전 병력이 프로스트를 앞세워 전진한다.

"협회장!"

그때 헌터들 사이에서 얼굴이 시뻘게진 한 남자가 홍연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블랙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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