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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78화 (278/337)

나 혼자만 마탑주 278화

진보라를 보낸 나는 상계동 길거리의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재앙 중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대피해서 없었다.

-탑주. 명령하신 사항들 모두 준비해 뒀습니다.

"역시 에아야."

-저도 다시 탑주와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녀가 있으니 일이 막힘없이 척척 풀린다. 에아가 없는 동안엔 나 혼자서 계획을 준비해 봤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무튼 에아에게는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앞으로의 내 계획도 그녀와 공유했다.

-하지만 탑주.

그녀가 말했다.

-계획대로 하면 정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상황이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잖아? 그리고 대충 누가 마인인지 감이 오기도 했고."

마탑에 돌아가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정체를 밝힐 결심은 한 뒤였다.

이번 재앙이 내 데뷔전이 될 것이다.

"아저씨!"

그때 마침 하예린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이번 데뷔전에서 내 유일한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그녀다.

"잘 쉬었어?"

"그럼요! 컨디션은 최고예요."

내 앞에 다가온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으, 근데 이 슈트 차림은 너무 민망해요."

그녀는 몸의 라인이 선명히 드러나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정서진에게 부탁해서 마련한 신형슈트인데, 하예린은 괜히 민망한 듯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그렇다고 팔랑 거리는 옷으로 싸울수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바로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보기엔 진짜 잘 어울리는데."

"그, 그런가요?"

"빈말이 아니라 그렇게 차려 입으니까 진짜 헌터 같아. 느낌이 달라."

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그녀였다.

단순해서 다행이다.

"그럼 출발하기 전에 몇 가지 준비작업 좀 하고 가자."

"무슨 준비요?"

"저기 마법진 보이지? 한번 올라가볼래?"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별 의심 없이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이제 어떻게 해요?"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어."

내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그녀의 발밑으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캔슬레이션 계열 마법이야."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미리 설명했다.

"마나를 와해시켜서 마법적 효력을 무력화시키는 마법진이지."

"네? 그걸 왜 저한테……"

"넌 마법에 걸려 있었거든."

이내 마법진의 빛이 최대밝기가 되며, 푸른 섬광의 기둥이 그녀를 집어삼킨 채 하늘로 뻗어 나갔다.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하예린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벌써 끝났어요?"

"응. 끝이야."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위에 머무르고 있던 푸르스름한 기운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는 게 보인다.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하다. 전에 네가 말한 그 몬스터가 달려드는 체질 말이야."

"아,네."

"사실은 체질 같은 게 아니라 필드마법이었어."

"네에에에에?"

4층의 필드마법 중에는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진 것도 있다.

나도 5년 전엔 마인들의 연구소를 공격할 때나, 마인들이 탑에 쳐들어왔을 때 요긴 하게 써먹기도 했고.

하예린에게 적용된 것은 바로 그필드 마법의 응용 버전.

범위를 극단적으로 줄여 개인에 한정하는 대신 지속시간을 늘린 형태다.

"체, 체질이 아니었어요?"

"그런 체질이 세상에 어딨냐? 넌 필드마법의 표적이 됐을 뿐이야."

표적이라는 소리에 그녀는 흠칫 손을 떨었다.

"누가 저한테 이런 마법을 쓴 거죠?"

"누구겠어?"

이런 고난도의 필드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다.

"현 마탑주이자 4층 관리자 나대용."

"마탑주가 왜 저를……"

"넌 마나의 아이니까."

그 말에 하예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체 마나의 아이가 뭐길래요? 다들 저만 보면 마나의 아이, 마나의 아이 하고……"

"마나의 아이는 마탑주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야. 넌 마탑주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난 거지."

"아……!"

하예린은 카임에 입학할 때 자신의 특성들을 전산에 등록했다. 카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나대용이 그런 정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예린을 공격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나대용은 마탑주 자리에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새로운 마나의 아이의 존재를 관리자들이 알게 되면, 반쪽짜리 마탑주가 아닌 새로운 마탑주 육성으로 의견을 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대용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서 나대용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하예린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필드 마법을 사용했다.

사실상 살인미수나 다름없는 무서운 행위.

원래라면 하예린은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대용의 계획을 눈치챈 은솔이 뒤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전 몰랐어요! 마법사니까 마탑이 꿈의 직장이라고만 생각했지. 마탑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구요!"

감정이 복받친 그녀의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마탑주는 그런 이유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고작 그런 욕심때문에 2년간 내 인생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거냐고요! 가족도 못 보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반 애들은 날 마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대체 왜……!"

그녀는 밀려드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하예린이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아저씨."

고개를 든 그녀가 울먹이며 나를 본다.

"아저씨도 마탑에서 일했잖아요. 아저씨도 내가 마나의 아이라서 접근한 거죠? 날 구해서 마탑주로 만들려고? 나대용을 몰아내고 새로 권력을 잡으려고 그런 거여요?"

나는 한숨을 쉬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 거 아냐. 넌 나랑 동류니까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동류?"

"사실 나도 마나의 아이거든."

그녀가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설마……"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에 올려둔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건드렸다. 물의 장막이 벗겨지고 원래 얼굴이 드러 난다.

"그래, 내가 김유신이야."

그녀가 입을 벌리며 놀란 음성을 흘렸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역시 그랬군요."

"눈치챘었어?"

"……조금요. 진보라, 정서진, 은솔같이 대단한 사람들을 알고 있고,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압도했던 그 힘까지. 마탑주 나대용보다 강한 마법사라면 역사상 단 한 사람뿐이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로 나랑 같이 재앙과 싸우러 갈 거야?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그녀는 몬스터를 불러모으는 체질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플레이어가 된 운명을 원망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 전투가 끝나면 그녀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전에 나는 그녀에게 선택지를 주고 싶었다.

"돌아가겠다면, 내가 책임지고 모든 걸 되돌려 놓을게. 이제 우리가 네 앞에 나타날 일도 없을 거고, 다른 사람들이 널 마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일도 없을 거야."

"무슨 소리예요! 제가 아무 각오도 없이 여기 왔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저씨와 함께한 수업들, 힘들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나대용이 쫓아올 때는 좀 무서웠지만…… 트롤을 쓰러뜨렸을 때 저는 느꼈어요. 이 한 달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단 걸요!"

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맛을 다 보여줘 놓고 돌아가라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좋아."

그녀의 각오는 확인했다.

"같이 가자."

"네!"

나와 예린은 정서진이 준비해 놓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그녀가 조수석에 앉았다.

"어디로 가요?"

"평택까지 달릴 거야. 그동안 네가 해줘야 하는 일이 있어."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판 하나를 꺼냈다. 그 위에는 마법진이 걸려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마법을 해석해서 네 것으로 만들고 컨트롤할 수 있도록 연습해."

"네에에에? 이런 와중에도 수업?"

"꼭 필요한 일이야."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거 시간 안에 다 풀면,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을 거야."

* * *

유신과 하예린, 두 사람은 정신없이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평택에 도착했다.

"예린아. 도착했…… 음?"

차 타고 달리는 내내 이걸 어떻게 하냐고 칭얼거리더니, 어느새 유신이 하는 말도 못 들을 정도로 마법진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였다.

유신은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고, 마침내 판 위의 마법진이 푸른빛을 발했다.

"됐다!"

그녀가 환호성을 지르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합격이야."

"오! 만약 합격 못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재앙이 끝날 때까지 차나 지키고 있었겠지."

"윽."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함께 현장을 향해 걸어갔다.

"압박붕대랑 포션 다 챙겼지?"

"넵!"

유신은 첫 실전인 하예린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써주고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를 건네받은 그녀는 신기한 듯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우리 평택엔 왜 온 거예요? 여기에 카타클리즘 재앙이 있는 거예요?"

"맞아. 우리는 공략팀이랑 겹치지 않는 구간 위주로 빠르게 재앙을 부수면서 순회공연할 거야."

얼마 안가 바로 그 카타클리즘 재앙이 보였다.

평택시 중심에 생긴 반원형 막.

피난령에도 평택에 남아 있던 민간인들이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고, 공략 명령을 받고 온 헌터들은 투입준비를 하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엄청 넓은데요?"

하예린이 입을 벌렸다. 거의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는 범위 전체가 용암 지형으로 변해 있었다.

산에는 화산이 분출했고, 강물 대신 마그마가 흘렀으며, 각종 화염속성의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카타클리즘 재앙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은 일반 던전과 동일하다. 재앙 어딘가에 있을 보스 몬스터와 '봉마의 씨앗'의 완전 파괴.

"으으, 저기서 보스 몬스터를 찾아 내야 한다는 거죠? 하루 종일 걸리겠어요."

"5초면 충분한데?"

"……네?"

유신은 턱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아……"

웅성 웅성 웅성.

카타클리즘 밖으로 도망친 시민들도, 통제를 위해 달려온 헌터들도 뒤늦게 뭔가를 발견했다.

바다에서부터,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섬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저, 저건 또 뭐야?"

"새로운 재앙아냐?"

-여, 여기는 D-8! 이상 물체가 바다로부터 접근 중!

모두가 어수선한 가운데, 유신은 천천히 오른팔을 뻗었다.

그의 팔에서 일어난 마력에 반응하듯 섬에서도 푸른빛이 번쩍였다.

뒤이어 에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스템 온라인.

-천공성 접속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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