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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75화 (27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75화

찜질방 바닥에 사람들이 그야말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진짜 공간 반 사람 반이다. 밤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뒤따라 나온 은솔이 말했다.

"피난령 내려졌잖아. 지방에 사는 사람들 다 올라온 거야."

"……아, 참. 그렇지."

피난민들을 보니 이제야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찜질방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도 피난도 식후경 아니겠는가.

우리는 매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모, 맥반석 계란 4개 주세요."

"8천 원이야."

나는 뜨악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원래 두 개 천 원 아니었어요?"

"미안해 총각, 계란이나 라면 같은 것들은 가격이 다 좀 올랐어. 내일은 더 오를지도 몰라."

"으으."

나는 눈물을 머금고 네 배 비싸진 계란과 식혜를 구매해 매점 구석 자리로 왔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로 뉴스를 켜놓고 은솔이 먹을 계란 껍질을 까주었다.

[저는 경부 고속도로에 나와 있습니다! 피난 행렬이 끝이 보이질 않는데요. 비대위에서는 의무적 피난을 선언한 가운데…….]

[물가 폭증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라면과 통조림을 중심으로…….]

[노년층을 중심으로 끝까지 고향에 남겠다는 벙커족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덕배 대통령이 지방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로 비대위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최대 협회장 사퇴 조치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덕배 대통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광화문 연설의 영향과,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넘어온 피난민들의 지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뉴스를 보던 나는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홍연이 고생이겠네.'

이덕배는 탁월한 정치인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것을 쏙쏙 골라내서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줄 안다.

실속과 효율을 중시하는 홍연에게는 고달픈 상대일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최고의 만족을 끌어내는 건 아니니까.

'잘 있으려나.'

그녀에 대한 정보도 알아봤다. 그간 그녀가 걸어온 행적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언니 그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헌터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홍율의 여동생이라는 배경과, 공인1급이라는 실력, 그리고 특유의 스타성 덕분에 무리 없이 협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가 언니인 홍율처럼 완전히 협회장으로서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버티는 싸움을 하는 수 밖에 없으리라.

"아, 오빠야!"

계란을 먹고 있던 은솔이 말을 걸어왔다.

"이번 재앙, 오빠야도 참전할 거야?"

"글쎄, 서진이는 쉬어도 된다고 하긴 했는데……"

나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피곤함에 찌든 피난민들이 움츠려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들이 보인다.

"아무래도 그냥 앉아 있기엔 상황이 너무 나쁘네. 나도 나서야 할 것 같아."

"하지만 누가 마인인지 알아내진 못했잖아."

"정체를 숨기는 선에서 움직일 거야. 뭐 필요하다면……"

나는 턱을 괴고 맥반석 달걀 하나를 집었다.

"정체 들통날 각오를 하고 제대로 싸워야겠지."

"……."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았다.

"만약 오빠야가 또 어떻게 되면 난……"

공인 2급 헌터가 됐다고는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은솔은 귀여운 꼬맹이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다신 널 두고 멀리 가지 않을게."

"응!"

"그러고 보니, 솔이는 어디로 가는데?"

"이번 재앙전은 가람 매니지먼트의 용병으로 뛸 것 같아! 가람은 레드게이트 담당이니까 아마 파주 쪽으로……"

그때 마침 휴대전화 알림이 왔다.

가람으로 부터의 연락이었다.

"아!"

"왜 그래?"

"담당구역이 바뀌었어! 레드게이트에 진입팀에서 지방 방어 팀으로!"

"……그 말은 가람이 레드게이트에서 빠졌다는 소리네."

"응! 여기 리스트도 있어."

공인 2급 정도의 헌터들에게나 전달되는 극비자료들, 레드게이트에서 카타클리즘으로 담당이 바뀔 길드들의 리스트였다.

Top10길드는 전원 레드게이트 투입을 유지하지만, 가람을 비롯한 매니지먼트와 20위권 내의 길드 몇몇이 이탈한다.

그중에는 세계길드 소속의 마탑도 있었다.

'연아, 가람과 마탑을 빼고 싸울 생각이야? 이건 거의 차포 떼고 레드게이트에 가는 격인데.'

이덕배 대통령과 여론의 성화가 폭발한 이상, 이렇게라도 그들을 달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카타클리즘의 위험도가 떨어진다고 해서 이걸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홍연 쪽에 과다하게 부담이 들어갈 것은 확실했다.

'으음, 이렇게 되면……'

나는 내가 세우고 있던 계획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수정했다.

'마지막엔 홍연이랑 마주칠지도 모르겠네.'

* * *

서울 용산역.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인파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홀로 트렁크4~5개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이삿짐을 들고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역 주변에 웅크려서 패딩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역 내의 패스트푸트 가게는 문을 닫았고, 편의점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서 있었다.

"엄마! 내가 기차 타고 오라 했나 안 했나!"

젊은 여자가 휴대전화를 붙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얼마나 걸리노!"

-모르겠다. 도로가 꽉- 맥혀갖구 기약이 없다 마. 닌 어디고?

"역에서 아빠 기다린다 아이 가! 내 상경 안 했으면 우얄 뻔했노!"

-잘 했다 가시나야! 금방 간다!

여자는 한숨을 푹푹 쉬며 통화를 종료했다.

한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나래야!

"……최은혜? 네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진짜 진짜 진짜 일생일대의 부탁이야! 너 서울 살지? 나 재앙 끝낼 때까지만 너희 집에서 자도 돼?

여자가 콧등을 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너 혼자?"

-……아, 아니. 우리 가족들도…… 짐 둘 공간도 필요하고…….

"야."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 하루만 그런 전화 서른 통 넘게 받았어. 가시나가 3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끊어."

-자, 잠깐! 나래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어유!' 하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 싶다.

[오늘은 재앙 발현 예상일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지금 당장 신속히 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의 일주일간 질리도록 듣고 있는 저 방송.

비대위에서는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하 대피소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조명도 어둡고,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꿉꿉한 땀 냄새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그곳.

심지어는 화장실의 줄도 너무 길어서 남녀 할 것 없이 벽 근처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인권유린의 현장이라고 할 만큼 최악이었다.

어차피 서울은 안전하다고 들었으니까. 그런 곳에 갈 바엔 차라리 집에 박혀 있는 게 낫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응?"

그때였다. 바닥에 뭔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풀?"

대리석 바닥에 무슨 풀이 올라오나 싶다. 아직 잠이 덜 깼나 싶어 그녀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데 주위가 흐릿해진다. 기둥이 나무로, 광장은 숲으로, 천장은 뻥뚫린 하늘로 바뀌고 있다.

주위 사람들도 당황해서 벌떡벌떡 일어난다.

마치 주위 환경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심지어 바닥에 두고 있던 짐들도 덩달아 흐릿해졌다.

"아, 안돼!"

"이게 얼마짜린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는 도중,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 한 대가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열차의 상태도 크게 흐릿해져 있었다. 역에 정차할 즈음에는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처럼 투명해졌다.

몇몇 좌석에 앉아 졸고 있던 사람들은 떨어져서 철도에 주저앉기도 했다.

"이게 대체……"

용산역 전체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바뀌고 있다.

풀냄새가 물씬 올라오며 실개천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와 풀들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며, 어느새 사람들은 무릎까지 올라온 풀밭 한 가운데에서 있게 됐다. 분수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늪에 빠지기도 한다.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쏴아아 소리를 냈다.

그들은 어느새, 정글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다.

-캬아아아악!

-크르르…….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수풀에서 재규어를 연상케 하는 보랏빛 눈의 몬스터가 몸을 웅크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물론 정글에 사는 몬스터들도 함께 넘어왔다. 용산역은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손에 든 짐들을 버리고 앞다투어 달렸다. 목숨 앞에서는 재물도 장사 없었다.

"으, 으아아악!"

나무 위의 몬스터들이 혓바닥으로 사람들을 낚아챘다.

그다음 광경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연신 핏물이 쏟아지고 고기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길 봐!"

누군가 앞을 가리켰다.

자신들이 있는 용산역 부근만 둥근원형 돔처럼 막이 펼쳐져 있었다.

바깥은 원래 서울의 풍경이었다.

"달려요! 밖으로 나갑시다!"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용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정글의 몬스터들도 오랜만에 나타난 사냥감들을 포식하기 위해 뒤따랐다.

"허억!"

"밑에 조심해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정글의 지형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다리가 나무에 다리가 걸리거나 늪에 푹푹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뒤처지면 바로 뒤따른 몬스터들이 포식했다.

곳곳에서 낙오자가 속출하며 도와 달라는 울부짖음이 쏟아졌지만, 사람들은 밀려드는 몬스터들의 공포때문에 본인 한 몸 건사하기에 바빴다. 마치 DNA가 잊고 있던 약육강식의 룰을 기억해낸 듯, 인간의 몸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졌다.

쿵! 쿠 쿵! 쿵! 쿠이번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앞을 공룡과 흡사한 외형의 대형 몬스터가 가로막았다.

등 뒤에는 갈퀴 대신 시뻘건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피해!"

공룡이 사람 한 명을 물어서 통째로 집어삼켰다. 기겁한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허억! 헉! 여기 생각보다 넓……!"

촤르륵!

도망치던 남자의 다리가 갑자기 무언가에 붙잡히더니 뭘 어떻게 틈도 없이 위로 끌려 올라갔다.

"으, 으아아아악!"

살갗이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긁히며, 그의 몸이 나무 위로 올라왔다.

눈앞에 보이는 긴 혓바닥의 원숭이 몬스터가 팔다리로 그의 몸을 강하게 눌렀다.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자 남자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타아앙

총성과 함께 원숭이 몬스터의 이마가 뚫린다. 뒤이어 남자의 허리에 로프가 휘감기더니 나뭇가지를 부수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읏차!"

슈트 차림의 헌터가 남자를 공주님안기로 받아냈다.

"괜찮아요?"

헌터의 물음에 남자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피로는 저쪽입니다. 서둘러 주세요."

"저,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다시 헐레벌떡 도망쳤다.

헌터는 무전을 하며 말했다.

"여기는 Y-7, 대한민국 첫 번째 카타클리즘은 서울 용산역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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