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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73화 (273/337)

나 혼자만 마탑주 273화

"자, 이제 내려와야지 솔아."

나는 은솔을 끌어안고 '읏차!'소리를 내며 옆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조금 얌전히 있나 싶더니 금세 내 쪽으로 몸이 쏠린다.

……못 본 사이 애정결핍이 심해졌다.

"야, 뭘 꼬라봐? 고개 안 돌려? 확!"

은솔이 위협하자 하예린은 찍 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5년 뒤의 은솔은 폭군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솔아. 너 지금 몇 살이야?"

내 품에 안겨 있던 은솔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대답했다.

"열다섯 살!"

"그럼 예린이가 언니 아냐?"

"아, 정말요?"

하예린이 반색을 했다.

"뭐야, 내 또래인 줄 알았는데 중학생밖에 안 됐……"

"뭐 불만이냐?"

그녀가 으르릉거렸고, 하예린은 바로 깨갱하며 고개를 숙였다.

"솔아. 그러면 안 되지. 언니잖아."

앞으로 같이 생활하게 될 지도 모르는 사이니까, 이런 부분은 확실히 해두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다.

"자, 언니라고 해봐."

"……으."

은솔이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어느새 하예린은 위풍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얼굴을 붉힌 은솔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언니……"

"응! 반가워! 헤헤."

하예린이 웃으며 은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런데 쓰다듬어지는 은솔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X발 우리 오빠야가 시켜서 했더니 지가 잘난 줄 아네? 야, 머리 박아."

"으, 응?"

"끽해야 가면허인 주제에 공인 2급 머리 막 쓰다듬게 되어 있냐? 앙?"

나이에서 지니까 계급으로 찍어누르다니, 하예린의 천하는 3초도 되지 않았다.

"지, 진짜로 머리 박아……요?"

"그럼 가짜로 박겠냐 확!"

"자, 그만 그만."

얘는 또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가지고.

내가 자제시키자 은솔은 다시 내 옆자리로 와서 헤실헤실 웃었다.

저 태세의 차이는 참으로 놀랍다.

"아저씨."

하예린이 만만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보라 언니도, 은솔도 아시는 거보니까 혹시 예전에 마탑에서 일한 적 있었어요?"

"……맞아. 그건 왜?"

하예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역시 마탑주가 찾는 사람이 아저씨가 맞는 것 같아요!"

"나대용이? 나를?"

"네! 마탑에 큰 공헌을 하고 은퇴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래요."

으음, 이건 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야긴데.

하예린 앞이라서 그냥 둘러댄 건가? 아니면 설마 내가 왔다는 걸 알고 있나?

아니, 그것도 이상하다. 진보라나 정서진이나 정보를 흘리고 다닐 애들은 아니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정서진이 손을 흔들며 공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냥 사건 뒤처리를 부탁했는데, 본인이 직접 온 것 같다.

"서진아. 너 바쁜 거 아니었어?"

"아무리 바빠도 할 일은 해야죠. 방금 보라 씨한테도 조심하라고 톡보내놨습니다."

"서진이라고요?"

하예린이 눈을 끔뻑였다.

"설마 저분이…… 진짜 그 알케미아 회장은 아니겠죠?

"맞습니다."

정서진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정서진이라고 합니다. 예린 양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으으! 하, 하예린입니다!"

그녀가 송구스럽다는 듯 굽신거리며 정서진과 악수했다. 은솔이 입술을 삐쭉였다.

"사건 다 끝나고 온 주제에 뭘 한게 있다고 잘난 척이야. 저리가!"

정서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유신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솔이가 요즘 사춘기라……"

"아, 진짜 싫어!"

그녀가 빽 소리쳤다.

"어른들은 뭐한 하면 사춘기 사춘기 운운한다니까! 극혐이야! 선을 긋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란 걸 왜 몰라?"

"하지만 어제도 학교에 안 나왔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보호자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같이 가시죠."

"시끄러! 나보다 실력도 수입도 떨어지는 선생 밑에서 뭘 배우라고? 이미 난 CEO인데 왜 학교에서 시간 낭비하란 거야!"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입니다."

은솔과 정서진이 싸우는 광경이라니, 세상 처음 본다.

"그래도 솔아. 학교는 졸업해야지?"

"알았어 오빠야!"

그녀가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화사하게 웃었다.

반항기를 한 번에 제압하는 모습에 정서진은 내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아, 시간이 너무 늦었군요."

그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내일 학교에 가려면 일찍 주무셔야 할 겁니다. 예린 양도 집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네? 아,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

정서진이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고급 외제차 한 대가 공원 앞에 주차되었다.

"저희 알케미아 기사분들이 데려다주실 겁니다."

밤중에서도 번쩍번쩍한 사장님 차의 모습에 하예린의 눈이 돌아갔다.

"정말 타도 돼요?"

하예린이 날 보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이는 믿을 수 있어. 내가 보장할게."

"아저씨는요?

"나는 이 사람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나대용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구해주셔서 고마웠어요. 아저씨."

"내일 보자."

그녀가 차량으로 뛰어갔다.

하예린이 안심할 수 있도록 운전기사도 여성분이었다. 과연 정서진답게 디테일이 좋았다.

그녀가 돌아가고, 이제 우리끼리 남았다.

나는 은솔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정서진에게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뭐, 은솔이 마인이 아니라고 100%장담은 못하지만…… 그녀는 하예린이 마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구했다.

마나의 아이는 당연히 마인의 1순위 제거 대상이다.

"뭐야! 그럼 당신은 오빠야가 왔단거 알면서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입 싹 닦은 거야?"

자초지종을 들은 은솔이 정서진을 째려보았다.

"알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빤히 봐놓고……!"

"내가 부탁해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 거야. 이해해 줄 수 있지?"

내 말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오빠야 말은 무조건 이해해!"

"……이거 갑자기 소외감 드네요."

정서진이 쭈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대용 씨가 마나의 아이를 납치하려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맞아. 뭔가 짐작 가는 이유 있어?"

"흠, 마나의 아이를 데려가서 다음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을 지도 모르죠. 지금의 마탑은 정체되어 있으니까요."

나대용은 마나의 아이가 아니라서 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관리자 자격의 임명이나 박탈도 불가능하고, 호문쿨루스를 컨트롤할 수도 없다. 다음 층 시련을 클리어해서 새로운 층을 개방하지도 못한다.

나대용은 대외적으론 마탑주지만, 실제론 4층 관리자에 불과하니까.

그런 점을 새로운 마나의 아이로 커버할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소리."

하지만 은솔은 그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나대용 같은 인간이 고작 그런 이유로 납치하려 했을 것 같아? 새로운 마탑주로 모실 거면 당당하게 이유를 밝히고 스카우트했겠지. 왜 이런 극단적 수단을 동원했겠냐고!"

"그럼 솔이 생각은 어때?"

은솔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대용은 마탑주의 자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그건 거기 안경 아저씨도 인정이지?"

정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할 정도죠."

"생각해 봐. 자기가 여태까지 고생해서 일구어놓은 것들을, 그냥 특성하나 타고난 꼬맹이한테 순순히 넘겨줄 것 같아? 뭔가 나쁜 짓을 꾸몄을 거야. 예를 들자면 마나의 아이의 힘을 빼앗으려 했거나, 아니면……"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콱 죽여 버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

나대용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니, 나로서는 아직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솔아. 나대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줘."

그녀는 하예린을 나대용으로부터 지키려고 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대체 5년간 그 녀석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 * *

"흐응, 흥, 흥."

마탑 1층 황금 로비, 진보라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마우스를 달칵거리고 있었다.

'선배님에게 뭘 사드리는 게 좋을까? 5년 만에 돌아와서 막막하실테니까……'

"저, 저기, 조제관님."

한 여성 마법사가 쭈뼛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 2층의 한…… 유리 씨! 맞죠? 아직도 퇴근 안 하고 뭐 해요?"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뭔가를 내밀었다.

깨진 찻잔이었다. 그리 값비싼 물건도 아니고, 시장에 가면 흔히 볼수 있는 찻잔이었다.

하지만 진보라가 아끼던, 그리고 한때 유신이 즐겨 사용하던 물건이기도 했다.

진보라는 김유신이 얽힌 문제만 만나면 히스테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동료 중 한 명은 진지하게 마탑에서 도망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다들 그녀가 내일 출근하기 어려울거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에이, 괜찮아요. 찻잔 깨진 것 정도로 뭘."

진보라가 손을 휘저었다. 호통을 각오하고 잔뜩 움츠려 있던 마법사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어디 다친 데는 없죠? 깨진 거 뒷정리 잘 하고 퇴근해요."

"아, 아, 넵! 아끼는 물건 깨뜨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요. 들어가요."

마법사는 몇 번이고 진보라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퇴근했다.

이제 1층 로비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흐응, 흥, 흥. 아, 이거 예쁘다!"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구매 버튼을 누르려는 그때.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봅니다. 선배."

진보라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대용이 어둠 속 그늘에 파묻힌 채 서 있었다.

"노, 놀랐잖아요! 언제 왔어요?"

"방금 왔습니다."

나대용이 황금 소파에 앉았다.

진보라는 그의 차림을 힐긋 보고는 물었다.

"슈트 찢어지고 난리 났네. 무슨 일 있었어요?"

"매번 하던 균열 잔당 정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피곤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진보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헌팅이었길래 슈트가 걸레짝이 돼서 와요? 8랭크 몬스터라도 나왔대요? 뉴스에서 그런 소식은 못들었는데."

"……."

"왜 그래요?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

나대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뿜을 뿐이었다.

'……뭐야.'

그때 진보라의 시선에 휴대전화 메시지가 와 있는 게 보였다.

[보라 씨, 지금 어딥니까?]

[나대용 씨가 일을 벌였습니다. 불과 5분 전에 마나의 아이를 납치하려다가 은솔과 탑주님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어딥니까?]

그녀는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럼 거의 10분 정도 만에 상계동까지 달려왔단 건가? 왜? 무슨 이유로?

"선배가 하신 말씀,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등 뒤에서 나대용의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없습니까?"

"……어, 없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나대용이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의 시체가 사라지고, 박물관에 보관 중인 스펙터도 사라졌는데…… 선배답지 않게 너무 편안해보이십니다. 콧노래도 부르고, 선배 물건을 깨뜨린 사람도 용서하고. 음, 역시 평소답지 않아요."

"뭐예요? 그럼 내가 하루 종일 꿍해 있으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진보라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휴대전화를 손바닥에 숨기며 말했다.

"그냥 기분전환 좀 한 거예요. 다들 표정이 너무 죽을상이라고 해서 관리 좀 한 건데,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사람 이상하게 만드시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나대용이 팔을 허공에 휘둘렀다.

촤르르륵!

진보라의 발밑에서 금속 사슬이 올라와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내 상체까지 뒤덮고 두 팔을 붙들어세우게 했다.

"큭!"

그녀는 두 팔을 머리 위로든 모습이 되었다.

사슬이 손목을 압박하자 그녀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휴대전화를 놓쳤다.

나대용이 무릎을 굽혀 그것을 줍고는, 진보라의 지문을 찍어서 보안을 해제했다.

"흠, 정서진 선배의 연락이군요. 은솔과 탑주님을 공격했다라…… 이거 이상하네요."

나대용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곡선이 그려졌다.

"……마탑주는 난데?"

그녀를 포박한 금속이 그녀의 몸을 강하게 조였다.

"꺄아아아악!"

진보라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리고 당신 언제 금속계 마법을……!"

"말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선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나대용이 그녀의 턱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겁먹은 진보라의 눈동자 앞으로, 광기에 젖은 눈동자가 다가왔다.

"스승님께서…… 살아 돌아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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