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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71화 (271/337)

나 혼자만 마탑주 271화

우드 트롤을 쓰러뜨린 하예린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제 나도 5랭크 몬스터와 싸울수 있다는 감격에.

무엇보다 이제는 몬스터가 나타나도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을 지키며 싸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지게 기뻤다.

'나 막 학계 잡지에 실리는 거 아냐?'

온갖 핑크빛 망상을 펼쳐나가는 것도 잠시, 그녀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르르르르.

수풀을 가르고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우드트롤 한 마리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야 했지만.

'모, 몸이 무거워!'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간힘을 써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폭주하는 엔진처럼 돌아가던 서클도 잠잠했다.

'으으! 심장 마비를 각오하고 쓰는 마법인데 한번 쓰면 탈진이라니! 이거 완전 실전성 제로 아냐?'

그녀는 속으로 좌절하며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풀 속에서 뱀의 형상을 한 몬스터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파충류 특유의 징그러운 외형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언제나 그랬었지만, 오늘만큼 몬스터를 불러 모으는 체질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제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입을 쩍 벌린 뱀이 다가왔다.

꽈앙!

폭음. 그리고 후끈한 열감을 느낀 그녀가 몸을 젖혔다. 쏜살같이 날아온 화염이 뱀의 몸뚱이를 강타한 것이다.

-쉬이익!

불길에 휩싸인 뱀이 괴롭게 발버둥치는 사이, 연달아 화염구들이 날아와 몬스터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아저씨?'

그렁그렁 해진 눈으로 뒤를 돌아본 그녀는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신이 아니었다. 선글라스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유난히 덩치가 호리호리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예린 학생. 맞죠?"

그녀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마탑의 관계자들이 틀림없다.

"겁먹지 마세요. 저희는 마탑에서 왔습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구하러 오긴 개뿔,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그녀가 안간힘을 쓰자 간신히 팔 한쪽이 움직였다.

근처의 돌부리를 붙잡고, 죽을 힘을 다해 몸을 당겼다.

하지만 고작 저들에게서 몇 센티미터 멀어졌을 뿐이었다.

"보기 안쓰럽네요. 저희가 차로 모시겠습니다."

"오, 오지 말라고요!"

그녀가 소리쳤다.

"마탑에 관심 없다니까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직접 가서 들으시죠. 마탑주님께서 하예린 학생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십니다."

마법사가 하예린의 손목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몸이 억지로 일으켜 세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그때.

까드득!

"끅! 끄아아아아악!"

손을 구속하던 힘이 풀렸다.

풀밭에 풀썩 주저앉은 그녀가 고개를 들자, 바람처럼 나타난 한 남자가 마법사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가 싫다잖아."

으드득! 마법사의 손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마법사는 비명을 지르며 구부러진 손을 붙잡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예린아 괜찮아?"

그 상냥한 목소리에, 하예린은 눈물부터 쏟아냈다.

"아저씨!"

"넌 또 뭐 하는 새끼야?"

마법사들이 위협적인 얼굴로 다가왔다.

"오지랖도 상황 봐가면서 부려라."

"우린 마탑 소속입니다. 댁도 헌터같은데, 마탑을 적으로 돌릴 셈입니까?"

유신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 그대로 돌려 줄게."

그의 오른눈에서 푸른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날 적으로 돌릴 셈이야? 뉴비들."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자신들더러 뉴비라고 칭하는 저 남자야말로 가장 젊어 보였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상대하면 일이 상당히 꼬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쫄지 마, 병신들아."

그중에서 한 마법사가 앞으로 나와서 두 팔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전류가 휘감겼다.

"그냥 산 채로 구워주마! 라이트닝……!"

퍼어억!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남자의 머리가 뺨이라도 맞은 듯 세차게 돌아갔다. 집중력이 깨지면서 마법진도 취소되었다.

"바, 방금 뭐가……!"

짜악!

이번엔 반대쪽 뺨.

으적!

이번엔 다리.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뻐어억!

마지막으론 복부에 타격이 휘몰아쳤다. 마법사는 헛구역질을 하더니 이내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뭐야, 당한 거야?"

그의 동료가 기겁하며 유신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팔짱을 낀 채 제자리에서 있을 뿐이었다. 마법이나 고유 능력을 쓰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뭘 꼬라봐?"

빠아아악!

난데 없이 뒤통수에 터져 나온 충격에, 그 또한 바닥에 엎어져 얼굴을 박았다.

지켜보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게 바로 그 옛날 김유신이나 썼다는 6공정 마법이란 사실을.

그때 후방에서 지원병력이 도착했다. 연락을 듣고 마탑의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예린은 절망감에 몸서리쳤다. 수가 너무 많았다.

"아저씨! 빨리 도망가요!"

유신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왜?"

마법사들은 동료 몇 명이 당한 모습을 보고는 제자리에 멈춰서 마력을 일으켰다.

"보통 놈이 아니다!"

"한 번에 쳐!"

그들이 손바닥을 펼치자 전격, 물, 독, 빛 등 각양각색의 속성 마법이 전개되고 있었다. 유신은 그저 팔짱을 끼고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향해 있을 때, 그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으로 마법진들이 동시에 펼쳐진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퍼버벅!

퍼버버버벅!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뭔지도 모르는 힘에 얻어터지며 하늘로 올라간다. 공중에서 마법사들의 몸이 경련하듯 뒤틀린다.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던 그들이, 이내 비처럼 바닥에 후두두둑 떨어진다.

"아……"

그걸로 끝.

하예린은 전율하며 입을 가렸다.

바닥에 떨어진 마법사들 중 손가락하나 꿈쩍하는 사람이 없었다.

"됐어. 이제 돌아가자."

유신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아직!"

"?"

유신이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 손목을 꺾어두었던 마법사의 왼손에서 대형 마법진이 펼쳐졌다.

"아직이다!"

<프로메테우스>

화르르륵!

마법진으로부터 이글거리는 화염의 거인이 일어나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오."

이번엔 유신도 흥미가 생기는 듯 눈을 반짝였다.

"4공정. 아니, 4서클 마법사는 처음 보네."

"당신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게 마지막 경고다!"

과한 마나 사용으로 눈 아래가 새까매진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마나의 아이를 넘겨라!"

"흠."

유신은 눈썹을 긁적이며 웃었다.

"하나 가르쳐 줄까?"

<프로메테우스>

유신의 왼손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형 마법진이 펼쳐진다.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진동과 함께, 마법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면을 향해 있던 그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이내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가 꺼낸 것보다 수 배는 더 큰 초대형 프로메테우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크기를 비교한다면 갓난아이와 어른의 차이였다.

"이게 프로메테우스야."

유신이 손짓 했다. 거인이 팔을 뻗어 작은 프로메테우스의 다리를 움켜쥐더니 거꾸로 들어 올려 입속에 처넣었다.

화륵! 화르르륵!

불의 거인이 게걸스럽게 입을 으적거릴 때마다 마법사의 프로메테우스가 분해되어 사라져 간다.

마법사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긍지이자 최강의 마법이 이토록 허무하게 먹혀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

마법사의 몸이 달달 떨렸다.

"어떻게 이런 힘이 존재할 수가 있는 거지?"

작은 프로메테우스가 완전히 먹히자, 유신의 프로메테우스는 그 크기를 한층 더 부풀렸다.

형용할 수도 없는 힘에 차이에 마법사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가 티끌처럼 초라해졌다.

"당신 맘에 드네."

유신이 씩 웃었다.

"재능은 있어. 나중에 복귀하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유신이 딱밤을 때리듯 손가락을 퉁기자, 마법사의 이마에 사지타리우스가 터졌다.

그의 눈에 흰자가 드러나며 뒤로 쓰러졌다.

"아, 재밌었다."

홀연히 나타나 단신으로 마탑의 마법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이 사람은, 마치 아이가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논 듯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저씨."

하예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대체 뭐예요?"

유신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방금 세상을 수족처럼 부리던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위압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뭐긴, 네 과외 선생님이지."

유신이 팔을 뻗었다. 손을 잡고 일어난 하예린이 와락 그에게 뛰어들었다.

"그래, 그래. 무서웠지?"

"흐윽! 흑!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

유신이 그녀의 등을 쓸어주었다.

한동안 유신의 품 안에서 훌쩍이던 하예린이 갑자기 고개를 확 들었다.

"아! 그 아이!"

"?"

"저를 구해준 아이가 있어요! 걔가 지금 마탑주랑 싸우고 있을 거예요!"

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탑주? 그게 뭔 소리야?"

"일단 뛰어요! 빨리!"

하예린이 달리기 시작했고 유신도 그 옆으로 나란히 달렸다.

"마탑주가 절 납치하려고 했어요! 저도 그 아이의 도움을 받아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널 납치하려 했다고? 나대용이?"

"네!"

유신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하필이면 재앙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대강이라도 좋으니까 위치를 말해줘. 내가 먼저 가볼게."

* * *

운동장 전역에서 메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닥 곳곳에 시꺼멓게 그을린 로봇들이 나뒹구는 모습은 마치 폐차장을 연상케 했다.

그간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우웅!

고물의 잔해들을 헤치며, 매끈한 백색 골렘이 소드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한 나대용이 오른팔을 뻗었다.

콰릉!

쏟아져 나간 전격이 로봇을 강타했다. 결국 한계치에 달한 로봇에 연기가 흘러나오며 움직임이 멎었다.

이내 등 부위가 열리고, 안에 타고 있던 소녀가 공중제비를 돌며 빠져나왔다.

잠시 뒤, 로봇은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후우! 허억!"

얼굴 곳곳에 새까만 기름을 묻힌 소녀가 숨을 헐떡였다. 나대용은 그녀에게 걸어가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그만하지? 더 꺼낼 골렘이나 로봇도 없을 텐데."

"……."

"솔이 네가 마탑에서 나온 지 벌써 4년이 흘렀어. 골렘을 만들지 못하는 3층 관리자는 약해질 수밖에 없지."

그녀가 눈에 힘을 주며 나대용을 노려보았다.

"입 다물어!"

"아직 늦지 않았어 솔아. 한때의 반항기라고 생각할게. 마탑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다시 힘을 합치자. 관리자들이 힘을 합치면 마탑은 부흥할 수 있어. 그때 그 시절, 전 세계가 우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하던 그 순간으로."

비틀거리며 몸을 꼿꼿이 세운 그녀가 중지 손가락을 세웠다.

"결론은 공방에 처박혀 네 꼭두각시가 되란 소리지? X까세요."

나대용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왜."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공허했다.

"……왜 다들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거야?"

쿠르르르릉!

서울 하늘에 뇌운이 끼기 시작한다.

"나는 잘 해보려고 했어. 누구보다 절실히 노력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 왜……!"

콰릉!

마른하늘이 새하얗게 변하며 번개가 친다.

"왜 나만 안 된다는 거냐고!"

나대용이 거칠게 팔을 내리자, 지금껏 본 중 가장 거대한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은솔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질끈 감았다.

콰르르르르르릉!

전류가 울부짖는 소리가 함께 그녀가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

그런데 통증은 없다.

그렇게 눈을 뜬 그녀가 처음으로 본 것은, 누군가의 등이었다.

20대 평범한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하지만 나대용의 번개는 그를 집어삼키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딱 맞춰왔네."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소녀는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넌 또 뭐야?"

나대용의 물음에, 유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대용 씨, 많이 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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