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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70화 (270/337)

나 혼자만 마탑주 270화

"언제까지 날 방해할 셈이야? 솔아."

나대용이 웃는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소녀는 으득 입술을 깨물더니, 옆을 돌아보았다.

"야."

"……네, 넷!"

하예린은 의자를 짚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 녀석은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까, 온 힘을 다해 뛰어."

"네?"

"지금이야."

철컥!

"꺄아악!"

하예린이 앉아 있던 밑바닥이 열렸고, 그녀가 바닥에 떨어졌다.

"가! 빨리!"

다시 열린 구멍이 닫히고, 로봇이 나대용에게 달려갔다.

나대용이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네가 상대라면 나도 각오 좀 해야겠는데."

그의 두 손에 거친 전격이 휘감겼다. 이내 로봇과 나대용이 격돌하며 섬광이 사방으로 튀었다.

착지의 충격에서 벗어난 하예린은 소녀의 말대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악!"

앞을 보지도 않고 그저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녀는 운동장을 벗어나 수풀을 가로질러, 담을 넘어 철문을 지났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터무니없이 위험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마탑주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 나대용 본인은 물론, 그 수하들까지 동원했을지도 몰랐다.

'어, 어디로 가야 하지?'

집으로 가야 하나? 아니, 집도 안전하지 못하다.

학교? 번화가? 경찰서?

나대용이 도로에서 번개를 쏘는 모습을 떠올렸다. 장난이 아니다. 그는 진심이다.

마탑에서 마음먹고 들이닥치면 어딜 들어가든 전부 뚫리고 말 것이다. 괜히 상관없는 남들이 휘말릴뿐이다.

'숨어야 해.'

안전한 장소.

안심하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곳.

서둘러 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그녀는 통화 목록에서 최근 기록에 들어갔다.

[아저씨] - 오후 5:18.

통화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기본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잠시 후, 빨간색 통화 버튼이 녹색으로 바뀐다.

-응, 예린아. 무슨 일이야?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예린은 밀려드는 안도감과 함께 눈물부터 주르륵 쏟아졌다. 입을 틀어막고 흐느낌을 참았다.

-뭐야, 너 울어?

"흐흡! 끅! 흑! 아저씨!"

-…… 무슨 일이야.

유신의 목소리가 급격히 진지해졌다.

"도, 도와주세요!"

-위치는?

아무 설명도 안 했는데 바로 장소부터 물어봐 준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고맙고 든든해서 또 눈물이 났다.

그녀는 몰아치는 울먹임을 참고는 주위를 살폈다.

"우리 집에서, 훌쩍! 멀리 떨어졌어요. 근처에 IBM은행이랑 행복마트가 보여요."

-바로 갈게. 멀리 가지 말고 그 근처에 숨어 있어.

"네, 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우거진 수풀을 발견하고 기어들어갔다. 나뭇가지에 팔이 긁히고 뾰족한 돌에 찔려 무릎에 피가 났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내 수풀 깊은 곳까지 들어간 하예린은 다리를 가슴에 붙인 채 최대한 웅그리고 앉았다.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잡았다.

'아저씨! 제발 빨리 와주세요……!'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주위에 인기척이나 차의 엔진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때마다 숨을 참았다.

숨 소리조차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

시간은 무척 더디게 갔다.

마탑주가 왜 나를 노리는 걸까.

날 구해준 그 아이는 누굴까.

내일 아침 해를 무사히 볼 수나 있을까.

…….

'아'

멀리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녀의 귀가 쫑긋했다.

잔뜩 민감해진 청각이 소리를 세부적으로 감지했다. 수풀을 가르고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발소리. 소름 끼치는 숨 소리. 그리고.

-크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아……'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필, 하필이면 마탑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몬스터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 망할 체질! 진짜 싫어어어!'

-크르륵!

몬스터의 숨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린다.

정확히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다음,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부우우우우웅!

곧장 나뭇가지들을 가르며 일직선으로 휘둘러지는 몽둥이가 보인다.

그녀는 몸을 날렸고, 몽둥이가 바닥에 찍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으으, 진짜!"

마력을 활성화하며 상대를 본다.

몬스터는 틀림없이 '우드트롤'.

가면허 플레이어는 대적할 수 없는 5랭크의 괴물이다.

전면은 높은 언덕이 있어서 도망칠수 없었다. 어떻게든 우회해서 도로 쪽으로 달리면…….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가 입술을 꾹깨물었다.

또 도망쳐? 언제까지 도망만 칠건데?

내일? 모레? 평생?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며 악이 받혔다.

'……할 수 있어.'

그녀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두 손에 마력을 모았다.

'배운 대로만 하면 이길 수 있어!'

<윈드커터>

그녀의 두 손바닥에 회전하는 바람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라라라라라!

트롤이 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달려온다. 위험천만한 광경이었지만 그녀는 각오를 다지고 팔을 휘둘렀다.

두 개의 바람칼날이 트롤의 양 가슴으로 날아갔다.

칼날이 회전하며 살점이 찢기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트롤은 그것을 몸으로 받아내며 하예린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쉴드>

그녀는 앞에 쉴드를 깔고 몸을 바짝 낮췄다.

부우우우우우웅!

방망이가 거친 궤적을 그리며 그녀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상당한 속도. 중간에 쉴드가 부서지며 경감시키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100% 막고, 100%로 맞추는 게 전부는 아냐.

유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빗맞는 것도, 실수하는 것도, 넘어지는 것도 전부 전투의 연속이야.

전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정보의 파편을 줍고 머리를 굴리며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거야.

몽둥이를 피한 그녀가 다시 한번 두 개의 윈드커터를 날려 보냈다.

이번에는 목과 허벅지에 명중했지만, 칼날이 저 단단한 외피를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윈드커터는 중간에 마력이 다해 흩어졌고, 트롤의 특성인 재생력으로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간다.

'그래, 트롤의 특성.'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수업 내용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재생, 괴력, 육식, 독 면역, 외호흡……'

전투에 몰입하며 그녀는 심장을 감싸고 있는 두 개의 서클을 느꼈다.

그리고 최근에 개방한 세 번째 서클까지 모두 돌리며 마나를 일으켰다.

'유지력에 특화된 3서클 마법……!'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는 사이트롤이 들이닥친다. 그녀는 나무를 딛고 뛰어올라 몽둥이를 피하고는, 공중에 쉴드들을 펼쳐 밟고 트롤의 후면으로 돌아왔다.

'흐읍!'

쉴드 위에서 뛰어내리며 발동한 마법을 트롤의 얼굴에 씌운다.

<윈드포트>

트롤의 얼굴에 공기장막이 생겼다.

그녀가 얼른 뒤로 물러났고, 트롤은 아직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연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다 곧 방망이를 떨어뜨리며 괴로운 듯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크루룩!

트롤이 양손으로 얼굴을 마구 감싸쥐며 공기 장막을 흩뜨리려 했다.

하예린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윈드포트의 컨트롤에 모든 집중력을 쏟았다.

트롤이 윈드포트를 쥐어뜯으면, 찢는 것보다 빠르게 아래에 다시 장막을 펼쳐 산소를 차단했다.

마치 슬라임처럼, 찢으면 복구하고 갈라지면 채워 넣기를 반복한다. 저 거대한 몬스터가 호흡 곤란에 어쩔줄 몰라하며 발버둥 치고 있다.

-쿠룩!

거품을 물며 괴로워하던 트롤이 충혈된 눈으로 하예린을 노려보았다.

그러곤 괴성을 지르며 달려 들었다.

기겁한 그녀가 다급히 몸을 던져피했지만.

"아……"

늦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흔들리면서 윈드포트에 구멍이 났고 트롤은 많은 양의 산소를 호흡하고 말았다.

몬스터의 표정이 전보다 편안해졌다.

'역시 이런 방법으로는 안돼.'

다 잡은 기회를 놓친 건 아쉽지만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녀가 팔을 내리며 마력을 풀었다.

윈드포트가 완전히 사라졌고, 트롤은 크게 숨을 내쉬며 방망이를 주웠다.

'2서클의 윈드커터.'

그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집중력을 끌어모아 손바닥에 마법진을 펼쳤다.

'여기에 3서클의 유지력을 더 할 수 있다면……!'

그녀는 서클로 마법진을 빠르게 그리고 지우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녀의 머릿속이 가열차게 돌아가며 서클도 돌아가기 시작한다.

'핵심은 윈드커터의 내구성.'

그녀가 날아드는 방망이를 허리를 젖혀 피해내며 생각했다.

'내구성을 올리는데 필요한 건 집중력과 마법진의 지속시간.'

'마법진의 지속시간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지?'

'외부보단 내부에서 시전하는 편이 효율이 높아.'

'서클에서 완성한 마법진을 굳이 밖으로 내보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두뇌가 미친 듯이 가열된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 많은 수식들이 지나가고 변모한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쳤다.

'해보자!'

서클과 손바닥의 마나가 이어진다.

서클 마법의 '도장법'은 어디까지나 마법을 익히는 초보자를 위한 것.

하지만 유신 사후, 그가 만든 초보자 기술은 절대적인 진리처럼 변질 되어 관습이 됐고, 편견이 됐으며, 한계가 됐다.

하지만.

-마나는 심장에서 나와. 심장을 둘러싼 서클과 마법진을 하나로 이어서 마나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거야.

그녀는 손바닥에 평소처럼 윈드커터를 일으켰다. 그러나 곧 회전을 멈춘다.

회전력을 포기하는 대신 내구성과 위력에 집중. 윈드커터의 크기가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마나 운용법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집중이 5 올랐습니다.]

[가속 시전 특성을 얻었습니다.]

[특수 능력치 - '창의'가 개방되었습니다.]

그녀는 손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붙든 채 오른팔을 뒤로 뺐다.

그러자 그녀의 몸보다 더 큰 바람의 칼날이 똑같은 움직임으로 기울어졌다.

<하예린 오리지널 - 에어 차크람>

그녀의 오른팔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의 칼날이 번뜩인다.

-크라라라라라!

트롤이 달려와 방망이를 내려쳤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오른팔을 휘둘렀다.

쩡!

마력 스파크가 튀며 방망이가 차크람에 부딪혀 튕겨 나간다. 괴물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진다.

"하아아아앗!"

그녀가 벼락같이 달려나가 오른팔을 스윙하듯 올렸다. 차크람이 트롤의 가슴을 베고 지나가며 핏줄기가 쏟아진다.

-크륵! 크르륵!

먹잇감이 저항한다. 격분한 트롤은 무차별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러 댔다. 묵직한 방망이 끝에 연달아 에어 차크람이 부딪혔다.

육체에는 문제가 없다. 팔은 아프지 않다. 대신 심장에서 데미지가 온다.

서클에서 유지되는 마법진으로 발현한 마법. 마법이 강제 해제되면 서클과 심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촤아아아아악!

팔들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완력을 들이지 않고 막대한 운동량을 다스릴 수 있으며.

카득!

큰 충격을 받아도 마법이 해제되지 않는다. 그녀의 공격에 허벅지가 2/3이 날아간 괴수가 피를 쏟아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흐랴아아아앗!"

그녀가 기세를 올린다. 틀림없이 처음 써보는 마법이지만, 마치 무기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신들린 듯 운용할 수 있었다.

차크람은 괴수의 재생 피부를 난자하며 사방으로 핏방울을 터뜨렸다.

터업!

그녀가 괴수의 무릎과 가슴을 밟고 어깨 위로 뛰어오른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웅크리던 괴수는 뒤늦게 보고야 말았다.

자신의 목으로 올라오는 단두대를.

-크루룩!

칼날이 목의 외피를 가르기 시작하자, 기겁한 몬스터는 방망이를 버리고 두 팔로 칼날을 붙잡았다. 칼날이 덜덜 떨리며 밑으로 내려간다.

몬스터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하예린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오른팔을 끌어 올렸다.

"하아아아아아아!"

격정적인 기합성이 쏟아지며, 칼날을 붙잡은 몬스터의 손가락이 절단된다. 동시에 차크람이 두꺼운 목을 썰고 지나간다.

깔끔한 단면이 드러나고, 몬스터의 머리는 공중을 수 미터나 비상하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쿵!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엎어진다.

"꺅?"

동시에 하예린도 볼품없는 포즈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힘이 다한 윈드 차크람은 사라져 버렸다.

"……하아, 허억! 하아!"

그녀는 바닥과 하나가 된 기분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마법 하나에 온몸의 마나를 끌어써버렸지만 그래도 짜릿했다.

5랭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천재 중의 천재의 영역이라는 오리지널 마법까지.

'……나 해냈어요! 아저씨!'

그녀가 밤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쥐었다.

오늘은 인생 최악의 날이자, 최고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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