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69화
"이제 잘 보이나 보네? 하하."
나대용이 헤픈 미소를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예린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가왔다.
"너, 너무 팬이에요! 마법 강의 영상 잘 보고 있어요!"
"고맙구나. 다친 곳은 없니?"
"네!"
나대용과의 만남으로, 방금 겪었던 공포스러운 일 따위는 완전히 머릿속에서 증발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몬스터가 있어서 와봤단다."
나대용이 손가락을 치켜올리자, 어두운 골목 어딘가에서 바싹 구워진 몬스터가 하늘로 떠올랐다.
"그, 그럼 마탑주님이 절 구해주신건가요?"
"하하. 그렇게 되나?"
"대박! 대박! 꺄아아아!"
하예린은 두 뺨을 감싸며 머리를 흔들었다.
실물로 보니 더 근사했다. 아이돌이나 헌터에 푹 빠져 사는 친구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근데 내가 진짜로 마탑주 팬이었던가?'
그런 의문이 살짝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다.
"마탑주님! 저도 마법사예요! 알케인에서 후원하는 카임에 다니고 있고 이제 3서클까지 만들었어요!"
"3서클? 고등학생인데도 대단한데."
"언젠가 저도 훌륭한 마법사가 돼서 마탑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 말에 나대용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름이 뭐니?"
"하예린! 하예린이라고 해요!"
"귀에 익은 이름이구나. 카임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들은 것 같은데. 혹시……"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나대용이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래! 네가 그 '마나의 아이' 구나."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새로운 마법사 계열의 특성이라서 교장 선생님께 보고 받았거든."
하예린은 전율로 몸을 떨었다. 세상에, 마탑주가 나를 알고 있다니!
"마나의 아이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아저씨도 자꾸 저더러 마나의 아이 어쩌고 하던데."
"아저씨?"
"아, 네! 개인적으로 제게 마법을 가르쳐 주는 마법사분이 계시거든요."
나대용이 눈웃음을 지었다.
"흥미롭구나. 어떤 분이시니? 이름은?"
김춘추. 라고 대답하려던 하예린은 잠시 말을 멈췄다.
나대용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 같다. 마치 닦달하는 것 같은.
"아, 그…… 저도 이름은 몰라요."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낀 그녀는 일단 거짓말을 했다.
"모른다고? 이름도?"
"네. 그냥 저희 엄마가 과외 선생님으로 아는 분 소개해 준 거라서요."
"혹시 어머니 연락처 좀 줄 수 있을까?"
무언가 이상함을 자각하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핑크빛 행복이 걷히고 강한 의문이 차오른다.
마탑주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사실 평소에 별 관심도 없었고.
마나의 아이라고 확인받는 것 같아서 무섭고.
아저씨에 대해 캐묻는 것도 이상하다.
엄마 연락처는 왜 묻는 거야? 왜 저렇게 초조해하지?
"……."
하예린이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자, 나대용이 눈이 한 순간 가늘어졌다. 물론 그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부드러운 미소가 자리한다.
"갑작스럽게 물어봐서 미안하다. 실은 내가 마탑에서 일했다가 은퇴한 마법사 한 분을 찾고 있거든."
"은퇴한 마법사……?"
"그래. 우리 마탑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인데 너무 쉽게 은퇴한다고 해서, 그분을 설득하고 싶어."
아저씨도 잠시 헌터 일을 쉬는 중이라고 했다. 상황은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마탑주님이 찾는 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마탑이 아니라 헌터 길드 출신이고, 지금도 활동 중이거든요."
"그러니? 아쉽구나."
나대용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케인에 들어올 생각 있니?"
의심으로 가득했던 하예린의 머릿속에 아케인이라는 세 글자가 내리꽂혔다.
"아, 아케인이요?"
"그래. 아무리 마탑주라도 바로 널마탑에 데리고 올 수는 없거든. 너만 좋다면 아케인에서 직접 공부시키고 싶은데. 어때?"
나대용이 손을 내밀었다.
"마탑을 위해서. 아니, 전 세계의 마법계를 위해서 일해줄 수 있을까?"
그것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아케인! 전 세계의 엘리트 마법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꿈의 직장이자, 마탑으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 그것도 무려 마탑주가 직접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비전 없는 바람계 마법사에게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
그녀는 내밀어진 나대용의 손바닥을 향해 천천히 팔을 뻗었다.
두 사람이 악수하기 직전.
"……!"
하예린이 흠칫하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왜 그러니?"
나대용이 물었다.
"……마탑주님."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진다. 하예린이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 절 감전시키려 하셨죠?"
나대용은 내민 팔을 무안하게 거두어들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난……."
"가까이 오지 마세요!"
하예린이 마법진을 펼치며 소리쳤다. 나대용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난 그저……"
"아케인이니, 마탑이니 아무 관심없어요!"
하예린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냥 절 보내주세요! 제발……!"
"으음."
나대용이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겐 안 되겠는데."
파지지지지직!
그의 손에 맹렬한 전격이 휘감겼다.
"공인 2급 나대용, 마인 유력 용의자 발견. 확보하겠다."
"지, 지금 무슨……!"
바로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작은 탁구공 크기의 뭔가가 날아왔다.
그것을 본 나대용이 인상을 굳히며 한 발짝 물러났다.
탁구공들이 바닥과 벽에 떨어지기 무섭게 커다란 팔들이 솟구쳐 올라 나대용의 몸으로 떨어진다.
쿠쿠쿠쿠쿠쿵!
"우왓!"
하예린이 뒷걸음질쳤다. 자욱하게 일어난 연기가 주위를 뿌옇게 만들었다.
"야! 멍하니 있지 마!"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등 뒤에서 자신의 손을 덥석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따라와! 살고 싶으면!"
그 손길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하예린은 엉겁결에 자신이 도망쳤던 어둠 속으로 들어와 이번엔 나대용으로부터 도망친다.
어둠 속이라서 누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왜, 왜 이러세요! 아파요!"
"닥치고 따라와 쫌!"
여자 목소리였다.
그녀는 하예린을 끌고 가는 동시에 그 탁구공 같은 것들을 바닥에 계속 떨어뜨렸다. 뒤에서는 번뜩이며 거대한 전류가 일어나고 있다.
'으아앙!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거야?'
두 사람은 골목을 빠져나와 계속 달렸다. 가로등 불빛으로 자신의 손을 잡고 데려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있길래 영락없이 덩치가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많이 잡아도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계속 달려! 쉬지 마!"
"네, 넷!"
두 사람이 달리는 골목에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팔을 흔들었다.
"따라잡히겠다! 서둘러!"
"입 닥쳐! 서두르고 있잖아!"
소녀가 씹어먹듯 소리쳤다.
차에 도착한 소녀는 뒷문을 터프하게 열어젖히더니 하예린의 멱살을 붙들고 잡아당겼다.
"들어가!"
"꺄악!"
하예린은 마치 짐짝처럼 구겨지듯 뒷좌석에 탑승했다. 서둘러 그 옆자리로 몸을 던진 소녀가 차 문을 쾅닫으며 소리쳤다.
"밟아!"
키이이이이이이!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달려나간다.
동네 도로에서 차량 속도 계기판의 바늘이 순식간에 100을 넘겨 버린다.
앞선 차들을 S자로 추월하며 미친 듯이 내달리고, 사방에서 항의의 경적이 울려 퍼진다.
"흐악!"
차가 거칠게 턴할 때마다 손잡이를 붙잡은 하예린의 몸이 종이인형처럼 흔들거렸다. 이 차는 안전벨트도 없었다.
"흐으윽! 다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살려주세요! 전 아무 잘못도……"
"아, 더럽게 질질 짜네!"
소녀가 버럭 소리 지르며 손에 쥔 그 탁구공으로 하예린의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한 번만 더 우는 소리 하면 그거 입에 넣고 터뜨려 버린다?"
"……!"
하예린이 닥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빠르게 두어 번 흔들었다.
콰르르르르릉!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거친 충격과 폭음이 들리고 차량이 키기기기기! 소리를 내며 비틀어진다.
"놈이 하늘에서 온다!"
하예린도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바라보았다.
나대용이 하늘을 날며 이쪽으로 전격을 날리고 있었다. 주위에 민간인 차가 이렇게 많은데도 상관없다는 듯 마법을 퍼부어댔다.
"엄마야아아아!"
전격이 번뜩일 때마다 하예린이 곡 소리를 냈다.
소녀는 쳇 하고 혀를 차더니 운전석으로 고개를 빼며 말했다.
"더 밟아! 더! 더! 더!"
"이젠 어떻게 되든 난 몰라."
운전사가 씩 웃으며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차체가 진동하며 부우우우우웅! 하는 거친 엔진 소리가 울린다. 계기판 바늘이 200을 넘어선다.
"저쪽이야! 최단 루트!"
"확인."
운전사가 핸들을 꺾었다.
차가 신기에 가까운 코너링과 함께 기역 자로 꺾어지며 차선을 넘어 옆도로로 파고든다.
전격이 멈추자 하예린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운전석 쪽 창가로 차량 한 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 역주행? 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허우적거리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운전사는 보란 듯이 핸들을 꺾어 주행하는 차량들을 피해낸다.
경적이 미친 듯이 사방에서 터져나오며 귓가를 때리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후 방향을 꺾어 다음 도로로 넘어가 정주행으로 돌아왔다. 하예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그녀는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았다. 나대용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살았다.
아직 어느 쪽이 나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대용이 없으면 번개에 맞거나 그걸 피한다고 무리해서 역주행 같은 짓을 하진 않겠…….
쿠르르르르릉!
세상이 다시 하얗게 변하며 차체가 흔들렸다.
하예린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사이, 차량은 도로에서 벗어난 채 하늘 높이 떠올라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차가 하늘을 날고 있다. 아래는 수 많은 건물들과 차량이 보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번개를 맞고 연기에 뒤덮인 차량이 지상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다.
소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는 수 없지."
소녀가 차 천장에 손바닥을 짚었다. 그녀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차에서 전선들이 번뜩이며 나타났다.
"튕겨 나가기 싫음 꽉 잡아라."
"……네, 네?"
난데 없이 차가 반으로 접혔다. 앞좌석과 뒷좌석이 완전히 나누어졌다.
"으직?!"
철컥! 철컥!
차량의 부품이 튀어나오고 차문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미사일 포대 같은 것들이 솟구쳐 올랐다.
까득! 까드드득!
바퀴가 분해되어 다리가 펼쳐지고 엔진이 앞 좌석으로 내려온다. 그녀들이 있는 뒷좌석이 분해되고 천장이 사라지며 하늘로 올라온다.
"꺄아아아악!"
높은 상공에서 바람이 씽씽 불어닥치며 하예린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차량은 다리와 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철컥! 쿵!
비명을 지르는 하예린의 몸을 운전석 상체가 덮는다. 이내 위에 로봇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로, 로, 로, 로봇?!"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로봇이 지면에 두 다리를 대며 바닥에 착지한다.
쿠쿠쿠쿠쿵! 지면을 긁으며 몇 미터 미끄러지다가 이내 멈춰선다.
어느새 하예린과 소녀는 로봇의 가슴 쪽 자리에 타 있었다.
능숙하게 조종석의 레버를 당기고 버튼을 탁탁 켠 소녀는 한심하다는 듯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하예린은 머리부터 거꾸로 뒤집힌 채 다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에이 씨, 더럽게 뭐하는 짓이야?"
옆자리의 소녀가 오만상을 쓰며 하예린의 스커트를 내렸다.
"빨리 안 일어나?"
"엉엉, 제발 살려주세요……"
"멍청이!"
소녀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파직거리는 번개를 이끌고 나타난 나대용이 바닥에 착지했다.
"언제까지 날 방해할 셈이야?"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