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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65화 (26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65화

나는 정서진과 함께 택시를 타고 본사 건물로 돌아왔다.

"어, 어어?"

"회장님 그 꼴은 대체……!"

정서진의 셔츠는 불에 타 사라졌고, 정장 바지는 반바지처럼 변해버렸다. 구두도 한 짝만 신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놀란 얼굴로 정서진을 보던 경호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너 이 새끼! 대체 회장님께 무슨 짓을……!"

"이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서진이 웃으며 말했다.

"소란이 생기지 않도록 입단속 잘 해주시고, 옷 한 벌 마련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정서진은 경호원의 옷을 빌려서 대충 몸에 둘렀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렇게 나란히 있으려니 확실히 알수 있었다. 이 녀석 키가 좀 컸다.

원래도 180은 가뿐히 넘기는 키였는데 더 커져 버리니까 마치…….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나는 시선을 올렸다. 뜬금없이 정서진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너 뭐 하냐?"

"예? 아, 죄송합니다. 무심코."

내 머리에서 손을 뗀 정서진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탑주님은 하나도 바뀐 게 없으시네요."

"당연하지. 5년 동안 시간이 멈춰있었으니까."

내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내가 안 바뀐 게 아니라 너희들이 바뀐……"

나는 말을 멈추고 눈동자를 굴렸다. 정서진이 또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내가 눈에 힘을 주며 으르렁대자 정서진은 얼른 손을 떼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얘 갑자기 왜 이래. 닭살 돋게.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아무튼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우리는 알케미아 본사에 마련된 정서진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와, 진짜 사장님 방 느낌 확 나네.'

나는 털 깔린 안락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메신저를 켰다.

진보라에게 '임무 완료'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깔끔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정서진이 차를 내왔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이향은…… 대추차다.

'역시 정서진, 내 입맛을 정확히 알고 있군.'

내심 만족스럽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맛을 보고 있는데, 정서진이 조용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뭐 해?"

"죄인이 응당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말했잖아. 네가 마인인지 확인하려고 한 일이었다고. 절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란 거, 알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 빨랑 일어나서 앉아. 대가리 확 까버리기 전에."

결국 정서진이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음미하듯 대추차를 마셨다. 달달한 가을의 맛을 느끼고 있다가 슬쩍 한쪽 눈을 떠보았다.

정서진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야."

"네, 탑주님."

"아 씨, 닭살 돋게 나한테 왜 이래? 부담스럽다고!"

그제야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정서진이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흠흠,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음?"

"탑주님과의 재회가 너무 좋아서 그랬습니다."

"……우웩! 뭐라는 거야 진짜."

더럽게 오글거리긴 하는데…… 뭐, 그래.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를 못해줄 건 아니다.

나야 정신세계에서 지냈지만 정서진은 5년 동안이나 내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지 않은가.

진보라처럼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아닌 서툰 표현법이라 그렇지, 이상하게 느낄 것도 없고 이해하라면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불만이라면 왜 하필 '머리쓰담'이냐는 거다. 내가 더 형인데 날 귀여워 하는 것도 아니고.

"탑주님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저말고 또 누가 알고 있습니까?"

"일단은 너랑 보라 둘뿐이야."

"그렇군요. 그럼 마탑에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혼자 다니려고. 이 일이 끝나면 복귀해야겠지."

정서진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어서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아, 근데 내가 돌아간다고 해도 자리가 있나?"

현 마탑주는 누가 뭐래도 나대용이다. 휘하 직원들도 내가 아니라 나대용이 뽑은 사람들이다.

지금 잘 하고 있는 사람을 내치고, 내가 다시 대장이 될 이유나 명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무슨 말씀을, 대용 씨야말로 탑주님의 복귀를 누구보다 환영할 겁니다."

얘는 벌써 현 마탑주 보고 대용씨라고 부르고 있었다.

"대용 씨는 탑에 인정받은 정식 마탑주가 아니라 탑을 움직일 권한이 없습니다. 새로운 관리자를 임명할수도 없어서 관리자들이 분열된 지금의 마탑은 서서히 힘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탑주님이 돌아오시는 게 맞습니다."

나는 팔짱을 꼈다.

"생각해 볼게.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보안은 철저히 지켜줘. 다른 녀석들도 한 명 한 명 찾아 가서 조사해 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대추차를 음미했다.

좀 마음 붙이고 쉬고 싶은데, 정서진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

내가 대추차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뭐 보고할 거 있어?"

"그동안 알케미아의 성과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랄까, 마치 받아쓰기 100점 맞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아이 같다.

"알겠어. 한번 해봐."

"감사합니다!"

정서진은 서둘러 사무실에 스크린을 띄우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지못해 듣기 시작한 나도 점점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대단한데.'

5년 후인 현재, 전 세계에 알케미아 지점이 들어섰다.

초대형 온라인 마켓과 물류 루트의 다변화로, 헌터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예약 주문한 포션을 던전 앞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이제 포션은 헌터들의 생활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용품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강조하던 포션의 '생필품화'가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가격도 하급 레드 엘릭서 한 병에 3만 원 선으로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어, 근데 한 병에 3만 원이면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냐? 시장에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매출을 고려해 보면, 하급 엘릭서는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서진의 말에 따르면 중급 엘릭서부터는 가격이 10배가 뛴다고 한다.

상급, 최상급 엘릭서의 비용은 말할 것도 없이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가면허 시절부터 포션을 써오던 헌터들은 포션의 의존도가 커진 상태, 공인 헌터가 되어도 기꺼이 비싼 포션을 구매해 주는 소비패턴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참, 그러고 보니 중국은 어떻게 됐어? 포션 짝퉁 브랜드 만든다고 그렇게 난리였는데."

"그 부분도 해결했습니다."

알케미아의 힘만으로 포션을 세계각국에 공급하는 건 도저히 역부족이다. 그래서 정서진은 각국 시설에 포션 레시피를 기꺼이 공개했다.

하지만 한 가지. 포션을 만들기 위한 필수 도구인 '마법솥'은 오로지 마탑에서만 만들 수 있다.

마탑에서는 알케미아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업체에서만 이 솥을 임대해 준다. 물론 이 솥으로 만드는 모든 포션에 알케미아의 로고를 다는 걸 조건으로 말이다.

"수출용으로 임대하는 인스턴스 마법솥은 수명이 있습니다. 마법진의 효력이 다하면 쓸 수 없게 되어 있죠."

정서진이 설명했다.

"업체에서는 새로운 마법솥을 구매하거나, 마탑에 갱신 요청을 해야 합니다. 마탑의 수익의 30% 이상이 이 마법솥 임대에서 나옵니다."

"오오! 완전히 수익 모델을 새로 만든 거구나?"

"예."

이렇게 해두면, 만약 다른 업체에서 마법솥을 훔쳐도 금방 고물이 되어버린다. 보안 마법을 걸어놓고 패턴도 계속 바꿔서 마법진의 기능을 베끼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하급과 중급은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상급 엘릭서부터는 오로지 알케미아에서만 만들어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좋은데? 완전히 시장을 장악했네."

정서진이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독점 때문에 악덕기업 소리는 안 듣도록 사회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취약계층인 비전투계와 마법사 후보생 지원에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알케미아에 대한 세계의 이미지도 무척 좋습니다."

과연, 정서진이다. 깔끔하고 이상적인 일 처리에 감탄이 나온다.

"포션 파트는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이제 돌아오셔서 골렘과 워프 파트만 손봐주시면 마탑은 지금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아, 말 나온 김에 솔이랑 사미아는 왜 마탑을 나간 거래?"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나대용 씨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서로 별 악감정 없이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하기야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무슨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그때 내 주머니에서 윙윙하고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오늘은 어디서 훈련할 거냐는 하예린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슬슬 가봐야겠다. 나도 일정이 좀 있거든."

"알겠습니다."

정서진이 몸을 일으키자 내가 재빨리 말했다.

"마중 나올 필요 없어. 바쁘잖아."

"아닙니다. 마중 나가게 해주십시오."

하여간.

나는 집무실을 나서며 물의 장막가면을 썼다. 정서진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었고 우리는 함께 올라탔다.

"아 맞다."

"?"

"넌 마인이 누구라고 생각해? 그냥 개인적인 추측으로."

정서진은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홍연 협회장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군요."

"……너도냐? 보라도 그렇게 말했는데."

점점 홍연과의 재회가 무서워진다.

대체 어떻게 바뀌었길래?

내가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손길이 느껴진다.

"아, 하지 말라고!"

내가 발끈하자 정서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너 내가 형인 거 까먹으……"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춘 나는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냐."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하예린 앞에선 5년이란 시간이 가버린 게 억울해서 어린 척하다가도, 정서진 앞에선 계속 형 대접받고 싶다는 게 우습기도 하다.

아무튼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정서진은 어느새 정문 앞에 자신의 차와 운전수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그냥 택시 타고 간다고 해도 모시게 해달라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알았어, 그럼 잘 타고 갈게."

"무사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차 부순 건 진짜 미안하다."

정서진이 환하게 웃었다.

"껌값이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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