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61화
그녀가 질색하며 내 팔뚝을 철썩철썩 때렸다. 얘 반응이 너무 웃겨서 계속하게 된다.
"진짜 너무해! 치사하게 나이 가지고 여자 놀리기 있어요?"
"미안. 내가 최근에 나이 갑질 많이 당해서 쌓였나 봐."
"누구한테요?"
"아!"
내가 무릎을 탁 쳤다.
"이거 말하는 거 깜빡했네. 새로운 마나의 아이를 찾아냈어."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마나의 아이가 있어요? 선배님 말고?"
"그래. 당분간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 녀석도 한번 제대로 키워보려고."
"좋네요!"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
"그건 그렇고 에아는 어떻게 된 거야? 도통 답이 없어서."
"아, 에아 씨는 지금 휴면 상태에 들어갔어요."
"응?"
진보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정신을 잃게 된 뒤 에아는 1년 정도 활동하다가 마탑주의 활동 정지로 인한 강제 휴면 상태로 돌입하게 됐다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단순히 휴면 중이라면 내가 마탑에 돌아가서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지이이이잉!
아까부터 울리는 진동 소리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 진짜. 5년 만에 재회인데 짜증 나게……"
"얼른 가봐. 중요한 회의 아냐?"
"싫어요!"
그녀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나 어디 안 도망가. 휴대전화만 개통해 주면 저녁에 또 통화하자."
"저, 정말이죠? 그 말 잊지 마세요!"
벌떡 일어난 그녀가 화사하게 미소지었다.
"으으, 정말 정말 행복해요! 마탑도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겠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 * *
한국 마법 기술원, 카임 (KAIM).
수업이 끝나고 퇴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쟤 맞지?"
"응. 3반의 저주받은 애."
"이번에 김유신 박물관에 몬스터가 나왔던 것도 쟤 때문이래."
"으, 싫다. 좀 떨어져서 가자."
하예린은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홀로 걷고 있었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나라고 이런 체질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게 아니라고!'
울고 싶은 심정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녀의 발 앞으로 누군가의 다리가 슥 들어왔다.
"꺅!"
그만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주위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하예린. 신세 많이 졌다?"
팔에 깁스를 한 남자가 히죽 웃었다. 하예린은 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같은 반의 오정호. 그가 교실에서 계속 자신의 이름을 꺼내는 걸 듣고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따라와."
오정호는 하예린의 손목을 붙잡고 구석진 골목으로 끌고 왔다.
골목에는 그의 친구들 세 명이 삐딱하게 자리 잡은 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저, 정호야. 너 왜 팔이……"
"X발, 왜겠냐? 박물관에서 잔해가 떨어져서 다쳤잖아."
"……아."
이제는 트라우마가 된 지독한 죄책감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어쩔 거야?"
오정호가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헌터는 몸이 재산인데. 너 때문에 실기 망치면 어쩔 거냐고."
"……그."
"와, 씨."
그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뒤에서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끝까지 사과는 안 하네."
"인성 터진 거 보소."
"내 말 맞잖아. 쟤 마인이라고."
"마인 사냥 하면 바로 가면허 발급이라는데. 우리도 혜택 좀 볼래?"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나, 난 마인이 아니야!"
"……."
잠시 조용히 있던 오정호와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들었냐? 놘 뫄이니 아뉘야!"
"키키키킥!"
"너랑 관련된 소문이 어디 한둘이 어야지."
"마인은 몬스터도 다룰 수 있다는데 빼박 아님?"
"아, 짜증 나. 마인 년이랑 한 반에서 계속 수업 들어야 한다고?"
"됐고."
오정호가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냈다.
"실은 내가 유튜브 채널 새로 하나팠거든."
"……?"
"재밌는 콘텐츠를 하나 떠올렸는데, 같이할래?"
싱글싱글 웃는 오정호의 모습에 그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너한테도 나쁜 조건은 아닐걸, 네가 정말로 몬스터를 부르는지 아닌지 실험해 보는 거야."
"시, 실험?"
"그래. 수업 끝나고 밤에 너 혼자 한적한 통제구역에 몰래 들어가는 거야! 거기서 두 시간 동안 버티기! 정말로 몬스터가 올까 안 올까 하는 그런 실험이지. 어때? 조회수 대박날 것 같지 않냐?"
안색이 새하얘진 그녀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나, 나는 싫어!"
"와, 역시 하예린 인성."
오정호가 친구들 쪽을 바라보며 시시덕거렸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 때문에 실기 다 망치게 생겼는데 아무것도 없이 그냥 퉁 치려고?"
"맞아. 까놓고 말해서 네가 몬스터를 안 부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잖아. 왜, 꿀리냐?"
그들이 하예린을 둘러싸고 다가왔다. 그녀가 뒷걸음질쳤지만 뒤는 벽이었다.
"제목 이거 어때? 몬스터의 여고생 먹방 실황!"
"그냥 19금 걸고 찍자. 묶어 놓고하면 조회수 미쳤지."
"캬캬캭! 아, 김석규 저 또라이 새끼! 그러면 영상 칼같이 잘린다고!"
"유튜브 말고도 다른 사이트 많아."
이것들 다 제정신이 아니다. 하예린이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정지."
파직거리는 전류의 창이 그녀의 발앞에서 떨어졌다. 오정호의 검지는 끝에는 파직 거리며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1티어인 전격계 마법이다.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콘텐츠 수위가 높아 질 줄 알아."
"미래의 크리에이티브님을 위해 협조 좀 해줍쇼."
"아, 뭘 자꾸 협조를 구하고 그래? 걍 데려가서 찍자."
그들이 다가온다. 하예린은 너무공포스러워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눈물이 쏟아진다.
왜.
대체 왜 나만 이런 체질을…….
터어엉!
그때, 하예린을 붙잡으려던 오정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가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커…… 흑! X발 뭐야! 니들 지금 쳤냐?"
"우, 우리 아닌데?"
터엉!
이번엔 오정호의 복부에 충격이 휘몰아쳤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헛구역질을 했다.
터엉
두 번째 남학생의 무릎이 접힌다.
세 번째 남학생의 뒤통수가 꺾인다.
마지막으로서 있던 남학생의 안면이 흐물거리며 바닥으로 날아간다.
어느새 오정호를 포함한 네 사람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니면 이런 콘텐츠는 어때?"
오정호의 캠코더가 날아가 한 남자의 손에 착 들어왔다. 그는 쓰러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을 촬영하며 말했다.
"개 양아치들 정의구현."
"X이이이발! 누, 누구야!"
하예린은 깜짝 놀랐다.
청바지 차림에 후드티를 입은 남자. 어제 자기 집에서 밥까지 먹고 간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저씨……'
유신은 천천히 자리에 쪼그려 앉아 미소 지었다.
"아니면 이걸로 할까? 동물의 세계. 뙤약볕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들."
"야이 X이발 새끼야! 너 뭐냐고!"
터어어엉!
소리를 지르던 남학생의 등에 막대한 충격이 가해지며 컥! 하는 소리를 냈다.
"콘텐츠 협조 좀 해줘라. 지렁이는 입이 없어서 말을 못 해요. 그래, 그렇게 꿈틀거리니까 리얼리티가 좀 사네."
그들이 저항하고 악을 지를 때마다, 유신은 기꺼이 마법으로 주물러줬다. 그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꺾였다! 진짜 꺾였다고오오오!"
"이 X발 미친 새끼가! 살려줘! 이새끼 진짜 죽일 생각이야!"
아무리 외쳐도 방음 마법진을 깔아둬서 소리는 전파되지 않았다. 유신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이런 콘텐츠는 어때? 헌터아닌 헌터 강제 은퇴식. 어디 한 곳 평생 못쓰게 분질러 볼까?"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는 유신의 모습에,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답 없는 또라이다.
상황파악이 끝난 다른 학생들이 살려달라며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단 한 명, 오정호는 달랐다.
"너 X발 헌터야? 헌터 맞지?"
그는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감히 민간인을 건드려? 넌 뒈졌어! X발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던전에 벌써 몇 명은 담갔……!"
빠아악!
사지타우로스가 발동하며 그의 입이 쑥 닥쳤다.
'역시 요즘 애들은 어른들을 별로 안 무서워한다니까.'
유신은 자리에 쪼그려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는 '물의 장막'이 입혀진 상태였고, 그들이 보는 장면은 신분증이다. 그들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졌다.
"……지, 집행부!"
헌터 잡는 헌터. 헌터 관련 범죄라면 살인까지 허용된 초월적 권한을 가진 괴물들.
"각성자 교내 폭력 실태 조사하러 왔는데, 이렇게 또 월척을 낚네."
유신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아빠 누군데? 빨리 이름 대봐. 던전에서 누굴 담갔다고?"
오정호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X랄 마! 집행부가 무슨!"
"내가 지금 구라 치는 걸로 보여?"
스멀거리던 유신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오정호의 몸속에 침투했다. 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드디어 이 녀석도 상황파악 끝난 모양이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말했다.
"꿇어. 암적인 새끼들아."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울고불고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유신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바닥이 불쑥 튀어나오며 그들의 이마 앞에 날카로운 어스 클레이모어가 솟구쳤다.
"앞으로 내 귀에 니들 이름 한 번이라도 들리면."
"어, ……어어?"
4공정 아이올로스가 발동하며 그들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수십 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자 그들이 겁먹은 얼굴로 다리를 버둥거렸다. 살려달라느니 그만하라느니 비명을 쏟아냈지만 유신은 냉정하게 팔을 내렸다.
슈슉!
그들의 몸이 떨어진다. 그리고.
"허으윽!"
"하악!"
어스 클레이모어의 바로 앞에서 멈춘다.
"두 번은 없어."
유신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벽에 던져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나같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똥오줌을 지린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휘저어 캠코더를 메모리까지 박살 낸 유신이 하예린을 보며 말했다.
"가자."
"……아, 네!"
* * *
양아치들을 교육하고, 나는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보던 하예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하, 하지만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심하긴."
내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생각해 봐. 어중간하게 대처하면 너만 더 고생이야."
"……."
"그리고 그런 뼛속부터 양아치인 새끼들은 뭔 짓을 해도 안 바뀌어. 인생급 충격을 줘야 지들도 좀 느끼는 바가 있겠지."
"……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아까 양아치들 교육한 거, 어스 클레이모어를 빼면 전부 바람계 마법이다?"
"네? 그게요?"
그녀가 눈을 끔뻑거렸다.
"조만간 너도 쓸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아차산으로 향했다.
산 초입부터 마계수들이 우렁차게 자라난 모습이 보인다. 여기도 참 오랜만이다.
갑작스러운 등산에 그녀는 당황한 듯했지만, 별말 없이 따라왔다.
"이 산은 내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야."
"왜요?"
그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상쾌한 곳에 와서 그런지 이제는 기분이 많이 풀린 모양이다.
"내가 헌터이기 전엔, 여기서 막 뛰어다니면서 능력치 올리고 그랬거든."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필드던전이나 사냥터에 안 가고요?"
"옛날엔 '전력외'라는 정책 때문에 1랭크 몬스터도 함부로 사냥 못했거든."
"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당시엔 마나 삼림욕이란 것도 유행이었고."
그녀가 두 손을 곱게 모아 입을 가렸다.
"마나 삼림욕……! 대체 얼마 만에 그 소리 들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역시 아저씨!"
"……너랑 나랑 몇 살 차이 안 난다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중턱까지 올랐다.
산 중턱쯤에서 등산로를 벗어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무한 그루 없는 탁 트인 경관이 펼쳐진다.
아래에는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와……"
눈을 빛내며 풍경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좋아, 여기서 훈련하자."
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무슨 훈련을 할 거예요? 새로운 바람계 마법? 3서클?"
"전부 틀렸어."
나는 섬뜩하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기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