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59화
"내가 마법을 가르쳐 줄게."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저씨가요?"
"그래."
나는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막 거창한 건 아니고, 학교 끝나면 과외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거야. 적어도 네 힘으로 끌어들인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주위 사람들을 지킬수 있도록 단련하는 거지. 어때?"
그녀가 눈물을 그치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 바람계 마법사라서……."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계에 대한 변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비전투계라서'가 주요한 변명이었는데, 요즘은 '바람계 마법사라서'가 새로운 변명이 됐다.
"바람계 마법도 충분히 가치 있어. 내가 말했지? 박물관에서 몬스터를 쓰러뜨린 마법도 바람계 마법이었다고."
"……몇 서클 마법인데요?"
"6서클."
그녀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슥닦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짓말쟁이."
"……응?"
"세계 최고의 마법사인 마탑주도 5서클이 다예요. 5서클을 시전하려면 아무리 마탑주라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대요. 그런데 6서클은 거짓말이 좀 과한 거 아닐까요?"
"나대용도 5서클이 끝이라고?"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것들 나 없다고 대충 한……"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눈물을 그친 그녀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6랭크 골고르를 일격에 쓰러뜨린 힘은 진짜니까요. 믿어드리는 척은 할게요."
"척이라니……"
나는 한숨을 쉬며 근처에 놓인 쓰레받기로 유리 조각들을 쓸어담았다. 옆에서 나를 도와주던 그녀는 고민이 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결심했어요."
그녀가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부탁드릴게요. 저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오, 제법 강단은 있는데?"
내가 주먹을 뻗었다. 그녀가 주먹을 맞부딪치며 말했다.
"아, 근데 이것도 못 물어봤네. 아저씨 성함이 뭐예요?"
"나?"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생각나는 세 글자를 내뱉었다.
"김춘추."
"푸춥!"
그녀가 입을 가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나는 뒤늦게 속으로 후회했다.
아, 죽고 싶다.
"이름부터 아저씨 같아."
"……조용히 해."
"그럼 과외비는 언제부터 드리면 돼요?"
"야. 날 뭘로 보고……"
그렇게 말꼬리를 늘이던 나는 퍼뜩 말을 바꿨다.
"크흠, 일단 선금 2만 원."
"……네?"
"흑염소 팩 사느라 현금 가지고 나온 거 다 썼다. 차비 없어."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하는 표정이었다.
* * *
같은 시각, 마탑 제1층.
"죄송합니다. 조제관님."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진보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체 당신들 하는 게 뭐예요? 이러고도 비싼 연봉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유신이 사라진 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진보라는 겉으로는 평소처럼 발랄하고 활기 넘쳐 보였지만, 사실 속은 시커멓게 문드러져 있었다.
유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녀는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그때 그녀에게 굽신거리던 마법사들이 정문으로 몸을 돌려 허리를 숙였다.
"또 직원들 갈구고 계십니까 선배."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마탑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마법사이자, 김유신의 유지를 잇는 제2대 마탑주.
공인 2급 나대용.
그 위상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쪽이 신경 쓸 일 아니네요."
진보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나대용은 어깨가 뻐근한 듯 손바닥으로 누르며 말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스승님이 사라지셨다고요."
그녀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뭐 짐작 가는 거 없어요?"
"글쎄요. 마탑 제2층은 철벽의 보안구역입니다. 외부인이 마탑에 들어와 스승님을 빼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유일한 방법이라면……"
나대용의 표정이 한 순간 심각해졌다.
"사미아. 탄자니아의 그 배신자겠죠."
"네?"
"5층 관리자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녀라면, 언제든지 워프로 넘어와 스승님을 빼돌릴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볼 건 그것밖에 없네요."
진보라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미아 헌터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마탑에 적대적인 세력인데 무슨 짓이든 못하겠습니까? 스승님의 시신을 빼내면서 우리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의도……"
덥석!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든 진보라가 나대용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경고하는데."
그녀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한 번만 더 '시신'이라는 소릴 쓰면 당신 눈깔을 후벼 파버릴 거야."
"……."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의 사이에 살벌한 기류가 흘렸다.
"말실수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대용이 깔짝 고개를 숙였다. 진보라는 짜증스러운 한숨과 함께 멱살을 놓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스승님의 몸을 빼돌릴 방법은 오로지 워프뿐입니다. 탄자니아 협회에 연락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겠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어쩔 건데요?"
"뭐, 그쪽이 끝까지 잡아뗀다면……"
나대용은 담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가 흘러나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겠죠."
* * *
하예린에게 받은 과외비로 나는 찜질방 위층의 피시방에 와 있다.
여기서 5년 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강 파악했다. 착잡함에 한숨이 나왔다.
'다들 갈기갈기 찢어져 흩어졌구나.'
진보라는 1층 관리자로서 마탑에 남아 있다. 마탑주인 나대용을 제외하면 마탑의 최고 권력자다. <공인 3급>.
정서진은 알케미아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층 관리자 일은 거의 손을 뗀 모양이다. 지금은 기업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다.<공인 3급>.
은솔은 마탑에서 독립해 별개의 경비 사업체를 차렸다. 3층 골렘공방을 쓰지 못해도, 그녀의 천재성을 발휘해 규모 있는 회사를 일구어냈다. 물론 헌터계 쪽에서도 성과가 대단하다. <공인 2급>.
사미아는 가람과의 계약 기간을 채우고 탄자니아로 돌아갔다. 현재는 탄자니아 헌터 협회장이자, 동아프리카 전선 총사령관이 되었다. <공인 2급>.
'이탈자는 은솔과 사미아인가.'
나는 메모장에 끄적거리며 직접 펜으로 필기했다. 전원 3급 이상으로 역량이 대폭 올랐는데, 특히 은솔이 2급이 된 건 파격적이었다.
하긴 뭐, 그녀가 쓰는 아이언 골렘만 해도 어지간한 헌터들은 꿈도 못꿀 정도의 화력이었으니까.
'지금 쯤이면 솔이도 많이 컸겠구나.'
나는 여러 떠오르는 상념을 털어내고 다음은 4층팀의 근황을 확인했다.
나대용은 4층 관리자이자, 현 마탑주다. 세계 최강의 마법사로 손꼽히고 있다. <공인 2급>.
차도연은 대한민국 헌터협회 소속의 마법부장관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협회, 집행부, 마법부는 각자의 독립된 영역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공인 3급>.
김사랑은 영국의 매니지먼트인 '크로우'에 소속되어 글로벌 헌터이자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인 3급>.
소심희도 마찬가지로 미국 1위 길드 '가디언'에 스카웃되어 글로벌헌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세계최강의 메테모포시스 능력자로 손꼽히고 있다. <공인 2급>.
조용희는 독자적인 마법사 길드 '암약'을 만들었다. 소수 정예 길드로서 명성이 자자하다. <공인 3급>.
이 사람들의 기사를 보면 볼수록, 나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다.
다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미치도록 보고 싶다.
마인이고 뭐고, 당장에라도 마탑으로 돌아가고 싶다.
예전처럼 다 같이 1층 로비에서 놀고, 술 먹고, 게임도 하고, 하루종일 이야기도 하고, 그런 내 인생최고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은 책임감이었다. 초대는 내지인이 마인이 된 원인은 내 죽음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마인이 된 사람이 누구든 간에, 적어도 내 손으로 목숨을 거둘 생각이었다.
다음 차례는 마탑 멤버가 아닌, 외부 소속의 동료들이다.
나는 홍연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다.
"와."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홍연.]
결국 해냈다. 홍연은 언니의 뒤를 이어 협회장이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
[전설이었던 언니, 그 이상.]
[공인 1급 홍연 협회장, 10랭크 던전의 '칠흑' 공략대 1군 가입.]
[마인의 악몽 홍연. 5년간 그녀가 사냥한 마인의 수는 집계된 것만 해도 3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헌터 Top5.]
[대영웅 홍율은 잦은 부상으로 헌터계를 잠정 은퇴했지만, 그 뒤를 이은 홍연은 언니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우며 협회장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공인 1급을 달성한 그녀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헌터계에서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홍연은 뭐, 걱정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도 완벽한 모범생 그 자체였다.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한윤정의 이름인 '메네스'를 검색해 보았다.
[파라오 메네스, 이집트의 수호자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통치자로.]
[세계 길드의 수장. 유일한 공인 1급 헌터.]
[사미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한 동아프리카는 독립을 주장.]
대단하다. 한윤정도 결국 공인 1급에 도달한 모양이다.
'아프리카의 통치차라니, 거창하네.'
5년 뒤의 세계는, 내 주변 인물들이 지구라는 무대의 주역이 되어 인류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비전투계 시절과 아카데미 시절을 알고 있고, 함께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뒤숭숭했다.
내가 5년 동안 저들과 함께했다면, 세계는 얼마나 변했을까? 나도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마탑이 갈기갈기 찢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마인으로 타락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망할……'
나는 등을 쭉 기댔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끝도 없다.
시간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고, 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세계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지 않은가?
다시 동료들을 결집하고, 내 지휘와 힘을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저들과 당당히 어깨를 맞대고 최후의 재앙에 맞설 것이다.
물론 그전에.
'이 중에서 한 명은 내 손에 죽어야겠지.'
홍연과 한윤정도 내 인간관계에서는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녀들도 유력한 마인 용의자다.
플레이어가 아닌 신나라 대표도 마찬가지.
마인들을 학살한 홍연은 용의 선상에 멀어지는 게 맞지 않나 싶다가도, 천공성주의 예가 있으니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마인으로 타락한게 최근일 수도 있고.
한윤정은 글쎄다. 그녀가 어떤 내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참전을 고사한 전투에서 나는 죽었다. 거기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도 유력한 용의자였다.
나는 모두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정보들을 빠짐없이 메모장에 기입해나갔다.
"……으, 이 중에서 누가 마인이란 거야?"
좀 처럼 감이 잡히질 않는다.
역시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조력자가 필요하다.
'이 중에서 마인이 아니라고 확실히 밝혀진 사람이 한 명 정도만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동료들에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진보라 - 회고록]
예전에 진보라가 SNS에 썼다가, 지금은 지웠다는 포스팅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바보라니까.'
나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게 됐다.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